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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세대의 주거 안정을 위해 공공 주택 공급을 대폭 확대해야 하는가?

개회 발언

찬성 측 개회 발언

존경하는 심사위원님, 상대 팀, 그리고 이 자리를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 인사드립니다.

오늘 우리 팀은 명확히 선언합니다. 청년 세대의 주거 안정을 위해 공공 주택 공급을 대폭 확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집은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라, 꿈을 키우는 ‘삶의 기반’이기 때문입니다.

첫째, 현실적 위기 대응 차원에서 불가피합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39세 청년의 월평균 주거비 부담률은 소득의 40%를 넘습니다. 서울에서는 전월세 보증금 평균이 8,000만 원을 훌쩍 넘고, 월세는 최소 60만 원 이상입니다. 이는 청년들이 ‘내 집 마련’은커녕, ‘안정된 하루’조차 보장받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에만 맡긴다는 것은, 청년들에게 ‘물에 빠졌으니 스스로 수영하라’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둘째, 사회적 공정과 기회 평등을 위한 핵심 장치입니다.
부모의 자산이 자녀의 삶을 결정하는 ‘주거 계급화’가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같은 능력을 가진 두 청년이, 부모의 지원 유무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면, 그건 자유시장이 아니라 ‘자본 세습제’입니다. 공공 주택은 이런 불공정한 출발선을 바로잡는 유일한 공적 도구입니다. 스웨덴이나 오스트리아처럼, 주거를 복지로 간주할 때 비로소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 사회’가 가능해집니다.

셋째, 경제 전체에 긍정적 파급 효과를 줍니다.
청년들이 주거비에 쓰던 돈을 소비와 투자로 돌릴 수 있다면, 내수 진작은 물론, 출산율 저하 완화에도 기여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국토연구원은 공공 주택 10만 호 추가 공급이 청년 가구의 가처분소득을 연간 12조 원 이상 증가시킨다고 추정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복지 지출’이 아니라,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전략적 투자’입니다.

넷째, 국가는 시장이 실패한 영역을 메워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주택은 사치재가 아니라 생존권에 가까운 기본권입니다. 시장은 효율을 추구하지만, 공정은 정부가 지켜야 할 몫입니다. 오늘 우리가 선택하는 것은 단지 ‘주택’이 아니라, ‘청년이 살아갈 권리를 인정할 것인가’ 하는 가치의 문제입니다.

누군가는 “공공 주택은 비효율적”이라 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더 큰 비효율은, 청년들이 꿈을 접고 도시를 떠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는 집이 아니라 ‘전세 보증금’을 물려받게 될지도 모릅니다.

감사합니다.


반대 측 개회 발언

안녕하세요. 반대 측 첫 번째 발언자입니다.

우리 팀은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청년 주거 안정을 위해 공공 주택을 ‘대폭 확대’하는 것은 잘못된 해법이며,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거 문제는 단순히 ‘공급 부족’이 아니라, 구조적 불균형과 정책의 방향성 오류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첫째, 공공 주택 대폭 확대는 시장 기능을 왜곡시킵니다.
주택은 일반 재화가 아닙니다. 위치, 인프라, 교육 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공간 자산’입니다. 정부가 무차별적으로 공급을 늘리면, 민간 시장의 가격 신호가 마비되고, 오히려 투기 자본이 공공 물량 주변으로 몰리는 ‘퍼짐 효과(spillover effect)’가 발생합니다. 실제로 2020년 2.4 공급 대책 이후, 공공택지 인근 민간 아파트 값이 오히려 급등한 사례가 이를 증명합니다.

둘째, 재정적 지속 가능성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공공 주택 1호당 평균 건설비는 약 1억 원 이상입니다. 50만 호를 ‘대폭 확대’한다고 하면, 최소 50조 원의 예산이 필요합니다. 이는 고령화와 복지 확대라는 더 시급한 과제를 포기해야 하는 ‘제로섬 게임’입니다. 게다가 유지관리비, 운영비까지 고려하면, 이는 청년을 위한 투자가 아니라 미래 세대에게 떠넘기는 빚이 됩니다.

