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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를 전면 폐지하고 임신 중단을 완전히 자유화해야 하는가?

개회 발언

찬성 측 개회 발언

존경하는 심사위원 여러분, 오늘 우리 팀은 “낙태죄를 전면 폐지하고 임신 중단을 완전히 자유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확고히 지지합니다. 왜냐하면 이 문제의 핵심은 ‘누가 여성의 몸을 결정할 권한을 가지는가’이기 때문입니다.

첫째, 여성은 자신의 신체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가져야 합니다. 임신은 단순한 생물학적 현상이 아니라, 삶 전체를 뒤흔드는 중대한 선택입니다. 국가가 형벌로 이를 억압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근본 원칙인 자기결정권과 인간 존엄성에 위배됩니다.

둘째, 낙태를 범죄화하면 오히려 더 많은 여성들이 위험한 불법 시술에 내몰립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낙태의 안전성은 합법성과 직접 비례한다”고 밝혔습니다. 형벌보다는 의료적·사회적 지원이 생명을 지킵니다.

셋째, 낙태죄는 성평등을 가로막는 구조적 장벽입니다. 남성은 책임 없이 자유를 누리지만, 여성만 처벌받는 이 이중 잣대는 이제 끝내야 합니다. 법적 책임은 오직 여성에게만 있고, 생물학적 결과는 여성의 몸에만 맺히는데, 이것이 공정한가요?

넷째, 전 세계 60개국 이상이 낙태를 비범죄화했고, 프랑스·캐나다·뉴질랜드는 완전 자유화를 실현했습니다. 한국도 이제 인권 선진국답게, 여성이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해야 합니다.

꿈을 전당포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설계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자유이고, 진보입니다.

반대 측 개회 발언

심사위원 여러분, 저희 팀은 “낙태죄를 전면 폐지하고 임신 중단을 완전히 자유화해서는 안 된다”고 단호히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생명은 존엄하며, 그 시작을 법이 보호하지 않으면 사회의 도덕적 기초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첫째, 태아는 단순한 ‘세포 덩어리’가 아닙니다. 과학은 임신 6주 차부터 심장 박동이 감지되고, 8주 차에는 뇌파 활동과 통증 반응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생명의 시작을 오직 ‘출생’으로 한정하는 것은 인위적이고 비윤리적입니다.

둘째, ‘완전 자유화’는 책임 없는 선택을 정당화합니다. 임신은 두 사람의 행위에서 비롯되지만, 결과는 오직 여성에게만 전가되는 구조를 방치하면서, ‘자유’만 강조하는 것은 위선입니다.

셋째, 우리가 나아갈 방향은 낙태 합법화가 아니라, 임신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주거, 육아, 고용, 의료 지원을 확충하면, 대부분의 여성은 아이를 키우겠다고 선택합니다.

넷째, 무제한 자유화는 오히려 약자를 위협합니다. 경제적 압박 속에서 ‘자발적’ 낙태를 강요받는 여성들이 늘어날 것이며, 유전자 검사를 통한 장애 아동의 선별적 낙태도 증가할 수 있습니다. 이는 새로운 형태의 차별입니다.

낙태는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한 생명의 소멸입니다. 우리는 그 무게를 직시해야 합니다. 법은 약자의 마지막 울타리여야 하며, 태아도 그 울타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개회 발언 반박

찬성 측 두 번째 발언자 반박

존경하는 심사위원 여러분, 방금 반대 측은 “태아는 생명이며, 그 존엄성을 법이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세 가지 치명적인 오류를 내포합니다.

첫째, 과학적 사실을 윤리적 결론으로 도약시키는 오류입니다. 임신 6주에 심장 박동이 감지된다는 것은 의학적 사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인격’이나 ‘법적 권리 주체’임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IVF 시술에서 냉동 보관 중 폐기되는 수많은 수정란은 모두 살인죄로 처벌되어야 할까요? 반대 측은 생명의 시작을 어디까지 확장하실 건가요?

둘째, 책임의 분배를 외면한 이중 잣대입니다. “임신은 두 사람의 행위”라고 하셨지만, 정작 낙태죄는 오직 여성만을 처벌합니다. 남성은 책임을 회피해도 아무런 법적 제재를 받지 않죠. 이는 성평등이 아니라, 국가가 여성의 몸을 통제하는 수단일 뿐입니다. 진정한 책임 공유라면, 남성에게도 양육비 이행 강제, 출산 동의 의무 등을 요구해야 하지 않을까요?

