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촉법소년(형사 미성년자) 연령 기준을 낮춰야 하는가?
개회 발언
찬성 측 개회 발언
존경하는 심사위원 여러분, 상대 팀, 그리고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 인사드립니다.
우리 팀은 “현행 촉법소년 연령 기준을 낮춰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힙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청소년 범죄는 더 이상 ‘철없는 장난’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촉법소년이란, 형사미성년자로서 형사처벌을 받지 않고 보호처분만 받는 만 14세 미만의 아동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 기준은 1958년 소년법 제정 당시의 사회적 맥락에서 나온 것이며, 지금은 전혀 다른 시대입니다. 우리는 세 가지 핵심 이유에서 이 기준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첫째, 범죄의 중대성과 잔혹성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2023년 발생한 부산 초등학생 살인사건, 2022년 인천 여아 유기 사건 등, 만 13세 이하 아동이 저지른 범죄는 단순한 우발적 행위가 아니라 계획적이고 냉혹합니다. 피해자는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야 하는데, 가해자는 ‘촉법소년’이라는 이름으로 단 몇 달의 상담이나 교육으로 끝납니다. 이는 정의가 아니라 면책입니다.
둘째, 청소년의 인지·도덕적 성숙도는 과거보다 훨씬 높아졌습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통해 10세 아동도 성폭력, 마약, 폭력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합니다. OECD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아동의 평균 인지 발달 속도는 30년 전보다 2년 이상 앞서 있습니다. 책임을 질 수 있는 지식과 판단력을 갖췄다면, 책임을 회피할 특권을 줄 수 없습니다.
셋째, 형사처벌은 억제 효과를 가집니다.
“너는 아직 어려서 괜찮아”라는 메시지는 오히려 범죄를 조장합니다. 실제로 일본은 2000년대 초반 촉법소년 연령을 14세에서 12세로 낮춘 후, 10대 초반 범죄율이 40% 이상 감소했습니다. 처벌이 두려워야 행동이 바뀝니다.
마지막으로, 이 문제는 ‘가해자 보호’와 ‘피해자 인권’ 사이의 균형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다른 아이들의 생명을 위협해서는 안 됩니다.
책임 있는 자유만이 진정한 성장입니다.
따라서 촉법소년 연령 기준은 현실에 맞게, 정의에 맞게, 낮춰져야 합니다.
반대 측 개회 발언
감사합니다. 우리 팀은 “현행 촉법소년 연령 기준을 낮춰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힙니다.
왜냐하면 법은 복수의 도구가 아니라, 미래를 만드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촉법소년 제도는 단순한 ‘면책’이 아닙니다. 이는 ‘처벌보다 교화’, ‘응보보다 회복’ 을 지향하는 소년법의 핵심 정신입니다. 만 14세 미만 아동은 뇌의 전두엽, 즉 충동 조절과 장기적 판단을 담당하는 부분이 아직 완전히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최소 만 25세까지 성숙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만 12세 아이에게 성인과 동일한 형사책임을 묻는 것은 과학에도, 윤리에도 어긋납니다.
우리의 주장은 세 가지 층위에서 설득력을 가집니다.
첫째, 형사처벌은 청소년의 회복 가능성을 차단합니다.
한 번 범죄자로 낙인찍힌 아이는 학교에서 쫓겨나고, 사회에서 배제되며, 결국 재범의 악순환에 빠집니다. 반면, 보호처분을 받은 아동 중 78%는 재범 없이 사회에 복귀합니다(법무부 2023년 통계). 교육과 상담은 처벌보다 더 강력한 변화의 도구입니다.
둘째, 범죄의 원인은 개인의 악의보다 사회적 환경에 있습니다.
빈곤, 가정 폭력, 학교 부적응, 정서적 방치—이런 구조적 문제를 무시한 채 아이만 처벌하는 것은 ‘편의적 정의’입니다. 진짜 해결은 가해자를 감옥에 넣는 것이 아니라, 다음 피해자를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선 예방 프로그램과 심리지원 체계를 확충해야지, 연령 기준을 낮춰서는 안 됩니다.
셋째, ‘연령 낮추기’는 감정적 대응일 뿐, 실질적 효과가 없습니다.
