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잊힐 권리가 공공의 알 권리보다 우선되어야 하는가?
개인의 잊힐 권리가 공공의 알 권리보다 우선되어야 하는가?
# 개회 발언
## 찬성 측 개회 발언
존경하는 심사위원님, 상대 팀, 그리고 청중 여러분.
오늘 우리는 단지 정보의 소유권을 두고 다투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마지막 문을 지키느냐, 아니면 그 문을 영원히 잠그느냐를 결정하고 있습니다.
우리 측은 분명히 선언합니다: 개인의 잊힐 권리는 공공의 알 권리보다 우선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디지털 시대에 ‘기억’은 더 이상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폭력적인 감시 체제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첫째, 잊힐 권리는 인간 존엄의 핵심입니다.
철학자 하나 아렌트는 “과거를 끊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인간의 자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 번의 실수, 한 번의 오해, 심지어 사생활 사진 하나가 영원히 인터넷에 남아 인생 전체를 정의합니다. 과거를 끊을 수 없다면, 미래를 꿈꿀 자격도 사라집니다. 이는 단지 불편이 아니라, 존재 자체에 대한 침해입니다.
둘째, 디지털 기억은 비례 원칙을 무너뜨립니다.
형사소송법에는 ‘죄와 벌의 균형’이 있습니다. 그러나 온라인에서는 10년 전의 경미한 실수가 지금도 마치 현재 진행형 범죄처럼 확산됩니다. 유럽연합의 GDPR은 이미 ‘잊힐 권리’를 법제화했고, 구글만 해도 매년 수십만 건의 삭제 요청을 승인합니다. 이는 정보의 생명 주기를 인정하는 현대적 상식입니다.
셋째, 잊혀짐은 사회적 재통합의 문입니다.
청소년기의 실수로 취업이 거부되고, 자살 시도 후 살아남은 사람이 여전히 ‘자살자’로 불린다면, 우리는 누군가를 구원하려는 게 아니라, 낙인을 영구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알 권리가 피해자의 이름을 지키는 데 쓰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가해자의 회복 가능성을 차단하는 무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진정한 정의가 처벌이 아니라 회복에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누군가는 말할 겁니다. “그럼 진실이 사라지는 거 아니냐?” 하지만 우리가 지키려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과잉 노출된 진실이 만드는 폭력입니다.
잊힐 권리는 망각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할 기회를 허락하는 것입니다.
## 반대 측 개회 발언
감사합니다.
상대 팀은 ‘잊힐 권리’를 인간 존엄의 마지막 방패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묻고 싶습니다: 누구의 존엄입니까? 가해자의 것입니까, 피해자의 것입니까?
우리 측은 단호히 주장합니다: 공공의 알 권리는 개인의 잊힐 권리보다 우선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투명성 위에 서 있고, 역사의 교훈은 기억에서 나기 때문입니다.
첫째, 알 권리는 민주주의의 산소입니다.
언론의 자유, 정보 접근권, 감시 저널리즘—이 모든 것은 ‘알 권리’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만약 정치인이 과거 성추행 혐의를 ‘잊혀져야 할 개인사’라고 주장하며 삭제를 요구한다면, 유권자는 어떻게 판단합니까? 2016년 미국 대선 당시에도, 과거 발언들이 오늘의 리더십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습니다. 과거를 숨기는 순간, 민주주의는 눈먼 자가 됩니다.
둘째, 잊힐 권리는 권력자의 특권이 될 위험이 큽니다.
이미 전 세계에서 유명인, 기업인, 정치인들이 ‘잊힐 권리’를 악용해 부정적 보도를 삭제하고 있습니다. 반면, 일반 시민은 그런 법적 자원조차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권리는 정보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도구가 됩니다. 알 권리를 제한하면, 진실은 돈 많은 자들만의 사유물이 됩니다.
셋째, 기억은 피해자의 마지막 무기입니다.
메투(Metoo) 운동을 떠올려 보십시오. 수십 년간 침묵당했던 여성들이 ‘기억’을 통해 목소리를 냈습니다. 만약 그들의 증언이 ‘과거사’라며 삭제된다면, 우리는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고, 가해자를 보호하는 셈입니다. 잊혀짐은 가해자에게는 구원이지만, 피해자에게는 재차의 침묵 강요입니다.
상대 팀은 ‘다시 시작할 기회’를 말하지만,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누구를 위한 시작입니까?
