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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시설에 대한 세금 부과를 강화해야 하는가?

개회 발언

찬성 측 개회 발언

존경하는 심사위원님, 그리고 오늘 이 토론에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팀은 “종교 시설에 대한 세금 부과를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힙니다. 왜냐하면, 종교 시설 역시 사회의 일원으로서 공정한 납세 의무를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첫째, 세금 면제는 특권이 되어버렸습니다. 현재 많은 종교 시설은 토지, 건물, 심지어 상업용 부동산까지 보유하면서도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부가가치세 등을 면제받고 있습니다. 서울 강남의 한 대형 교회는 수백 억 원대의 부동산을 소유하고도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습니다. 이는 일반 시민들이 매달 월세와 재산세로 허덕이는 현실과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세금은 ‘공동체를 위한 기여’이지, 특정 집단을 위한 면죄부가 아닙니다.

둘째, 종교 시설의 상업화가 심각합니다. 많은 교회와 사찰이 카페, 서점, 결혼식장, 심지어 주차장 사업까지 운영하며 수익을 올립니다. 이는 더 이상 ‘예배’나 ‘수행’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경제 주체입니다. 그런데도 이들이 영리 활동을 하면서 세금을 내지 않는다면, 이는 정직하게 세금을 내는 소상공인들에게 큰 불공정을 안깁니다. 세금은 활동의 성격에 따라 부과되어야지, 이름표에 따라 결정되어서는 안 됩니다.

셋째, 국가는 재정 위기 속에 있습니다. 저출산, 고령화, 복지 확대 요구 속에서 지방자치단체는 세수 부족으로 어린이집도, 도서관도, 공원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연간 수천 억 원 규모의 종교 시설 면세 혜택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 자원을 공공의 선을 위해 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아이들의 미래가 바뀔까요?

마지막으로, 과세가 종교 자유를 침해하지 않습니다. 미국,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 대부분은 종교 시설의 ‘비영리적 활동’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면세를 허용합니다. 영리 활동이나 과도한 자산 축적에는 명확히 과세합니다. 종교의 자유는 신앙을 믿고 실천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지, 무임승차할 권리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오늘 우리는 특권을 없애고, 공정을 세우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반대 측 개회 발언

안녕하십니까. 우리 팀은 “종교 시설에 대한 세금 부과를 강화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힙니다. 왜냐하면 종교 시설은 이윤을 추구하는 공간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공동체 회복을 위한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입니다.

첫째, 종교 시설은 본질적으로 공익적입니다. 교회, 사찰, 성당, 모스크는 단순한 건물이 아닙니다. 이곳에서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급식이 이루어지고, 고독한 노인에게 위로가 전해지며, 청소년들에게 윤리 교육이 제공됩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국내 종교 단체는 연간 1조 원 이상을 자선과 복지에 사용합니다. 이는 국가 예산의 약 0.5%에 해당하는 규모입니다. 이들이 이미 ‘사회적 납세’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둘째, 과세 강화는 종교 자유를 위협합니다. 세금은 단순한 재정 수단이 아니라, 국가의 통제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과세 기준이 모호하다면, 정부는 특정 종교를 ‘비종교적’이라며 탄압하거나, 정치적으로 불편한 소수 종교를 압박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세금은 종교 탄압의 도구로 악용되어 왔습니다. 오늘 우리가 만든 틈은, 내일 누군가의 신앙을 가로막는 장벽이 될 수 있습니다.

셋째, 소규모 종교 공동체가 가장 큰 피해를 봅니다. 대형 교회는 자산이 많아 과세를 견딜 수 있을지 몰라도, 시골의 작은 교회나 마을 사찰은 월 운영비조차 마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에게 세금을 부과한다면, 그들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 지역 사회의 정신적 안전망이 무너지고, 고립된 이웃들이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세금은 약자를 보호해야지, 약자를 몰아내서는 안 됩니다.

