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wnload on the App Store

대중교통 무임승차 제도를 폐지해야 하는가?

개회 발언

찬성 측 개회 발언

존경하는 심사위원님, 그리고 오늘 이 토론에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우리 측은 “대중교통 무임승차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힙니다.
왜냐하면 이 제도는 더 이상 ‘배려’가 아니라 ‘불공정’과 ‘비효율’의 상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첫째, 재정의 지속 불가능성입니다.
서울시만 해도 연간 1조 원이 넘는 무임승차 손실이 발생합니다. 이 돈은 시민 모두의 세금으로 메워지고, 그 결과 버스와 지하철의 노선 개선, 안전 시설 확충, 친환경 전환 같은 진짜 필요한 곳에 투자가 줄어듭니다. 배려는 좋지만, 전체 시민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배려는 진정한 배려라 할 수 없습니다.

둘째, 제도의 공정성 결여입니다.
현재 무임승차는 만 65세 이상에게 자동 적용됩니다. 하지만 이 중 상당수는 월 300만 원 이상의 연금을 받으며, 자가용까지 보유한 경우도 허다합니다. 반면, 생계형 알바를 뛰는 20대 청년이나 저소득 가정은 정가 요금을 내며 이용해야 합니다. 나이가 아닌 ‘경제적 필요’에 따라 혜택이 주어져야 공정하지 않겠습니까?

셋째, 도덕적 해이와 남용 가능성입니다.
무임승차는 ‘권리’가 아니라 ‘혜택’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를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팽배합니다. 일부에서는 무임승차를 이유로 새벽부터 버스를 타고 장거리 여행을 하거나, 심지어 외국인까지 복제 카드로 무임승차를 시도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제도의 취지가 훼손된 채, 시스템은 계속 방치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더 나은 대안은 존재합니다.
우리는 무임승차를 ‘폐지’하자는 것이 아니라, ‘재설계’하자는 것입니다. 경제적 형편에 따라 교통비를 지원하는 ‘수요자 맞춤형 교통 바우처’나, 지역사회 기반의 ‘사회적 이동권 보장 제도’로 전환한다면, 진짜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더 정확하게 자원이 갈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단순히 ‘돈을 아끼자’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정하고 지속 가능하며, 모두가 존중받는 교통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이 제도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반대 측 개회 발언

존경하는 심사위원님,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 측은 “대중교통 무임승차 제도를 폐지해서는 안 된다”고 단호히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이 제도는 단순한 ‘요금 면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고령자와 사회적 약자에게 건네는 기본적인 존엄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첫째, 이동권은 기본권입니다.
헌법 제34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합니다. 이동 없이는 일상도, 의료도, 사회 참여도 불가능합니다. 특히 고령층은 자가용 운전이 어려운 경우가 많고, 택시는 경제적으로 부담됩니다. 대중교통은 그들이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끈입니다. 이마저 끊는다면, 고립과 우울, 심지어 생명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둘째, 사회 전체의 장기적 비용 절감 효과가 있습니다.
무임승차로 인한 재정 손실은 단기적 시각입니다. 고령자가 외부 활동을 통해 건강을 유지하면, 의료비와 복지비는 오히려 줄어듭니다. OECD 보고서에 따르면, 고령자의 사회 참여율이 10% 증가할 때마다 국가 의료비는 약 3% 감소한다고 합니다. 즉, 무임승차는 ‘비용’이 아니라 ‘투자’입니다.

셋째, 제도 남용은 개선 과제일 뿐, 폐지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누군가 무임승차를 악용한다고 해서, 전체 제도를 폐지하는 것은 ‘아이와 물을 함께 버리는 격’입니다. 대신, 소득 기준을 도입하거나, 지역별로 운영 방식을 조정하는 등 ‘보완’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제도의 허점을 이유로 약자를 희생시키는 것은 정의롭지 못합니다.