영국은 1990년대 촉법소년 연령을 낮췄지만, 10년 내 청소년 범죄율이 오히려 22% 증가했습니다. 왜요? 처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아이들이 ‘포기당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법은 아이를 단죄하는 게 아니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꿈을 전당포에 맡기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 꿈이 바로 ‘모든 아이는 다시 잘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버리는 순간, 우리는 범죄를 줄이려다 오히려 더 많은 피해자를 만들게 됩니다.
따라서 촉법소년 연령 기준은 유지되어야 하며, 대신 그 제도를 더 튼튼히 다져야 합니다.
개회 발언 반박
찬성 측 두 번째 발언자 반박
존경하는 심사위원 여러분, 방금 반대 측은 “촉법소년 제도는 미래를 만드는 도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미래가 오직 가해자의 것이라면, 피해자의 미래는 어디에 있습니까?
반대 측은 세 가지 큰 오해를 하고 계십니다.
첫째, “뇌가 덜 성숙했으니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주장은 과학을 왜곡합니다.
네, 인간의 뇌는 25세까지 성숙합니다. 하지만 형사책임능력은 ‘완전한 성숙’이 아니라 ‘잘못을 알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미국 최고재판소도 Roper v. Simmons 사건에서 “청소년은 성인보다 충동적이지만, 살인 같은 중대 범죄의 도덕적 잘못을 인지할 수 있다”고 명확히 판시했습니다.
정보에 노출된 오늘날의 12세는, 1950년대의 16세보다 더 많은 것을 압니다. 그런데도 법은 여전히 그들을 ‘모르는 아이’로 취급합니다.
이건 보호가 아니라, 현실 회피입니다.
둘째, “보호처분이 재범을 막는다”는 통계는 중대 범죄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법무부 통계에서 말하는 78%는 절도, 폭행 등 경미한 비행 청소년을 포함합니다.
하지만 부산 초등학생 살인사건의 가해자는 보호처분 후에도 “다시 태어나도 똑같이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아이에게 ‘상담 몇 번’이 진짜 변화를 가져올까요?
우리는 모든 아이가 다시 잘될 수 있다고 믿지만, ‘다시 잘될 의지가 없는 아이’까지 포용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셋째, 사회적 환경을 고려하자는 주장은 타당하지만, 책임 면제의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빈곤과 방치는 설명이지, 정당화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성인 범죄자들도 모두 “내가 이렇게 된 건 사회 탓”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아닙니다. 왜냐하면 책임은 변화의 시작점이기 때문입니다.
형사처벌이 곧 감옥행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조건부 기소유예, 사회봉사, 피해자와의 화해 절차—이 모든 것은 형사절차 안에서 가능한 교화의 도구입니다.
반면, 촉법소년은 법적 책임 자체를 차단합니다.
그 결과, 아이는 “내가 아무리 해도 괜찮아”라는 메시지를 받습니다.
이게 정말 아이를 위한 것입니까?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처벌’이 아니라 ‘책임의 문턱을 현실에 맞추는 것’입니다.
그 문턱을 낮춘다고 해서 아이들을 버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진짜 ‘사람’으로 대우하는 것입니다.
반대 측 두 번째 발언자 반박
감사합니다. 찬성 측은 “현실에 맞춰야 한다”고 강조하셨지만, 그들이 말하는 ‘현실’은 단지 감정적 분노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우선, 찬성 측은 범죄의 잔혹성과 책임능력을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계획적이고 냉혹하다”는 말은 들리기 섬뜩하지만, 그것이 곧 도덕적 성숙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2022년 인천 사건의 가해자는 온라인 게임에서 본 장면을 그대로 흉내 냈습니다.
이는 계획이 아니라 모방입니다.
아이들은 폭력의 ‘방법’은 배울 수 있어도, 그 행위가 누군가의 삶을 영원히 파괴한다는 ‘무게’는 아직 느끼지 못합니다.
이걸 성인과 같은 눈으로 판단하는 건, 아이를 어른으로 간주하는 폭력입니다.
둘째, “인지 발달이 빨라졌다”는 주장은 책임능력과 무관합니다.
10세 아이가 스마트폰으로 성폭력 영상을 볼 수 있다고 해서, 그 아이가 ‘동의’의 윤리적 의미를 이해한다고 보십니까?