진실을 숨긴 채 시작하는 사회는, 과거를 반복하는 사회입니다.
알 권리는 단지 정보가 아니라, 책임을 묻고, 정의를 실현하며, 역사를 바꾸는 힘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단호히 말합니다: 공공의 알 권리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민주주의를 지키는 유일한 길입니다.
# 개회 발언 반박
## 찬성 측 두 번째 발언자 반박
존경하는 심사위원님, 반대 팀 여러분.
상대 팀은 방금 ‘알 권리가 민주주의의 산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표현이죠. 하지만 그 산소가 독가스로 변질될 때, 우리는 여전히 그것을 마셔야 할까요?
상대 팀의 논리는 세 가지 치명적인 오류 위에 서 있습니다.
첫째, ‘잊힐 권리’를 ‘진실 은폐’로 동일시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누군가의 과거를 지우자는 게 아니라, 그 과거가 현재와 무관한데도 알고리즘과 클릭 장사에 의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것을 막자는 것입니다. 메투 운동은 피해자가 스스로 진실을 드러낸 것이지, 언론이나 포털이 10년 전 사건을 끌어내어 확산시킨 결과가 아닙니다. 오히려 오늘날 디지털 공간에서는 피해자조차도 자신의 이야기가 통제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게 과연 ‘알 권리’입니까? 아니면 정보 자본주의의 폭력입니까?
둘째, 알 권리를 절대적 가치로 설정하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권리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언론도 허위보도 시 처벌받고, 집회도 공공안전 앞에서는 제한됩니다. 그런데 왜 개인의 사생활과 존엄성만은 무제한 희생되어야 합니까? 만약 어떤 정치인이 20년 전에 정신건강 문제로 치료받았다면, 그것이 오늘 그의 정책 판단력과 관련이 없다면—그 정보를 굳이 공개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알아야 할 권리가 아니라, 알고 싶어 하는 호기심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닐까요?
셋째, 잊힐 권리가 권력자의 특권이 될 것이라 우려하셨지만,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구글의 데이터에 따르면, 잊힐 권리 요청의 70% 이상은 일반 시민, 특히 청소년, 여성, 소수자로부터 나옵니다. 반면 권력자들은 이미 PR 팀과 법률 자문을 통해 부정적 정보를 조용히 묻어버립니다. 오히려 알 권리가 무제한일수록, 정보 접근 능력이 없는 약자만이 폭로와 낙인의 희생양이 됩니다.
결국 상대 팀은 이상적인 알 권리를 말하지만, 우리는 현실 속에서 작동하는 디지털 감시 체제를 보고 있습니다.
잊힐 권리는 진실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마지막 보루입니다.
## 반대 측 두 번째 발언자 반박
감사합니다.
찬성 팀은 방금 ‘다시 시작할 기회’를 인권처럼 말하셨습니다. 하지만 제가 묻겠습니다: 그 ‘시작’이 다른 사람의 고통 위에 세워진다면, 그것은 시작이 아니라 탈출입니다.
찬성 측의 논리는 세 가지 면에서 현실을 외면합니다.
첫째, ‘비례 원칙’을 개인 중심으로만 해석하셨습니다.
형사소송에서 죄와 벌의 균형은 사회 전체의 정의 체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찬성 측은 마치 개인의 불편함만을 기준으로 정보의 생명 주기를 결정하려 합니다. 만약 어떤 교사가 아동 성범죄 전과가 있는데, 그 사실이 ‘오래됐다’는 이유로 삭제된다면—그는 또다시 아이들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이게 과연 사회적 재통합입니까, 아니면 재범의 초대장입니까?
둘째, GDPR을 이상화하셨지만, 그 실효성은 극히 제한적입니다.
유럽에서도 잊힐 권리 요청의 승인률은 40% 미만이며, 대부분은 이미 공익성이 인정된 정보에 대해 거부됩니다. 즉, 법조차도 공공의 알 권리가 개인의 편의보다 우선함을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찬성 측은 마치 모든 사람이 쉽게 ‘초록색 버튼 하나로 과거를 지울 수 있다’고 말하지만, 현실은 훨씬 복잡합니다.
셋째, 인간 존엄을 개인에게만 국한하셨습니다.
