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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사육 시 의무적으로 등록 및 교육 이수를 요구해야 하는가?

개회 발언

찬성 측 개회 발언

존경하는 심사위원님,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께 묻겠습니다.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생명을 함부로 다뤄도 괜찮은가요?”

우리 측은 분명히 말합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생명에 대한 책임입니다. 따라서 반려동물 사육 시 반드시 등록과 교육 이수를 의무화해야 합니다.

첫째, 공공 안전과 사회적 피해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서울에서 발생한 반려견 물림 사고는 1,200건을 넘었습니다. 대부분이 기본적인 훈련이나 사회화 교육을 받지 않은 개들이었습니다. 교육을 이수하면 사육자는 동물의 스트레스 신호, 공격 징후, 적절한 산책 방법 등을 배우게 되고, 이는 이웃과 지역사회를 보호하는 첫걸음입니다.

둘째, 책임 있는 사육 문화를 제도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유기동물 수는 연간 13만 마리에 달합니다. 그중 절반 이상이 ‘관리가 어렵다’, ‘알레르기가 생겼다’ 같은 이유로 버려집니다. 이는 단순한 무책임이 아니라, 동물에 대한 기본 지식 부족에서 비롯됩니다. 2시간짜리 온라인 교육조차 받지 않은 채 생명을 들이는 것은, 운전면허 없이 자동차를 몰고 도로에 나서는 것과 같습니다.

셋째, 등록제는 유기와 학대를 억제하는 실질적인 수단입니다.
등록된 동물은 소유자가 명확하므로, 유기 시 과태료 부과가 가능하고, 학대 사건 발생 시 신속한 조치가 이루어집니다. 실제로 독일과 프랑스는 등록·교육 의무화 이후 유기율이 40% 이상 감소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선진국’이라 자부한다면, 그에 걸맞은 제도를 갖춰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누군가는 말할지 모릅니다. “그냥 좋은 마음으로 키우면 되지 않느냐?”
하지만 좋은 의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행동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강압이 아니라, 최소한의 책임을 다하는 문화입니다.
그 시작이 바로, 등록과 교육입니다.


반대 측 개회 발언

안녕하세요. 오늘 우리가 논의하는 건 단순한 제도 문제가 아닙니다.
‘국가가 당신의 집 안까지, 당신이 키우는 강아지의 이름까지 통제해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우리 측은 단호히 주장합니다. 반려동물 사육에 대한 등록 및 교육 의무화는 과도한 국가 개입이며, 개인의 자유와 신뢰를 훼손합니다.

첫째, 사생활과 선택의 자유를 침해합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은 가족 구성원을 맞이하는 것과 같습니다. 국가가 결혼이나 출산 전에 ‘교육 이수’를 요구하지 않듯, 생명을 사랑하고 돌보겠다는 개인의 결정에 대해 면허를 요구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이는 결국 ‘당신은 혼자서 책임질 능력이 없다’는 불신에서 비롯된 정책입니다.

둘째, 제도의 형평성과 접근성이 심각히 결여되어 있습니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은 쉽게 온라인 교육을 이수할 수 있을지 몰라도, 농촌에 사는 노인이나 저소득층은 스마트폰조차 익숙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교육비, 등록비, 시간적 비용—이 모든 것이 누군가에게는 애완동물을 사랑할 자격을 박탈하는 장벽이 됩니다. 평등한 사랑에 계층별 요금제를 두는 것입니까?

셋째, 의무화는 오히려 역효과를 낳습니다.
형식적으로 등록만 하고, 교육은 ‘자동 재생’으로 끝내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진정한 책임감은 강제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일본은 자발적 등록제와 인센티브(예: 동물병원 할인, 세금 감면)로 유기율을 줄였습니다. 강압보다는 신뢰와 유도가 더 효과적입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안전이 중요하지 않느냐?”
물론 안전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모든 위험을 국가 통제로 해결하려 한다면, 다음엔 반려식물 키우기 전에 ‘광합성 교육’도 받아야 할까요?