셋째, 공급보다 ‘질’과 ‘접근성’이 더 중요합니다.
현재 공공 주택의 70% 이상이 수도권 외곽, 교통·일자리·문화 인프라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는 ‘주거 안정’이 아니라 ‘격리된 생존’일 뿐입니다.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싼 집’이 아니라 ‘삶의 중심에 머무를 권리’입니다. 따라서 공급 확대보다는, 임대차 3법 강화, 중개 수수료 규제, 청년 월세 지원 확대 같은 ‘시장 내 개입’이 더 실질적입니다.

넷째, 근본적인 해법은 소득 증대입니다.
집값이 비싼 이유는 수요가 많기 때문이고, 수요가 많은 이유는 일자리와 기회가 특정 지역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진짜 해결책은 ‘더 많은 집’이 아니라 ‘더 많은 기회’와 ‘더 높은 소득’입니다. 공공 주택은 일시적 완충제일 뿐, 청년의 자립 능력을 키우는 근본 처방이 될 수 없습니다.

누군가는 “공공 주택이 없으면 청년이 죽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묻고 싶습니다.
“값싼 외곽의 방 하나가, 청년의 미래를 구원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공급 확대라는 단선적 사고를 넘어, 다층적이고 지속 가능한 주거 정책 생태계를 제안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청년 존중’입니다.

감사합니다.


개회 발언 반박

찬성 측 두 번째 발언자 반박

존경하는 심사위원님, 반대 팀의 열띤 발언 잘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현실을 외면한 이론적 우려정책을 혼동한 오해로 가득 차 있습니다.

첫째, 반대 측은 “공공 주택 확대가 시장을 왜곡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인과관계를 뒤집은 오류입니다.
시장이 이미 왜곡되어 있기 때문에 공공 주택이 필요한 것이지, 공공 주택이 시장을 망치는 게 아닙니다.
2020년 2.4 대책 이후 집값이 올랐다고요? 맞습니다. 하지만 그건 공공 주택 때문이 아니라, 금리 인하와 유동성 과잉, 투기 수요 폭주 때문이었습니다. 공공 주택은 오히려 그 폭풍 속에서 청년에게 작은 우산을 제공한 유일한 장치였습니다.
싱가포르는 전체 주택의 80%가 공공 주택인데도 시장이 안정적입니다. 왜냐하면 공공 주택이 시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보완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재정이 감당 못 한다”는 주장은 가짜 딜레마입니다.
50조 원이 많다고요? 그렇다면 군사 예산 56조 원은 괜찮은가요? 수도권 신공항 30조 원은 괜찮은가요?
재정은 ‘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우선순위로 삼느냐의 가치 판단입니다.
청년이 미래의 납세자이고, 소비 주체이며, 사회의 기둥이라면, 이들에게 집을 제공하는 것은 지출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투자입니다.
게다가 공공 주택은 한 번 지으면 50년 이상 사용됩니다. 연간 1조 원씩 50년 쓰는 셈인데, 이것을 “빚”이라고 치부하는 건 시야가 너무 짧습니다.

셋째, “외곽에 지어진 공공 주택은 격리”라고 했죠.
맞습니다. 지금의 공공 주택 정책은 분명 개선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정책의 미비점을 공급 자체의 실패로 몰아가는 건 논리적 도약입니다.
우리가 주장하는 “대폭 확대”는 단순히 숫자를 늘리는 게 아니라, 교통·일자리·교육 인프라와 연계된 스마트 공공 주택 생태계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서울 도심 내 노후 공공시설을 리모델링해 청년 주거 복합단지로 전환하거나, 기업과 협력해 직주근접형 주택을 공급하는 방식 말입니다.
“현재의 문제”를 이유로 “미래의 가능성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마지막으로, “근본 해결책은 소득 증대”라는 말.
물론 맞습니다. 하지만 집이 없어서 결혼을 미루고, 출산을 포기하고, 창업을 접는 청년들에게 ‘소득부터 올려라’는 조언은 공허한 메아리입니다.
주거 안정은 소득 증대의 전제 조건입니다.
안정된 기반 위에서야 청년들은 더 나은 일자리를 찾고, 더 많은 소비를 하고, 더 큰 꿈을 꿀 수 있습니다.

