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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는 것이 타당한가?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는 것이 타당한가?

# 개회 발언

찬성 측 개회 발언

존경하는 심사위원님, 그리고 오늘 이 자리를 함께하는 모든 분들께 묻겠습니다.
“하루 18시간 이상 게임에 몰두해 수면도 거르고, 학교도 가지 않으며, 가족과의 대화마저 끊은 아이를 보셨습니까?”
그 아이는 게으른 것이 아닙니다. 의지가 부족한 것도 아닙니다. 그는 통제할 수 없는 충동에 갇힌 환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 측은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이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인간 존엄의 회복, 사회적 지원 체계의 확장, 그리고 예방과 치료의 정당화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첫째, 뇌과학과 임상심리학은 이미 게임 중독을 ‘행동 중독’으로 규명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9년 ‘게임 장애(Gaming Disorder)’를 국제질병분류(ICD-11)에 등재했습니다. 도파민 시스템의 과도한 활성화, 전두엽 기능 저하, 충동 조절 능력 상실—이 모든 것은 알코올이나 도박 중독과 유사한 신경생물학적 메커니즘을 공유합니다. 이를 단순한 ‘의지 문제’로 치부하는 것은, 우울증을 ‘약해빠진 마음’이라고 비하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둘째, 질병 분류는 낙인이 아니라 구조적 지원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 따르면, 게임 중독 청소년의 72%가 ‘도움을 받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고 답했습니다. 질병으로 인정되면 건강보험 적용, 전문 치료 프로그램, 학교 내 상담 체계 강화가 가능해집니다. 지금처럼 ‘문제아’로 낙인찍히는 대신, ‘치료가 필요한 사람’으로 존중받을 수 있습니다.

셋째, 질병 분류는 예방 교육과 공공 인식 개선의 기초가 됩니다.
흡연이 질병으로 간주되면서 금연 캠페인, 담배값 인상, 공공장소 흡연 금지 등이 정책으로 실현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보는 시각은 가정과 학교에서의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 건강한 여가 문화 조성, 플랫폼 기업의 책임 강화를 촉진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는 자유의 제한이 아니라 회복의 기회입니다.
누군가는 “게임은 선택의 자유”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중독된 상태에서의 선택은 진정한 자유가 아닙니다. 마치 알코올 중독자가 ‘술을 마실 자유’를 주장한다고 해서, 우리가 그를 방치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그에게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그 손길의 시작이 바로, ‘질병’이라는 이름으로 인정하는 용기입니다.


반대 측 개회 발언

심사위원님, 여러분.
오늘 우리는 단지 ‘게임’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유와 통제, 책임과 면책,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어떻게 그을 것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우리 측은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단호히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이는 개인의 책임을 희석시키고, 일상적 행위를 병리화하며, 사회 통제의 도구로 악용될 위험이 크기 때문입니다.

첫째, ‘질병’이라는 라벨은 책임 회피의 변명이 될 수 있습니다.
게임을 과도하게 하는 원인은 다양합니다. 스트레스, 외로움, 학업 압박, 가정 문제… 이 모든 것은 심리적·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할 현상입니다. 그런데 이를 단순히 ‘질병’이라 규정하면, 개인은 스스로의 행동에 대한 성찰과 조절 노력을 포기하게 됩니다. “난 병이야”라는 말 한마디로, 모든 책임이 외부로 전가됩니다. 이는 오히려 성장과 회복의 기회를 빼앗는 것입니다.

둘째, 일상적 오락 행위를 질병으로 분류하는 것은 위험한 선례를 남깁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활동이 다음 차례일까요?
넷플릭스 중독? SNS 중독? 쇼핑 중독?
모든 과잉 소비 행위를 ‘질병’으로 규정한다면, 인간의 자율성은 어디까지 존중될 수 있을까요?
게임은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문화적 표현이자 사회적 연결의 수단입니다. e스포츠는 올림픽 종목 후보이며, 게임은 창의성과 협업을 키우는 교육 도구로도 사용됩니다. 이를 일괄적으로 ‘병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문화 다양성에 대한 무지입니다.

