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이 직접 예산을 결정하는 주민 참여 예산제를 확대해야 하는가?
국민들이 직접 예산을 결정하는 주민 참여 예산제를 확대해야 하는가?
# 개회 발언
## 찬성 측 개회 발언
존경하는 심사위원님, 그리고 오늘 이 토론에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 묻겠습니다.
“내가 낸 세금이 내 동네 어린이집에 쓰일지, 아니면 아무도 안 가는 공원 분수대에 쓰일지—그 결정권을 누가 가져야 할까요?”
우리 측은 국민들이 직접 예산을 결정하는 주민 참여 예산제를 반드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이 제도는 단순한 예산 편성 방식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다시 국민의 손에 돌려주는 실천적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첫째, 대의 민주주의의 근본적 한계를 메워줍니다.
선거로 뽑힌 대표들이 항상 우리 삶의 세세한 필요를 반영하지 못합니다. 서울의 한 마을에서는 아이들이 안전하게 다닐 보도블록이 절실했지만, 시의원은 관광 활성화를 위해 조형물을 설치했습니다. 주민 참여 예산제는 이런 ‘대표의 착각’을 바로잡는 현장 민주주의입니다.
둘째, 예산의 실효성과 효율성이 극대화됩니다.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에서는 이 제도 도입 후 10년 만에 상하수도 보급률이 80%에서 98%로 급증했고, 교육·보건 예산은 두 배로 늘었습니다. 왜요? 실제 사용자가 무엇이 필요한지 가장 잘 알기 때문입니다. 세금 낭비는 줄고, 정책은 살아 숨 쉬게 됩니다.
셋째, 시민은 단순한 납세자가 아닌 공동체의 주체로 성장합니다.
예산을 함께 고민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은 ‘이건 내 돈이다’는 책임감을 갖게 되고, 이웃과 협의하며 공동체 의식을 회복합니다. 민주주의는 투표함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일상의 결정 속에서 살아납니다.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릅니다. “시민은 전문성이 없다”, “시간과 비용이 너무 든다”고.
하지만 우리는 묻습니다.
전문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참여 속에서 길러지는 것입니다.
정보를 투명히 공개하고, 교육을 제공하면 누구나 예산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선택하는 것은 단지 예산 방식이 아닙니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만들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맡겨진 민주주의’에 머물 것인지를 선택하는 순간입니다.
## 반대 측 개회 발언
안녕하세요.
우리 측은 주민 참여 예산제의 전면적 확대는 위험하고 비현실적이며, 오히려 민주주의를 훼손할 수 있다고 단호히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예산은 단순한 ‘의견 나누기’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자원 배분을 좌우하는 고도의 전문적·전략적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의사 면허 없는 사람이 수술대에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선의만으로는 국가 재정을 지킬 수 없습니다.
첫째, 일반 시민은 복잡한 재정 구조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지방채 상환, 중앙정부 이전금, 사회보장 기금, 장기 인프라 투자… 이 모든 것을 고려 없이 “우리 동네에 공원을 짓자”고 결정한다면, 결국은 미래 세대에게 빚을 떠넘기는 결과가 됩니다. 뉴욕시는 2010년 시범 도입 후 3년 만에 중단했는데, 이유는 시민들의 요구가 대부분 단기적·지역적 욕구에 치우쳐 장기 계획과 충돌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참여 자체가 비효율을 낳습니다.
서울시의 한 자치구에서 시범 운영한 결과, 5억 원 규모 예산 결정을 위해 6개월간 12차례 회의, 300시간 이상의 행정 인력 투입, 수천만 원의 교육비가 들었습니다. 이 자원을 그대로 복지나 교육에 썼다면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받았을 겁니다.
셋째, ‘다수의 폭정’이 소수를 짓밟을 위험이 큽니다.
청소년, 장애인, 이주민처럼 목소리가 약한 집단은 참여율이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예산은 유권자 중 가장 조직력 있는 집단—예를 들어 퇴직 공무원이나 지역 유지—에게 유리하게 흐릅니다. 이는 형평성보다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민주주의의 탈을 쓴 패거리 정치’가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집니다.
“주민들이 결정했다”는 이유로 집행기관은 실패한 사업에 대해 책임을 회피합니다. 민주주의는 투명한 책임 구조 위에 서야 합니다.