반대 측은 이상적인 시장과 현실 사이를 혼동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완벽한 정책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 이 순간 청년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실천적 해법을 제안할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반대 측 두 번째 발언자 반박

감사합니다. 찬성 측의 열정적인 발언, 그리고 방금 전의 반박, 모두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은 감정에 호소하는 이상주의복잡한 현실을 단순화하는 오만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흔들립니다.

첫째, 찬성 측은 “시장이 실패했으니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정부도 시장만큼이나 실패할 수 있습니다.
공공 주택 정책은 이미 30년 넘게 시행됐습니다. 그런데 왜 여전히 청년들은 집을 못 구하나요?
그건 단순히 ‘공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정책 설계의 비효율, 행정의 느림, 지역 주민의 반발, 토지 확보의 어려움 등 구조적 한계 때문입니다.
싱가포르를 예로 드셨죠? 하지만 싱가포르는 국토 대부분이 국유지입니다. 한국은 사유지 비율이 70%를 넘습니다.
제도적 맥락을 무시한 외국 사례 인용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둘째, “재정은 우선순위 문제”라고 했지만, 이건 경제학을 외면한 낭만적 사고입니다.
군사비나 인프라 예산은 다른 목적을 위한 것이지, 주거 문제와 직접 비교할 수 없습니다.
더 중요한 건, 공공 주택은 한 번 지으면 끝나는 게 아니라, 평생 유지·관리·갱신 비용이 따라옵니다.
서울시만 해도 현재 운영 중인 공공 임대주택의 연간 적자 규모가 2,000억 원을 넘습니다.
이걸 누가 메우나요? 결국 세금입니다.
그 세금은 고령층 복지, 아동 돌봄, 교육 예산과 경쟁하게 됩니다.
청년을 살리겠다고 다른 세대를 희생시키는 게 진짜 공정입니까?

셋째, 찬성 측은 “정책은 개선될 수 있다”고 말하며 외곽 주택 문제를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핵심 질문이 나옵니다:
“왜 지금까지 개선되지 않았습니까?”
청년 주거복지센터 조사에 따르면, 공공 주택 입주 대기 기간은 평균 3.2년입니다.
그 사이 청년들은 결혼을 포기하고, 지방으로 떠나고, 해외로 이주합니다.
정책이 ‘미래에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는, 현재 고통받는 청년들에게는 아무런 위로도 되지 않습니다.

넷째, 찬성 측은 주거 안정이 소득 증대의 전제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세요.
소득이 없으면, 공공 주택에 들어가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월세 20만 원짜리 공공주택이라도, 월 150만 원 벌면 생계가 빠듯합니다.
진짜 해결책은 일자리 창출, 임금 인상, 지역 균형 발전입니다.
공공 주택은 이 모든 것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공공 주택에만 집중하면, 정부는 구조 개혁의 책임을 회피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찬성 측은 “청년을 구할 유일한 실천적 해법”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묻고 싶습니다.
“과연 공공 주택이 청년을 ‘구원’할까요? 아니면 ‘의존’하게 만들까요?”
청년에게 필요한 건 값싼 방이 아니라, 자립할 수 있는 힘입니다.
그 힘은 공급 확대가 아니라, 기회 확대로부터 나옵니다.

우리는 공공 주택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폭 확대”라는 단선적 해법은, 복잡한 주거 문제를 오히려 더 흐리게 만들 뿐입니다.

감รคุณ합니다.


질의응답

찬성 측 세 번째 발언자 질의

[찬성 측 3번]: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반대 팀께 세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질문 1] 반대 측 첫 번째 발언자님께:
귀측은 “공공 주택 확대가 시장을 왜곡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런데 2020년 이후 집값 급등의 주범은 공공 주택이 아니라, 저금리와 투기 수요였다는 통계청·한국은행 보고서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묻겠습니다:
“시장이 이미 왜곡된 상태에서,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왜곡 아닐까요?”

[반대 측 1번]:
좋은 질문입니다. 하지만 시장 왜곡은 인정하되, 정부 개입이 항상 해법은 아닙니다. 공공 주택은 가격 신호를 교란시켜 민간 공급을 위축시키고, 장기적으로 주택 공급 전체를 줄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시장 내 규칙 강화’—예컨대 임대차 3법 확대나 중개 투명화—를 통해 왜곡을 바로잡아야지, 공급 확대로 덮어서는 안 됩니다.


