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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면책특권을 전면 폐지해야 하는가?

개회 발언

찬성 측 개회 발언

존경하는 심사위원 여러분,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 묻겠습니다.
우리는 국회의원을 ‘대의민주주의의 대표자’로 뽑았습니까? 아니면 ‘불가침의 특권층’으로 뽑았습니까?

우리 측은 국회의원 면책특권을 전면 폐지해야 한다고 단호히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이 제도는 이제 더 이상 ‘의사 발언의 자유’를 지키는 방패가 아니라, 무책임과 특권을 정당화하는 방탄조끼로 전락했기 때문입니다.

첫째, 민주주의의 핵심은 책임성입니다. 국민은 대표에게 말할 자유를 줬지만, 그 자유를 남용해도 괜찮다고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특정 집단을 모욕하며, 심지어 폭력적 언사를 일삼는 의원들이 “국회에서 한 말은 면책된다”는 이유로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는 현실—이게 과연 우리가 원하는 민주주의입니까?

둘째, 면책특권은 이미 악용의 온상이 되었습니다.
지난해만 해도, 한 의원이 국회에서 특정 종교인을 ‘사회적 암’이라 비하했고, 또 다른 의원은 허위 통계로 특정 지역민을 ‘국가의 부담’이라 몰아갔습니다.
이 모든 것이 면책특권 덕분에 법적 책임 없이 지나갔습니다.
자유로운 토론이 아니라, 무기 없는 전쟁터에서의 폭언 면죄부가 된 것입니다.

셋째, 책임 없는 권력은 반드시 부패합니다.
면책특권이 있기에 의원들은 말의 무게를 고민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국회는 진지한 정책 토론의 장이 아니라, SNS 클릭 유도를 위한 자극적 발언의 경매장이 되고 있습니다.
이는 국민의 신뢰를 갉아먹는 가장 큰 요인입니다.

물론 반대 측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형사처벌만 제한하자는 게 아니라, 모든 책임을 면제하는 현행 제도 전체를 문제 삼는 것입니다.
민사소송, 국회 내 징계, 여론의 심판—이 모든 책임 메커니즘은 유지하면서, 오직 ‘형사 면책’이라는 과도한 특권만 폐지하자고 제안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특권이 아니라, 책임 위에 서 있습니다.
이제 면책특권이라는 골드카드를 회수할 때입니다.


반대 측 개회 발언

존경하는 심사위원 여러분, 상상해 보십시오.
행정부가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는 상황에서, 한 국회의원이 대통령의 비리를 고발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 순간, 검찰이 “명예훼손 혐의”로 그 의원을 기소합니다.
말 한마디로 구속되고, 의석은 공석이 되며, 국민의 목소리는 묵살됩니다.
이게 바로 면책특권이 없다면 벌어질 현실입니다.

우리 측은 국회의원 면책특권을 전면 폐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이 제도는 단순한 ‘특권’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호흡하게 만드는 산소마스크이기 때문입니다.

첫째, 면책특권은 입법부의 독립을 지키는 마지막 방어선입니다.
헌법 제45조는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에 관하여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고 명시합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권위주의 정권은 언제나 ‘국회 발언’을 빌미로 반대파를 탄압했습니다.
면책특권이 없다면, 오늘날에도 행정부나 재벌, 강력한 이해관계 집단이 사법권을 동원해 불편한 목소리를 잠재울 수 있습니다.

둘째, 소수와 약자를 위한 유일한 마이크입니다.
다수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인기 없는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공간—그게 바로 국회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 이주민, 청년 실업자, 비정규직 노동자… 이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외면받습니다.
그러나 국회의원이 그들을 대변할 때, 면책특권이 없다면?
“명예훼손”, “공공질서 위반”, “허위사실 유포”라는 죄목으로 즉시 기소될 것입니다.

