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복무를 여성에게도 의무화해야 하는가?
군 복무를 여성에게도 의무화해야 하는가?
# 개회 발언
찬성 측 개회 발언
존경하는 심사위원 여러분, 상대 팀, 그리고 청중 여러분.
오늘 우리는 단지 ‘군 복무’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공정한 책임’과 ‘진정한 평등’ 이 무엇인지 묻고 있습니다.
우리 팀은 명확히 선언합니다.
“여성에게도 군 복무를 의무화해야 한다.”
왜냐하면 국가는 모든 국민이 함께 지키는 공동체이며, 그 책임은 성별에 의해 나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첫째, 헌법적 평등 원칙과 책임의 일관성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39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국방의 의무를 진다”고 규정합니다. 그런데 이 조항이 남성에게만 적용되는 현실은, 헌법 정신 자체를 왜곡합니다. 평등은 권리만이 아니라 의무의 공유 속에서 완성됩니다. 여성에게 투표권과 교육권이 보장된 것처럼, 국방의 책임도 동등하게 부여되어야 진정한 시민권이 실현됩니다.
둘째, 국가 안보의 현실 변화입니다.
현대 전쟁은 더 이상 ‘근육’이 아니라 ‘두뇌’와 ‘기술’로 승부납니다. 사이버전, 정보전, 의료지원, 통신운영—이 모든 분야에서 여성의 역량은 이미 검증되었습니다. 미국, 이스라엘, 북한조차 여성의 군 복무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만이 여전히 ‘남성=병력’이라는 20세기 사고에 갇혀 있다면, 국가 생존 전략 자체가 후퇴합니다.
셋째, 사회 통합과 세대 간 형평성입니다.
현재 남성은 병역으로 인해 취업·학업·결혼에서 구조적 불이익을 겪습니다. 반면 여성은 그런 부담 없이 경쟁을 시작합니다. 이는 ‘기회의 평등’이 아니라 출발선의 불공정입니다. 여성도 같은 책임을 지게 될 때, 비로소 남녀 간 신뢰와 연대가 회복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의무화 = 강압”이 아니라 선택의 평등화라고 봅니다.
현재 여성은 ‘원하면 복무할 수 있지만, 안 해도 된다’는 특권적 위치에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평등은 ‘같이 할 수도 있고, 같이 안 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해야 하는’ 책임의 동등함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단지 제도 변경이 아닙니다.
공정한 공동체, 책임 있는 민주주의, 그리고 성별을 넘는 시민의식을 위한 첫걸음입니다.
반대 측 개회 발언
존경하는 심사위원님들, 상대 팀, 그리고 모든 분들께 묻겠습니다.
“평등이란,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우하는 것인가, 아니면 각자의 차이를 존중하며 공정하게 대우하는 것인가?”
우리 팀은 단호히 주장합니다.
“여성에게 군 복무를 의무화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진정한 평등은 강제가 아닌 자율, 동일이 아니라 적절함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첫째, 생물학적·사회적 차이를 무시한 형식적 평등은 오히려 불공정을 낳습니다.
군 복무는 단순한 직업이 아닙니다. 폐쇄적이고 계급적 환경 속에서 신체적·정신적 극한 상황을 견뎌내야 합니다. 특히 성폭력, 괴롭힘, 성차별이 여전히 만연한 군 문화 속에서, 여성에게 이를 ‘의무’로 강제하는 것은 보호받아야 할 약자를 위험에 노출시키는 행위입니다. 평등은 누군가를 더 위험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둘째, 의무화는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자기결정권을 침해합니다.
국민은 국가에 대한 책임을 지지만, 그 방식은 다양해야 합니다. 현재 여성은 자원입대를 통해 충분히 국방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2023년 기준, 여성 장교와 부사관 비율은 꾸준히 증가 중이며, 특수전·의무·정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의무화’가 아니라 ‘기회 확대’가 진정한 해법입니다.
셋째, 대체복무제도가 없는 상태에서의 의무화는 부당한 차별을 고착화합니다.
남성에게조차 양심적 병역거부자나 대체복무 옵션이 제한적인데, 여성에게까지 현역 복무를 강제한다면, 이는 이중적 강압 구조를 만들 뿐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병역제도 전체를 개혁해, 성별을 떠나 개인의 신념·신체조건·직업적 적합성에 따라 다양한 복무 형태를 허용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국가의 힘은 동원력이 아니라 포용력에서 나옵니다.