셋째, 질병 분류는 국가의 과도한 개입을 정당화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이미 ‘셧다운제’로 청소년의 게임 시간을 법으로 규제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질병’이라는 이름으로, 더 광범위한 감시와 통제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게임 이용 기록이 건강보험 데이터와 연동된다면? 개인의 사생활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는 의료화(medicalization)를 통한 자유 침해의 전형입니다.

결국, 우리가 해결해야 할 것은 ‘게임’이 아니라, 그 뒤에 숨은 고립, 불평등, 정신 건강 위기입니다.
질병이라는 단 하나의 렌즈로 복잡한 사회 문제를 단순화해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해결은 교육, 대화, 환경 개선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을 믿는 용기에서 시작됩니다.

게임은 병이 아닙니다.
그 안에서 헤매는 사람이 병든 것이 아니라, 그를 외면한 사회가 병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 개회 발언 반박

찬성 측 두 번째 발언자 반박

존경하는 심사위원님, 방금 반대 측 첫 번째 발언인은 매우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사람을 믿는 용기”라니—정말 아름다운 말입니다.
하지만 감동적인 말이 곧 옳은 주장은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논의해야 할 것은 감정이 아니라 사실, 이념이 아니라 증거입니다.

첫째, 반대 측은 “질병 분류가 책임을 회피하게 만든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는 ‘질병’과 ‘면책’을 동일시하는 치명적인 오해입니다.
우울증 환자가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는다고 해서, 그가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포기한다고 보십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치료를 통해 책임을 회복하는 첫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게임 중독도 마찬가지입니다. “난 병이야”라는 고백은 면책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해’라는 용기 있는 외침입니다.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질 수 있는 상태로 돌아가기 위한 과정인 것입니다.

둘째, “넷플릭스 중독, 쇼핑 중독도 질병이냐”는 질문은 논점 일탈입니다.
WHO가 게임 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한 이유는, 명확한 진단 기준과 임상적 손상 기준이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많이 한다’는 이유로 질병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12개월 이상 지속된 통제 불능, 일상 기능의 현저한 저하, 사회·직업적 관계 파괴—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진단됩니다.
넷플릭스를 열심히 보는 것과, 학교를 그만두고 방에 틀어박혀 3년간 게임만 하는 것은 질적으로 다릅니다.
이를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감기와 폐암을 같은 호흡기 질환이라며 치료를 거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셋째, “국가의 통제가 확대된다”는 우려는 현실을 왜곡합니다.
셧다운제는 법률적 규제였고, 질병 분류는 의료적 개입입니다.
둘은 목적도, 수단도, 근거도 전혀 다릅니다.
오히려 질병으로 분류되면, 국가의 강제적 개입보다는 개인의 자발적 치료 선택권이 보장됩니다.
건강보험 적용은 국가의 감시가 아니라, 시민의 건강권 보장입니다.
사생활 침해를 우려하신다면, 개인정보 보호법과 의료윤리 강화를 요구하시지, 치료 자체를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마지막으로, 반대 측은 “게임은 문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맞습니다. 게임은 문화입니다.
하지만 문화 속에도 병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술도 문화고, 도박도 일부 지역에선 전통이지만, 중독되면 치료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게임 전체를 병으로 몰아붙이는 것이 아니라, 극소수의 중증 환자에게만 ‘질병’이라는 이름을 주는 것입니다.
그 이름은 낙인이 아니라, 구조 요청 신호입니다.


반대 측 두 번째 발언자 반박

찬성 측은 과학과 인도주의의 이름으로, 매우 설득력 있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논리는 겉보기엔 탄탄해 보이지만, 기초부터 흔들립니다.