아닙니다.
정보 접근성 ≠ 도덕적 판단력.
오히려 과잉 노출은 아이들의 감정 조절 능력을 더 약화시킵니다.
OECD 보고서도 “인지 속도는 빨라졌지만, 정서적 성숙은 오히려 지연되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이런 아이들에게 형사처벌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우는 건, 교화가 아니라 낙인입니다.
셋째, 일본 사례는 맥락을 완전히 무시한 인용입니다.
일본은 2000년 촉법소년 연령을 14세에서 12세로 낮췄지만, 동시에 학교 내 심리상담사 3배 확충, 가족지원센터 전국 설치, 가해자-피해자 중재 프로그램을 도입했습니다.
즉, 처벌을 강화한 게 아니라, 지원 체계를 먼저 튼튼히 한 후 책임 기준을 조정한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어떠합니까?
청소년 상담 예산은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연령만 낮춘다면, 우리는 아이들을 감옥으로 내몰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찬성 측은 “피해자 인권”을 강조하지만, 진짜 피해자 인권은 ‘복수’가 아니라 ‘재발 방지’에 있습니다.
영국은 1993년 두 명의 10세 소년이 2세 아동을 살해하자, 국민적 분노 속에 이들을 성인처럼 처벌했습니다.
결과는?
그들 중 한 명은 출소 후 또 다른 성범죄를 저질렀고, 사회는 두 명의 피해자를 만들었습니다.
반면, 독일은 같은 시기 촉법소년 제도를 강화해, 오늘날 청소년 살인율이 한국의 1/10 수준입니다.
법은 감정을 달래는 도구가 아닙니다.
법은 미래의 피해자를 막기 위한 지혜의 결정이어야 합니다.
그 지혜는, 아이를 단죄하는 데 있지 않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만드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연령 기준을 낮추는 대신, 촉법소년 제도를 더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개혁해야 합니다.
질의응답
찬성 측 세 번째 발언자 질의
찬성 측 3번: 반대 측 1번 발언자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귀측은 “촉법소년 제도는 처벌보다 교화를 지향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부산 초등학생 살인사건의 가해자가 보호처분 후 ‘다시 태어나도 똑같이 할 것’이라고 말한 상황에서도, 여전히 그 조치가 ‘교화’라고 보십니까? 아니면, 이는 단지 ‘책임 회피의 결과’입니까?
반대 측 1번: ……물론 그 발언은 충격적이고 용납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아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입니다. 그 아이는 심리평가에서 ‘공감 능력 결핍’과 ‘정서적 방치’를 진단받았습니다. 이는 교화 프로그램이 부족했기 때문이지, 제도 자체의 실패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보호처분의 내용을 강화해야지, 형사처벌이라는 다른 극단으로 치우쳐선 안 됩니다.
찬성 측 3번: 다음으로, 반대 측 2번 발언자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귀측은 “청소년은 중대 범죄의 도덕적 무게를 느끼지 못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런데 미국 최고재판소는 이미 2005년 Roper v. Simmons 판결에서, 청소년이라도 살인의 도덕적 잘못을 인지할 수 있다고 명시했습니다.
그렇다면 귀측은 미국 사법부의 과학적·윤리적 판단을 거부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한국만 특별히 인지능력이 낮다고 보시는 겁니까?
반대 측 2번: 미국 판결은 존중합니다. 하지만 그 판결은 형사처벌을 금지한 결정이지, 책임능력을 전면 인정한 게 아닙니다. 더 중요한 건, 한국의 청소년 범죄 대부분은 모방·충동적 요소가 강하다는 점입니다. 인지능력과 도덕적 성찰은 다릅니다. 스마트폰으로 ‘살인’을 검색할 수 있어도, 그 행위가 누군가의 엄마를 영원히 잃게 한다는 걸 진심으로 이해하진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급한 형사처벌보다 신중한 교화를 선택합니다.
찬성 측 3번: 마지막으로, 반대 측 4번 발언자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귀측은 “지원 체계를 먼저 튼튼히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청소년 상담 예산은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이고, 지역마다 서비스 격차가 큽니다.
그렇다면 귀측은 ‘촉법소년 연령을 유지하되, 예산을 3배 증액하겠다’는 구체적 로드맵을 제시하실 수 있습니까?