피해자의 존엄은 어디에 있습니까? 가해자가 ‘새 출발’을 위해 자신의 행위를 지우는 순간, 피해자는 자신의 고통조차 역사에서 삭제당한 채 침묵 강요를 받습니다. 메투 운동이 가능했던 건, 바로 기억이 공유되고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기억들이 ‘잊혀져야 할 과거’로 분류되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가해자를 신뢰했을 겁니다.
찬성 측은 “폭력적인 감시 체제”를 걱정하셨지만, 더 큰 폭력은 책임 없는 자유에서 옵니다.
민주주의는 완벽한 사람들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잘못을 기억하고 반복하지 않기 위한 제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단호히 말합니다:
알 권리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고통을 역사로 삼고, 진보를 만드는 유일한 길입니다.
# 질의응답
## 찬성 측 세 번째 발언자 질의
▶ 찬성 측 3번: 반대 팀 1번 발언자님께 질문드립니다
20년 전 한 시민이 우울증으로 병원 치료를 받은 기록이 오늘날 그의 교사 자격 심사에 영향을 줄 만큼 ‘공익적’이라고 보십니까?
만약 그렇다고 답하신다면, 그것은 ‘알 권리’가 아니라 병력에 대한 낙인을 정당화하는 차별이 아닐까요?
반대 측 1번 답변:
그 기록이 현재의 직무 수행 능력과 직접 관련이 없다면, 공개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누가 그 ‘무관함’을 판단하느냐가 문제입니다. 개인이 스스로 삭제를 요청하면, 사회는 그 판단을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제도적 투명성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 찬성 측 3번: 반대 팀 2번 발언자님께 질문드립니다
승인이 거부된 60% 중 상당수는 피해자나 소수자의 이름이 포함된 기사입니다. 예를 들어, 성폭력 생존자가 자신의 이름이 실린 기사를 삭제 요청했지만, ‘공익성’을 이유로 거부된 사례가 있습니다.
이 경우, ‘공익’이라는 이름 아래 피해자의 고통이 재생산되는 것을 귀측은 정당화하시겠습니까?
반대 측 2번 답변:
그런 사례가 있다면 유감스럽습니다. 하지만 개별 사례의 고통을 이유로 전체 알 권리 체계를 훼손해서는 안 됩니다. 대안은 정보 익명화나 접근 제한 등 다른 방식으로 해결해야지, 삭제라는 극단적 조치로는 안 됩니다.
▶ 찬성 측 3번: 반대 팀 4번 발언자님께 질문드립니다
메투 운동은 피해자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낸 결과였지, 언론이 20년 전 사건을 끌어내 확산시킨 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 정보까지 ‘알 권리’라며 강제로 노출하는 것은, 오히려 피해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 아닐까요?
반대 측 4번 답변:
피해자의 의사가 존중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가해자가 먼저 삭제를 요청하면, 피해자는 그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역사에서 지워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삭제’가 아닌 ‘공개 여부에 대한 공동 결정 구조’를 요구합니다.
✅ 찬성 측 질의 요약
반대 팀은 알 권리를 절대시하면서도, 실제로는 피해자와 약자의 고통을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희생시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제도적 투명성”을 말하지만, 그 투명성이 정보 접근 능력이 없는 이들에게는 폭력이 된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진실의 삭제가 아니라, 사람의 존엄을 지키는 정보 윤리의 재정립입니다.
## 반대 측 세 번째 발언자 질의
▶ 반대 측 3번: 찬성 팀 1번 발언자님께 질문드립니다
아동 성범죄 전과자가 자신의 과거를 삭제한 뒤 또다시 아동 관련 직업에 종사하는 경우, 그 ‘재통합’은 과연 사회 전체의 안전보다 우선될 수 있습니까?
찬성 측 1번 답변:
그런 중대한 범죄는 처음부터 잊힐 권리의 적용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의 주장은 경미한 과실, 사생활 침해, 혹은 이미 형벌을 받은 일반 범죄에 한합니다. 귀측은 극단적 사례로 일반적 권리를 왜곡하고 계십니다.
▶ 반대 측 3번: 찬성 팀 2번 발언자님께 질문드립니다
실제로 삭제된 정보 중 공직 후보자의 금전 스캔들, 기업의 환경 오염 기록 등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혹시 그 ‘일반 시민’ 속에 이미 PR 팀을 동원한 권력자들이 숨어 있지 않을까요?