넷째, 해결책은 ‘강화’가 아니라 ‘조정’입니다. 우리는 모든 종교 시설에 무조건 면세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명백히 영리적인 활동—예를 들어, 교회 이름으로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커피숍—에는 과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배당, 기도실, 수도원처럼 본연의 목적을 수행하는 공간까지 과세한다면, 이는 ‘나무를 보지 못하고 숲만 베는’ 정책입니다.

종교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마지막 불씨입니다.
그 불을 세금으로 끄지 맙시다.
감사합니다.

개회 발언 반박

찬성 측 두 번째 발언자 반박

존경하는 심사위원님, 방금 반대 측 첫 번째 발언인을 들으며 한 가지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분들은 “종교”라는 이름만 붙으면 모든 것이 면죄부가 된다고 믿고 계시다는 점입니다.

첫째, “종교 시설은 공익적이라서 과세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부터 살펴보죠. 맞습니다. 많은 종교 단체가 자선 활동을 합니다. 하지만 공익 활동을 한다고 해서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건 아닙니다. 사회복지법인도, 문화재단도, 심지어 학교도 공익을 추구하지만, 부동산 임대나 카페 운영 같은 영리 활동에는 명확히 과세됩니다. 그런데 왜 종교 단체만 예외입니까? 이건 ‘공익’이 아니라 ‘특혜’입니다.

둘째, “과세가 종교 자유를 침해한다”는 주장은 역사적 맥락을 왜곡합니다. 과거 종교 탄압은 세금 자체 때문이 아니라, 정치 권력이 특정 신앙을 억압하기 위해 세금을 도구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법치주의와 헌법 아래 살아갑니다. 미국이나 독일처럼, ‘비영리적 종교 활동’은 면세하고, ‘영리적 활동’은 과세하는 합리적 기준을 만들면 됩니다. 그것이 자유를 위협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모든 종교가 동등한 조건에서 존중받는 길입니다.

셋째, “소규모 시설이 피해를 본다”는 걱정, 이해합니다. 하지만 정책은 ‘모든 것을 다 깨뜨리는 것’이 아니라 ‘정밀하게 조율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연 매출 5천만 원 이하의 소규모 종교 시설은 여전히 면세 대상으로 유지하고, 대형 복합단지처럼 수백 억 원의 자산을 굴리는 곳만 과세 대상으로 삼는다면? 이건 ‘약자를 보호’하는 게 아니라, ‘특권층을 감싸는 위선’을 걷어내는 정의로운 조치입니다.

마지막으로, 반대 측은 “강화가 아니라 조정”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팀도 무조건 모든 종교 시설에 세금을 물리자고 한 적 없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강화’는 현재 거의 형식적으로만 존재하는 과세 기준을 현실에 맞게 엄격히 적용하자는 것입니다. 반대 측은 우리 주장을 왜곡해 ‘무차별 폭격’처럼 묘사했지만, 사실 우리는 정밀 타격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공정은 특권을 없애는 데서 시작됩니다.
감사합니다.

반대 측 두 번째 발언자 반박

감사합니다. 방금 찬성 측 두 번째 발언인의 말을 들으며,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과연 그들이 말하는 ‘공정’은 누구를 위한 공정인가?”

첫째, 찬성 측은 “특권”이라는 단어를 반복했습니다. 하지만 대형 교회 몇 곳의 사례를 가지고 전체 종교 시설을 일반화하는 것은 통계적 오류입니다. 전국 12만 개 이상의 종교 시설 중 90% 이상은 월 운영비 100만 원도 안 되는 소규모 공동체입니다. 이들에게 “너희도 특권층이야”라고 말하는 건, 빈곤층에게 ‘너도 부자야’라고 우기는 것과 같습니다.

둘째, “상업화”를 이유로 과세를 정당화하셨지만, 현행 세법은 이미 종교 시설의 영리 활동에 대해 과세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집행이 부실했던 것이지, 법 자체가 없는 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필요한 건 ‘과세 강화’가 아니라 ‘행정의 투명성 강화’입니다. 찬성 측은 마치 지금까지 아무런 규제도 없었다는 듯 말하지만, 이는 사실 왜곡입니다.