우리는 믿습니다.
사람들은 강제가 아니라 존중과 신뢰 속에서 더 책임감 있게 행동합니다.
반려동물과의 관계는 법령이 아니라, 마음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 마음을 믿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미 인간됨의 본질을 잃고 있는 것입니다.


개회 발언 반박

찬성 측 두 번째 발언자 반박

존경하는 심사위원님, 방금 반대 측은 “등록과 교육은 사생활 침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습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행위는 더 이상 ‘완전한 사생활’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생명은 집 안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산책로를 걷고, 공원을 누비고,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며, 때로는 이웃을 물기도 합니다. 이 순간부터, 그것은 공적 책임이 됩니다. 마치 운전자가 차를 몰 때 자신의 공간만이 아닌 도로 전체에 영향을 미치듯이요.

반대 측은 “결혼이나 출산에도 교육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하셨지만, 그 비교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법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스스로 권리를 주장하고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나 고양이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유일한 목소리는, 바로 사육자의 책임감입니다.

두 번째로, “농촌 노인이나 저소득층에게 불공평하다”는 주장. 이는 제도의 실행 방식에 대한 문제지, 의무화 자체의 근본적 결함이 아닙니다. 우리는 교육을 온라인뿐만 아니라 동사무소나 동물보호센터에서 오프라인으로도 제공할 수 있고,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분들에겐 수수료 면제나 유예 기간을 둘 수도 있습니다. 제도를 거부하는 대신, 더 포용적인 설계를 요구해야 하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의무화는 형식적이 될 뿐”이라는 말씀. 맞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동 재생으로 교육을 끝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형식이라도 존재해야, 그 안에 내용을 채울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아무것도 없는 상태라면, 책임은커녕 ‘등록’조차 하지 않은 채 유기하는 일이 반복될 뿐입니다.

그리고 일본 사례를 들며 “인센티브가 더 낫다”고 하셨죠? 하지만 일본의 유기율은 이미 0.5% 수준입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13만 마리입니다. 우리는 일본처럼 ‘시민 자발성’이 충분히 자리 잡은 사회인가요? 아니면, 아직 최소한의 틀조차 없는 사회인가요?

진정한 신뢰는 무조건적인 방임이 아니라, 기준 위에 세워지는 존중입니다.
우리는 강압이 아니라, 공존을 위한 최소한의 약속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반대 측 두 번째 발언자 반박

찬성 측은 “교육 이수는 공공 안전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오류를 범하셨습니다.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바꿔치기 하셨다는 점입니다.

서울에서 연간 1,200건의 물림 사고가 있었다고 하셨죠? 그렇다면 그 중 몇 %가 ‘교육을 받지 않은 사육자’에 의한 것인지, 또 몇 %가 이미 교육을 받았음에도 발생한 것인지에 대한 데이터는 어디 있습니까? 만약 교육을 받은 사람도 사고를 일으킨다면, 문제는 ‘교육 유무’가 아니라 개별 동물의 특성이나 환경적 요인일 수 있습니다.

또한, “유기동물 13만 마리 중 절반이 무책임해서 버렸다”고 단정하셨는데, 실제 농림축산검역본부 자료에 따르면 유기 사유 1위는 ‘주거 환경 변화’(이사, 전세 만료 등), 2위는 ‘경제적 부담’(병원비, 사료비)입니다. 이는 곧, 사람들이 애초에 무책임해서가 아니라, 돌볼 여력이 없어져서 유기했다는 뜻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을 강제한다고 문제가 해결될까요?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등록을 피하고, 유기 시 추적이 어려워져 오히려 동물이 더 큰 위험에 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독일·프랑스 사례를 들며 “등록·교육 의무화로 유기율이 줄었다”고 하셨지만, 그 나라들은 이미 19세기부터 동물 보호법이 정비되어 있었고, 시민의 동물 복지 인식 수준이 우리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제도를 단순히 복사·붙여넣기 한다고 효과가 나는 게 아닙니다. 문화적 토양 없이 제도만 심으면, 그건 나무가 아니라 종이 꽃입니다.

