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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차량 통행량 감소를 위해 도심 혼잡 통행료를 부과해야 하는가?

개회 발언

찬성 측 개회 발언

존경하는 심사위원 여러분, 그리고 오늘 이 토론에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 인사드립니다.
우리 팀은 “개인 차량 통행량 감소를 위해 도심 혼잡 통행료를 부과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힙니다. 왜냐하면 도시는 단지 도로가 아니라, 사람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도심 혼잡 통행료’란 무엇입니까? 이는 특정 시간대, 특정 지역에서 개인 차량의 진입에 대해 부과하는 수요 기반 요금제입니다. 런던, 싱가포르, 스톡홀름 등 세계 선도 도시들은 이미 이 제도를 통해 교통 정체를 20~30% 줄이고, 대중교통 이용률을 크게 끌어올렸습니다. 이는 단순한 ‘벌금’이 아니라, 희소 자원인 도로 공간에 대한 합리적 가격 신호입니다.

우리 주장의 첫 번째 근거는 환경과 건강의 위기 대응입니다. 서울 도심의 미세먼지 농도는 WHO 권고치의 2배를 넘습니다. 그 주범 중 하나가 정체된 차량에서 나오는 배출가스입니다. 혼잡 통행료는 차량 진입을 줄여 대기질을 개선하고, 이는 곧 어린이와 노인의 호흡기 질환 감소로 이어집니다. 건강은 선택이 아니라 권리입니다. 그 권리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행동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경제적 비효율의 해소입니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서울 시민 한 명이 연간 교통 정체로 소모하는 시간은 약 90시간, 경제적 손실은 1인당 120만 원에 달합니다. 이는 국가 전체로 환산하면 연간 수조 원의 낭비입니다. 혼잡 통행료는 이 ‘보이지 않는 비용’을 가시화해, 운전자가 진짜 비용을 인식하도록 유도합니다.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죠—가격이 올라가면 수요는 줄어듭니다.

세 번째는 공정한 도시 공간 재분배입니다. 지금의 도로는 차 한 대가 점유하는 면적이 보행자 10명, 자전거 5대, 버스 1대를 위한 공간보다 큽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도로 대부분을 개인 차량에 내주고 있습니다. 혼잡 통행료 수익금은 전액 대중교통과 보행자 인프라에 재투자됩니다. 이는 ‘차 중심’에서 ‘사람 중심’ 도시로의 전환이며, 사회적 약자—학생, 노인, 장애인—의 이동권을 확장하는 길입니다.

누군가는 말할 것입니다. “이건 서민에게 또 다른 부담 아니냐?”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혼잡 통행료는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습니다. 대신, 더 나은 선택—버스, 지하철, 자전거—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저소득층에는 요금 감면이나 크레딧 제도로 보완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공정이란, 모두에게 똑같이 주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 다르게 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선택하는 것은 단지 ‘통행료’가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이 맑은 공기 속에서 뛰놀 수 있는 도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삶을 누리는 사회,
그리고 누구나 존엄하게 이동할 수 있는 미래입니다.
그 미래를 위해, 우리는 찬성합니다.


반대 측 개회 발언

감사합니다.
우리 팀은 “개인 차량 통행량 감소를 위해 도심 혼잡 통행료를 부과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힙니다. 왜냐하면 이 정책은 형평성 없는 징벌, 현실을 외면한 이상주의, 그리고 근본적 대안 회피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혼잡 통행료’는 이름만 다를 뿐, 사실상 도심 진입세입니다. 런던처럼 고소득층이 많은 도시와 달리, 서울은 많은 시민이 생계를 위해 도심에 진입해야 합니다. 택배 기사, 돌봄 노동자, 자영업자—그들은 차 없이는 일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차를 타지 마라”는 건, 삶의 방식을 강제로 바꾸라는 폭력입니다.

첫 번째 근거는 역진성과 계층적 불평등입니다. 혼잡 통행료는 소득과 무관하게 동일 금액을 부과합니다. 이는 저소득층에게 더 큰 부담이 됩니다. 월 200만 원 벌어 10만 원 내는 사람과, 월 1,000만 원 벌어 10만 원 내는 사람의 고통은 다릅니다. 게다가 대중교통이 완벽하지 않은 지역—서울 외곽, 경기 일부—에서는 대안 없는 강제가 됩니다. 이는 ‘공정한 정책’이 아니라, 편의를 가진 자만을 위한 특권 정책입니다.