셋째, 책임성은 이미 다중적으로 담보되고 있습니다.
선거로 심판받고, 언론과 시민단체의 감시를 받고,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의 징계도 받습니다.
심지어 민사소송도 가능합니다—헌법재판소는 이미 “민사책任은 면책특권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판결했습니다.
즉, 형사처벌만 제한될 뿐, 무책임하게 말해도 괜찮다는 뜻은 전혀 아닙니다.

물론 일부 의원의 부적절한 발언은 개탄스럽습니다.
하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제도 전체를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윤리 강화, 내부 통제 장치를 보완하는 것입니다.

면책특권을 없애는 순간, 민주주의는 숨 쉴 수 없습니다.
이 제도는 특권이 아니라, 모든 국민을 위한 자유의 보루입니다.
그 보루를 스스로 무너뜨려서는 안 됩니다.

개회 발언 반박

찬성 측 두 번째 발언자 반박

존경하는 심사위원 여러분, 방금 반대 측은 면책특권을 “민주주의의 산소마스크”라고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묻겠습니다—산소마스크가 아니라, 가스실의 열쇠가 되고 있는 건 아닐까요?

반대 측은 세 가지 주장을 펼쳤습니다.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1. “행정부 탄압으로부터 보호한다”? — 시대착오적 공포입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국회의원이 대통령 비리를 말했다가 구속된 사례는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오늘날 대한민국은 사법부가 독립되어 있고, 언론이 활발히 감시하며, 시민사회가 즉각 반응하는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더 이상 한마디 발언으로 의원이 구속되는 시대는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은 면책특권을 앞세워 검찰·언론·시민단체를 ‘적폐’라 몰아붙이는 의원들이 더 많은 게 현실입니다.
보호받아야 할 건 의원이 아니라, 허위 발언에 무방비로 노출된 국민입니다.

2. “소수자를 위한 마이크”? — 오히려 그 마이크가 소수자를 욕보입니다

반대 측은 면책특권이 성소수자, 이주민, 청년을 위한 목소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5년간 국회에서 ‘이주민은 범죄 집단’이라거나, ‘페미니스트는 국가의 적’이라고 발언한 의원들이 바로 면책특권 덕분에 아무런 처벌 없이 버티고 있습니다.
이게 정말 소수자를 위한 제도입니까?
아니면 혐오를 합법화하는 특권입니까?
진정한 소수자 보호는 책임 있는 발언에서 시작됩니다. 무책임한 발언은 보호가 아니라 폭력입니다.

3. “책임은 이미 다중적으로 담보된다”? — 형사처벌 면제가 모든 책임을 무력화합니다

선거, 언론, 윤리위, 민사소송… 네, 이 모든 장치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형사처벌이라는 최후의 보루가 사라진 순간, 다른 책임은 종이호랑이가 됩니다.
민사소송은 시간과 비용이 들고, 윤리위는 당리당략에 휘둘리며, 선거는 4년 후입니다.
그 사이 피해자는 고통 속에 홀로 남겨집니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모든 책임을 없애라”가 아니라, 형사처벌 가능성이라는 최소한의 억제 장치를 복원하라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반대 측은 이상적인 면책특권을 상상하지만, 우리는 현실에서 작동하는 면책특권을 직시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이상이 아니라 실천입니다.
이제 특권이 아니라 책임을 선택할 때입니다.


반대 측 두 번째 발언자 반박

존경하는 심사위원 여러분, 찬성 측은 “면책특권은 방탄조끼”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한 사실이 있습니다—방탄조끼가 없으면, 총알을 맞기 전에 입을 다물게 된다는 것입니다.

찬성 측의 논리는 세 가지 치명적 오류를 안고 있습니다.