마지막으로, “좋은 의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하셨죠. 맞습니다. 하지만 ‘좋은 의도’를 ‘무지’로 단정하는 것도 위험합니다. 많은 반려인은 책을 읽고, 커뮤니티에 참여하고,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며 스스로 배웁니다. 국가가 모든 사람을 ‘무지한 존재’로 전제하고, ‘너는 알아서 못 하니 우리가 가르쳐 주겠다’는 식의 위선적 패터널리즘(paternalism) 은 오히려 시민의 자율성을 훼손합니다.

우리는 진짜 해결책이 강제가 아니라 지원에 있다고 믿습니다.
동물병원비 지원, 임시 보호소 확충, 지역 기반 상담 서비스—
이런 것들이야말로 진짜 책임 있는 사육을 가능하게 하는 토대입니다.

법으로 마음을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신뢰로 마음을 움직일 수는 있습니다.


질의응답

찬성 측 세 번째 발언자 질의

찬성 측 3번: 반대 측 첫 번째 발언자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귀측은 “반려동물 사육은 사생활 영역이며 국가 개입은 과도하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지난해 서울에서 발생한 1,200건 이상의 반려견 물림 사고 중 피해자가 이웃이나 행인이었을 때, 그 위험 역시 ‘사생활’의 일부라고 보시는지요?
만약 사생활이라면, 왜 피해자는 법적 구제를 받을 수 있습니까?

반대 측 1번: 물론 사생활 내에서 발생한 행위라도 타인에게 명백한 위해를 끼친다면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사육자를 잠재적 가해자로 전제하는 제도에 있습니다. 예방을 위한 조치는 필요하되, 그것이 의무화일 필요는 없습니다. 교육은 권장할 수 있고, 사고 발생 시 처벌은 강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선제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면허를 요구하는 것은 과잉 규제입니다.


찬성 측 3번: 반대 측 두 번째 발언자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귀측은 “농촌 노인이나 저소득층이 교육 접근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 우려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운전면허 시스템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누구에게도 ‘운전은 당신에게 너무 어렵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온라인 교육 무료 제공, 지자체 방문 교육, 수수료 면제 같은 포용적 설계를 통해 접근성을 확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왜 반려동물 사육만 유독 ‘취약 계층 배려’라는 이름 아래 책임 회피의 면죄부가 되어야 합니까?

반대 측 2번: 우리는 책임 회피를 옹호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도가 현실을 따라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지금 한국의 많은 농촌 지역에는 동물병원 하나 없고, 스마트폰 사용조차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 분들에게 ‘등록하세요, 교육 받으세요’라고 말하는 건, 사실상 애완동물을 키울 자격을 박탈하는 것입니다.
운전면허는 도로라는 공공 공간에서의 행동을 규제하지만, 반려동물은 대부분 집 안에서 지냅니다. 그 차이를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찬성 측 3번: 마지막으로, 반대 측 네 번째 발언자님께 묻겠습니다.
귀측은 일본의 자발적 등록제와 인센티브 정책을 성공 사례로 들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1970년대부터 동물보호 교육을 초등학교에 포함시키고, 시민 의식 수준이 높은 사회입니다.
반면, 한국은 유기동물 수가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이고, ‘귀여워서 샀다가 키우기 힘들어 버린다’는 사례가 넘쳐납니다.
이런 문화적 토양에서, 자발적 참여만으로 책임 있는 사육 문화를 만들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으십니까?

반대 측 4번: 문화는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국가가 국민을 무지한 존재로 전제하고 통제하는 것이 정당화되진 않습니다. 일본도 처음부터 자발적이었던 게 아닙니다. 시민 참여와 신뢰를 기반으로 점진적으로 제도를 발전시켰죠.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지원과 교육의 기회를 넓히되, 강제는 피해야 합니다. 강제는 신뢰를 죽입니다.