모든 국민이 각자의 방식으로 국가에 기여할 수 있을 때, 그 공동체는 진정 강해집니다. 여성에게 군복을 강요하는 대신, 그들이 정치·경제·과학·문화 모든 영역에서 국가를 이끄는 주체가 되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 더 지속 가능한 국방입니다.
우리는 오늘, 강제의 평등이 아닌 존중의 다양성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이고, 미래 세대를 위한 책임 있는 결정입니다.
# 개회 발언 반박
찬성 측 두 번째 발언자 반박
존경하는 심사위원 여러분, 방금 반대 측 첫 번째 발언인은 매우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하지만 감동은 논리가 아니며, 배려는 책임을 면제해주는 면죄부가 될 수 없습니다.
반대 측은 “생물학적·사회적 차이를 존중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여성은 약하다’는 19세기식 편견을 포장한 것에 불과합니다.
오늘날 군대는 더 이상 참호 속에서 총을 든 육탄 돌격이 아닙니다.
드론을 조종하고, 사이버 공격을 탐지하고, 전장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 필요한 건 근육이 아니라 두뇌와 집중력, 그리고 훈련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여성도 전투병으로 복무하며 국가를 지킵니다.
북한조차 여성 병사를 전방에 배치합니다.
우리만이 “보호”라는 이름으로 여성의 능력을 미리 한계 짓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반대 측은 “의무화는 자기결정권 침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남성에게 병역을 강제하는 것은 자기결정권 침해가 아닌가요?
아니면 남성은 원래 국가를 위해 희생돼야 하는 존재인가요?
병역은 권리가 아니라 시민으로서의 기본 의무입니다.
여성에게만 그 의무를 면제해주는 것은 ‘배려’가 아니라 특권이며,
그 특권은 남성에게 구조적 불이익을 강요하는 불공정의 근원입니다.
마지막으로, 반대 측은 “군 내 성폭력이 심각하므로 여성은 보호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학교에 괴롭힘이 있으니 여학생은 등교하지 말라”는 주장과 다를 바 없습니다.
문제는 여성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군 문화를 바꾸는 것입니다.
오히려 여성의 의무 복무가 확대될수록, 군 내 성차별과 폭력은 더 이상 묵인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책임을 함께 지는 자만이 제도를 바꿀 권리를 얻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평등은, 누군가를 보호하거나 배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서고, 함께 책임지고, 함께 개혁하는 동등한 시민으로서의 평등입니다.
반대 측 두 번째 발언자 반박
찬성 측은 “헌법적 평등”, “국가 안보 변화”, “출발선의 공정”이라는 화려한 수사로 우리를 설득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논리는 현실을 외면한 이상주의이며, 형식적 평등을 정의로 착각한 오류입니다.
첫째, 찬성 측은 헌법 제39조를 인용하며 “모든 국민은 국방 의무를 진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헌법은 바로 그 뒤에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라고 명시합니다.
이는 국가가 현실적 조건—신체적 차이, 사회적 맥락, 안전 문제—를 고려해 합리적인 차별을 할 수 있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장애인이나 중증 질환자는 병역에서 면제됩니다.
이것이 차별인가요? 아닙니다. 이것이 공정입니다.
둘째, 찬성 측은 “현대 전쟁은 두뇌 게임”이라며 여성의 역량을 강조했습니다.
맞습니다. 일부 여성은 정보통신, 의료, 사이버 분야에서 탁월합니다.
하지만 ‘일부’가 ‘전체’를 대표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여성에게 의무 복무를 강제한다는 것은,
운동선수도 아닌 일반 여성들이 전투 훈련과 야전 생활을 감내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군 병력의 전반적 효율 저하, 훈련 체계의 붕괴, 그리고 무엇보다 여성 당사자들의 고통입니다.
셋째, 찬성 측은 “남성이 불이익을 받으니 여성도 똑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이건 마치 “너도 나처럼 다리를 부러뜨리자”는 악의적 평준화입니다.
남성의 병역 부담은 분명한 사회 문제입니다.
하지만 해법은 여성에게까지 그 고통을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대체복무제 도입, 병역 기간 단축, 사회적 보상 강화 같은 제도 개혁에 있습니다.
고통을 나누는 것이 평등이 아니라, 고통을 줄이는 것이 진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찬성 측은 “의무화가 군 문화 개혁의 동력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현재 군 내 성폭력 사건의 대부분은 권력 구조와 폐쇄성에서 비롯됩니다.