우리는 시민 참여를 반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참여는 정보, 교육, 제도적 장치가 뒷받침될 때만 가치 있습니다.
지금처럼 무분별하게 확대한다면, 좋은 취지가 오히려 민주주의를 피로하게 만들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열정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지혜와 균형 위에 서야 합니다.
# 개회 발언 반박
## 찬성 측 두 번째 발언자 반박
존경하는 심사위원님, 방금 반대 측 첫 번째 발언자는 마치 시민을 ‘무지한 군중’으로 치부하며, 예산 결정은 오직 전문가의 성역이라고 주장하셨습니다.
하지만 이건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입니다.
첫째, “시민은 전문성이 없다”는 주장부터 바로잡아야 합니다.
전문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참여 속에서 길러지는 능력입니다. 의사도 실습을 통해 의사가 되고, 변호사도 모의재판을 통해 성장하듯, 시민도 예산 워크숍, 시뮬레이션, 데이터 시각화 교육을 통해 충분히 재정 판단력을 갖출 수 있습니다.
오히려 지금처럼 모든 걸 관료에게 맡기는 것이야말로 전문성의 독점, 즉 기술관료제(technocracy)의 위험입니다.
세금을 내는 국민이 자기 돈 쓰는 방식조차 이해할 자격이 없다니—이게 과연 민주주의입니까?
둘째, “비효율적이다”는 지적은 단기적 시야에서 나온 오해입니다.
서울 모 자치구의 사례를 들며 6개월, 수천만 원이 들었다고 하셨죠? 하지만 그 예산이 잘못 쓰였다면 생기는 사회적 비용—예를 들어, 아무도 안 가는 분수대 유지비, 주민 반발로 인한 행정 소송, 정책 신뢰도 추락—는 훨씬 큽니다.
포르투알레그레뿐 아니라, 스페인 바르셀로나, 프랑스 파리에서도 참여예산제는 행정 신뢰도 상승, 정책 실행 속도 향상, 납세자 만족도 증가로 이어졌습니다.
초기 투자는 민주주의의 예방접종입니다. 지금 아프더라도, 나중에 더 큰 병을 막는 거죠.
셋째, “다수의 폭정” 우려는 진지하게 받아들일 부분입니다.
하지만 반대 측은 한 가지를 간과하셨습니다.
지금의 대의제가 소수를 보호하고 있습니까?
장애인, 청소년, 이주민은 지금도 예산 편성 과정에서 거의 배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참여예산제는 오히려 의무적 소수자 할당,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접근성 확대, 청소년 예산회의 같은 제도적 장치로 포용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고쳐 쓰면 됩니다.
불완전하다고 해서 아예 시도하지 않는 건, 아이가 넘어질까 봐 걷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반대 측의 논리는 이렇게 요약됩니다:
“시민은 어리석으니, 우리가 대신 결정해 줄 게.”
그런데 누가 당신들을 그렇게 신뢰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까?
민주주의는 완벽함이 아니라, 함께 배우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을 시작하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맡겨진 민주주의’의 포로로 남을 겁니다.
## 반대 측 두 번째 발언자 반박
찬성 측은 열정적으로 포르투알레그레의 성공 신화를 이야기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에는 중요한 각주가 빠져 있습니다.
포르투알레그레는 1989년, 군사독재가 막 끝난 브라질에서 극심한 불평등과 시민의 분노라는 특수한 조건 속에서 탄생한 실험이었습니다.
거기엔 강력한 노동조합, 좌파 정당의 조직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민 전체가 생존을 위해 목숨 걸고 참여했던 정치적 에너지가 있었습니다.
과연 오늘날 서울이나 부산에서 그런 조건이 재현될 수 있을까요?
아니, 오히려 우리 사회는 참여 피로, 정치 혐오, 개인주의 팽배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모두가 예산을 결정하자”고 외치는 건, 이상은 높되 현실은 외면한 공중누각입니다.
더욱이 찬성 측은 “교육하면 된다”, “제도를 잘 설계하면 된다”고 말하지만,
이건 마치 “모든 사람이 운전면허만 따면 교통사고는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서울시 참여예산제의 평균 참여율은 0.3% 미만입니다.