셋째, “재정 위기를 해결하자”는 주장, 감동적이긴 합니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국세청 추정에 따르면, 종교 시설에 대한 전면 과세로 확보 가능한 재원은 연간 약 2,500억 원입니다. 이는 국가 예산 600조 원의 0.04%에 불과합니다. 이걸로 어린이집을 늘리고, 도서관을 짓겠다는 건, 숟가락으로 바다를 메우겠다는 격입니다. 진짜 재정 해법은 구조 개혁과 효율적 지출에 있지, 약자에게 세금을 전가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넷째, 선진국 사례를 인용하셨지만, 프랑스는 라이시테(정교분리) 원칙 하에서 종교 단체에 거의 모든 지원을 끊은 나라입니다. 반면 한국은 역사적으로 종교가 사회 통합과 복지 공백을 메워온 역할이 큽니다. 문화적 맥락을 무시한 비교는 오해를 낳습니다. 더군다나 독일은 교회세(Kirchensteuer)를 신자 개인이 내도록 해, 종교 시설 자체에 직접 과세하지 않습니다. 찬성 측의 사례 인용은 선택적이고 편향적입니다.

결론적으로, 찬성 측은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적 약자의 마지막 피난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공정은 강자를 약자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게 아니라, 모두가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질의응답

찬성 측 세 번째 발언자 질의

Q1. 찬성 측 3번 → 반대 측 1번

Q: 귀측은 종교 시설이 “공익적”이라며 면세를 정당화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서울 강남의 한 교회가 보유한 상업용 오피스텔을 월 5천만 원에 임대하고, 그 수익으로 해외 성지 순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경우—이것도 공익적 활동으로 보시겠습니까?

A (반대 측 1번): 물론 모든 활동이 공익적인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해당 수익이 다시 신도 복지나 지역 사회 지원으로 재투자된다면, 이는 영리 목적과는 구별됩니다.


Q2. 찬성 측 3번 → 반대 측 2번

Q: 귀측은 “소규모 시설이 세금으로 문을 닫을 것”이라고 우려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장하는 ‘과세 강화’는 영리적 활동이나 과도한 자산 보유 시설에 한정된 조건부 과세입니다. 이 기준 하에서는 시골 작은 교회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데, 왜 이를 일반화하여 공포를 조장하시는 겁니까?

A (반대 측 2번): 기준이 누가 정합니까?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너희 교회는 너무 큰 건물을 쓴다”며 과세할 수 있지 않습니까? 법은 좋지만, 집행은 정치적일 수 있습니다.


Q3. 찬성 측 3번 → 반대 측 4번

Q: 귀측은 자유 토론에서 아마도 “프랑스나 독일 사례는 한국과 다르다”고 주장하실 것이라 예상됩니다. 그런데 프랑스는 교회 재산에 대해 전면 과세하고, 독일은 교회세를 국민이 직접 내는 구조입니다. 오히려 한국이 국제적으로 가장 관대한 면세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 인정하시겠습니까?

A (반대 측 4번): 그 사례들은 역사적·제도적 배경이 다릅니다. 프랑스는 정교분리 원칙이 극단적이죠. 우리는 그런 길을 가면 안 됩니다.


찬성 측 질의 요약

반대 측은 세 가지 핵심 모순을 드러냈습니다.
첫째, 공익과 영리를 구분하지 못하고 “모든 종교 활동은 선하다”는 이상주의에 머물렀습니다.
둘째, 정책의 구체적 설계를 무시한 채, 추상적 위험만 강조하며 논점을 흐렸습니다.
셋째, 국제 비교에서 선택적 인용과 오해를 반복하며, 한국의 특권적 면세 현실을 외면했습니다.
이 모든 답변은 결국, 현행 제도의 불공정을 방어하려는 변명일 뿐, 공정한 개혁을 거부하는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반대 측 세 번째 발언자 질의

Q1. 반대 측 3번 → 찬성 측 1번

Q: 귀측은 종교 시설의 면세를 “특권”이라 규정하셨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헌법 제20조는 “국교를 두지 않으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명시하면서도, 종교의 자율성과 존엄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이 역사적·헌법적 배경을 무시한 채, 단순히 ‘세금 안 내는 게 특권’이라고 단정하는 건 아닌지요?