아니면, 이 역시 ‘이상적인 개혁’만 외치는 현실 회피입니까?
반대 측 4번: ……물론 예산 확충은 시급합니다. 그러나 법 개정과 예산 확보는 별개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연령을 낮춘다면, 국회와 정부는 “이미 처벌 강화했으니 지원은 다음으로”라고 핑계 댈 것입니다. 반대로, 연령을 유지하면서 ‘촉법소년 개혁 특별법’을 제정해, 의무적 심리평가, 가족 동행 프로그램, 피해자 배상 메커니즘을 도입하자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로드맵입니다.
찬성 측 질의 요약
감사합니다. 반대 측의 답변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가해자의 반성 부족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실행의 부족이라고 변명하셨습니다.
둘째, 미국의 과학적 판단은 받아들이되, 한국 청소년은 특별히 덜 성숙하다고 주장하셨습니다—이는 이중잣대입니다.
셋째, 구체적 예산 로드맵 대신 ‘특별법 제정’이라는 추상적 약속으로 현실을 회피하셨습니다.
결국 반대 측은 책임을 미루는 언어로, 피해자의 고통을 계속 외면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요구하는 건 이상이 아니라, 현실에 맞춘 정의의 문턱입니다.
반대 측 세 번째 발언자 질의
반대 측 3번: 찬성 측 1번 발언자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귀측은 “일본이 촉법소년 연령을 낮춘 후 범죄율이 40% 감소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동시에 학교 상담사와 가족지원센터를 대폭 확충했고, 형사처벌보다 ‘사회적 통제’를 강화했습니다.
그렇다면 귀측은 한국도 일본처럼 지원 체계를 먼저 3배로 늘릴 계획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처벌만 강화하고 아이들을 버리겠다는 겁니까?
찬성 측 1번: 물론 지원 확충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책임과 지원은 상호 배타적이지 않습니다. 형사절차 내에서도 조건부 기소유예, 사회봉사, 피해자 화해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습니다. 일본 사례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건, ‘책임 문턱을 현실에 맞추고, 그 위에 지원을 얹는 것’입니다. 지금처럼 책임 자체를 차단하면, 아무리 예산을 늘려도 아이들은 “내가 해도 괜찮아”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반대 측 3번: 다음으로, 찬성 측 2번 발언자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귀측은 “형사처벌이 억제 효과를 가진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런데 영국은 1993년 두 10세 소년을 성인처럼 처벌한 후, 한 명이 출소 후 재범을 저질렀습니다.
그렇다면 귀측은 형사처벌이 오히려 재범을 유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모든 청소년을 ‘이성적 계산자’로 전제하는 오류에 빠져 계십니까?
찬성 측 2번: 영국 사례는 당시 심리평가 없이 정치적 분노로 처벌한 실패 사례입니다. 우리는 그런 감정적 처벌이 아니라, 형사절차 내에서 개별화된 판단과 교화 기회를 병행하자고 제안합니다. 다시 말해, 처벌은 시작점이지 종착역이 아닙니다. 반면, 촉법소년은 아예 그 출발조차 허락하지 않죠. 그것이 더 큰 오류입니다.
반대 측 3번: 마지막으로, 찬성 측 4번 발언자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귀측은 “피해자 인권을 위해 연령을 낮춰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런데 형사처벌이 피해자에게 실질적 위로가 되는 사례는 드뭅니다. 대부분의 피해자 가족은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해달라”고 호소합니다.
그렇다면 귀측은 형사처벌이 재발 방지에 더 효과적이라고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복수의 감정을 ‘피해자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계신 겁니까?
찬성 측 4번: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책임을 회피당한 가해자는 ‘내가 해도 괜찮다’는 신호를 받고,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듭니다. 반면, 책임을 지게 된 아이는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고통을 줬는지 직시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진짜 재발 방지입니다. 복수가 아니라, 책임을 통한 각성이 피해자를 지키는 유일한 길입니다.
반대 측 질의 요약
감사합니다. 찬성 측의 답변을 보면 다음과 같은 모순이 드러납니다:
첫째, 일본 사례를 인용하면서도, 그 핵심인 ‘지원 확충’은 뒷전입니다.