넷째, 인구 고령화 시대의 필수 인프라입니다.
2025년이면 한국은 초고령사회에 진입합니다.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입니다. 이런 시대에 고령자를 배제하는 교통 정책은 시대착오적입니다. 오히려 무임승차를 확대해, 청년·장애인·저소득층까지 포함하는 ‘포괄적 이동권 보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결국, 무임승차는 ‘누구를 위한 사회를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효율과 계산만으로 사람의 가치를 가늠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 사회가 여전히 따뜻하고 인간적인 공동체임을 증명하기 위해, 이 제도를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개회 발언 반박

찬성 측 두 번째 발언자 반박

존경하는 심사위원님, 여러분.
방금 반대 측은 무임승차를 ‘존엄의 표현’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묻고 싶습니다.
“존엄이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1. 이동권 ≠ 무임승차: 개념의 혼동

반대 측은 헌법 제34조를 인용하며 무임승차를 기본권처럼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심각한 개념 오류입니다.
헌법이 보장하는 것은 ‘이동의 자유’이지, ‘무료 이동’이 아닙니다.
장애인이나 저소득층에게도 요금이 부과되는데, 왜 고령자만 예외가 되어야 합니까?
이건 존엄이 아니라, 특권입니다. 진정한 존엄은 나이가 아닌 필요에 따라 지원받는 시스템에서 나옵니다.

2. OECD 데이터의 선택적 해석

“고령자의 사회 참여가 의료비를 줄인다”는 주장은 사실을 왜곡합니다.
OECD 보고서는 ‘사회 참여’를 ‘무임승차’와 동일시하지 않습니다.
도서관, 복지관, 지역 모임 등 다양한 경로로 참여가 가능합니다.
그런데도 버스 한 대당 30% 이상이 고령자로 가득 차고, 새벽부터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 현실을 보면,
이게 정말 ‘건강 증진’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편의 남용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3. “보완 가능하다”는 환상

반대 측은 “제도를 개선하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서울시는 10년 넘게 소득 기준 도입을 검토했고,
결국 행정 비용, 개인정보 침해, 현장 혼란 등의 이유로 포기했습니다.
왜냐하면 ‘무임승차’라는 제도 자체가 이원적 구조—즉, ‘모두에게 자동 적용’이라는 단순함 위에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이걸 세밀하게 조정하려면, 아예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게 더 효율적입니다.

4. 초고령사회, 그래서 더 정확한 지원이 필요하다

2025년 초고령사회 진입은 무임승차를 확대해야 한다는 근거가 아닙니다.
오히려 자원이 한정될수록, 더 정밀한 분배가 요구됩니다.
청년 실업률 20%, 저출산 위기 속에서, 월 400만 원 연금 받는 고령자가 무료로 버스를 타는 모습을
젊은 세대가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이건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기는 제도입니다.
우리는 폐지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더 공정한 이동권 보장 체계로의 전환을 제안하는 것입니다.


반대 측 두 번째 발언자 반박

존경하는 심사위원님, 그리고 찬성 측 여러분.
방금 찬성 측은 ‘공정’과 ‘효율’을 앞세워 무임승차를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 속에는 사람을 숫자로만 보는 냉혹함이 숨어 있습니다.

1. 재정 손실, 정말 그렇게 크고 치명적인가?

“연간 1조 원 손실”이라는 주장은 매우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서울시 교통 예산은 약 8조 원이며, 무임승차 손실은 그 중 12% 수준입니다.
더욱이 이 금액은 대부분 국가와 지자체가 공동 부담하며, 일반 시민 세금만으로 메워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마치 시민들이 직접 고령자 승차비를 내고 있는 것처럼 프레임을 짜는 건,
불필요한 갈등을 조장하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합니다.