[질문 2] 반대 측 두 번째 발언자님께:
귀측은 “50조 원은 재정에 과도한 부담”이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군사비는 56조 원, 수도권 신공항은 30조 원인데도 “필수”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청년의 삶을 지키는 데 쓰는 돈은 왜 ‘과도한 부담’이고, 다른 분야는 ‘필수 투자’입니까? 이 이중 잣대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반대 측 2번]:
군사비는 국가 생존과 직결되고, 신공항은 경제 인프라입니다. 반면 공공 주택은 소비 성향이 강한 복지 지출이며, 그 효과는 제한적입니다. 더구나 청년 주거 문제는 단일 세대 문제라기보다, 전 세대의 삶의 질과 연결된 구조적 과제입니다. 따라서 재정 배분은 단기적 감정이 아니라, 장기적 효율성과 형평성을 기준으로 해야 합니다.


[질문 3] 반대 측 네 번째 발언자님께:
귀측은 “월세 지원이나 임대차 법 강화가 더 실질적”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국토연구원 2023년 보고서에 따르면, 월세 지원은 평균 6개월 후 사라지고, 임대차 3법은 계약 갱신 거부율을 오히려 23% 끌어올렸습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이미 실패한 것으로 드러난 정책을 계속 고집하는 게, 진짜 ‘현실주의’입니까?”

[반대 측 4번]:
그 연구는 단기적 효과만 보았습니다. 월세 지원은 즉각적 완충제로서 가치가 있고, 임대차 3법은 시행 초기 진통이 있었지만, 현재는 계약 갱신률이 78%까지 회복되었습니다. 중요한 건, 이 정책들이 청년의 선택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시장 내에서 작동한다는 점입니다. 반면 공공 주택은 정부가 주거 형태까지 결정하는 강제적 개입입니다.


[찬성 측 3번 요약]:
감사합니다. 반대 팀의 답변을 종합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시장 왜곡은 인정하지만, 그 해결책으로 ‘규칙 강화’만 고집하며 공급 개입은 배제합니다. 그러나 규칙만으로는 공급 부족이라는 근본 원인을 치유할 수 없습니다.
둘째, 재정 우선순위에서 청년 주거를 ‘소비’로 치부하며 다른 분야와 이중 잣대를 적용합니다. 이는 청년의 삶을 ‘투자’가 아닌 ‘비용’으로 보는 시각입니다.
셋째, 실패한 정책의 단기적 개선을 근거로 삼으며, 구조적 해법을 외면합니다.
결국 반대 측은 현실을 진단하면서도, 현실을 바꾸려는 용기를 포기하고 있습니다.


반대 측 세 번째 발언자 질의

[반대 측 3번]:
감사합니다. 이제 찬성 팀께 세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질문 1] 찬성 측 첫 번째 발언자님께:
귀측은 “공공 주택이 기회 평등을 실현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현재 공공 주택 입주 자격은 소득·재산 기준 외에도 대학 졸업 여부, 취업 상태, 혼인 여부 등 복합 조건이 적용됩니다.
그렇다면 이 질문을 드립니다:
“공공 주택이 오히려 새로운 ‘자격 계층’을 만들어, 또 다른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것은 아닐까요?”

[찬성 측 1번]:
우리가 말하는 ‘대폭 확대’는 기존 기준을 더 포괄적이고 유연하게 개편하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예를 들어, 소득 하위 50% 청년에게 무조건 제공하거나, 창업 준비 기간에는 자격을 완화하는 방식입니다. 문제는 제도 설계에 있지, 공공 주택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질문 2] 찬성 측 두 번째 발언자님께:
귀측은 싱가포르 사례를 들며 “공공 주택이 시장을 보완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싱가포르는 국토의 90%가 국유지이고, 한국은 사유지 비율이 70% 이상입니다.
그러면 이 질문을 드립니다:
“제도적 토양이 전혀 다른 나라의 모델을, 마치 일반 법칙처럼 적용하는 것은 ‘정책 모방’이 아니라 ‘환상’ 아닐까요?”