찬성 측 질의 요약

반대 측은 일관되게 “신뢰”와 “자율”을 강조하셨지만, 그 신뢰는 현실의 유기율과 사고 통계 앞에서 무력합니다.
첫 번째 답변에서는 사생활과 공공 안전의 경계를 인정하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방적 제도를 거부하셨습니다.
두 번째 답변은 취약 계층에 대한 진심 어린 우려일 수 있으나, 제도 개선의 가능성을 외면하셨습니다.
세 번째 답변은 일본 사례를 이상화하셨지만, 한국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셨습니다.
결국 반대 측은 “이상적인 시민”을 전제로 논리를 펼치셨지만, 우리는 현실 속의 시민을 보호해야 합니다.
그 보호의 시작이 바로, 의무적 등록과 교육입니다.


반대 측 세 번째 발언자 질의

반대 측 3번: 찬성 측 첫 번째 발언자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귀측은 “교육 이수 시 사고가 줄어든다”고 단정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교육 이수가 실제로 반려견 물림 사고 감소와 인과관계가 있다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해 주시겠습니까?
아니면, 이는 단지 상식적 추정에 불과합니까?

찬성 측 1번: 물론 단일 연구로 인과를 증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국제 사례와 국내 실험 데이터는 분명한 상관관계를 보입니다. 예를 들어, 부산시가 2022년 시범적으로 ‘반려견 기본 훈련 교육’을 의무화한 구에서, 물림 사고가 38% 감소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교육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행동 변화의 촉매라는 점입니다. 사육자가 동물의 신호를 이해하면, 위험 상황 자체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습니다.


반대 측 3번: 찬성 측 두 번째 발언자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귀측은 유기동물의 절반이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버려진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농림축산검역본부 자료에 따르면, 유기 사유 1위는 주거 환경 변경(32%), 2위는 경제적 어려움(28%)입니다.
즉, 무지보다는 구조적 문제가 더 큰 원인입니다.
그렇다면, 교육보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 수 있는 주택 정책, 의료비 지원, 보호소 확충이 더 근본적인 해결책 아닌가요?
왜 문제의 원인을 개인의 ‘무책임’으로만 치환하시는 겁니까?

찬성 측 2번: 구조적 문제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육은 그 구조적 문제를 완화하는 첫걸음입니다. 예를 들어, ‘알레르기가 생겼다’는 이유로 버리는 경우, 사전에 알레르기 검사를 받도록 교육받았다면 유기는 막을 수 있었을 겁니다.
또한, 교육 과정에는 ‘반려동물과 이사하는 방법’, ‘경제적 부담 대처법’ 같은 실용 정보도 포함됩니다.
교육은 무지를 고치는 것뿐 아니라, 현실 대응력을 키우는 도구입니다.


반대 측 3번: 마지막으로, 찬성 측 네 번째 발언자님께 묻겠습니다.
귀측은 “형식적 교육은 막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자동 재생으로 교육을 끝내는 사육자에게 어떤 제재가 가능한가요?
등록만 하고 교육은 눈감아주는 현실에서, 이 제도는 결국 종이 위의 꽃이 되지 않을까요?
오히려 진짜 책임 있는 사육자에게만 부담을 주는 역차별이 되지 않겠습니까?

찬성 측 4번: 모든 제도는 시행 초기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시작하지 않으면 개선도 없습니다. 교육 이수 확인은 간단한 퀴즈나 실습 인증으로 강화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의무화는 문화를 바꿉니다. 사람들이 ‘왜 굳이?’ 하던 질문이 ‘어떻게 잘 할까?’로 바뀌는 순간, 진짜 변화가 시작됩니다.
형식주의를 걱정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완벽한 제도를 기다리다 보면, 오늘도 수천 마리의 동물이 유기되고 있습니다.