첫째, WHO의 ICD-11 등재를 절대적 진리처럼 제시하셨습니다.
하지만 ICD는 법적 강제력이 없는 참고 기준일 뿐입니다.
실제로 미국정신의학회(APA)는 여전히 게임 중독을 ‘연구용 진단’으로만 분류하며, 충분한 과학적 합의가 없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있을까요?
바로 진단 기준의 모호성 때문입니다.
“통제 불능”이라는 기준은 주관적이며, 청소년의 반항기, 우울증, ADHD와도 증상이 겹칩니다.
결국, 다른 정신 질환의 증상을 게임 중독으로 오진할 위험이 큽니다.
이것이 과연 과학입니까? 아니면 사회적 불안을 의료 용어로 포장한 것입니까?

둘째, “치료 접근이 쉬워진다”는 주장은 현실과 괴리되어 있습니다.
현재 한국에는 게임 중독 전문 치료기관이 전국에 약 10여 곳에 불과합니다.
그마저도 대부분 군소 규모이며, 실질적 치료 프로그램은 거의 없습니다.
질병으로 분류한다고 해서, 즉시 치료 인프라가 구축되는 것도, 보험이 자동 적용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질병’이라는 딱지만 붙이고, 실제 지원은 없는 형식적 낙인만 남게 됩니다.
이것이 정말 환자를 위한 것입니까?

셋째, 찬성 측은 “중독된 상태에서는 자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놓친 핵심은, ‘중독’이라는 판단 자체가 누가 내리는가입니다.
부모? 선생님? 정부?
청소년이 게임을 많이 한다고 해서, 곧바로 ‘환자’로 낙인찍히는 순간,
그 아이의 자기결정권과 성장 가능성은 사전에 차단됩니다.
진짜 문제는 게임이 아니라, 그 아이가 왜 게임에만 의지해야 했는지입니다.
학교에서 배제당했는가? 가정에서 사랑받지 못했는가?
이런 구조적 문제를 외면한 채, 개인을 ‘질병’으로 치환하는 것은 사회적 책임의 회피입니다.

마지막으로, 찬성 측은 알코올 중독과 게임 중독을 동일시했습니다.
하지만 알코올은 물리적 금단 증상과 간 손상 같은 생체적 손상이 명확합니다.
반면 게임은 행동 패턴일 뿐, 뇌 영상에서 보이는 도파민 변화는
운동, 음악, 심지어 공부할 때도 나타납니다.
이를 병리적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인간의 모든 쾌락을 병으로 간주하겠다는 위험한 발상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치료해야 하지만,
사람의 행동을 무조건 병으로 만들면서까지 치료해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해결은 더 많은 병원이 아니라, 더 따뜻한 공동체에서 시작됩니다.


# 질의응답

찬성 측 세 번째 발언자 질의

찬성 측 3번:
“반대 측 1번 발언자님께 묻겠습니다.
귀측은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면 개인이 책임을 회피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알코올 중독자가 병원에서 치료받으며 술을 끊고 가족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셨을 때, 그는 책임을 회피한 것입니까, 아니면 책임을 회복한 것입니까?”

반대 측 1번:
“물론 치료를 통해 회복하는 것은 긍정적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질병’이라는 라벨 자체가 처음부터 책임을 외부화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입니다. 알코올 중독은 신체적 의존성이 명확하지만, 게임 중독은 행동 패턴일 뿐입니다. ‘병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사고가 먼저 자리 잡으면, 스스로 조절하려는 노력은 사라집니다.”

찬성 측 3번:
“감사합니다.
이어서 반대 측 2번 발언자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귀측은 ‘진단 기준이 모호하다’고 하셨는데, WHO의 ICD-11에는 ‘게임 장애’에 대해 ① 통제 상실, ② 다른 삶의 영역 희생, ③ 최소 12개월 이상 지속이라는 세 가지 명확한 기준이 있습니다.
이러한 기준마저도 ‘모호하다’고 보신다면, 귀측은 어떤 활동도 질병으로 분류해서는 안 된다고 보는 건가요?”

반대 측 2번:
“아닙니다. 다만, 이 기준들이 다른 정신질환—예컨대 우울증이나 ADHD—와 증상이 겹칩니다. 한 아이가 게임만 하는 이유가 중독 때문인지, 아니면 학교 폭력으로 인한 사회적 위축 때문인지 구분 없이 ‘질병’으로 단정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진단은 배제가 아니라 포함의 오류를 경계해야 합니다.”