여성을 소수로 끌어들인다고 그 구조가 자동으로 무너질까요?
오히려 피해자가 더 고립되고 신고가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큽니다.
진정한 개혁은 강제 동원이 아니라, 문화적 민감성 교육과 제도적 감시 체계 강화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오늘,
형식적 평등의 덫이 아니라,
실질적 정의의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 길은 강제가 아니라, 존중에서 시작됩니다.
# 질의응답
찬성 측 세 번째 발언자 질의
▶ 질문 1: 반대 측 1번 발언자
찬성 측 3번:
“여성은 보호받아야 할 약자”라며 군 복무 의무화를 반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여성에게 투표권, 교육권, 직장 진출권은 보장하면서도, 왜 유독 국방의 책임만 ‘보호’라는 이름으로 배제하시는 건가요?”
이는 권리만 요구하고 의무는 거부하는 이중 잣대가 아닌지요?반대 측 1번:
보호는 배제가 아니라 조건부 참여를 의미합니다. 투표나 교육은 개인의 선택과 안전이 보장된 환경에서 이뤄집니다. 그러나 군대는 폐쇄적이고 위험한 구조 속에서 강제 동거와 계급적 복종이 요구됩니다. 우리는 여성이 군에 들어오지 말라고 한 적 없습니다. 다만, 의무화는 위험을 강제하는 것이며, 그것은 보호가 아니라 폭력입니다.
▶ 질문 2: 반대 측 2번 발언자
찬성 측 3번:
“남성의 병역 고통을 여성에게 확장하는 것은 악의적 평준화”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남성에게만 병역을 강제하는 현재 제도는, 성별에 근거한 합리적 차별이 아니라, 구조적 차별이 아닌가요?”
왜 같은 시민인데, 남성만이 국가를 위해 18개월 이상의 인생을 ‘희생’해야 합니까?반대 측 2번:
남성의 병역 부담은 분명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 해법은 여성에게까지 고통을 퍼뜨리는 것이 아니라, 병역제도 자체를 개혁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대체복무제 도입, 복무 기간 단축, 사회적 보상 확대 등이 있습니다. 고통을 나누는 게 평등이 아니라, 고통을 줄이는 게 정의입니다.
▶ 질문 3: 반대 측 4번 발언자
찬성 측 3번:
“기회 확대가 해법”이라며 자원입대를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2023년 기준, 여성 장교 비율은 고작 6.7%에 불과합니다.
“자원입대만으로는 여성의 국방 기여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귀측은 남성의 구조적 불이익을 해소하기 위한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실 수 있습니까?”반대 측 4번:
물론입니다.
첫째, 양성 모두를 대상으로 한 선택적 병역제도를 도입해야 합니다.
둘째, 국민참여복무제를 신설해, 군 복무 외에도 사회복지, 재난구호, 사이버 방호 등 다양한 형태로 국가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셋째, 군 내 성인지 감수성 교육과 독립적 감찰 기구를 강화해, 여성 자원입대자의 안전을 보장해야 합니다.
강제가 아니라 신뢰와 선택이 기반인 제도가 필요합니다.
✅ 찬성 측 3번 요약:
반대 측의 답변을 종합하면, 그들은 “여성은 위험한 환경에서 보호받아야 하며, 남성의 고통은 제도 개혁으로 해결해야 한다” 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는 모순입니다.
왜냐하면 제도 개혁은 바로 지금, 여성도 함께 책임을 지는 가운데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선택적 병역”이라는 대안은, 결국 현재의 남성 특수 의무를 영구화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책임의 공유, 그 위에서만 진정한 개혁이 시작됩니다.
반대 측 세 번째 발언자 질의
▶ 질문 1: 찬성 측 1번 발언자
반대 측 3번:
헌법 제39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국방 의무를 진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헌법이 허용하는 ‘합리적 차별’을 무시하고, 모든 여성을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은 오히려 헌법 정신에 위배되는 것 아닙니까?”찬성 측 1번:
헌법의 “합리적 차별”은 차별을 정당화하는 면죄부가 아닙니다. 장애인 면제는 신체적 불가능성에 기초하지만, 여성 전체를 “불가능하다”고 간주하는 것은 편견에 기초한 차별입니다. 오늘날 군의 70% 이상이 비전투 업무입니다. 이 모든 자리에 여성들이 참여할 수 없다는 주장은, 현실을 외면한 추정입니다.