1. “악용 사례 = 제도 전체의 실패”인가? — 부분으로 전체를 재단하는 오류

한두 명의 의원이 혐오 발언을 했다고 해서, 전체 제도를 폐지해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습니다.
자동차 사고가 나면 운전면허를 폐지합니까?
의사 과실이 있으면 의료 행위를 금지합니까?
아닙니다. 교육과 규제, 내부 통제를 강화합니다.
찬성 측은 문제의 원인을 ‘제도’로 단정하지만, 진짜 문제는 정치 문화와 윤리의식의 결핍입니다.
제도를 없애면 문화가 좋아질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감시할 수 있는 마지막 공간마저 사라질 뿐입니다.

2. “책임 없는 권력은 부패한다”? — 책임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찬성 측은 형사처벌 면제를 ‘무책임’의 증거로 삼습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명확히 판시했습니다:

“면책특권은 형사처벌만 면제할 뿐, 민사책임, 도덕적 책임, 정치적 책임은 전혀 면제되지 않는다.”

즉, 의원이 거짓말을 하면 민사소송으로 배상해야 하고, 윤리위에서 징계받을 수 있으며, 다음 선거에서 낙선할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책임’입니다.
형사처벌만이 유일한 책임이란 생각은, 형벌 중심주의의 위험한 편견입니다.

3. “SNS 클릭 유도 발언”은 면책특권 때문인가? — 인과관계의 전도

찬성 측은 국회가 SNS 경매장이 된 이유를 면책특권 탓으로 돌립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그렇다면 미국, 독일, 프랑스 등 면책특권이 있는 나라에서도 국회가 SNS 전쟁터입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여전히 정책 토론이 중심입니다.
왜냐하면 정치인의 자격과 언론의 역할, 시민의 성숙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한국 정치의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제도를 운영하는 주체들의 태도에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만약 내일 면책특권이 사라진다면, 누가 대통령의 비리를 고발하겠습니까?
누가 재벌의 불법 행위를 폭로하겠습니까?
누가 인기 없는 개혁안을 밀어붙이겠습니까?
침묵하는 국회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형식적 절차일 뿐입니다.

우리는 특권을 지키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의 자유를 지키려는 것입니다.
그 자유는, 말할 수 있는 용기에서 시작됩니다.

질의응답

찬성 측 세 번째 발언자 질의

<질문>
찬성 측 3번: 반대 측 1번 발언자님께 묻겠습니다.
귀측은 면책특권이 “소수자를 위한 유일한 마이크”라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국회에서 “이주민은 범죄자 집단”이라 발언한 의원이 면책특권 덕분에 아무런 처벌 없이 버티고 있는 현실—이것이 과연 소수자를 위한 제도입니까?
아니면, 혐오 발언을 합법화하는 특권 장치입니까?

<답변>
반대 측 1번:
그 발언은 분명 잘못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개인의 윤리의식입니다.
면책특권이 없다면, 오히려 그런 발언조차 하지 못해 소수자의 존재 자체가 공론장에서 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악용을 막기 위해 제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내부 징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질문>
찬성 측 3번: 반대 측 2번 발언자님께 묻겠습니다.
귀측은 “민사소송, 윤리위, 선거로 충분히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국회에서 허위 사실로 특정 지역민을 모욕한 의원 중, 민사소송에서 승소한 피해자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소송 비용과 시간, 그리고 정치적 영향력 차이 때문입니다.
이처럼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책임 메커니즘을 “충분하다”고 보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변>
반대 측 2번:
민사소송 승소율이 낮은 것은 면책특권 때문이 아니라, 허위사실 입증의 일반적 어려움 때문입니다.
면책특권이 없어도 똑같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오히려 면책특권이 있어야, 그런 발언조차 공개적으로 할 수 있고, 그걸 통해 사회적 논의와 여론의 심판이 가능해집니다.


<질문>
찬성 측 3번: 반대 측 4번 발언자님께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귀측은 “미국·독일도 면책특권이 있지만 SNS 클릭 유도 발언이 없지 않느냐”고 반박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한국 정치인이 왜 유독 자극적 발언에 의존합니까?
정답은 간단합니다—책임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독일 의원이 “페미니스트는 국가의 적”이라 말했다면, 즉시 당에서 제명되고 법적 조치를 받습니다.
한국도 면책특권을 폐지하면, 정치 문화가 자연스럽게 성숙해지지 않겠습니까?