셋째, ‘지원 확충’을 명분으로 선택권을 박탈하려는 모순입니다. 반대 측은 “임신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자”고 하셨습니다. 저희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 전제는 ‘포기할 수도 있다’는 선택권이 있어야 합니다. 선택권 없이 ‘낳아야 한다’는 압박만 가한다면, 그것은 지원이 아니라 강제입니다. 프랑스는 낙태를 자유화하면서도 출산 장려 정책을 병행합니다. 자유와 지원은 상호 배타적이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경제적 압박 속에서 낙태를 강요받는다”는 주장은 현실을 정반대로 보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낙태죄 때문에 돈 없는 여성들은 음성 시장에서 위험한 시술을 받고 있습니다. 2020년 한국여성민우회 조사에 따르면, 저소득층 여성의 68%가 불법 약물 낙태를 고려했다고 답했습니다. 진짜 약자를 위협하는 건 자유화가 아니라, 형벌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말합니다. 태아의 생명도 중요하지만, 이미 살아 숨 쉬는 여성의 생명과 존엄 또한 소중하다는 것을.


반대 측 두 번째 발언자 반박

감사합니다. 찬성 측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절대시하며 낙태를 개인의 자유로 규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논리는 세 가지 면에서 근본적 결함을 안고 있습니다.

첫째, 자기결정권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습니다. 제가 내 몸을 해칠 자유가 있다고 해서, 타인의 생명을 빼앗을 권리는 생기지 않습니다. 태아가 단순한 ‘조직’이라면, 왜 세계보건기구(WHO)는 낙태를 ‘임신 종결’이 아닌 ‘임신 중단’이라고 규정할까요? 왜 많은 산부인과 의사들이 “낙태는 슬픈 결정”이라고 말할까요? 그들은 생명의 무게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안전성’ 논리는 결과를 정당화하기 위한 위험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찬성 측은 “불법 낙태를 막기 위해 합법화하자”고 하셨지만, 이는 마치 “살인이 많으니 살인을 합법화하자”는 주장과 다를 바 없습니다. 문제의 해결은 범죄를 합법화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환경을 만드는 데 있습니다. 실제로 네덜란드는 낙태 합법화 이후에도 엄격한 상담·숙려 기간을 두어 연간 낙태율을 OECD 최저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찬성 측이 주장하는 ‘완전 자유화’에는 이런 제도적 안전장치가 전혀 없습니다.

셋째, 국제 사례를 맥락 없이 인용하셨습니다. 프랑스나 캐나다가 낙태를 허용했다고 해서, 그것이 ‘무제한 자유’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프랑스는 임신 14주까지 가능하지만, 반드시 두 차례의 상담과 1주일 숙려 기간을 요구합니다. 캐나다는 법적 제한이 없지만, 의료 시스템 내부에서 실질적 규제가 작동합니다. 그런데 찬성 측은 이를 무시한 채 “전면 폐지, 완전 자유화”만 외치고 계십니다. 이는 책임 있는 정책 논의가 아니라, 이상주의적 구호에 불과합니다.

더욱 우려스러운 건, 찬성 측 두 번째 발언자가 “남성 책임 회피”를 지적하면서도, 정작 왜 여성만이 임신 중단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만약 진정한 평등이라면, 남성도 출산 결정에 참여할 권리가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도 모든 권한을 여성에게만 부여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여성에게만 고통과 책임을 전가하는 구조를 고착화시킬 뿐입니다.

결론적으로, 낙태는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한 생명의 소멸을 수반하는 중차대한 결정입니다. 우리는 그 결정을 가볍게 ‘자유’로 포장해서는 안 됩니다. 법은 바로 그 무게를 기억하게 하는 마지막 보루여야 합니다.


질의응답

찬성 측 세 번째 발언자 질의

찬성 측 3번:
“반대 측 첫 번째 발언자님께 묻겠습니다. 귀측은 ‘태아는 생명이며 존엄하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렇다면, IVF 시술 중 냉동 보관되다 폐기되는 수십만 개의 수정란에 대해서도 생명권을 인정하시겠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왜 그 폐기에 대해 아무런 법적 책임을 묻지 않으시는지요?”