[찬성 측 2번]:
싱가포르를 그대로 베끼자는 게 아닙니다. 다만 공공 주택이 시장을 파괴하지 않고 공존할 수 있다는 원리를 보여준 사례일 뿐입니다. 우리는 한국의 토지 공개념 강화, 공공개발 이익 환수제 도입 등을 통해 국유지 비율을 늘리는 제도적 개혁도 함께 추진할 수 있습니다. 사례는 영감이지, 복사본이 아닙니다.


[질문 3] 찬성 측 네 번째 발언자님께:
귀측이 주장하는 “도심 리모델링형 공공 주택”은 매우 이상적입니다. 하지만 서울 강남구에서 노후 공공시설 하나 철거하려 해도 주민 반발로 5년 이상 걸립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이런 현실적 장벽을 무시한 채, ‘스마트 생태계’라는 미사여구로 포장하는 것이 진짜 실천적 해법인가요?”

[찬성 측 4번]:
현실적 장벽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이 더 비현실적입니다. 우리는 주민 참여형 개발, 공공-민간 협력 모델(PPP), 청년 우선 입주 특례제 등을 통해 점진적 변화를 이끌 수 있습니다. 모든 개혁은 처음엔 ‘불가능’처럼 보였습니다.


[반대 측 3번 요약]:
감사합니다. 찬성 팀의 답변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공공 주택의 자격 기준 문제는 “개선하겠다”는 미래 약속으로 회피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수많은 청년이 그 기준에 가로막혀 있습니다.
둘째, 싱가포르 사례는 “영감일 뿐”이라며 맥락 차이를 인정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논리를 적용하려 합니다. 이는 논리적 자기모순입니다.
셋째, 현실적 장벽은 인정하면서도, 구체적 실행 계획 없이 “노력하자”는 감성적 호소로 답했습니다.
결국 찬성 측은 이상은 높지만, 땅은 밟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짜 실천주의는 가능성을 믿는 것이 아니라, 제약 속에서 최선을 찾는 것입니다.


자유 토론

[찬성 측 3번]:
“방금 반대 측은 ‘공공 주택이 청년을 의존하게 만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요, 지금 청년들이 의존하고 있는 건 누구입니까?
바로 전세 보증금 1억 원을 요구하는 집주인입니다.
월세 70만 원에 사는 청년이 매달 840만 원을 집주인에게 ‘헌납’하는 구조에서, 공공주택이 주는 건 ‘의존’이 아니라 탈의존의 출발선입니다.
혹시 반대 측은, 청년이 집주인에게 종속되는 건 괜찮고, 국가에 안정을 받는 건 위험하다고 보는 겁니까?”


[반대 측 1번]:
“좋은 질문입니다. 하지만 그 ‘탈의존’이라는 게, 결국 국가에 대한 새로운 종속이 아닐까요?
공공주택에 들어가면, 이사 자유도 제한되고, 소득 상한선 때문에 승진도 망설이고, 자녀가 커서 넓은 집이 필요해도 떠날 수 없습니다.
이건 ‘안정’이 아니라 생활의 경직화입니다.
더 중요한 건, 이런 제도가 확대되면 민간 임대시장이 위축돼, 선택권 자체가 줄어든다는 점입니다.
청년에게 필요한 건 ‘국가가 정해준 방’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설계할 자유 아닐까요?”


[찬성 측 4번]:
“자유라뇨? 지금 청년에게 무슨 자유가 있습니까?
‘서울에 살 것인지, 월세 50만 원에 사는 것인지’ 사이의 선택이 진짜 자유입니까?
그건 굶주림과 추위 사이의 선택과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가 제안하는 건, 도심 내 유휴 공공부지를 활용해 청년 공동체형 주택을 짓는 겁니다.
일자리와 연결된 스마트 시티, 공유 주방·워크스페이스·육아 지원까지 포함된 복합 공간.
이건 ‘국가의 간섭’이 아니라, 기회를 열어주는 인프라입니다.
반대로 묻겠습니다.
민간 시장만 믿는다면, 언제쯤 청년이 서울 강남에서 30분 거리에 50㎡ 집을 30만 원에 살 수 있을까요?
10년 후? 50년 후? 아니면… 평생 못 볼 꿈인가요?”