<답변>
반대 측 4번:
문화는 제도보다 느리게 변합니다.
제도를 없앤다고 해서 내일부터 의원들이 성숙해지진 않습니다.
오히려 말할 자유가 위축되어, 진짜 문제는 은폐되고, 오직 안전한 발언만 남을 것입니다.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기검열의 디스토피아입니다.


찬성 측 질의 요약

반대 측은 일관되게 “제도는 문제가 없고, 사람과 문화가 문제”라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제도는 문화를 형성합니다.
책임 없는 특권이 계속된다면, 혐오 발언은 반복되고, 피해자는 구제받지 못하며, 국회는 신뢰를 잃을 것입니다.
반대 측의 답변은 이상적인 민주주의를 상상하지만, 현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단지—말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입니다.


반대 측 세 번째 발언자 질의

<질문>
반대 측 3번: 찬성 측 1번 발언자님께 묻겠습니다.
귀측은 “형사처벌 가능성만 복원하자”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묻겠습니다—누가 ‘허위 사실’과 ‘의견 표현’을 구분할 것입니까?
검찰입니까? 법원입니까?
만약 한 의원이 “재벌 총수가 탈세 의혹이 있다”고 말했는데, 증거가 불충분하다면, 그는 즉시 형사 기소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표현의 자유가 사법권에 의해 억압될 위험에 대해 어떻게 대비하시겠습니까?

<답변>
찬성 측 1번:
우리는 모든 발언을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지 않습니다.
형법상 명예훼손은 “공익 목적 없이 허위 사실을 적시”할 때 성립합니다.
즉, 공익적 목적과 진실성 노력이 있으면 처벌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처럼 무조건 면책되면, 진실을 말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게 됩니다.


<질문>
반대 측 3번: 찬성 측 2번 발언자님께 묻겠습니다.
귀측은 “면책특권이 없어도 행정부 탄압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러나 2020년, 한 지방의원이 시장의 비리를 고발했다가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되어 구속된 사례가 있습니다.
국회의원이라도 면책특권이 없다면, 더 강력한 권력인 검찰과 행정부에 의해 언제든 침묵당할 수 있지 않습니까?

<답변>
찬성 측 2번:
지방의원은 면책특권이 없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국회의원은 국회라는 제도적 보호 공간 안에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형사처벌 가능성 자체가 악의적 발언을 억제하지만, 진실된 고발은 여전히 보호받을 수 있도록 법적 기준을 정밀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모든 위험이 있으니 특권을 유지하자”는 건, 과잉 방어입니다.


<질문>
반대 측 3번: 찬성 측 4번 발언자님께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귀측은 “책임 있는 발언이 소수자 보호의 출발점”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역설적으로 묻겠습니다—
만약 내일부터 면책특권이 사라진다면, 누가 인구 0.1%의 트랜스젠더를 위해 국회에서 발언하겠습니까?
누가 다수의 반감을 무릅쓰고 “이주민 인권 보장이 필요하다”고 말하겠습니까?
침묵하는 다수가 되는 순간, 소수자는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집니다.
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폐지를 주장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변>
찬성 측 4번:
우리는 책임 없는 발언이 소수자를 보호한다고 믿지 않습니다.
혐오 발언이 면책되면, 소수자는 더 큰 위험에 노출됩니다.
진정한 보호는 말의 무게를 알고, 사실에 기반해 발언하는 의원들에게서 나옵니다.
면책특권이 없어져도, 공익을 위한 진실된 발언은 여전히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특권이 아니라, 책임 있는 용기를 원합니다.