두 번째는 정책의 실질적 효과 부재입니다. 스웨덴 예테보리에서는 혼잡 통행료 도입 후 교통량이 단기적으로 줄었지만, 2년 만에 다시 원상복귀됐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요금을 내더라도 차를 타야 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특히 대중교통 사각지대가 많습니다. 지하철이 없는 지역, 막차가 빠른 시간, 장애인 접근성이 낮은 버스—이런 현실을 무시한 채 ‘차만 줄이면 된다’는 발상은 위험합니다.

세 번째는 더 나은 대안의 존재입니다. 우리는 혼잡 통행료 대신, 수요 관리형 공공정책을 제안합니다. 예를 들어, 직장 출퇴근 시간을 유연화하거나, 원격근무를 확대하거나, 카풀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것. 또는 도로 용량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 신호 시스템으로 흐름을 최적화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국민에게 돈을 걷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바꾸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말할 것입니다. “그럼 교통 정체는 어떻게 해결하냐?”
하지만 문제의 원인은 ‘차량 수’가 아니라, 도시 계획의 실패입니다.
수십 년간 차 중심 개발을 밀어붙이다가, 이제 와서 운전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건 부당합니다.

우리는 꿈꾸지 않습니다. 차 없는 이상향을.
우리는 요구합니다. 모든 시민의 이동권이 존중되는 현실적인 해법을.
그러므로, 우리는 반대합니다.


개회 발언 반박

찬성 측 두 번째 발언자 반박

존경하는 심사위원 여러분, 방금 반대 측은 혼잡 통행료를 “형평성 없는 징벌”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 속에는 세 가지 치명적인 오해가 있습니다.

첫째, ‘모든 운전자는 선택권이 있다’는 전제가 현실을 왜곡합니다. 반대 측은 택배 기사, 돌봄 노동자, 자영업자를 예로 들며 “차 없이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했죠. 하지만 이분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차를 탈 자유’가 아니라,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이동의 안정성입니다. 혼잡 통행료는 이들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런던에서는 필수 서비스 종사자에게 자동 면제권을 부여했고, 싱가포르는 소득 기준 크레딧 시스템으로 저소득층 부담을 실질적으로 제거했습니다. 반면 지금의 교통 정체는 이분들에게 숨 쉴 틈 없는 노동 환경을 강요합니다. 하루 10시간 차 안에서 보내는 분들이 건강을 잃는 게 더 큰 불평등 아닐까요?

둘째, “정책 효과가 없다”는 주장은 인과관계를 혼동합니다. 예테보리 사례를 들며 “2년 후 다시 원상복귀”라고 했지만, 그 도시는 통행료 수입을 대중교통 개선에 거의 투자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스톡홀름은 같은 기간 동안 버스 노선을 30% 늘리고, 실시간 정보 시스템을 도입해 대중교통 신뢰도를 끌어올렸습니다. 결과? 교통량은 22% 감소했고, 15년이 지난 지금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통행료 자체가 아니라, 그 수익을 어떻게 쓰느냐입니다. 우리는 “통행료만 도입하면 해결된다”고 말한 적 없습니다. 통행료는 변화의 촉매제일 뿐, 그 뒤를 받쳐줄 인프라 투자가 핵심입니다.

셋째, “더 나은 대안이 있다”는 주장은 거짓 이분법입니다. 유연근무, 스마트 신호, 카풀—이 모든 정책은 혼잡 통행료와 병행 가능합니다. 오히려 통행료 수입이 있어야 이런 정책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습니다. 반대 측은 “정부가 국민에게 돈을 걷지 말라”고 했지만, 지금도 우리는 도로 유지보수, 교통사고 처리, 대기오염 병원비 등으로 숨겨진 비용을 내고 있습니다. 혼잡 통행료는 그 비용을 투명하게 만들고, 책임 있는 선택을 가능하게 합니다.

결국 반대 측은 이상적인 대안을 요구하며 현실적인 해법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완벽한 정책을 제안하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보다 덜 해롭고, 더 공정하며, 미래를 여는 선택을 제안할 뿐입니다.