A (찬성 측 1번): 헌법은 종교 자유를 보장하지만, 납세 의무 면제를 명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헌 pháp 제38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납세의 의무를 진다”고 규정합니다. 종교인도 국민입니다.


Q2. 반대 측 3번 → 찬성 측 2번

Q: 귀측은 “대형 시설만 과세하자”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기준이 무엇입니까? 교인 수 1천 명? 연간 수입 10억 원? 아니면 건물 면적 1천 평?
이 기준을 누가, 어떤 절차로 정하며, 그 기준이 정치적 편향 없이 적용될 수 있다고 장담하시겠습니까?

A (찬성 측 2번): 기준은 이미 존재합니다. 현행 「조세특례제한법」 제97조는 “비영리 목적 외 수익 사업”에 대해 과세하도록 명시하고 있죠. 우리는 단지 형식적 면세에서 실질적 과세로 전환하자는 겁니다. 기준은 법에 있고, 집행은 감사원과 국세청이 맡습니다.


Q3. 반대 측 3번 → 찬성 측 4번

Q: 귀측은 “과세로 확보되는 재원이 복지에 쓰일 것”이라 주장하셨습니다. 그런데 기획재정부 산출에 따르면, 종교 시설 전면 과세 시 연간 세수 증가액은 국가 예산의 0.04%, 약 600억 원에 불과합니다. 이 정도 금액으로 “어린이집과 도서관을 살릴 수 있다”는 주장, 감성적 과장이 아닌가요?

A (찬성 측 4번): 숫자 자체보다 원칙의 문제입니다. 600억이든 6조이든, 불공정은 바로잡아야 합니다. 게다가, 이는 단순 재산세 기준이며, 부가가치세·법인세 등 포함 시 규모는 훨씬 큽니다. 더 중요한 건, 정직한 소상공인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을 해결하는 것입니다.


반대 측 질의 요약

찬성 측은 세 가지 치명적 허점을 드러냈습니다.
첫째, 헌법적 가치와 역사적 맥락을 경시하며, 납세를 단순한 행정적 의무로 축소시켰습니다.
둘째, ‘대형 시설만 과세’라는 모호한 기준을 제시하면서도, 그 집행의 정치적 위험성에는 답하지 못했습니다.
셋째, 실질적 재정 효과는 미미함에도 불구하고, 감성적 언어로 공감을 유도하려 했습니다.
이는 결국 공정이라는 이름 아래, 약자에게 가장 무거운 부담을 전가할 수 있는 위험한 정책임을 보여줍니다.

자유 토론

찬성 1번:
“상대 측은 종교 시설이 ‘공익적’이라며 면세를 정당화하셨습니다. 그런데요, 서울 강남의 한 교회가 소유한 오피스텔에서 월 5천만 원의 임대수익을 올리고, 그 돈으로 해외 선교 여행을 간다는 보도, 기억하시나요? 이건 공익인가요, 아니면 자산 운용인가요? 공익이라면 왜 국세청에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받지 않고, 왜 법인세 신고 대상에서도 빠져 있나요? 공익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반대 1번:
“그 사례는 극단적인 예외입니다. 전체 종교 시설 중 90%는 연 운영비가 2천만 원 미만입니다. 오히려 찬성 측은 ‘악마의 사례’ 하나로 전체를 매도하고 계시죠. 게다가 현행 「법인세법」 제27조는 이미 ‘영리 목적 사업’에는 과세하도록 명시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집행 부실이지, 제도 부재가 아닙니다. 세금을 강화하는 게 아니라, 기존 법을 제대로 적용하면 되는 일 아닐까요?”