반대 측 질의 요약

찬성 측은 “법적 기준을 정밀하게 설계하면 된다”고 답했지만, 현실의 사법 시스템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정치적 동기가 개입된 기소는 언제든 가능하며, 그 결과는 침묵하는 국회입니다.
또한, “책임 있는 용기”라는 말은 아름답지만, 무기 없는 전쟁터에서 용기를 요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면책특권은 완벽하지 않지만, 민주주의가 숨 쉴 수 있는 마지막 공간입니다.
그 공간을 없애는 순간, 우리는 모두—특히 소수자—숨을 수 없게 됩니다.

자유 토론

찬성 측 3번:
반대 측은 “면책특권이 없으면 대통령 비리를 고발 못 한다”고 하셨죠? 그런데 묻겠습니다.
지난 10년간 면책특권 덕분에 고발된 대통령 비리는 몇 건입니까?
오히려 면책특권을 악용해 ‘검찰이 내 편’이라고 외친 의원들이 더 많지 않았나요?
산소마스크라더니, 지금은 혐오 가스를 뿜는 마스크 아닙니까?

반대 측 3번:
좋습니다. 그럼 찬성 측에게 묻겠습니다.
만약 내일부터 국회의원이 “재벌 O 회장이 세금을 탈루했다”고 말하면,
검찰이 즉시 출두 요구하고, 언론은 ‘허위사실 유포’라며 몰아붙이고,
법원은 기소유예 대신 구속영장을 발부한다면—
누가 다음에 그런 말을 하겠습니까?
침묵은 가장 위험한 동의입니다.

찬성 측 4번:
그러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형사처벌만 자동 면제하는 게 문제라고 말하는 겁니다.
민사소송은 가능하고, 증거가 있으면 기소도 가능하게 하자는 거죠.
“말했으니 무조건 무죄”가 아니라, “말했으니 책임도 져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자는 겁니다.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특권이죠.

반대 측 4번:
흥미롭군요. 그러면 찬성 측은 ‘책임 있는 발언’의 기준을 누가 정합니까?
검찰입니까? 법원입니까? 아니면 SNS 여론입니까?
한 번의 발언으로 수사가 시작되고, 재판이 열리고, 정치 생명이 끝나는 구조—
그게 과연 다수의 눈치 안 보고 소수를 대변할 수 있는 환경입니까?
우리는 완벽한 사람을 원하는 게 아니라, 완벽하지 않아도 말할 수 있는 제도를 지키려는 겁니다.

찬성 측 1번:
반대 측은 늘 “이상적인 국회”를 상상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떻습니까?
지난해 한 의원이 “이주민 여성은 성매매업자”라고 했을 때,
국민은 분노했고, 피해자는 극단적 선택을 고려했고,
그런데 그 의원은? “국회 발언이라 아무 일 없음”이었습니다.
이게 민주주의입니까? 아니면 특권층의 독무대입니까?

반대 측 1번:
그 사례는 분명 잘못됐습니다. 하지만 그걸 해결하려고 전체 제도를 없애는 건 마치 감기 걸린 아이에게 폐를 떼는 격입니다.
우리는 그 의원을 윤리위에서 징계했고, 언론은 비판했고, 유권자는 기억했습니다.
제도를 폐지하면, 진짜 용기 있는 발언조차 사라질 겁니다.
혐오 발언은 문화로 고쳐야지, 제도로 막으면 오히려 숨어버립니다.

찬성 측 2번:
문화를 고친다는 말, 참 듣기 좋습니다.
근데 30년째 같은 말만 반복하면서 문화는 언제 좋아졌습니까?
면책특권이 있으니, 교육도, 윤리도, 여론도 힘을 못 쓰는 겁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처벌 안 되잖아”라는 생각이 뿌리내렸기 때문이죠.
책임의 가능성 없이는, 도덕도 공허한 메아리일 뿐입니다.