▶ 질문 2: 찬성 측 2번 발언자
반대 측 3번:
“이스라엘과 북한도 여성 병사를 운용한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징병제 국가 중 유일하게 여성에게도 전투 복무를 강제하며, 북한은 인권 침해 국가입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우리가 따라가야 할 모델이 정말 이스라엘이나 북한입니까? 아니면 스웨덴처럼 ‘자원 중심’으로 운영하는 나라가 더 적절하지 않을까요?”찬성 측 2번:
스웨덴도 2017년부터 여성에게도 징병을 의무화했습니다. 핀란드, 노르웨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결코 북한이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복지국가들입니다. 즉, 진정한 평등을 실현한 국가일수록, 책임의 공유를 선택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 질문 3: 찬성 측 4번 발언자
반대 측 3번:
“여성의 의무 복무가 군 문화 개혁의 동력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셨습니다.
하지만 2022년 국방부 조사에 따르면, 군 내 성폭력 피해자의 78%가 신고를 포기했습니다.
“소수의 여성들을 위험한 환경에 강제로 투입하는 것이, 과연 문화 개혁의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보십니까?”찬성 측 4번:
문제는 여성을 넣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넣고도 바꾸지 않느냐입니다. 미국도 1970년대엔 여성 군인 비율이 2% 미만이었지만, 오늘날은 20% 이상이며, 성폭력 사건에 대한 독립적 조사 기구도 운영합니다. 변화는 참여 없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책임을 지는 자만이 제도를 바꿀 정당성과 권한을 얻습니다.
✅ 반대 측 3번 요약:
찬성 측은 “북유럽도 여성 징병제를 도입했다”, “참여가 개혁의 전제”라고 답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는 일부 사례를 일반화한 오류입니다. 스웨덴의 여성 징병제는 실제 복무 비율이 1% 미만이며, 대부분 자원입니다. 더욱이, 위험한 환경을 개선하지 않은 채 사람을 밀어 넣는 것은 개혁이 아니라 방치입니다. 우리는 제도의 안전망을 먼저 마련한 후, 자율적 참여를 확대해야 합니다. 강제는 결코 평등의 지름길이 될 수 없습니다.
# 자유 토론
찬성 측 3번 발언자:
“보호받아야 할 존재”라니요? 그 말, 들으면서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19세기 영국에서는 여성이 법정에 서는 것도 금지됐습니다. 왜요? “감정이 약해서”라더군요.
오늘날 우리가 듣는 “군대는 위험하니까 여성은 안 돼”라는 말, 그 논리와 얼마나 닮았습니까?
이스라엘 여성들은 18세부터 자동소총을 메고 국경을 지킵니다. 스웨덴은 2017년부터 남녀 모두를 징병합니다.
그 나라 여성들이 우리보다 더 강해서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여성도 시민으로서 책임을 질 권리가 있다고 믿었을 뿐입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건 여성의 취약함이 아니라,
‘보호’라는 이름으로 여성의 능력을 미리 포기하는 우리의 편견입니다.반대 측 3번 발언자:
상대 팀은 이스라엘 이야기를 하셨지만, 거기엔 중요한 전제가 빠졌습니다.
이스라엘은 전시 국가입니다. 매일 로켓이 떨어지는 곳에서 생존을 위한 동원은 이해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평화 시대에 살고 있고,
군 복무는 점점 더 사회적 부담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성도 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건,
마치 교실에서 한 아이가 숙제를 못 했다고 해서
다른 아이들에게까지 숙제를 더 주는 것과 같습니다.
진짜 해결책은 숙제 자체를 바꾸는 것,
즉 병역제도를 개인의 신념과 조건에 맞게 다변화하는 것입니다.
고통을 나누는 게 정의가 아니라, 고통을 줄이는 게 진보입니다.찬성 측 4번 발언자:
재미있는 비유셨지만, 한 가지 오해가 있습니다.
현재 여성에게 주어진 건 “숙제 면제”가 아니라 “숙제를 안 내준 것”입니다.
학교에 다니면서 시험도 안 보고, 과제도 안 내고,
그러면서 “나는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그건 자유가 아니라 배제입니다.
우리가 요구하는 건 단지,
여성도 시민으로서 국가와의 계약에 동등하게 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계약 위에서,
군 문화의 폐쇄성, 성폭력, 계급 괴리를 함께 바꿔갈 힘을 얻는 겁니다.
책임 없이 권리를, 권리 없이 책임을 요구하는 사회는
결코 공정할 수 없습니다.반대 측 4번 발언자:
상대 팀은 “계약”이라는 말을 쓰셨지만,
국가와 국민 사이의 계약은 강제가 아니라 신뢰 위에 서야 합니다.