찬성 2번:
“집행 부실이라 말씀하셨는데, 바로 그 ‘부실’이 특권을 낳습니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종교 법인에 대한 세무조사 건수는 전체 조사의 0.3%에 불과합니다. 왜일까요? ‘종교는 건드리면 안 된다’는 묵시적 합의 때문이 아닐까요? 이건 법 앞의 평등이 아니라, 법 위의 특권입니다. 우리가 요구하는 건 ‘강화’가 아니라 ‘일반 기업과 동일한 기준 적용’입니다. 커피숍 운영하는 교회가 스타벅스보다 세금을 덜 내는 게 공정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반대 2번:
“공정함의 기준은 ‘같이 세금 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기여를 어떻게 인정하느냐’에 있습니다. 종교 시설은 정부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청소년 상담, 노인 돌봄, 재난 구호… 이 모든 걸 누가 예산으로 산출하나요? 통계청은 이를 ‘사회적 GDP’로 환산해 약 1조 2천억 원의 가치가 있다고 추정했습니다. 이걸 무시한 채 ‘임대수익만 보는 시각’은 마치 물고기에게 ‘왜 날지 못하냐’고 묻는 격입니다.”

찬성 3번:
“재미있는 비유네요. 그런데 그 물고기가 날개 달고 하늘에서 돈을 버는 중이라면요? 실제로 많은 사찰이 관광객 유치를 위해 주차장, 식당, 기념품 가게를 운영합니다. 불광사의 경우 연 매출이 80억 원을 넘습니다. 이런 시설이 ‘수행 공간’이라는 이름으로 재산세 면제를 받는 건, 병원 이름으로 운영하는 백화점이 의료법인 혜택을 받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는 수행과 상업을 분리하자는 겁니다. 수행은 존중, 상업은 과세—이게 진짜 공정 아닐까요?”

반대 3번:
“그렇다면 찬성 측은 ‘수행’과 ‘상업’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나누실 건가요? 교회에서 결혼식을 치르면 상업인가요? 사찰에서 차 한 잔 대접하면 영리 활동인가요? 이 기준은 반드시 행정권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런데 최근 특정 종교 단체에 대한 감사가 정치적 동기로 이뤄졌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습니다. 권력이 ‘공정’을 명분으로 신앙의 경계선을 긋는 순간, 민주주의는 위험에 빠집니다. 역사가 증명하지 않았습니까? 종교 탄압은 항상 ‘합리적 과세’로 시작됐습니다.”

찬성 4번:
“역사를 들먹이시면 우리도 하나 더 드리죠. 조선 시대, 사찰이 토지를 무한히 확장하자 국가 재정이 붕괴됐습니다. 그래서 태종은 ‘사찰 토지 한도제’를 시행했고, 세종은 ‘승려 호적제’를 도입했습니다. 왜요? 종교도 사회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과세 강화’는 멸종이 아니라 조정입니다. 프랑스는 교회 건물 유지비를 국가가 지원하지만, 그 대신 모든 종교 단체의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법으로 규정합니다. 독일은 교회세를 국민이 직접 선택해 납부합니다. 한국처럼 ‘묻지마 면세’는 선진국 어디에도 없습니다. 특별대우가 아니라, 기본 책임을 묻는 것뿐입니다.”

반대 4번:
“프랑스와 독일은 종교와 국가가 명확히 분리된 ‘라이시테’ 전통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다릅니다. 우리의 종교는 국가와 긴장하면서도 협력해 왔습니다. 6·25 전쟁 때 군종장교가 병사들을 위로했고, IMF 외환위기 때 교회가 실직자에게 라면을 나눴습니다. 이런 공동체적 기능을 ‘면세 특권’이라고 치부하는 순간, 우리는 인간관계의 마지막 안전망을 세금 계산서로 대체하겠다는 겁니다. 정말로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미래인가요? 세금은 숫자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지를 묻는 질문입니다.”