반대 측 1번:
“수정란과 태아는 발달 단계에서 본질적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임신이 진행됨에 따라 생명의 존엄성이 점차 강화된다고 봅니다. 따라서 수정 직후의 세포 덩어리와, 심장 박동이 시작된 태아를 동일시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부적절합니다.”

찬성 측 3번:
“감사합니다. 그러면 두 번째 발언자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귀측은 ‘임신은 두 사람의 행위’라며 남성의 책임을 언급하셨지만, 정작 낙태죄는 여성만 처벌합니다. 이 이중 잣대를 어떻게 정당화하시겠습니까? 진정한 책임 공유라면, 남성에게도 출산 동의권이나 양육 의무를 법적으로 강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반대 측 2번:
“낙태죄의 목적은 생명 보호에 있으며, 처벌 대상은 생명을 직접 중단하는 행위를 실행한 자입니다. 남성의 책임은 별개의 법 영역—예컨대 양육비 미이행 처벌—에서 다뤄져야 하며, 이를 낙태죄와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찬성 측 3번:
“마지막으로 네 번째 발언자님께 여쭙겠습니다. 귀측은 ‘지원 확충으로 낙태를 줄이자’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육아·주거·고용 지원 수준은 OECD 최하위권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낳아야 한다’는 압박만 가하는 것은, 가난한 여성에게 ‘선택권 없이 희생하라’는 강제가 아닐까요?”

반대 측 4번:
“우리는 ‘강제’가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지원이 부족하다면 더 확충해야지, 그 부족함을 이유로 생명을 쉽게 포기하도록 하는 것은 본말전도입니다.”

찬성 측 질의 요약

반대 측은 생명의 시작을 ‘점진적 존엄성’으로 설명했지만, 그 기준은 모호하고 일관되지 않습니다. 수정란은 생명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6주 태아는 생명이라 하시는 이중 기준은 과학보다는 도덕적 편의에 기댄 것입니다. 또한 남성 책임을 ‘별개 문제’로 치부하며 여성만을 형사처벌하는 현실을 정당화하셨는데, 이는 성평등이 아니라 국가의 신체 통제입니다. 마지막으로, 지원이 부족한 현실을 외면한 채 ‘낳아야 한다’는 메시지는, 가난한 여성에게 더욱 가혹한 강제가 될 뿐입니다. 결국 반대 측의 주장은 이상적 윤리에 갇혀, 현실 속 여성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반대 측 세 번째 발언자 질의

반대 측 3번:
“찬성 측 첫 번째 발언자님께 묻겠습니다. 귀측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절대적’이라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내 몸에 대한 권리가 타인의 생명권보다 우선할 수 있다는 뜻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이 원칙을 다른 영역—예컨대 안락사나 자해—에도 적용하실 건가요?”

찬성 측 1번:
“태아는 잠재적 생명이지, 법적 인격체가 아닙니다. 자기결정권은 ‘타인의 생명’이 아닌 ‘자신의 신체 내에서 발생하는 생물학적 과정’에 대한 통제권입니다. 안락사나 자해와는 법적·윤리적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반대 측 3번:
“두 번째 발언자님께 질문드립니다. 귀측은 ‘불법 낙태를 막기 위해 합법화하자’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완전 자유화’에는 숙려 기간, 상담 의무, 의료 감독 등 어떤 안전장치도 없습니다. 이는 오히려 경제적 압박 속에서 ‘자발적’ 낙태를 강요받는 여성들을 더 위험에 빠뜨리지 않겠습니까?”

찬성 측 2번:
“‘완전 자유화’는 국가의 형사처벌을 없애자는 것이지, 의료 시스템의 역할까지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프랑스처럼 자유화와 함께 상담·지원 체계를 병행할 수 있습니다. 형벌이 사라진다고 해서 지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 측 3번:
“마지막으로 네 번째 발언자님께 여쭙겠습니다. 귀측은 프랑스·캐나다를 사례로 들며 ‘국제 추세’를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나 프랑스는 14주 제한과 숙려 기간을 두고, 캐나다도 의료기관 내부에서 실질적 규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귀측은 ‘전면 폐지, 완전 자유화’만 외치시는데, 이는 국제 사례를 선택적으로 인용한 것이 아닐까요?”