즉, 1,000명 중 3명도 안 되는 사람들이 결정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3명은 대부분 은퇴한 지역 유지, 동아리 활동가, 혹은 특정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입니다.
결국 새로운 형태의 엘리트주의가 등장할 뿐이며, 이는 오히려 민주주의를 더욱 왜곡시킵니다.
또 한 가지, 찬성 측은 “책임감이 생긴다”고 했지만,
책임 소재는 오히려 더 흐려집니다.
“주민들이 선택했다”는 이유로 구청장은 실패한 사업에 대해 “우린 그냥 실행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반면 주민들은 “정보가 부족했다”, “잘 몰랐다”고 변명합니다.
결국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민주주의의 블랙홀이 생깁니다.
마지막으로, 찬성 측 두 번째 발언자는 “전문성은 배울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시민이 6개월 교육받아서 장기 재정 건전성, 지방채 리스크, 인구 감소 대응 전략까지 판단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시민의 지혜를 존중합니다.
하지만 존중한다고 해서 복잡한 국가 운영을 감정과 직관에 맡길 수는 없습니다.
민주주의는 시민의 참여를 필요로 하지만,
참여는 반드시 지혜와 제도, 그리고 책임감과 결합될 때만 가치 있습니다.
지금처럼 무조건 ‘확대’만 외친다면,
좋은 취지가 오히려 민주주의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 질의응답
## 찬성 측 세 번째 발언자 질의
🔹 질문 1 (반대 측 1번 발언자)
찬성 측 3번:
“반대 측 1번 발언자님께 묻겠습니다.
귀측은 ‘시민은 예산의 복잡성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지방의회나 집행부가 내리는 모든 예산 결정이 과연 완전히 합리적이고 투명했습니까?
서울시의 한 구청이 10억 원을 들여 ‘미래형 스마트 벤치’를 설치했다가 6개월 만에 고장 나서 방치된 사례, 혹은 경기도某시가 관광 활성화라며 인구 5천 명 마을에 80억 원짜리 문화센터를 지은 일—이런 결정은 전문가들이 한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귀측은 ‘전문가의 실수’는 용인하면서, ‘시민의 실수 가능성’만을 이유로 참여를 막는 것입니까?”
반대 측 1번:
“물론 행정의 실수는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 실수는 제도적 감시와 책임 추궁 구조 속에서 발생한 것이며, 선거와 언론, 감사원 등으로 바로잡힐 수 있습니다.
반면 주민 참여 예산은 책임 주체가 분산되어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를 낳습니다.
‘우리가 결정했다’는 다수의 이름 뒤에 숨은 무책임은 민주주의를 더 위험하게 만듭니다.”
🔹 질문 2 (반대 측 2번 발언자)
찬성 측 3번:
“반대 측 2번 발언자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귀측은 ‘참여에 드는 비용이 너무 크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서울시 성북구에서는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해 연 2억 원 규모의 예산을 3주 만에 주민 5천 명의 온라인 투표로 결정했습니다. 비용은 300만 원 미만이었고, 참여율은 12%로 기존 오프라인 회의 대비 10배 이상 높았습니다.
이 사례를 보고도 여전히 ‘참여는 비효율적’이라고 단정하시겠습니까?”
반대 측 2번:
“성북구 사례는 소규모 시범사업일 뿐입니다.
디지털 참여는 오히려 정보 접근력이 높은 젊은 층이나 도시 중산층에게 유리하며, 노년층·저소득층은 배제됩니다.
진정한 포용은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 누구나 동등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구조여야 합니다.
기술은 해결책이 아니라 새로운 불평등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 질문 3 (반대 측 4번 발언자)
찬성 측 3번:
“마지막으로 반대 측 4번 발언자님께 묻겠습니다.
귀측은 ‘다수의 폭정이 소수를 짓밟을 수 있다’고 우려하셨습니다.
그러나 포르투알레그레에서는 장애인·청소년·이주민을 위한 할당제와 전용 회의를 운영해 이들의 예산 요구가 반드시 반영되도록 했습니다.
즉, 문제는 ‘참여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지 않습니까?
귀측은 제도 개선의 가능성을 아예 배제하고, 문제를 ‘참여’ 탓으로만 돌리는 게 아닙니까?”