반대 측 질의 요약

찬성 측은 열정적으로 제도의 필요성을 역설했지만, 그 논리는 세 가지 허점을 드러냈습니다.
첫째, 교육과 사고 감소 사이의 인과관계는 추정에 머무르며, 과학적 근거가 부족합니다.
둘째, 유기의 진짜 원인인 경제·주거 문제를 외면하고, 개인의 도덕적 결함으로 치환했습니다.
셋째, 형식주의와 집행력 부족이라는 현실적 한계를 ‘시작이 중요하다’는 말로 회피하셨습니다.
이는 마치, 비가 새는 지붕을 보고 “우선 페인트부터 칠하자”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진짜 책임 있는 사육을 원한다면, 지원과 신뢰의 인프라부터 마련해야 합니다.
강제는 결코 문화를 만들지 못합니다.


자유 토론

찬성 측 1번:
반대 측은 “사생활 침해”라고 하셨지만, 제가 묻겠습니다.
강아지가 이웃 아이를 물었을 때, 그 피해는 사생활 속에서 끝나나요?
아닙니다. 동물은 말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사육자의 책임이 곧 공공의 안전이 됩니다.
“내 집 안일 뿐”이라는 말은, 결국 피해자의 고통을 ‘남의 일’로 치부하는 것 아닐까요?

반대 측 1번:
책임은 법령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옵니다.
누군가는 교육 한 번 받지 않아도 매일 산책길에서 배변봉투를 들고 다니고,
누군가는 면허증 있더라도 음주운전을 합니다.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의식입니다.
국가가 모든 시민을 ‘무책임한 후보’로 전제하는 건, 오히려 신뢰를 깨는 일입니다.

찬성 측 2번:
좋습니다. 의식이 중요하다면, 왜 일본은 자발적 등록률이 90% 넘을까요?
그건 그들이 30년간 지속된 교육과 문화 형성 덕분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어떠세요? 유기동물 13만 마리, 그중 60%가 ‘관리 어렵다’는 이유입니다.
의식이 낮은 사회에서 ‘신뢰만으로’ 책임을 기대하는 건,
비 올 줄 모르는 사막에서 우산 없이 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반대 측 2번:
그럼 정말로 교육이 사고를 줄이는지 증거가 있나요?
농림축산검역본부 자료에 따르면, 물림 사고의 72%는 주거 환경 스트레스방치에서 비롯됩니다.
즉, 교육보다는 주택 정책, 동물병원비 지원, 보호소 확충이 더 직접적인 해결책입니다.
왜 우리는 진짜 원인은 외면하고, 시민에게만 ‘과제’를 덮어씌우는 걸까요?

찬성 측 3번:
형식주의 우려,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모든 제도는 처음엔 ‘형식’입니다.
초등학교 교육도, 처음엔 강제였습니다.
지금은 누가 “내 자녀는 마음만 먹으면 스스로 글 읽을 텐데, 왜 학교 보내?”라고 하지 않죠.
교육은 행동을 바꾸는 시작점입니다.
자동재생으로 끝난다면, 그건 제도의 실패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무관심입니다.

반대 측 3번:
그렇다면 이렇게 묻겠습니다.
이미 매일 새벽 산책 나가고, 예방접종도 빠짐없이 챙기고,
입양센터 후원까지 하는 분들—이 사람들에게 왜 또 ‘의무 교육’을 요구하나요?
결국 책임 있는 사람만 불편해지고, 진짜 무책임한 이들은 등록조차 안 하지 않을까요?
이건 책임 있는 시민에 대한 역차별입니다.