2. “경제적 필요 기준”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찬성 측은 “소득 기준을 두자”고 말합니다. 하지만 누가 그 기준을 정합니까?
월 200만 원 이하만 혜택 준다면, 201만 원 받는 할머니는 버스를 탈 권리가 없습니까?
게다가 소득 정보 수집은 개인정보 침해행정 과잉으로 이어집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 ‘복지 사각지대’가 너무 많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고령자를 또다시 심사·분류하는 제도는 인간의 존엄을 심사하는 시스템이 됩니다.

3. 도덕적 해이? 통계로 본 실제 남용률은 미미하다

“외국인이 복제 카드로 탄다”, “새벽에 장거리 여행 간다”는 사례는 극히 드문 예외입니다.
서울시 감사 결과, 무임승차 부정 사용률은 0.3% 미만입니다.
이렇게 미미한 사례를 확대해 전체 제도를 흔드는 건,
마치 ‘한 명의 범죄자 때문에 모든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자’는 논리와 같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프레임이 고령자에 대한 혐오를 정당화한다는 점입니다.

4. 바우처 제도? 접근성과 신뢰성의 함정

“교통 바우처로 대체하자”는 대안은 현실 감각이 부족합니다.
많은 고령자는 스마트폰 사용조차 어려운데, 온라인 신청·충전·사용이 가능한가요?
바우처는 오히려 디지털 격차를 심화시키고,
현장에서 “왜 당신만 무료냐”는 갈등을 일으키며,
사회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무임승차는 익명성과 보편성 덕분에, 누구도 눈치 보지 않고 탈 수 있는 마지막 안전망입니다.

결론적으로, 찬성 측은 ‘비용’과 ‘공정’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 사회의 따뜻한 연결고리를 끊으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계산기로 살 수 없습니다.
진짜 공정은, 약자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머무르는 데 있습니다.

질의응답

찬성 측 세 번째 발언자 질의

찬성 측 3번 → 반대 측 1번

질문: 반대 측 1번 발언자님께 여쭙겠습니다.
귀측은 “무임승차는 고령자의 기본권”이라며, 이를 존엄의 표현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만약 한 고령자가 월 500만 원의 연금을 받으며 벤츠를 운전하고, 주말마다 무료로 버스를 타고 강릉까지 왕복 여행을 간다면—이것도 ‘존엄’입니까, 아니면 ‘특권 남용’입니까?

반대 측 1번 답변: 좋은 질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제도는 소수의 남용 사례 때문에 전체를 폐지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고령자를 배제하면, 그 피해는 고소득층이 아닌, 외딴 마을에 혼자 사는 독거노인에게 돌아갑니다. 제도의 취지를 훼손하는 것은 남용이 아니라, 그것을 핑계 삼아 약자를 내쫓는 태도입니다.


찬성 측 3번 → 반대 측 2번

질문: 반대 측 2번 발언자님께 묻겠습니다.
귀측은 “OECD 보고서를 근거로 고령자의 사회 참여가 의료비 절감에 기여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무임승차 이용자의 68%는 ‘쇼핑’이나 ‘산책’ 같은 비필수 목적입니다. 이 데이터를 어떻게 해석하시겠습니까? 과연 이것이 ‘투자’입니까, 아니면 ‘편의 제공’입니까?

반대 측 2번 답변: 쇼핑과 산책이 비필수라니요? 외출 자체가 고령자의 우울증 예방과 신체 활동 유지에 결정적입니다. OECD는 ‘사회적 접촉’ 자체를 건강 지표로 봅니다. 귀측은 인간의 삶을 너무 경제적 효율성으로만 계량화하고 계십니다. 산책 한 번이 누군가의 생명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찬성 측 3번 → 반대 측 4번

질문: 마지막으로 반대 측 4번 발언자님께 여쭙겠습니다.
귀측은 “무임승차는 보편적 복지”라며 소득 기준 도입을 거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청년이 알바비로 교통비를 내며 출퇴근할 때, 같은 버스에 탄 고소득 고령자가 무료로 타는 모습을 보면—그 청년은 이 사회를 ‘공정하다’고 느낄까요? 아니면 ‘나는 일해서 세금 내는 게 손해구나’라고 생각할까요?