지금 군대는 어떤가요?
성폭력 사건이 터질 때마다 “내부 조사”로 덮고,
피해자는 오히려 전출되거나 침묵을 강요받습니다.
이런 환경에 여성들을 의무적으로 집어넣는 건,
계약이 아니라 포기입니다.
국가가 먼저 해야 할 일은,
모든 사람이 안전하게 복무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게 되기 전에 “의무화”를 외치는 건,
개혁을 가장한 방치일 뿐입니다.
우리는 여성에게 군복을 입히기 전에,
국가가 국민을 지킬 준비가 되어 있는지부터 물어야 합니다.
# 최종 발언
찬성 측 최종 발언
존경하는 심사위원 여러분, 오늘 우리는 단지 제도를 바꾸자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한국인 모두가 동등한 시민으로서 함께 서는 미래를 그립니다.
처음부터 우리는 세 가지를 분명히 했습니다.
첫째, 헌법이 말하는 ‘국방의 의무’는 성별을 모르며,
둘째, 현대 군대는 근육이 아니라 두뇌와 책임감으로 움직이며,
셋째, 남성만의 희생 위에 세워진 ‘평등’은 거짓입니다.
반대 측은 “보호”를 말했습니다.
하지만 보호란 누군가를 밖에서 망설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안으로 들여 함께 바꾸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여성 병사들이 전투복을 입고 조국을 지킬 때,
그들은 “보호받는 존재”가 아니라 책임지는 시민이었습니다.
우리 여성들도 그렇게 될 권리가 있습니다.
또 반대 측은 “군 문화가 위험하다”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위험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여성의 의무 복무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변화는 관찰자가 아니라 참여자에게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외부에서 “개선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보다,
내부에서 “같이 바꾸자”고 말하는 것이 훨씬 강력합니다.
오늘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특권도, 강압도 아닙니다.
‘같이 할 권리’, ‘같이 책임질 자격’, 그리고
‘같이 나라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입니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우리 딸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줄 것입니까?
“너는 약하니까 지켜만 받아라”라고 할 것입니까?
아니면 “너도 이 나라의 주인이다. 함께 지켜라”라고 할 것입니까?
우리는 후자를 선택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평등이고, 진정한 민주주의이며,
한국인이 함께 나아갈 길입니다.
반대 측 최종 발언
존경하는 심사위원님들, 오늘의 논쟁은 결국 이렇게 요약됩니다.
“평등이란, 모두를 똑같이 만드는 것인가,
아니면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존엄하게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가?”
우리는 분명히 답했습니다.
진정한 평등은 강제가 아니라 존중에서 나옵니다.
찬성 측은 “의무화 = 평등”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마치 “모든 사람이 수영장에 뛰어들어야 평등하다”는 주장과 같습니다.
누군가는 준비되지 않았고, 누군가는 물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때 필요한 건 구명조끼와 트레이너,
곧 제도적 안전망입니다.
현재 우리 군대는 그런 안전망이 없습니다.
성폭력 사건은 은폐되고, 신고는 보복으로 돌아오며,
여성 병사는 ‘예외’로 취급됩니다.
이런 환경에 모든 여성에게 ‘의무’를 강요하는 것은
개혁이 아니라 방치입니다.
또 찬성 측은 “남성이 희생하니 여성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불의를 확산시키는 것이 정의일 수 없습니다.
남성의 고통은 병역제도 전체의 개혁으로 해결해야지,
여성에게까지 그 고통을 전염시키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진보는 고통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없애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성의 역량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역량이 자율적으로, 안전하게, 존중받으며
발휘되기를 원합니다.
자원입대는 이미 증가하고 있고,
특수 분야에서 여성은 이미 국가의 핵심 자산입니다.
그 길을 넓히는 것이, 강제로 좁은 문을 밀어넣는 것보다
훨씬 더 지혜롭고 인간적인 선택입니다.
마지막으로, 국가란 무엇입니까?
국가는 국민을 강제로 동원하는 기계가 아니라,
신뢰와 포용으로 하나 되는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오늘 선택해야 할 것은
형식적 평등의 덫이 아니라,
실질적 정의의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확신합니다.
여성에게 군 복무를 의무화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한국인은
강제보다 신뢰를,
동일보다 다양성을,
형식보다 실질을
선택할 줄 아는 민주 시민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