찬성 측 4번:
“국제 사례는 방향성을 보여주는 것이지, 복사본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한국의 현실에 맞는 제도를 설계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핵심은 ‘형벌’을 없애고, ‘의료와 복지’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그 틀 안에서 숙려나 상담은 얼마든지 포함될 수 있죠.”

반대 측 질의 요약

찬성 측은 태아를 ‘잠재적 생명’이라며 법적 인격을 부정하셨지만, 그렇다면 생명 보호의 시작점을 어디에 두실 건가요? 이 기준이 없다면, 생명 존엄성은 언제든 편의에 따라 흔들릴 수 있습니다. 또한 ‘자유화와 지원 병행’이라는 말은 좋지만, 실제로 ‘완전 자유화’라는 구호 아래 제도적 안전장치를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국제 사례를 인용하면서도 그 핵심인 ‘규제와 자유의 균형’은 무시하셨습니다. 이는 책임 있는 정책 논의가 아니라, 이상주의적 슬로건에 머무른 것입니다. 결국 찬성 측은 ‘여성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한 생명의 소멸을 너무 가볍게 여기고 계십니다.


자유 토론

찬성 1번:
“태아가 생명이라면, 냉동 수정란은요? IVF 실패로 폐기되는 수천 개의 배아는 왜 처벌되지 않나요? 생명의 존엄을 말하면서도, 오직 ‘낙태’만 범죄화하는 이 이중 잣대는 과학이 아니라 이념입니다.”

반대 1번:
“수정란과 태아를 동일시하는 건 오히려 생명을 경시하는 태도죠. 임신 8주 차 태아는 손가락도 생기고, 통증을 느낄 수 있는 신경망도 형성됩니다. 그런데도 ‘세포 덩어리’라고 부르는 건, 편의에 따라 생명의 기준을 바꾸는 위험한 슬립퍼리 슬로프입니다.”

찬성 2번:
“슬립퍼리 슬로프라니요? 지금 이 순간에도 낙태죄 때문에 음성 약물 시술을 받는 10대 소녀들이 있습니다. 그 아이들 몸에선 이미 통증이 느껴지고 있는데, 법은 그 통증을 보호해주지 못하죠. 누굴 위한 슬로프인가요?”

반대 2번:
“그럼 왜 ‘완전 자유화’입니까? 프랑스는 14주까지 허용하지만, 반드시 두 번의 상담과 숙려 기간을 둡니다. 그런데 찬성 측은 그 어떤 안전장치도 거부하시면서, ‘자유’만 외치십니다. 이건 선택의 자유가 아니라, 고립된 여성에게 모든 짐을 지우는 방기입니다.”

찬성 3번:
“숙려 기간? 돈 없는 여성에겐 그 시간이 곧 불법 시술로 가는 시한폭탄입니다. ‘상담’이 필요한 게 아니라, ‘출산 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가 필요한 거죠. 그런데 반대 측은 지원은 안 주고, ‘낳아야 한다’는 족쇄만 채우시네요.”

반대 3번:
“그러면 묻겠습니다. 남성이 출산 결정에 참여할 권리는 없습니까? 만약 진정한 평등이라면, 왜 오직 여성만이 이 중차대한 결정을 혼자 해야 하나요? ‘자기결정권’이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여성에게만 고통과 책임을 전가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찬성 4번:
“재미있는 질문이네요. 남성이 책임을 져야 한다면, 왜 낙태죄는 여자만 처벌합니까? 남자는 아이를 만들고도 아무 책임 없이 사라져도 괜찮은데, 여자는 형사처벌을 받아야 한다고요? 그게 진짜 평등인가요, 아니면 국가의 몸 감시인가요?”

반대 4번:
“형벌은 마지막 수단입니다. 하지만 ‘모든 낙태를 자유롭게 하자’는 주장은, 태아의 존재 자체를 아예 논의 대상에서 제외하려는 태도입니다. 우리는 낙태를 막자는 게 아니라, 그 결정이 너무 쉽게, 너무 가볍게 이뤄지지 않도록 하자는 겁니다. 생명은 ‘선택지’가 아니라, ‘함께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최종 발언

찬성 측 최종 발언

심사위원 여러분, 오늘 우리는 단 하나의 질문을 던졌습니다.
“누가 여성의 몸을 결정할 권한을 가지는가?”