반대 측 4번 답변: 공정함은 ‘모두에게 똑같이’가 아니라 ‘필요한 만큼’ 주는 것입니다. 청년에게는 청년 맞춤형 교통 지원이 필요하지요. 하지만 고령자에게 이동권을 빼앗는 것은, 그들을 사회에서 추방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세대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야지, 세대 간 적대를 부추겨선 안 됩니다.


찬성 측 질의 요약

반대 측은 일관되게 “소수의 남용은 제도 폐지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소수’가 아니라, 혜택의 기준 자체가 실질적 필요와 무관하다는 점입니다. 또한 “산책도 건강 투자”라는 주장은, 무임승차의 범위를 무한대로 확장하는 논리로, 결국 제도의 경계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자기모순입니다. 마지막으로, “세대 간 적대를 조장하지 말라”는 말씀은 오히려 현재의 불공정이 청년의 박탈감을 키우고 있음을 인정한 셈입니다. 우리는 폐지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필요한 이에게만 가는 정밀한 복지를 요구할 뿐입니다.


반대 측 세 번째 발언자 질의

반대 측 3번 → 찬성 측 1번

질문: 찬성 측 1번 발언자님께 여쭙겠습니다.
귀측은 “교통 바우처로 전환하자”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한국 고령자의 스마트폰 활용률은 40% 미만입니다. 바우처 신청을 위해 앱 설치, 본인 인증, QR 코드 사용을 요구한다면—그분들은 디지털 문맹이라는 이유로 이동권마저 박탈당하는 것 아닐까요?

찬성 측 1번 답변: 현실적인 우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온라인+오프라인 병행’을 제안합니다. 동사무소나 복지센터에서 직접 신청할 수 있도록 하지요. 바우처는 디지털만이 아니라, 현실에 맞춘 다층적 접근입니다. 지금처럼 무조건 모두에게 주는 방식보다, 진짜 어려운 분에게 정확히 지원하는 게 더 인간적 아닙니까?


반대 측 3번 → 찬성 측 2번

질문: 찬성 측 2번 발언자님께 묻겠습니다.
귀측은 “소득 기준을 도입하면 공정하다”고 하셨지만, 이를 위해 고령자의 금융 정보, 연금 내역, 재산을 행정기관이 들여다봐야 합니다. 이는 프라이버시 침해가 아니라고 보십니까? 혹시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국가가 개인의 삶을 감시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으신 건가요?

찬성 측 2번 답변: 이미 기초연금, 건강보험료 등 많은 복지에서 소득 조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무임승차만 예외일 이유는 없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제도라면 그 혜택이 누구에게 가는지 투명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프라이버시를 이유로 특권을 방치하는 건, 오히려 진정한 자유를 해칩니다.


반대 측 3번 → 찬성 측 4번

질문: 마지막으로 찬성 측 4번 발언자님께 여쭙겠습니다.
귀측은 “무임승차가 재정을 잡아먹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서울시 대중교통 예산 중 무임승차 보전액은 약 12%입니다. 나머지 88%는 일반 시민이 내는 요금과 세금으로 운영됩니다. 그렇다면 일반 시민이 내는 교통비가 그렇게 큰 부담인가요? 아니면, 사실은 고령자를 향한 은밀한 혐오를 정당화하려는 것인가요?

찬성 측 4번 답변: 혐오는 결코 아닙니다. 다만, ‘누구를 위한 복지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12%라는 숫자는 작아 보이지만, 그 돈으로 청년 통근 노선을 30개 추가하거나, 저상버스를 1,000대 더 도입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고령자를 배제하자는 게 아니라, 모든 세대가 함께 누릴 수 있는 교통 정의를 원합니다.