반대 측 4번:
“할당제는 이론상 아름답지만, 현실에서는 형식적 절차로 전락하기 쉽습니다.
청소년 할당 예산이 실제로 청소년 당사자의 의견이 아니라, 교사나 공무원의 대리 의견으로 채워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참여의 질보다 양에 집착하면, 민주주의는 투표율 경쟁으로 전락합니다.
우리는 ‘참여’를 신봉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참여’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 찬성 측 질의 요약
감사합니다.
반대 측은 일관되게 ‘위험’과 ‘불완전함’을 이유로 참여를 거부하셨습니다.
하지만 모든 제도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숙합니다.
의회 민주주의도, 지방자치도 처음엔 ‘실패할 것’이라 비웃음을 받았습니다.
오늘 반대 측의 답변은 결국 ‘시민을 믿지 못하겠다’는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는 민주주의의 근본 정신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우리는 시민을 교육하고, 제도를 개선하며, 실패를 통해 배우는 성장형 민주주의를 선택해야 합니다.
## 반대 측 세 번째 발언자 질의
🔹 질문 1 (찬성 측 1번 발언자)
반대 측 3번:
“찬성 측 1번 발언자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귀측은 ‘시민이 직접 예산을 결정하면 효율성이 높아진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2023년 한국행정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주민 참여 예산제를 운영한 자치단체 중 68%가 “실제 예산 편성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응답했습니다.
왜냐하면 최종 결정권은 여전히 구청장과 의회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형식적 참여로 끝나는 제도를 왜 확대해야 합니까?
이는 오히려 시민의 정치적 피로만 가중시키지 않겠습니까?”
찬성 측 1번:
“그 조사는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사례를 말해 줍니다.
문제는 제도의 부재가 아니라, 실행 의지의 부족입니다.
참여 예산이 법적 구속력을 갖도록 하고, 집행부가 이를 존중하도록 강제하면 됩니다.
형식적 참여를 비판하는 것은 제도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더 진정성 있는 실행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 질문 2 (찬성 측 2번 발언자)
반대 측 3번:
“찬성 측 2번 발언자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귀측은 ‘시민은 참여를 통해 전문성을 기를 수 있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한국 성인의 평균 재정 리터러시 점수는 OECD 38개국 중 35위입니다.
세금이 어디에 쓰이는지도 모르는 국민이, 어떻게 수십억 원 규모의 예산을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까?
교육을 한다고 해도, 6개월 교육으로 의사가 되지 않듯, 시민이 재정 전문가가 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찬성 측 2번:
“전문의가 되라는 게 아니라, 내 삶과 직결된 우선순위를 스스로 정하라는 것입니다.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 화장실이 고장 났는데, 새로 조형물을 세우는 게 맞느냐?’—이 정도 판단은 재정 리터러시 100점이 아니어도 가능합니다.
전문성은 복잡한 계산이 아니라, 공감과 경험에서 나오는 지혜입니다.”
🔹 질문 3 (찬성 측 4번 발언자)
반대 측 3번:
“마지막으로 찬성 측 4번 발언자님께 묻겠습니다.
귀측은 ‘참여가 공동체 의식을 회복시킨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2024년 서울시 주민참여예산 온라인 투표 참여율은 1.7%였습니다.
100명 중 2명도 안 되는 참여로 어떻게 ‘공동체’를 말합니까?
오히려 참여하지 않은 98%의 시민은 배제되고, 소수의 열성 회원만이 예산을 좌지우지한다면,
이건 민주주의가 아니라 ‘활동가 독재’ 아닙니까?
찬성 측 4번:
“참여율이 낮은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투표율이 낮다고 선거를 폐지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우리의 책무입니다.
초기 참여율이 낮은 건 제도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아직 시작 단계라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지금 ‘시작할 용기’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 반대 측 질의 요약
감사합니다.
찬성 측은 계속해서 ‘시작하면 좋아질 것’이라 말하십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실험실이 아닙니다.
국가 재정은 되돌릴 수 없는 자원이며, 실패는 국민의 삶에 직접 타격을 줍니다.
오늘 찬성 측의 답변은 모두 ‘이상’에 머물렀고, 현실의 구조적 한계—낮은 참여율, 낮은 역량, 형식적 운영—를 외면했습니다.