반대 측 2번:
그렇다면 찬성 측은 형사처벌이라는 칼을 누구 손에 쥐여 주려는 겁니까?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 한 진보 의원이 대통령을 비판하자 검찰이 바로 기소했습니다.
면책특권이 없었다면 그 의원은 벌써 구속됐을 겁니다.
우리는 권력의 남용을 막기 위해 특권을 준 게 아니라, 자유를 지키기 위해 보호막을 만든 것입니다.
지금 폐지하면, 다음 타깃은 당신이 응원하는 야당 의원이 될지도 모릅니다.

최종 발언

찬성 측 최종 발언

존경하는 심사위원 여러분, 그리고 이 토론을 지켜봐 주신 모든 한국인 여러분.

오늘 우리는 단순한 제도 개혁을 논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누구를 위한 민주주의인가’ 라는 근본 질문 앞에 섰습니다.

반대 측은 면책특권을 “산소마스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산소마스크를 쓴 이들이 내뿜는 건 산소가 아니라,
혐오와 거짓, 그리고 무책임의 독가스였습니다.
그 가스를 마신 이주민, 여성, 청년, 소상공인—그들은 누가 보호해 줍니까?

우리가 폐지하려는 건 ‘자유’가 아닙니다.
형사처벌 면제라는 절대적 방패입니다.
민사소송은 가능하고, 윤리위 징계도 있고, 선거로도 심판받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 한 말은 처벌되지 않는다”는 특권 하나만으로
사람들의 삶이 무너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반대 측은 “문화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묻겠습니다—
제도가 악용을 허용하는 동안, 어떻게 문화가 먼저 바뀔 수 있겠습니까?
불을 끄지 않고, 연기를 참으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한국인은 특권을 원하지 않습니다.
책임 있는 자유를 원합니다.
말할 권리를 누릴 자격은, 그 말이 누군가를 해치지 않겠다는 책임 위에 서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민주주의는 이상이 아니라 실천입니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과연 이 땅의 민주주의는
특권층을 위한 방탄조끼 위에 세워질 것인가,
아니면 모든 시민의 존엄 위에 세워질 것인가.

우리는 확신합니다.
면책특권을 폐지하는 날, 진정한 민주주의가 시작됩니다.


반대 측 최종 발언

존경하는 심사위원 여러분, 그리고 이 중요한 토론에 귀 기울여 주신 모든 한국인 여러분.

찬성 측은 “책임 없는 자유는 특권”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보호 없는 자유는 침묵”입니다.

오늘날 국회에서 가장 위험한 건 혐오 발언이 아닙니다.
혐오 발언은 여론과 윤리위, 민사소송으로 충분히 제어됩니다.
진짜 위험은—
대통령의 비리를 고발하려다 기소될까 봐 입을 다무는 순간입니다.
재벌의 불법을 폭로하려다 구속될까 봐 머뭇거리는 순간입니다.
소수자의 고통을 대변하려다 ‘명예훼손’ 딱지를 맞을까 봐 물러서는 순간입니다.

그 순간, 민주주의는 숨을 멈춥니다.

찬성 측은 “현실을 직시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보지 못한 현실이 있습니다.
검찰 권력은 여전히 강력하고,
행정부는 언제든 불편한 목소리를 잠재울 수 있으며,
이해관계 집단은 사법 시스템을 무기로 삼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면책특권은 완벽한 제도가 아닙니다.
하지만 인간이 완벽하지 않기에,
완벽하지 않아도 말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국회입니다.

헌법이 이 제도를 명시한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국회의원 개인의 특권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진실을 들을 권리를 위한 장치입니다.

한국인은 용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용기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용기를 뒷받침하는 제도가 있어야 진짜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단호히 말합니다.
면책특권을 폐지하는 것은
불을 끄기 위해 산소마스크를 빼앗는 것과 같습니다.
그 결과는 화재 진압이 아니라,
모두의 질식입니다.

침묵하는 국회는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이 제도를 지키는 것은 특권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 모두의 자유를 지키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