반대 측 질의 요약

찬성 측은 “오프라인 신청도 가능하다”고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동사무소는 인력 부족으로 이미 과부하 상태이며, 고령자가 직접 찾아가 서류를 작성하는 것은 형식적 선택권일 뿐 실질적 접근권은 아닙니다. 또한 “이미 다른 복지에서도 소득 조사한다”는 주장은, 오류를 정당화하는 ‘타당성의 오류’입니다. 마지막으로, “12%는 작다”는 인식 자체가 문제입니다. 그 12%가 바로 고령자에게는 생존의 100%인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무임승차는 효율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답게 살 권리를 지키는 최후의 방패입니다.

자유 토론

찬성 1:
“반대 측은 무임승차를 ‘존엄’이라 하셨지만, 과연 자가용 두 대를 가진 분이 무료로 지하철을 탈 때, 그게 정말 존엄입니까? 아니면 청년이 알바 끝나고 새벽버스 요금 아끼려 걸어가는 모습이 더 존엄하지 않을까요?”

반대 1:
“존엄은 소득으로 재는 것이 아닙니다. 할머니가 혼자 병원 가는 길, 친구 만나러 가는 길—그 이동 하나가 우울증을 막고, 사회와의 끈을 이어줍니다. 그것을 ‘특권’이라 부르는 건, 인간을 숫자로만 보는 시선입니다.”

찬성 2: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왜 고령자만 특별합니까? 장애인, 저소득 청년, 다자녀 가정도 이동이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오직 나이만으로 혜택을 주는 건, 오히려 다른 약자들을 배제하는 ‘선택적 무관심’ 아닐까요?”

반대 2:
“선택적 복지는 행정의 편의일 뿐,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소득 조사를 하자면 개인정보 수집, 신청 절차, 거부감—결국 가장 도움이 필요한 독거노인부터 배제됩니다. 보편성은 복지의 마지막 안전망입니다.”

찬성 3:
“그런데 반대 측, 부정 사용률이 0.3%라고 하셨죠? 그럼 서울시 연간 1조 원 손실 중 300억 원은 사기입니다. 이걸 ‘소수’라 치부하시겠습니까? 만약 청년이 교통비 300억 원으로 전기버스 100대를 도입했다면, 환경과 일자리 모두 살릴 수 있었을 겁니다.”

반대 3:
“300억 원이 문제라면, 왜 고령자를 탓합니까? 외국 관광객이 무임승차 카드 복제해 쓰는 건 범죄이고, 시스템 보안 문제입니다. 그것을 고령자 전체의 책임으로 돌리는 건, ‘고령자 혐오’를 정당화하는 위험한 논리입니다.”

찬성 4:
“우리는 혐오가 아니라 ‘정의’를 말합니다. 지금의 무임승차는 마치, 배가 고픈 아이에게 빵을 주지 않고, 이미 배부른 사람에게 또 주는 격입니다. 진짜 배고픈 이들을 위해, 우리는 이 제도를 ‘재분배’가 아닌 ‘재정의’해야 합니다.”

반대 4:
“재정의라 하셨지만, 바우처나 디지털 신청은 고령자에게 ‘이동권’이 아니라 ‘시험’입니다. 스마트폰 못 쓰는 할아버지가 오프라인 창구에 줄 서서 ‘내가 얼마나 가난한지 증명’해야 한다면, 그건 존엄이 아니라 굴욕입니다. 무임승차는 복지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스스로에게 건네는 약속입니다.”