찬성 측 4번:
역차별이라니요?
오히려 지금은 무책임한 이들이 아무런 대가 없이 행동하고 있습니다.
유기된 강아지가 보호소에서 죽어갈 때,
그 주인은 “몰랐다”는 한마디로 책임을 회피합니다.
우리는 그 ‘모른다’는 말을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등록과 교육은 최소한의 약속입니다.
사랑한다면, 그 사랑을 증명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반대 측 4번:
하지만 그 ‘증명’이 국가의 명령이라면, 사랑은 이미 의무가 됩니다.
진짜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문화에 있습니다.
국가가 시민을 ‘무지하고 무책임한 존재’로 전제하는 순간,
우리는 인간관계의 본질—자율과 신뢰—을 잃게 됩니다.
광합성 교육은 농담이지만,
‘반려동물 키우는 자격’을 국가가 판단한다는 발상 자체가,
이미 인간됨에 대한 위선적 보호주의(paternalism) 아닐까요?


최종 발언

찬성 측 최종 발언

심사위원님, 오늘 우리는 단지 ‘개를 등록하라’는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말할 수 없는 생명을 대신해 말해야 할 책임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반대 측은 “신뢰하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13만 마리의 유기동물은 신뢰만으로 구조되지 않습니다.
지난해 1,200건 넘는 물림 사고는 “좋은 마음”만으로 예방되지 않습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그리고 그 행동은 최소한의 지식과 제도적 약속 위에서만 진정한 책임으로 완성됩니다.

반대 측은 형식주의를 걱정합니다. 맞습니다. 처음엔 형식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으면, 영원히 형식조차 생기지 않습니다.
독일이나 프랑스도 하루아침에 완벽한 제도를 만든 게 아닙니다.
그들은 시작했고, 그래서 지금은 유기율이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취약 계층에 대한 우려도 이해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포용적 설계를 제안합니다.
온라인 교육, 수수료 면제, 지역 동물복지센터 연계—이건 배제가 아니라 함께 가는 길입니다.

오늘 우리가 요구하는 건 면허도, 감시도, 통제도 아닙니다.
그저, 생명을 들일 때 잠시 멈추고, ‘나는 준비됐는가’를 묻는 습관입니다.
그 습관이 모여,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게 산책할 수 있는 거리를 만들고,
버려진 강아지가 눈치 보지 않고 사람을 믿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확신합니다.
등록과 교육은 강압이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는 첫걸음입니다.
그 첫걸음을, 이제 함께 내딛읍시다.


반대 측 최종 발언

심사위원님, 찬성 측은 “책임”을 말합니다. 우리는 그 가치를 존중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어떻게 책임을 이끌어낼 것인가입니다.
법으로 강제할 것인가, 아니면 사람을 믿고 함께 키워갈 것인가?

찬성 측은 “교육이 행동을 바꾼다”고 말하지만,
그렇다면 왜 유기의 가장 큰 원인이 ‘주거 환경 변화’나 ‘경제적 어려움’입니까?
누구도 알레르기가 생길 줄 알면서 개를 키우지 않습니다.
누구도 실직할 줄 알면서 고양이를 입양하지 않습니다.
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교육 안 받았으니 무책임하다”는 낙인은
오히려 책임 있는 시민에게만 부담을 주는 역차별입니다.

더 중요한 건, 이 제도가 농촌에 사는 할머니를 생각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스마트폰도 잘 다루지 못하는 분에게,
“등록 안 하면 과태료”라는 메시지는 사랑의 조건이 아니라 배제의 경고입니다.
국가가 시민을 ‘무지한 존재’로 전제하는 순간,
우리는 자유와 신뢰라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스스로 허물고 있는 것입니다.

진짜 책임은 강제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지원받고, 존중받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책임감을 느낍니다.
동물병원비 지원, 보호소 확충, 이웃 간 돌봄 네트워크—
이런 것들이야말로 실질적이고 따뜻한 책임 문화를 만듭니다.

따라서 우리는 묻습니다.
당신은 누군가를 믿을 것인가, 아니면 통제할 것인가?
우리는 믿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선의를.
그 선의를 키우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지,
그 마음 위에 법을 덮어씌우는 것이 국가의 역할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신뢰를 선택합니다. 자율을 선택합니다. 인간됨을 선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