우리는 완벽한 제도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 있고 지속 가능한 민주주의를 원합니다.
그 길은 무분별한 확대가 아니라, 단계적·선택적 개선에 있습니다.
# 자유 토론
찬성 1번:
“반대 측은 시민이 복잡한 예산을 이해 못 한다고 하셨죠? 그런데요, 지금 우리 정부가 짜는 예산도 실수 투성이예요. 2022년 국감에서 드러난 ‘텅 빈 스마트팜’이나 ‘사용 안 된 방역 물품’—이건 전문가들이 만든 결과입니다. 전문성이 항상 옳다는 건 환상이에요.
오히려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하면, 시민은 클릭 한 번으로 예산안을 비교하고, AI가 ‘이 사업은 10년 후 유지비가 50억 원 듭니다’라고 알려줘요. 포르투알레그레는 종이 회의였지만, 우리는 메타버스 회의도 가능한 시대예요.
기술은 시민의 전문성을 확장하는 날개입니다.”
반대 1번:
“날개라니요? 그 ‘날개’는 고령 어르신들에겐 장애물이에요. 서울시 온라인 참여예산 플랫폼 사용자 중 60세 이상은 고작 3%예요. 나머지는 대부분 30~40대 남성. 이게 진짜 ‘모두의 예산’인가요?
더군다나 지난해 부산의 한 동에서 시도한 온라인 투표, 참여율이 0.4%였어요. 2500명 중 10명이 결정했죠. 이런 걸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디지털은 참여를 넓히는 게 아니라, 이미 목소리 큰 사람만 더 크게 만듭니다.”
찬성 2번:
“그렇다면 제도를 바꾸면 됩니다! 성남시에서는 청소년에게 예산 편성권을 따로 주었고, 그 결과 ‘청소년 이동 지원 바우처’가 탄생했어요. 장애인 단체에는 오프라인 워크숍을 의무화했고요.
‘다수의 폭정’을 막는 건 기술이 아니라 의도적인 설계예요. 예를 들어, 전체 예산의 10%는 반드시 소수자 집단이 제안한 사업에 배정하도록 하면 되죠.
민주주의는 자동으로 공정해지지 않아요. 우리가 손으로 만들 거예요.”
반대 2번:
“설계가 중요하다고 하셨죠? 그런데 누가 그 설계를 감시하나요? 작년 인천의 한 구청은 ‘주민이 선택했다’며 3억 원짜리 분수대를 설치했지만, 6개월 만에 고장 나서 지금은 잡초밭이에요.
행정은 ‘실패했지만 주민 탓’이라고 하고, 주민은 ‘우리가 제대로 알지도 못했는데’라고 하죠.
책임이 사라진 민주주의는 책임 없는 자유처럼, 결국 모두를 피로하게 합니다.”
찬성 3번:
“책임을 회피하는 건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예요. 만약 주민 참여 예산제가 도입된 이후에도 책임을 회피한다면, 그건 민주주의를 핑계 삼는 관료제의 병폐지, 제도 탓이 아니에요.
더 중요한 건, 민주주의는 태어날 때부터 완벽한 게 아니라, 함께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숙해가는 과정이라는 거예요.
우리 아이들이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울 때 넘어지지 않나요? 그렇다고 평생 유모차만 타게 할 건가요?”
반대 3번:
“하지만 지금은 유모차도 없어요! 시민 재정교육은 전국적으로 연간 200시간도 안 됩니다. 학교에서도 예산은 커녕 세금의 의미조차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요.
이런 상황에서 ‘예산을 직접 결정하세요’라고 말하는 건, 수영장에 밀어 넣고 ‘헤엄쳐!’라고 외치는 것과 같아요.
좋은 제도는 준비된 땅 위에만 꽃을 피웁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아직 황무지예요.”
찬성 4번:
“황무지라면, 지금부터 경작을 시작해야죠! 우리가 계속 ‘준비되지 않았다’고만 말하면, 영원히 ‘맡겨진 민주주의’에 갇혀 살 거예요.
선거 때만 주인이고, 나머진 관객인 삶—그게 정말 우리가 원하는 민주주의인가요?