찬성 1번 (마무리):
“반대 측은 ‘안전망’을 강조하지만, 그 안전망이 일부 대형 시설의 특권을 정당화하는 데 악용되고 있다면? 우리는 그 특권을 없애고, 대신 모든 종교 시설이 투명하게 운영되도록 제도를 개선하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공정한 사회는 특권이 아니라 책임에서 시작됩니다.”

최종 발언

찬성 측 최종 발언

존경하는 심사위원님, 오늘 우리는 단지 “세금을 더 걷자”는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가 같은 규칙 아래 살아야 한다”는 믿음을 말했습니다.

반대 측은 계속해서 “작은 교회가 무너진다”고 우려하셨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떻습니까?
서울 강남의 한 교회는 300억 원짜리 오피스텔을 운영하며 월 수억 원의 임대료를 받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신앙의 공간”이라는 이름 하나로 세금 한 푼 내지 않습니다.
이게 정말 공정입니까?

반대 측은 “이미 자선으로 사회에 기여한다”고 하셨지만,
그 자선마저도 투명성 없는 자체 집계일 뿐, 국가 통계나 외부 감사와는 거리가 멉니다.
더 중요한 건, 자선은 납세의 대체재가 될 수 없습니다.
소상공인도 이웃에게 밥을 나눠주지만, 그들은 여전히 부가세를 냅니다.
왜 종교만 예외입니까?

그리고 “과세가 종교 자유를 침해한다”는 주장—이건 사실과 다릅니다.
프랑스는 특정 조건 하에서 종교 단체의 재산에 과세하며, 독일은 교회세를 국민이 직접 선택해 납부합니다.
이 나라들에서 신앙이 사라졌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법의 틀 안에서 더 건강하게 성장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강화”란, 모든 종교 시설에 무차별적으로 세금을 때리는 게 아닙니다.
영리 활동과 신앙 활동을 분리해, 진짜 예배당은 보호하고,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는 부분에는 일반 기업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법 앞의 평등이고, 현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입니다.

오늘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은,
특권을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공정을 세울 것인가입니다.
우리는 후자를 선택합니다.
감사합니다.

반대 측 최종 발언

심사위원님, 오늘 찬성 측은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의 마지막 위로 공간에 세금 고지를 붙이려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대형 교회”는 전체 종교 시설의 0.3%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99.7%는 시골 마을의 작은 교회, 산속의 사찰,
월세 30만 원 방에서 예배를 드리는 개척교회입니다.
이들에게 “세금을 내라”고 말하는 건,
굶주린 아이에게 ‘너도 밥 사 먹어라’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찬성 측은 “영리 활동만 과세하면 된다”고 했지만,
과연 누가 그 기준을 정합니까? 정부입니까? 정치권입니까?
역사가 증명합니다. 세금은 통제의 도구로 변질되기 쉽습니다.
조선 시대, 조세는 양반과 상민을 가르는 칼이었고,
나치 독일은 유대인 상점에 특별세를 물려 경제적 말살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의 “공정한 과세”가 내일의 “편향된 탄압”이 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실질적 효과가 거의 없습니다.
국세청 추정에 따르면, 종교 시설 전면 과세로 확보되는 세수는
국가 예산의 0.04%, 연간 약 600억 원입니다.
이 돈으로 어린이집을 몇 개 더 지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그 대가로 무너질 지역 공동체와 정신적 안전망은
숫자로 환산조차 할 수 없는 가치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돈으로 계산하는 사회”를 원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마지막 공간—
그곳에 세금을 매기는 순간,
우리는 인간관계의 마지막 보루를 시장에 팔아넘기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분명히 말합니다.
세금은 강화가 아니라, 신뢰를 강화해야 합니다.
종교 시설이 진짜 공익을 실천하도록 격려하고,
현행법을 제대로 집행하는 것이 진짜 해결책입니다.

이 토론은 단지 세금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인간, 어떤 공동체를 믿고 싶은지에 관한 질문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믿음을 선택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