최종 발언

찬성 측 최종 발언

심사위원님, 여러분.
오늘 우리는 단순히 ‘버스 요금’을 두고 싸운 것이 아닙니다.
‘누구를 위한 복지인가’, ‘어떤 공정을 원하는가’를 묻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측은 처음부터 일관되게 세 가지를 말했습니다.
첫째, 무임승차는 재정적으로 지속 불가능합니다. 서울시만 해도 연간 1조 원 이상이 증발합니다. 이 돈은 전기버스 500대를 살 수 있고, 청년 통근 노선을 20개 신설할 수 있습니다.
둘째, 이 제도는 공정하지 않습니다. 자가용을 몰며 월 400만 원 연금을 받는 분과, 하루 8시간 알바로 생계를 잇는 20대가 같은 대우를 받는 건가요?
셋째, 더 나은 대안이 있습니다. 소득 기준이 어렵다면, 지역사회 기반의 교통 바우처나 ‘필요 확인 카드’처럼 실질적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만 정확히 자원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반대 측은 “존엄”을 말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존엄은 모두에게 똑같이 주는 게 아니라, 정말 필요한 이에게 충분히 주는 것입니다.
“부정 사용률이 0.3%밖에 안 된다”고 하셨죠? 그렇다면 그 0.3%도 막지 못하는 제도가, 정말 믿을 만한 안전망입니까?
그리고 “산책도 사회 참여”라고 하셨지만, 새벽 5시에 버스를 타고 시외까지 가는 여행이 과연 공공재의 정당한 사용입니까?

여러분, 우리는 고령자를 배제하자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진짜 도움이 필요한 고령자—독거노인, 저소득 어르신—에게 더 많은 자원을 돌리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청년, 장애인, 다문화 가정 등 다른 약자들도 이동권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하자는 겁니다.

이건 효율과 인간성의 대립이 아닙니다.
진짜 인간적인 사회는, 자원을 똑같이 나누는 게 아니라, 똑바로 나누는 사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확신합니다.
무임승차 제도는 폐지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더 정밀하고 따뜻하며 공정한 새로운 이동권 보장 체계가 서야 합니다.
그 시작을 오늘, 여기서 함께 하지 않겠습니까?


반대 측 최종 발언

존경하는 심사위원님, 그리고 이 토론을 지켜봐 주신 모든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오늘의 논쟁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됩니다.
“우리는 인간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우리 측은 한결같이 말해 왔습니다.
무임승차는 단순한 ‘요금 면제’가 아닙니다.
이는 고령자가 세상과 연결될 수 있도록 사회가 건네는 손길이며,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한의 존엄입니다.

찬성 측은 “공정”을 외쳤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공정은 모든 사람을 동일하게 대우하는 형식적 공정입니다.
진정한 공정은 약자의 조건을 보고, 그만큼 더 챙기는 실질적 공정입니다.
월 400만 원 연금을 받는 분이 있다고 해서, 그 옆에 있는 월 50만 원으로 살아가는 독거어르신의 권리를 빼앗아선 안 됩니다.

그리고 “바우처로 대체하자”고 하셨죠?
하지만 80세 어르신이 스마트폰으로 앱을 설치하고, 온라인으로 신청서를 작성하는 걸 상상해 보셨습니까?
디지털 문맹은 ‘불편’이 아니라 배제입니다.
무임승차의 힘은 바로 익명성과 보편성에 있습니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누구나 탈 수 있다는 그 단순함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설계입니다.

찬성 측은 “청년이 불공정하다고 느낀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청년에게 무임승차를 빼앗으라고 가르쳐야 할까요?
아니면, 모든 세대가 서로를 돌보는 공동체를 만들자고 가르쳐야 할까요?

OECD는 말합니다. 고령자의 사회 참여가 늘수록 국가 의료비는 줄어든다고.
그 말은 곧, 어르신이 버스를 타고 병원에 가는 것도, 공원에서 산책하는 것도, 모두 우리 사회를 살리는 투자라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가 무임승차를 없앤다면,
내일 누군가는 “장애인도 검토하자”, “청소년도 제한하자”고 말할 겁니다.
왜냐하면 일단 인간의 권리를 계산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단호히 말합니다.
무임승차 제도는 폐지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제도는 단지 교통카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여전히 따뜻하고, 인간적이며, 함께 살아가겠다는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심사위원님,
혹시 당신의 부모님이, 혹은 앞으로 당신 자신이 이 버스를 탈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그때, 당신은 어떤 사회에 살고 싶으십니까?

지금 이 선택이, 그 미래를 결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