찬성 측 2번 답변:
삭제 심사는 공익성, 시간 경과, 정보의 정확성을 종합적으로 판단합니다. 권력자의 악용 가능성은 모든 권리에 존재하는 리스크이며, 이를 이유로 약자의 마지막 방패를 빼앗는 것은 정의의 오류입니다.
▶ 반대 측 3번: 찬성 팀 4번 발언자님께 질문드립니다
만약 포털과 언론이 삭제 요청을 받아들여 정보를 가린다면, 결국 정보는 기업과 정부의 통제 아래 더욱 폐쇄적으로 운영되지 않을까요?
즉, 알 권리를 포기하는 순간, 진실은 소수의 손에만 남는 것이 아닐까요?
찬성 측 4번 답변: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삭제가 아니라, 맥락화와 접근 제한을 제안합니다. 예를 들어, 검색 결과에서 사라지더라도, 법원이나 언론사 아카이브에서는 열람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책임 있는 망각입니다.
✅ 반대 측 질의 요약
찬성 팀은 “경미한 실수”만을 이야기하지만, 현실에서는 중대한 위험을 동반하는 정보도 함께 삭제 요청됩니다.
또한 그들이 제안하는 ‘책임 있는 망각’은 운영 주체가 불투명해 오히려 정보 독점을 심화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알 권리를 제한하는 순간, 우리는 진실을 선택적으로 기억하는 사회, 즉 역사를 조작하는 사회로 향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억의 책임을 결코 내려놓을 수 없습니다.
# 자유 토론
[1] 찬성 1:
상대 팀은 “알 권리가 의무다”라고 하셨죠? 그런데요, 그 의무가 누군가의 삶을 영구히 가두는 도구가 된다면, 그건 의무가 아니라 디지털 처형입니다. 예를 들어, 10대 때 실수로 찍힌 사진이 20년 후 취업 면접에서 떠오르면—그건 과거를 기억하는 게 아니라, 미래를 납치하는 것 아닙니까?
[2] 반대 1: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만약 그 10대가 다른 아이를 괴롭혀 자살로 몰았던 가해자라면요? 그의 ‘새 출발’을 위해 피해자의 고통을 검색 결과에서 지워야 합니까? 찬성 측은 가해자의 미래만 보시는데, 피해자의 현재는 누가 지켜주나요?
[3] 찬성 2:
좋은 질문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이분법적이지 않아요. GDPR은 공익 정보는 삭제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건, 예를 들어 자살 시도 후 살아난 청년이 ‘자살 유서’라는 키워드로 계속 검색되는 상황이에요. 그건 공익이 아니라, 클릭 장사에 이용된 고통의 재생산입니다. 상대 팀은 왜 항상 극단적 범죄만을 상정하시나요?
[4] 반대 2:
왜냐하면 바로 그 ‘극단’이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찬성 측은 “맥락화”를 말하지만, 포털 알고리즘은 맥락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삭제 요청이 승인되면, 그 정보는 완전히 사라지는 게 아니라, 돈 있는 자들만 볼 수 있는 어두운 아카이브로 갑니다. 이게 평등한 망각입니까, 아니면 정보 계급제입니까?
[5] 찬성 3:
흥미롭네요. 상대 팀은 마치 일반 시민이 법적 자원 없이 포털에 맞설 수 있다고 믿으시는군요.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권력자는 PR 팀으로 부정적 기사를 묻고, 청소년은 한 번의 실수로 평생 낙인찍히죠. 잊힐 권리는 바로 이 불평등을 교정하는 도구입니다. 오히려 알 권리 무제한이야말로 특권층의 방패막이 아닌가요?
[6] 반대 3:
그럼 이렇게 물어보죠. 만약 어떤 유명인이 성폭행 혐의로 고소당했지만, 재판 전에 “잊혀져야 할 개인사”라며 기사 삭제를 요청한다면—그걸 승인해야 합니까? 찬성 측은 절차적 정의보다 감정적 회복을 우선하시나요? 민주주의는 ‘느낌’이 아니라, 투명한 절차 위에 서 있습니다.
[7] 찬성 4:
절차도 중요하지만, 그 절차가 피해자를 다시 고통스럽게 만든다면요? 디지털 시대엔 기사 하나가 평생 따라다니며 피해자의 이름을 더럽힙니다. 그래서 우리는 검색 결과에서 제거하되, 공공 아카이브엔 남기는 ‘선택적 망각’ 을 제안합니다. 이건 진실을 숨기는 게 아니라, 진실을 책임 있게 다루는 것입니다. 상대 팀은 왜 ‘삭제=은폐’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나요?