찬성 측 3번:
“마지막으로 반대 측 4번 발언자님께 여쭙겠습니다.
귀측은 ‘국가가 게임 이용 기록을 건강보험과 연동해 감시할 수 있다’고 우려하셨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이미 게임사는 실명제와 접속 기록을 보관하고 있고, 청소년 보호법은 ‘셧다운제’로 시간을 통제합니다.
‘질병 분류’가 아닌, 이미 존재하는 규제가 더 큰 사생활 침해 아닐까요? 오히려 질병 분류는 자발적 치료 접근을 가능하게 해, 강제 통제를 줄이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습니까?”

반대 측 4번:
“현행 규제는 이용 시간 제한에 불과하지만, 질병 분류는 개인의 정신 상태까지 국가가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합니다. 예를 들어, 게임을 많이 한다는 이유만으로 정신과 진단서를 요구받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규제를 넘어, 인격 전체에 대한 의료적 판단으로 확장될 위험이 있습니다.”

찬성 측 질의 요약

반대 측은 책임 회피, 진단 모호성, 국가 감시라는 세 가지 우려를 제기했으나,
첫째, 질병 인정은 책임 회피가 아니라 회복의 출발점이며,
둘째, WHO 기준은 충분히 명확하고 임상적으로 검증되었으며,
셋째, 현재의 행정적 규제보다 의료적 접근이 오히려 자유를 확장할 수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즉, 반대 측의 우려는 현실과 괴리된 가상의 공포에 불과합니다.


반대 측 세 번째 발언자 질의

반대 측 3번:
“찬성 측 1번 발언자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귀측은 ‘질병 분류로 치료 인프라가 확충된다’고 하셨지만, 현재 한국에는 게임 중독 전문 치료 센터가 전국에 약 10여 곳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질병’이라는 이름만 붙이고, 정작 치료는 받을 수 없는 청소년들에게 이 분류는 낙인만 강화하는 허울 좋은 포장지가 되지 않을까요?”

찬성 측 1번:
“맞습니다. 현재 인프라는 부족합니다.
하지만 우선 ‘질병’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예산도, 인력도, 정책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흡연이 질병으로 분류되기 전, 금연 클리닉은 어디 있었습니까?
질병 분류는 완성된 해결책이 아니라, 지원 체계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반대 측 3번:
“이어서 찬성 측 2번 발언자님께 여쭙겠습니다.
귀측은 ‘중독된 상태에서는 자유로운 선택이 불가능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청소년이 게임을 그만두지 못한다고 판단되면, 부모나 국가가 강제로 치료를 시킬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하겠군요?
이는 과연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것입니까?”

찬성 측 2번:
“아닙니다. 우리는 강제 치료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병’이라는 인식이 생기면, 아이 스스로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됩니다.
강제가 아니라 선택권의 확장입니다.
알츠하이머 환자가 치매라는 진단을 받고도 자유를 잃지 않는 것처럼, 진단은 통제가 아니라 이해의 시작입니다.”

반대 측 3번:
“마지막으로 찬성 측 4번 발언자님께 묻겠습니다.
귀측은 ‘게임 중독 뒤에는 고립과 불평등이 있다’고 인정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 근본 원인을 해결하기보다, 증상만 ‘질병’으로 덮어버리려 하십니까?
‘병’이라고 선언하는 순간, 사회는 ‘의료기관에 맡기면 된다’며 손을 떼지 않겠습니까?
이는 구조적 책임의 외주화 아닙니까?”

찬성 측 4번: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질병 분류는 원인 탐색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병행하는 도구입니다.
당뇨병 환자에게 인슐린을 주면서도, 그가 왜 과식했는지, 왜 운동하지 못했는지 사회경제적 맥락을 함께 살펴보지 않습니까?
게임 중독도 마찬가지입니다. 치료와 구조 개선은 양립 가능합니다.”