반대 측 두 번째 발언자 반박

감사합니다.
찬성 측은 “희소 자원에 대한 합리적 가격 신호”라며 혼잡 통행료를 포장했지만, 그 논리는 세 가지 측면에서 근본적 결함을 안고 있습니다.

첫째, 환경 개선 효과는 과장되었고, 인과관계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찬성 측은 “서울 미세먼지의 주범이 정체된 차량”이라고 단정했지만, 국립환경과학원 자료에 따르면 서울 초미세먼지(PM2.5)의 58%는 중국 등 외부 유입, 27%는 산업·발전소에서 발생합니다. 도로 교통은 약 15%에 불과합니다. 즉, 통행료를 아무리 올려도 미세먼지 문제의 본질을 건드리지 못합니다. 오히려 저소득층에게 경제적 부담만 안기고, 실제 환경 개선은 미미할 것입니다. 이는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 사이에 인과의 다리가 끊긴 정책입니다.

둘째, “경제적 비효율 해소”라는 주장은 시장 원리를 잘못 적용한 것입니다. 도로는 사유재가 아니라 공공재(public good)입니다. 시장경제 원칙을 무작정 적용하면, 돈 많은 사람이 더 많은 도로를 점유할 권리가 생깁니다. 이는 “돈만 있으면 공기를 더 많이 마실 수 있다”는 주장과 다를 바 없습니다. 게다가 “연간 90시간 낭비”라는 통계는, 사람들이 차를 타는 것을 ‘비합리적 선택’으로 전제합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누군가는 장애인 가족을 모시기 위해 차를 탑니다. 이를 “낭비”라 규정하는 것은 다양한 삶의 방식을 무시한 획일적 사고입니다.

셋째, “공정한 공간 재분배”라는 가치는 실행 가능성에서 붕괴됩니다. 찬성 측은 “수익금을 대중교통에 전액 투자하겠다”고 약속하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한국의 경우, 교통세 수입의 40% 이상이 일반 예산으로 전용된 사례가 반복돼 왔습니다. 투명한 재원 관리 체계도, 법적 구속력도 없는 상태에서의 ‘약속’은 공허합니다. 더욱이, “차 한 대가 보행자 10명보다 많은 공간을 차지한다”는 주장은 이동 수단의 기능 차이를 무시한 숫자 장난입니다. 장애인 이동권을 위해 특수차량이 필요할 수도 있고, 응급 상황엔 구급차가 우선이어야 합니다. 모든 차를 동일하게 취급하는 통행료는 오히려 다양한 이동권을 침해할 위험이 있습니다.

끝으로, 찬성 측은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대중교통이 열악한 지역에 사는 사람에게는 선택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비용만 부과되는 구조입니다. 이는 자유가 아니라 강압입니다.

우리는 환경과 효율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다만,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정책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혼잡 통행료는 그 조건을 충족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전히 반대합니다.


질의응답

찬성 측 세 번째 발언자 질의

찬성 측 3번:
“반대 측 첫 번째 발언자님께 묻겠습니다. 귀측은 혼잡 통행료가 ‘서민에게 또 다른 부담’이라 했고, 특히 택배 기사나 돌봄 노동자에게 ‘삶의 방식을 강제로 바꾸라’는 폭력이라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만약 정부가 이들 필수 종사자에게 자동 면제권을 부여하고, 저소득층에 대해 소득 기준 크레딧을 지급한다면—즉, 경제적 부담 없이 정책을 설계한다면—귀측도 여전히 이 정책을 ‘폭력’이라 보십니까?

반대 측 1번:
“면제와 크레딧은 좋은 말이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행정적 오류, 신청 절차의 복잡성, 정보 접근성 문제로 인해 실제로는 많은 분들이 혜택을 받지 못합니다. 게다가 ‘필수 종사자’를 누가 어떻게 정의합니까? 편의점 알바생은 포함되고, 프리랜서 강사는 제외됩니까? 제도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격차가 바로 불평등을 심화시킵니다.