[반대 측 2번]:
“꿈을 현실로 만들려면, 꿈만 키우면 안 됩니다.
지금 공공주택 1호당 토지 확보에 평균 4.2년, 행정 절차에 2.8년이 걸립니다.
이 시간 동안 청년은 결혼도, 출산도, 창업도 미룹니다.
그리고 찬성 측이 말하는 ‘유휴 공공부지’—서울엔 그런 땅이 몇 군데나 있습니까?
노원구 한 곳에 500호 지으려다 주민 반발로 7년째 공사 못 하고 있는 사례, 아시죠?
정책의 의지는 좋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 두껍습니다.
차라리 월세 20만 원을 직접 지원해 주는 게, 청년에게는 훨씬 빠르고 유연한 ‘자유’ 아닐까요?”


[찬성 측 1번]:
“월세 지원? 그건 마치 배고픈 사람에게 매일 국 한 그릇 주는 것과 같습니다.
배는 부르지만, 내일은 또 굶어야 하죠.
공공주택은 자신만의 부엌을 주는 것입니다.
게다가, 월세 지원은 사라지면 끝입니다. 하지만 공공주택은 30년, 50년 동안 청년의 삶을 받쳐줍니다.
그리고 ‘주민 반발’ 문제—맞습니다. 하지만 싱가포르도 처음엔 반대가 심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공공주택 단지에 학교, 병원, 쇼핑몰을 함께 지어 지역경제를 활성화시켰습니다.
결과적으로 주민들이 오히려 ‘공공주택 유치’를 요청하게 됐죠.
문제는 불가능이 아니라, 정치적 의지와 설계의 지혜입니다.”


[반대 측 3번]:
“정치적 의지라면, 왜 지난 20년간 청년 주거 정책이 번번이 실패했을까요?
문재인 정부의 2.4 대책, 이명박 정부의 2030 주거복지 로드맵—모두 ‘대폭 확대’를 외쳤지만,
결과는 집값 폭등과 공급 지연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은 토지가 사유재산이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마음대로 땅을 쓸 수 없다는 제도적 제약을 무시한 채, ‘의지만 있으면 된다’는 식의 낭만은 위험합니다.
우리는 이상을 좇기보다, 지금 당장 월세 30만 원을 줄여주는 실용적 해법이 더 절실하다고 봅니다.”


[찬성 측 2번]:
“실용적 해법이라니요?
청년 월세 지원 예산은 올해 1조 2천억 원.
그 돈으로 지을 수 있는 공공주택은 약 1만 2천 호.
하지만 이 지원은 1년만 지나면 끊깁니다.
그러면 청년은 다시 전세 보증금 8천만 원 앞에서 무릎 꿇어야 합니다.
반면, 공공주택은 한 번 지으면 50년간 6만 명의 청년을 구원합니다.
게다가, ‘실패한 정책’을 이유로 포기한다면,
의료보험도, 국민연금도, 최저임금제도 모두 ‘과거 시행착오’ 때문에 폐지해야 할까요?
정책은 완성형이 아니라 진화형입니다.
실패를 딛고 개선하는 게 정치의 역할 아닙니까?”


[반대 측 4번]:
“진화는 좋습니다. 하지만 진화에도 에너지와 시간이 필요합니다.
지금 청년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요?
출산 연령은 지나가고, 창업 황금기는 놓치고, 사회적 관계망은 약해집니다.
우리는 ‘완벽한 집’을 포기하고라도, 빠르게, 유연하게, 현금으로 도와주는 정책이 더 인간적이라고 봅니다.
공공주택은 이상적이지만, 너무 느리고, 너무 딱딱하고, 너무 멀리 있습니다.
청년이 원하는 건 ‘영원한 집’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숨 쉴 공간입니다.
그 공간을 5년 뒤에 줄 거라면, 차라리 오늘 30만 원을 주는 게 진짜 존중 아닐까요?”


최종 발언

찬성 측 최종 발언

존경하는 심사위원님, 반대 팀, 그리고 이 자리에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우리는 단순한 ‘주택 정책’을 논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청년이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를 인정할 것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반대 측은 “공공 주택은 비현실적이다”, “시장을 망친다”, “청년을 의존하게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묻겠습니다.
누구를 위한 시장입니까? 누가 먼저 자립할 기회를 빼앗겼습니까?