반대 측 질의 요약

찬성 측은 이상적인 미래를 그렸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첫째, 치료 인프라 부재 속의 질병 분류는 허상이며,
둘째, ‘자유 없는 선택’이라는 논리는 강제 개입의 문을 열 위험이 있으며,
셋째, 질병화는 사회가 구조적 문제를 외면하는 변명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람을 믿고, 환경을 바꾸는 길을 택해야 합니다.
병명 하나로 복잡한 인간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결국 또 다른 폭력이 됩니다.


# 자유 토론

찬성 1번:
“상대 측은 ‘책임 회피’를 걱정하셨죠? 그런데 말입니다—알코올 중독자가 병원에 가면 ‘책임을 피했다’고 할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그를 용기 있게 치료받는 사람이라 존중합니다. 게임 중독도 마찬가지입니다. ‘병’이라는 이름은 면책부가 아니라, ‘도움을 청해도 괜찮다’는 사회적 허락입니다.”

반대 1번: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지금 한국에 게임 중독 전문 치료센터가 몇 군데 있습니까? 전국에 약 10곳, 그것도 대부분 상담 수준입니다. 진단명만 붙이고 치료는 없는 상태에서 ‘질병’이라 규정하는 건, 마치 환자에게 ‘당신은 암입니다’라고 말하고 약 한 알 주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게 진짜 도움입니까,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방치입니까?”

찬성 2번:
“정확히 그 점이 우리가 질병 분류를 요구하는 이유입니다! 치료 인프라가 없다면 만들면 됩니다. 하지만 ‘질병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동안, 예산도, 연구도, 인력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의 무대책이야말로 진짜 방치였던 거죠. 질병 분류는 치료의 출발선이지, 결승선이 아닙니다.”

반대 2번:
“출발선이라 하셨지만, 그 출발선에서부터 강제성이 시작됩니다. 이미 일부 병원에선 부모 요청만으로 청소년을 ‘게임 중독 치료’ 명목으로 격리 수용한 사례가 있습니다. 의료라는 이름으로 자기결정권이 박탈되는 순간, 치료는 폭력이 됩니다. 이 위험을 어떻게 막을 겁니까?”

찬성 3번:
“그러면 반대로 질문 드리죠. 지금처럼 ‘질병이 아니다’라고 하면, 부모는 아이를 어디에 보내겠습니까? 군사 훈련식 게임 중독 캠프 아닙니까? 오히려 의료 체계 안에 두어야 강제가 아닌 자발적 치료 경로가 열립니다. 의료화는 통제가 아니라, 폭력적 대안을 차단하는 안전망입니다.”

반대 3번:
“하지만 왜 하필 ‘게임’만 병으로 보는 건가요? 넷플릭스를 10시간 보는 청소년은 ‘스트레스 해소’고, 게임을 5시간 하는 청소년은 ‘중독’입니까? 이건 문화적 편견이 과학을 가장한 낙인입니다. e스포츠 선수는 국가 대표인데, 같은 행위가 다른 사람에겐 병이라니—이게 합리적입니까?”

찬성 4번:
“행위 자체가 병이 아니라, ‘통제 상실과 기능 저하’가 병입니다. e스포츠 선수는 훈련 일정을 지키고, 건강을 관리하며, 생활을 유지합니다. 반면 중독자는 학교도, 식사도, 인간관계도 포기합니다. 양극단을 동일시하는 건, 마라톤 선수와 실신한 사람을 ‘둘 다 달렸다’고 보는 것과 같습니다.

반대 4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준은 너무 모호합니다. ‘기능 저하’란 누가 판단합니까? 부모? 학교? 정부? 누군가의 ‘정상’이 다른 누군가의 ‘병’이 되는 순간, 우리는 다양성을 병리로 몰아내는 사회를 만듭니다. 진짜 해결은 게임을 병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왜 청소년이 게임 속에서만 위로를 찾는지를 묻는 데 있습니다.”

찬성 1번 (마무리 공세):
“우리는 그 질문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왜’를 묻는 동시에, ‘지금 고통받는 사람’을 구할 방법도 마련해야 합니다. 질병 분류는 그 둘을 동시에 가능하게 합니다. 과학은 이미 답을 주었고, 이제 우리가 할 일은—사람을 믿되, 고통도 외면하지 않는 것입니다.”