찬성 측 3번:
“반대 측 두 번째 발언자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귀측은 ‘서울 미세먼지의 15%만이 도로 교통에서 발생한다’며 환경 효과를 부정하셨습니다. 그런데 국립환경과학원 자료를 다시 보면, ‘도심 지역 내 이동오염원 기여도’는 40%를 넘습니다. 즉, 외부 유입은 전체 서울 기준이지만, 우리가 숨 쉬는 도로변에서는 차량이 주범입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귀측은 ‘전체 PM2.5 중 비중이 작다’는 이유로, 도심에서의 직접적 건강 피해를 무시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반대 측 2번:
“우리는 건강 피해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다만, 혼잡 통행료가 그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수단인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전기차 보급 확대나 배달 오토바이 규제 같은 정책이 더 직접적일 수 있습니다. 통행료는 너무 광범위하고, 고통은 특정 계층에 집중됩니다.”


찬성 측 3번:
“마지막으로, 반대 측 네 번째 발언자님께 여쭙겠습니다. 귀측은 ‘더 나은 대안이 있다’며 유연근무, 스마트 신호 등을 제시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대안은 재정 투입 없이는 실현 불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스마트 신호 시스템 구축에만 수천억 원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귀측이 제안한 대안들을 실행하기 위한 재원을, 혼잡 통행료 수입 없이 어디서 조달하실 건가요?

반대 측 4번:
“재원은 교통세나 일반 예산에서 조정 가능합니다. 굳이 도심 진입에 대한 추가 부담을 만들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통행료 수입이 일반 예산으로 전용될 위험이 더 큽니다. 우리는 투명한 재정 운용보다는, 근본적인 도시 구조 개편을 우선시해야 합니다.”


찬성 측 질의 요약

[요약] 반대 측의 답변을 종합하면, 그들은 이상적인 정책 설계는 인정하지만 현실 실행 가능성에 회의적이며, 대안 재원 조달에 대한 구체적 대안은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면제 제도’에 대한 불신은 행정 개선 노력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며, ‘환경 기여도’ 논의에서는 도심 국지적 피해와 전체 통계를 혼동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제안한 모든 대안은 돈이 필요한데, 그 돈을 어디서 가져올지는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결국 현실 회피에 불과합니다.


반대 측 세 번째 발언자 질의

반대 측 3번:
“찬성 측 첫 번째 발언자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귀측은 ‘혼잡 통행료 수익금을 전액 대중교통과 보행자 인프라에 재투자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과거에도 교통세 수입의 40% 이상을 일반 예산으로 전용한 전력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귀측은 이 수익금의 전용을 막을 법적·제도적 장치를 이미 마련했습니까, 아니면 단지 ‘약속’에 불과합니까?

찬성 측 1번:
“물론 단순한 약속이 아닙니다. 런던과 스톡홀름처럼, 특별회계 설치와 독립 감사 기구 운영을 제도화할 것을 제안합니다. 또한 시민참여예산제를 통해 투자 우선순위를 투명하게 결정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실패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정치적 결의의 문제입니다.”


반대 측 3번:
“찬성 측 두 번째 발언자님께 여쭙겠습니다. 귀측은 ‘스톡홀름은 통행료 수입으로 버스 노선을 30% 늘렸다’고 했지만, 한국의 지방자치단체는 재정 자율성이 낮고, 중앙정부 승인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중앙정부가 통행료 수입을 지방에 제대로 배분하지 않을 경우—예를 들어, 서울시가 아닌 다른 지역에 투자된다면—서울 시민은 왜 이 부담을 져야 합니까?

찬성 측 2번:
“그 우려는 타당하지만, 도시별 독립 운영 모델을 채택하면 해결됩니다. 서울시가 자체적으로 징수하고, 자체적으로 사용하는 구조죠. 이는 지방분권의 정신에도 부합합니다. 오히려 지금처럼 중앙이 모든 걸 통제하는 방식이 문제입니다.”


반대 측 3번:
“마지막으로, 찬성 측 네 번째 발언자님께 질문하겠습니다. 귀측은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경기도 김포나 인천 서구처럼 지하철이 없고 버스 간격이 30분 이상인 지역 주민에게는 대중교통이 사실상 선택지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이들에게 통행료를 부과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강압’ 아닌가요?