그 답은 명확합니다. 여성 자신입니다.

반대 측은 태아의 생명을 존중하자고 말합니다. 저희도 존중합니다. 하지만 그 존중이 ‘형벌’로 이루어져서는 안 됩니다. 형벌은 생명을 지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난한 여성들을 어두운 골목의 불법 시술소로 내몰 뿐입니다. 2020년, 한 16세 소녀가 약물 낙태 후 출혈로 쓰러졌을 때, 경찰은 그녀를 범죄자로 조사했습니다. 의사가 아니라, 검사가 왔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사회입니까?

반대 측은 “숙려 기간과 상담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낙태죄는 상담도, 숙려도, 지원도 없이 처벌만 있습니다. 프랑스는 낙태를 자유화했지만, 동시에 무료 상담, 심리 지원, 피임 교육을 제공합니다. 자유와 책임은 함께 갑니다. 그런데 한국은? 책임은 여성에게만, 처벌은 국가가, 자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반대 측은 “남성도 결정에 참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남성이 ‘낳지 마라’고 할 권리는 있는데, ‘낳아라’고 강요할 권리는 없는 것입니까?
출산은 여성의 신체에 일어나는 일이며, 그 결과를 평생 감당하는 것도 여성입니다. 진정한 평등은 남성이 책임을 다하는 것이지, 여성이 선택권을 빼앗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무제한 낙태’가 아닙니다.
‘형벌 없는 세상에서, 여성이 인간답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이미 전 세계 60개국 이상이 그 길을 걷고 있습니다.
한국도 이제, 여성의 고통을 범죄로 삼는 시대를 끝내야 합니다.
낙태죄 폐지는 인권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인권은 절대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반대 측 최종 발언

심사위원 여러분, 오늘의 논쟁은 단순히 ‘자유냐, 규제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회가 될 것인가’ 하는 근본적 질문입니다.

찬성 측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절대시합니다. 하지만 결정권에는 항상 책임이 따릅니다.
그런데 ‘완전 자유화’는 그 책임을 제도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방기합니다.
숙려 기간 없이, 상담 없이, 단 하루 만에 임신을 끊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충동적 소비처럼 생명을 취급하는 행위가 됩니다.

더욱 우려스러운 건, 찬성 측이 계속 ‘불법 낙태의 위험’만 강조하지만,
정작 왜 임신이 ‘피해야 할 재앙’으로 여겨지는지에 대한 성찰은 없다는 점입니다.
문제는 낙태죄가 아니라, 아이를 낳아도 괜찮은 사회가 되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주거 불안, 육아 고립, 직장 내 모성 차별—이것들이 진짜 여성의 적입니다.
그런데 찬성 측은 그 구조적 문제를 외면한 채,
‘낙태만 자유롭게 하면 된다’는 단순한 해법으로 현실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제 사례를 보십시오.
프랑스는 낙태를 허용하지만, 동시에 출산율이 1.8명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낙태를 ‘권리’로만 보지 않고,
‘사회가 막지 못해 발생한 슬픈 결과’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낙태를 무제한 허용한 일부 국가에서는
장애 아동에 대한 선별적 낙태가 급증하고,
경제적 이유로 ‘자발적’ 낙태를 강요받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정말로 평등입니까?

우리가 제안하는 것은 낙태죄 유지가 아닙니다.
형벌 중심에서 벗어나, 상담·지원·숙려를 바탕으로 한 책임 있는 제도입니다.
태아는 완전한 인격은 아닐지라도,
‘잠재적 인간’으로서의 존엄은 법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덕적 기준입니다.

마지막으로,
낙태는 두 사람이 만든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해결도 두 사람이 함께 해야 합니다.
‘자유’만 외치지 말고, ‘공동 책임’을 이야기합시다.
그 길만이, 여성도, 태아도, 사회도 모두를 살리는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확신합니다.
낙태를 완전히 자유화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인권은 가장 약한 생명까지 포용할 때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