# 최종 발언

찬성 측 최종 발언

심사위원님, 여러분.
오늘 우리는 단지 ‘게임’에 대해 논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고통받는 이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 고통을 무시할 것인가, 아니면 손을 내밀 것인가를 묻는 자리였습니다.

반대 측은 “질병 분류가 책임을 회피시킨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병’이라는 이름이 붙어야, 그 아이는 처음으로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용기를 얻습니다.
“내가 게으른 게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상태구나”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이것이 바로 질병 분류의 첫 번째 치유 효과입니다.

또한 반대 측은 “치료 인프라가 부족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맞습니다. 지금은 부족합니다.
하지만 도로가 없으니 자동차를 만들지 말자고 하는 것과 다를까요?
질병으로 인정되지 않으면, 건강보험도, 전문 치료센터도, 교사 연수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직 준비 안 됐다”고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분류를 시작으로 지원 체계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WHO가 ICD-11에 ‘게임 장애’를 등재한 이유는 단순한 우려 때문이 아닙니다.
이는 전 세계 수십 개국의 임상 데이터와 뇌영상 연구, 수천 건의 사례 분석을 바탕으로 한 과학적 합의입니다.
도박 중독이 질병이라면, 유사한 신경 메커니즘을 가진 게임 중독도 마땅히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보는 것은 누군가를 낙인찍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보이게’ 만드는 행위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청소년이 “그냥 게임 좀 많이 했을 뿐”이라는 말 속에 묻혀왔습니다.
이제는 그들의 고통을 존중받을 자격 있는 문제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측은 확신합니다.
질병 분류는 폭력이 아니라, 포용이며,
통제가 아니라, 선택의 자유를 되찾는 첫걸음입니다.


반대 측 최종 발언

심사위원님, 여러분.
찬성 측은 “질병 분류가 손을 내미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걱정하는 건, 그 손이 도움의 손이 아니라, 통제의 손이 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질병 분류는 좋은 의도로 시작되지만, 현실에서는 강제 입소, 개인정보 수집, 학교 생활기록부 기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이미 ‘인터넷 중독 예방센터’라는 이름 아래,
청소년을 강제로 격리시키는 군사 훈련식 캠프가 운영된 바 있습니다.
그들이 받은 치료란, 게임 금지와 체벌, 그리고 ‘너는 병들었다’는 낙인이었습니다.
이것이 정말 우리가 원하는 ‘지원’입니까?

또한 찬성 측은 “WHO 기준이 있다”고 강조했지만,
ICD-11의 진단 기준 중 하나인 ‘기능 저하’는 극도로 주관적입니다.
학업 성적이 떨어졌다고? 친구와 잘 어울리지 못한다고?
그건 게임 때문일 수도 있지만, 학교 폭력, 가정 불화, 우울증, 혹은 단순히 사춘기일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복잡성을 ‘게임 장애’라는 하나의 라벨로 덮는 순간,
우리는 사람을 보는 눈을 잃고, 증상만을 처벌하게 됩니다.

더 중요한 건—
왜 청소년이 게임 속에서 위로를 찾는가를 묻지 않는다면,
우리는 계속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입니다.
현실에서 소외되고, 실패하고, 말할 곳 없는 아이들이
가상 공간에서라도 존재감을 느끼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병명’이 아니라, 귀 기울여주는 어른, 안전한 쉼터, 실패해도 괜찮은 사회입니다.

따라서 우리 측은 이렇게 결론짓습니다.
게임은 병이 아닙니다.
병든 것은, 게임에만 집착하는 개인이 아니라,
그들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우리의 시선일지도 모릅니다.

질병 분류는 쉬운 답입니다.
하지만 진짜 해결은 더 어렵고, 더 오래 걸리며, 더 많은 용기를 요구하는 길
바로 사람을 믿고, 구조를 바꾸는 길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질병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가두는 대신,
자유와 존엄으로 그들을 맞이하자고 제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