민주주의는 기다리는 게 아니라, 만들어 가는 거예요. 그리고 그 첫 삽은 바로 오늘, 여기서 떠야 합니다.”
반대 4번:
“우리는 확대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무분별한 확대를 경고하는 거예요. 작은 마을에서 실험하고, 교육을 강화하고, 디지털 격차를 줄인 후 점진적으로 넓히자는 겁니다.
지금처럼 열정만 앞서서 전국에 밀어붙이면, 좋은 취지도 ‘형식적 참여쇼’로 전락하고, 시민은 또 한 번 민주주의에 실망하게 될 거예요.
민주주의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과 뿌리가 중요합니다.”
# 최종 발언
## 찬성 측 최종 발언
존경하는 심사위원님,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신 모든 한국인 여러분.
우리는 처음부터 한 가지를 분명히 했습니다.
주민 참여 예산제는 ‘완벽한 제도’가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민주주의’의 출발점입니다.
반대 측은 “시민은 전문성이 없다”, “비용이 너무 든다”, “소수자가 배제된다”고 우려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19세기 여성에게도 투표권은 ‘너무 이른 권리’였습니다.
20세기 노동자에게도 정치 참여는 ‘무모한 도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배제하지 않고, 함께 배우고, 함께 결정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민주주의는 더 넓고 깊어졌습니다.
오늘 우리가 말하는 시민의 ‘전문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닙니다.
정보가 열리고, 교육이 제공되며, 실천의 기회가 주어질 때,
한국인은 누구나 예산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디지털 플랫폼은 비용을 줄이고, 소수자 할당제는 형평을 보장합니다.
이것은 이상이 아니라, 이미 서울 마포구와 광주광역시에서 작동 중인 현실입니다.
반대 측은 “준비가 안 됐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묻겠습니다.
‘준비’는 언제 끝날까요?
행정이 시민을 믿지 않으면, 시민은 영원히 ‘준비되지 않은 아이’로 남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또 10년, 20년을 ‘맡겨진 민주주의’ 속에서 살아야 할까요?
민주주의는 실험이 아닙니다.
민주주의는 삶의 방식입니다.
내 세금이 내 이웃의 삶을 바꾼다는 걸 경험할 때,
한국인은 비로소 ‘공동체’를 느낍니다.
그 감각 없이, 우리는 결코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확신합니다.
주민 참여 예산제를 확대해야 합니다.
완벽하기 때문에가 아니라,
함께 만들어 가기 때문에 가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 반대 측 최종 발언
존경하는 심사위원님, 그리고 이 토론을 지켜봐 주신 모든 한국인 여러분.
우리는 결코 시민의 목소리를 무시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진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지금의 무분별한 확대를 경고하는 것입니다.
찬성 측은 “시작하면 배운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현재 한국 사회의 참여율은 평균 0.3% 미만입니다.
1000명 중 3명만 참여하는 예산 결정이,
과연 ‘국민의 의사’라 할 수 있을까요?
더 큰 문제는, 그 3명마저도 조직력 있는 소수—지역 유지, 퇴직자 단체, 특정 이해집단—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디지털 플랫폼이 해법이라고요?
그러나 65세 이상 고령자의 스마트폰 활용률은 40%에도 못 미칩니다.
청소년은 투표권 없이 예산 결정에 끼어들 수 없습니다.
이런 구조에서 ‘포용적 참여’는 허상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가장 치명적인 것은 책임의 부재입니다.
“주민들이 원했다”는 한마디로, 집행기관은 실패한 사업에서 손을 뗍니다.
결국 피해는 복지가 줄어든 취약계층, 미래 세대가 떠안습니다.
이것이 과연 민주주의입니까?
아니면 책임 없는 민주주의의 탈을 쓴 혼란입니까?
우리는 시민 교육을 강화하고,
소규모 실험을 통해 제도를 다듬고,
투명한 평가 체계를 마련한 후에야
참여 예산제를 확대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민주주의는 속도가 아니라 뿌리입니다.
뿌리가 약한 나무는 비바람 앞에 쉽게 쓰러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단호히 말합니다.
지금은 확대가 아니라, 준비의 시간입니다.
한국인 모두가 진정한 주권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혜롭고 차분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민주주의의 기반을 다져야 합니다.
그 길만이,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지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