찬성 측 4번:
“정확히 그 점 때문에 지역별 차등 요금제와 보조금 연계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대중교통 사각지대 거주자에게는 월간 크레딧을 지급하거나, 카풀 시 요금을 면제하는 방식입니다. 정책은 일률적이지 않고, 지역 특수성을 반영해야 합니다. 그게 진짜 자유입니다.”


반대 측 질의 요약

[요약] 찬성 측은 우리의 질문에 대해 제도적 보완책을 언급했지만, 모두 ‘미래의 가능성’에 머물렀습니다. 특별회계, 지방분권, 지역별 크레딧—이 모든 것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 가정 위에 세워졌습니다. 더욱이, ‘지역별 차등 요금제’라는 답은 정책의 복잡성과 행정 비용 증가를 초래할 것이며, 결국 서민에게 또 다른 절차적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찬성 측은 이상적인 시나리오만을 그리며, 현실의 행정적·정치적 한계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공정은 ‘약속’이 아니라, 실행 가능한 구조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자유 토론

찬성 1:
반대 측은 “행정이 믿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교통 정책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바로 그 행정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행정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투명한 제도를 만들어 감시하는 것 아닐까요? 특별회계 법제화, 실시간 예산 공개, 시민 감사단—이 모든 건 통행료라는 ‘재원’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돈 없이 개혁은 공허한 메아리입니다.

반대 1: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찬성 측이 말하는 ‘특별회계’는 현재 존재합니까? 아닙니다. 다만의 가정일 뿐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지난해 교통세 수입 8조 원 중 3조 원이 일반회계로 전용됐습니다. 약속은 종이 위에서만 유효합니다. 재원이 생긴다고 해서 반드시 대중교통에 쓰일 거라 믿는 건, 마치 아이스크림 가게가 “수익 전부를 나무 심는 데 쓰겠다”고 해서 진짜 숲이 생길 거라 믿는 것과 같습니다.

찬성 2:
아, 그 비유 재미있네요. 그런데 아이스크림 가게가 아니라, 주민들이 직접 나무를 심고 감시하는 공동체 사업이라면요? 혼잡 통행료는 단순한 세금이 아니라,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도시 거버넌스의 출발점입니다. 런던에선 시민위원회가 통행료 수입 배분을 심의합니다. 우리는 왜 못 하나요? “안 될 거다”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되게 할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반대 2:
좋습니다. 그럼 이렇게 물어보죠. 강남에 사는 연봉 8,000만 원 직장인과, 김포에서 새벽 4시에 출근해 도심에서 청소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둘 다 같은 금액의 통행료를 내야 합니까? 찬성 측은 “크레딧 제도로 해결하겠다”고 하지만, 신청 절차조차 모르는 분들에게 그 제도는 유령과 같습니다. 정책은 이상이 아니라, 현장에서 작동해야 의미가 있습니다.

찬성 3:
그렇다면 반대 측에게 묻겠습니다. 지금 이 청소 노동자는 교통 정체 속에서 얼마나 더 많은 시간과 연료비를 쓰고 있습니까? 통행료가 없어도, 그분은 이미 숨 쉴 수 없는 도로와 미세먼지 속에서 이중의 부담을 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제안하는 건 “더 이상의 피해”가 아니라, 피해를 줄이는 실질적 도구입니다. 크레딧은 복잡할 수 있지만, 모바일 알림 하나로 자동 적용되는 시스템도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합니다.

반대 3: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요? 그러면 또 묻겠습니다. 작년 디지털 성범죄 신고 시스템은 기술적으로 완벽했지만, 현장 경찰관은 ‘몰라서’ 처리를 못 했습니다. 제도는 사람 위에 서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도,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일하는 분들이 그것을 ‘알고, 신청하고, 받을 수 있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누구 책임입니까? 그 사이에 생계가 무너지는 건 누가 막습니까?

찬성 4:
그럼 제가 마지막으로 한 가지 제안을 드리죠. 혼잡 통행료를 단계적·지역별로 시행하는 겁니다. 강남처럼 대중교통이 밀집한 지역부터 시작해, 효과와 보완책을 검증한 후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거죠. 이건 “모든 걸 한 번에” 강요하는 게 아니라, 실험과 학습을 통한 현명한 개혁입니다. 반대로, 아무것도 안 하면—우리 아이들은 계속 마스크를 쓰고 등교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짜 책임 있는 선택입니까?