청년들은 이미 시장에서 패배한 게 아니라, 출발선조차 밟지 못한 채 경기장을 떠나라고 강요받고 있습니다.
전세 1억 원을 요구받는 순간, 그들은 ‘내 집 마련’이 아니라 ‘빚의 세습’을 물려받습니다.
이게 자유시장입니까? 아니면 자본의 폐쇄된 성채입니까?

우리가 제안하는 공공 주택은 단순한 ‘방’이 아닙니다.
도심 속 공동체 주택, 직주근접형 복합단지, 공유 주방과 창업 공간이 있는 삶의 플랫폼입니다.
이는 청년을 ‘보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회를 열어주는 문입니다.

반대 측은 싱가포르 사례를 무시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국유지 비율’이 아니라,
‘국가는 시민의 기본 생존을 책임져야 한다’는 정치적 결단입니다.
스웨덴, 오스트리아, 독일—이 나라들이 공공 주택을 통해 이룬 것은 단지 안정된 거주지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신뢰와 연대입니다.

“재정이 부족하다”는 말은, 사실 “청년보다 다른 게 더 중요하다”는 고백입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미래 세대가 없는데, 누가 그 재정을 지킬 겁니까?

우리는 완벽한 정책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잘못된 방향이라도 움직이는 것이 더 낫습니다.
왜냐하면, 멈춰 있는 동안에도 청년들은 떠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집은 사치가 아닙니다.
꿈을 키우는 땅이며, 사랑을 시작하는 공간이며, 실패해도 돌아갈 수 있는 안식처입니다.
그런 집을, 국가가 청년에게 줄 수 없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 것입니까?

청년에게 집을 주는 건, 미래를 믿는 첫걸음입니다.
우리는 그 걸음을 오늘, 여기서 멈추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반대 측 최종 발언

감사합니다.

찬성 측은 열정적으로 “집은 권리다”라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답해야 합니다:
“권리라 해도, 현실 없는 이상은 청년을 더 아프게 합니다.”

공공 주택을 대폭 확대하면, 정말 청년이 살까요?
아니요.
3년 기다려 입주했는데, 회사와 2시간 떨어진 곳이라면—그건 구원이 아니라 고립입니다.
청년이 원하는 건 ‘영원한 집’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숨 쉴 수 있는 유연한 선택권입니다.

찬성 측은 “시장이 실패했다”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정부도 실패해왔습니다.
30년간 공공 주택을 지었지만, 왜 여전히 청년은 전세 계약서 앞에서 무릎 꿇습니까?
그건 공급량 탓이 아니라, 정책이 청년의 삶의 리듬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제안하는 건 단순합니다.
빠르게, 유연하게, 현금으로 도와주는 것.
월세 30만 원을 직접 지원하면, 청년은 서울 강남이든 인천 검단이든, 자기 삶의 중심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게 진짜 ‘자율’이고, 진짜 ‘존중’입니다.

공공 주택은 행정이 느리고, 토지는 확보하기 어렵고, 주민 반발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 사이 청년은 결혼을 미루고, 아이를 포기하고, 해외로 떠납니다.
정책이 완성될 때쯤, 그들은 이미 한국을 떠난 후입니다.

“청년을 위한 투자”라고 했지만,
50조 원을 쏟아부어도, 만약 그 집이 청년의 삶과 연결되지 못한다면—
그건 투자가 아니라 낭비입니다.

우리는 공공 주택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폭 확대”라는 단선적 해법은,
복잡한 문제를 단순한 숫자로 덮으려는 정치적 위안에 불과합니다.

진짜 청년 존중은,
값싼 방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설계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입니다.
그 힘은 공급 확대가 아니라,
일자리, 소득, 기회의 확대에서 나옵니다.

우리는 이상을 꿈꾸는 동시에,
지금 이 땅에서 고통받는 청년의 숨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먼 미래의 ‘완벽한 집’이 아니라,
오늘 밤 잘 수 있는 공간과, 내일을 향한 희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합니다.
“더 많은 집보다, 더 나은 선택이 필요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