둘째, 영국의 실패 사례를 ‘감정적 처벌’이라 치부하며, 자신들은 ‘이성적 처벌’만 하겠다고 주장—이는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입니다.
셋째, 형사처벌이 재발 방지에 효과적이라는 과학적 근거 없이, ‘책임=각성’이라는 순환논리를 반복하셨습니다.
법은 감정을 달래는 도구가 아닙니다.
법은 미래의 피해자를 지키기 위한 냉철한 설계여야 합니다.
그 설계는, 아이를 단죄하는 데 있지 않고, 다시는 이런 아이가 나오지 않게 만드는 데 있습니다.
자유 토론
찬성 측 3번:
“반대 측은 늘 ‘지원이 부족하다’고 말씀하시는데요, 그럼 묻겠습니다.
부산 초등학생 살인사건의 가해자가 상담 100번을 받았다면, 그 아이는 정말 살인을 멈췄을까요?
아니요. 그 아이는 ‘다시 태어나도 똑같이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건 지원 부족이 아니라, 책임 의식 자체의 결핍입니다.
우리는 모든 아이를 믿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를 계속 보낼 순 없습니다.”
반대 측 3번:
“그렇다면 찬성 측은, 12세 아이가 법정에 서서 ‘살인죄’로 기소될 때,
그 아이의 눈에 무엇이 비칠 거라 생각하십니까?
‘내 인생은 끝났다’는 절망일 겁니다.
그 절망이 과연 교화를 가져올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낙인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필요한 건 ‘더 무거운 문턱’이 아니라, 문턱 안에서 더 강한 손길입니다.”
찬성 측 4번:
“낙인이라니요?
오히려 지금처럼 아무런 법적 책임 없이 풀려나는 게 더 큰 낙인이죠.
‘넌 아무리 해도 괜찮아’—이게 바로 사회가 주는 최악의 메시지입니다.
미국 뉴욕주는 13세 이상 중대 범죄자에게 조건부 형사책임을 물립니다.
하지만 동시에 청소년 법정, 교육 프로그램, 심리 평가를 병행합니다.
형사처벌과 교화는 배타적이지 않습니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병행의 문제입니다.”
반대 측 4번: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찬성 측이 말하는 ‘조건부 책임’을 실행할 예산과 인프라는 어디 있습니까?
현재 한국의 청소년 상담 인력은 OECD 평균의 42% 수준입니다.
특별법 하나 만들고 ‘책임을 묻겠다’고 외치는 건,
빈 수레가 요란한 격입니다.
우선 해야 할 일은 연령을 낮추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도움을 요청하는 아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찬성 측 1번:
“예산이 없다면 만들면 됩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제도 하에서는,
예산 확보의 정치적 동기조차 생기지 않습니다.
왜요?
‘촉법소년은 그냥 보내주면 되잖아’라는 안일함 때문이죠.
책임의 문턱을 낮추는 순간, 사회는 ‘이제는 진짜 대책이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즉, 연령 조정은 제도 개혁의 촉매제입니다.”
반대 측 1번:
“촉매제라니요?
영국은 1993년 두 10세 소년을 성인처럼 처벌하며 ‘촉매제’를 썼습니다.
결과는?
한 명은 출소 후 성범죄 재범을 저질렀고,
또 다른 피해자가 생겼습니다.
반면, 독일은 같은 시기 촉법소년 교육센터를 3배 확충했고,
오늘날 청소년 살인율은 한국의 1/10입니다.
진짜 촉매제는 처벌이 아니라, 투자입니다.”
찬성 측 2번:
“재미있는 말씀이네요.
그럼 반대 측은, 부산 사건 이후 국민이 요구한 ‘제도 개선’에 대해
‘아직 예산이 없으니 기다리라’고 말하는 겁니까?
피해자의 어머니는 ‘왜 우리 아이만 책임져야 하냐’고 울었습니다.
법은 이상을 위한 것이지만, 현실의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버리지 않습니다.
다만, 가해자도 피해자도 모두 인간으로 대우받는 법을 만들고자 합니다.”
반대 측 2번: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여쭙겠습니다.
찬성 측이 말하는 ‘책임 있는 자유’는,
과연 12세 아이의 눈높이에서 설계된 것입니까?