반대 4: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환경과 효율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정책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굽히지 않을 뿐입니다. 통행료는 “차를 줄이자”는 단순한 목표 뒤에, 서민의 삶을 계산서에 올리는 냉혹함을 숨기고 있습니다. 진짜 도시의 미래는, 돈을 내는 사람만이 아니라, 걷는 사람, 일하는 사람, 살아가는 모든 이가 존중받는 곳에서 시작됩니다. 그 미래를 위해, 우리는 여전히 반대합니다.


최종 발언

찬성 측 최종 발언

존경하는 심사위원 여러분, 오늘 우리는 단지 “요금을 내야 하느냐”를 논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도시의 주인은 누구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반대 측은 “서민에게 부담이다”, “대안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제시한 대안은 모두 추상적이고 재원 없는 꿈이었습니다.
유연근무? 좋습니다. 스마트 신호? 환영합니다.
하지만 누가 그걸 만들고, 누가 운영하며, 누가 유지할 것입니까?
바로 혼잡 통행료가 만들어낼 투명한 재원입니다.

그리고 “서민 보호”를 말할 때, 우리는 한 가지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서민도 버스를 타는 사람, 횡단보도를 건너는 어린이, 창밖을 보면 뿌연 하늘만 보이는 노인입니다.
그들에게 지금의 도심은 고통입니다.
혼잡 통행료는 차를 몰지 못하게 하는 게 아니라,
차 외에도 살아갈 길을 열어주는 정책입니다.

반대 측은 “행정 신뢰가 없다”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특별회계, 시민감시단, 지역별 차등 요금 같은 구체적 장치를 제안한 것입니다.
완벽한 제도는 없습니다.
하지만 시작하지 않으면 개선도 없습니다.

런던은 2003년 처음 이 제도를 도입할 때 시민의 60%가 반대했습니다.
오늘날 그들은 70% 이상이 이 제도를 지지합니다.
왜냐하면 체감했기 때문입니다.
맑아진 공기, 빨라진 버스, 안전해진 거리—
이 모든 것은 ‘이상’이 아니라, 선택의 결과였습니다.

우리는 완벽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보다 덜 해롭고, 더 공정하며, 다음 세대에게 미안하지 않은 선택을 제안합니다.
도시는 차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삶의 터전입니다.
그 터전을 되찾기 위해—
우리는 분명히, 찬성합니다.


반대 측 최종 발언

감사합니다.
찬성 측은 “도시는 사람을 위한 공간”이라 했습니다.
우리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어떤 ‘사람’을 위한 도시인가입니다.

택배 기사가 새벽 5시에 일어나 도심으로 들어갑니다.
돌봄 노동자가 지하철 막차 끊긴 시간에 집에 돌아가려면 차가 필요합니다.
장애인 가족을 모시는 부모는 버스 계단 앞에서 좌절합니다.
이들에게 “차 대신 대중교통을 타라”는 말은,
현실을 모르는 위선입니다.

찬성 측은 “면제와 크레딧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행정은 늘 실수합니다.
신청 절차를 몰라서, 서류 하나 때문에,
결국 가장 약한 사람이 가장 큰 피해를 봅니다.
정책은 “의도가 선하다”고 해서 정당해지지 않습니다.
결과가 공정해야 정의로운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돈을 내면 통과할 수 있다”는 논리는,
도로를 사유화하는 첫걸음입니다.
앞으로는 공원도, 하늘도, 숨 쉬는 권리도
‘가격표’가 붙을까요?

우리는 환경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효율을 거부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정책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진짜 해결은, 국민에게 또 하나의 요금을 물리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더 똑똑해지고, 더 배려 깊어지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서울은 복잡합니다.
그 복잡함을 단순한 요금제로 덮어버리려는 시도는,
결국 약자를 희생시키는 편의주의일 뿐입니다.

우리는 꿈꾸지 않습니다.
차 없는 이상향을.
우리는 요구합니다.
걷는 사람, 일하는 사람, 살아가는 모든 시민이 존중받는 현실적인 도시를.

그러므로—
우리는 확고히, 반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