아니면 성인의 분노를 정당화하기 위한 틀입니까?
법은 감정을 달래는 도구가 아닙니다.
법은 내일의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냉철한 설계여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
‘더 많은 감옥’이 아니라,
‘더 적은 범죄’를 만드는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최종 발언
찬성 측 최종 발언
심사위원 여러분, 오늘 우리는 단지 ‘연령을 몇 살로 하느냐’를 논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누구의 생명도 가볍게 여겨져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묻고 있습니다.
반대 측은 우리를 “감정에 휘둘리는 자”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감정에 휘둘리는 쪽은 누구입니까?
부산에서 목 졸려 숨진 초등학생의 어머니가 울부짖을 때,
“그 아이는 아직 뇌가 덜 자랐으니 괜찮아요”라고 말하는 쪽이 진짜 감정을 외면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복수가 아닙니다.
공정한 책임의 문턱입니다.
12세 아이가 스마트폰으로 성폭력 영상을 보고, 온라인에서 폭력 방법을 배우며,
심지어 “다시 태어나도 똑같이 할 거야”라고 말할 정도로 냉혹해졌다면—
그 아이에게 “너는 아직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야”라고 말하는 건 보호가 아니라 거짓말입니다.
형사처벌이 곧 감옥행이란 고정관념부터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제안하는 건 조건부 책임 체계입니다.
12세 이상 중대 범죄자에게는 형사절차를 시작하되,
심리평가, 피해자와의 회복적 정의, 강제 교육 프로그램 등을 통해
‘처벌 속의 교화’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이건 일본, 독일, 캐나다 모두가 이미 시도하고 있는 현실적인 해법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책임 없이는 성장도 없습니다.
아이에게 “네가 한 일은 네가 책임져야 해”라고 말하는 건,
그 아이를 버리는 게 아니라,
그 아이를 진짜 인간으로 인정하는 첫걸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확신합니다.
촉법소년 연령 기준을 낮추는 것은
과거의 관행을 깨는 용기이며,
미래의 정의를 세우는 지혜입니다.
이제, 피해자의 눈물보다 가해자의 나이를 더 무겁게 여기는 법은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 됩니다.
반대 측 최종 발언
존경하는 심사위원 여러분,
오늘 찬성 측은 “책임 있는 자유”를 말했습니다.
하지만 자유는 책임 이전에 먼저 보호받아야 할 권리입니다.
특히, 아직 자기 감정조차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12세 아이에게는 말입니다.
찬성 측은 “특별법을 만들고, 프로그램을 병행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어디에 예산이 있습니까?
청소년 상담사 1명이 500명의 아이를 담당하는 나라에서,
“형사처벌과 교화를 동시에 하겠다”는 말은
좋은 의도로 포장된 공허한 구호에 불과합니다.
영국은 1993년 국민의 분노에 밀려 10세 아이들을 성인처럼 처벌했습니다.
결과는?
한 명은 출소 후 또 다른 범죄를 저질렀고,
사회는 두 번 울었습니다.
반면, 독일은 같은 시기
학교마다 심리전문가를 두고, 가정과 연결된 예방망을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그들의 청소년 살인율은 한국의 10분의 1입니다.
투자가 먼저고, 처벌은 마지막 수단입니다.
법은 성인의 분노를 달래주는 도구가 아닙니다.
법은 12세 아이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여야 합니다.
그 아이가 저지른 일이 끔찍하다면,
더더욱 우리는 그 아이를 단죄하는 게 아니라,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구조를 들여다봐야 합니다.
가정의 붕괴, 학교의 방치, 사회의 무관심—
이 모든 것을 무시한 채 아이만 감옥에 넣는 건,
문제를 해결한 게 아니라,
다음 피해자를 예약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꿈을 믿습니다.
“모든 아이는 다시 잘될 수 있다”는 꿈을.
이 꿈을 버리는 순간,
우리는 범죄를 줄이려다
오히려 더 많은 상처를 만드는 어른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단호히 말합니다.
촉법소년 연령 기준은 낮추지 말아야 합니다.
대신,
그 제도를 떠받칠 교육, 심리, 가족지원의 기둥을 지금 당장 세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진짜 정의는
처벌의 속도가 아니라,
회복의 깊이에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