[8] 반대 4: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짚겠습니다. 찬성 측은 “책임 있는 망각”을 말하지만, 누가 그 책임을 판단합니까? 기업입니까? 정부입니까? 역사가 증명했듯, 기억을 통제하려는 자는 반드시 권력을 남용합니다. 우리는 과거를 지우는 대신, 과거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짜 회복입니다.
# 최종 발언
## 찬성 측 최종 발언
존경하는 심사위원님, 반대 팀, 그리고 이 자리에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께.
오늘 우리는 단지 ‘정보를 남길 것인가, 지울 것인가’를 논한 게 아닙니다.
우리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조건에 대해 묻고 있습니다.
반대 팀은 끊임없이 말했습니다. “기억하지 않으면 역사를 반복한다.”
하지만 제가 묻겠습니다: 누구의 역사입니까? 누구의 기억입니까?
디지털 시대의 기억은 더 이상 공동체의 집단적 성찰이 아닙니다.
그것은 알고리즘에 의해 증폭되고, 클릭 수익을 위해 왜곡되며, 한 개인의 삶 전체를 한 줄의 검색 결과로 환원합니다.
10년 전 실수 하나로 청년이 취업에서 거부당하고, 정신질환을 앓았던 사람이 여전히 ‘위험 인물’로 낙인찍히는 이 현실에서—
과연 우리가 지키고 있는 것은 ‘진실’입니까, 아니면 디지털 낙인 제도입니까?
우리 측은 결코 진실을 숨기자고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맥락 없는 정보 폭력에 저항하고, 공익과 무관한 사생활의 영구 노출에 제동을 걸자고 말한 것입니다.
GDPR이 인정하고, 유엔 인권 이사회가 권고하는 ‘잊힐 권리’는 특권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 인권의 기본 장치입니다.
반대 팀은 “피해자의 기억이 사라진다”고 우려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가 스스로 이야기를 꺼내는 것과,
포털 사이트가 15년 전 사건을 오늘의 헤드라인처럼 끌어올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우리가 제안하는 건 삭제가 아니라, 책임 있는 접근 제한—검색에서는 사라지되, 공공 기록은 남기고, 필요한 경우 법적 절차를 통해 열람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아렌트의 말을 다시 떠올려 보십시오: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위대한 자유는, 과거를 끊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 자유를 박탈당한 사회는,
과거의 그림자 속에서 미래를 포기한 사회입니다.
우리는 진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다만, 진실이 폭력이 되는 것을 거부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단호히 선언합니다:
개인의 잊힐 권리가 공공의 알 권리보다 우선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먼저이고, 정보는 그 뒤를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 반대 측 최종 발언
감사합니다.
찬성 팀은 방금 “사람이 먼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에 동의합니다. 정말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제가 묻고 싶습니다: 그 ‘사람’ 안에 피해자는 포함됩니까?
오늘 찬성 측은 가해자의 회복, 가해자의 존엄, 가해자의 새 출발을 위해
피해자의 고통을 ‘과잉 노출된 진실’이라 칭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세상에 진실을 말했을 때—
그건 ‘노출’이 아니라 저항이었고, 용기였으며, 역사의 전환점이었습니다.
메투 운동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성폭력을 ‘사생활 문제’로 치부했을 겁니다.
제2의 김학의 사건이 없었다면, 권력형 성범죄는 여전히 어둠 속에 묻혔을 겁니다.
이 모든 변화는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기억이 있었기에, 우리는 잘못된 구조를 고칠 수 있었습니다.
찬성 측은 “맥락 없는 정보 폭력”을 걱정하셨지만,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정보가 사라지는 순간, 맥락은 사라지고, 의심만 남습니다.
‘왜 그 정보가 삭제되었는가?’라는 질문 대신,
‘그 사람이 정말 그런 일을 했나?’라는 음모론이 번집니다.
투명성이 사라지면, 민주주의는 의심과 불신의 늪에 빠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잊힐 권리가 일반 시민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셨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법률 자문도 없고, PR 팀도 없는 청년은 자신의 과거 실수를 지울 수 없습니다.
하지만 돈과 권력이 있는 자들은 이미 사적인 협상과 법적 압박으로 부정적 정보를 조용히 지워왔습니다.
이제 그것을 제도화한다면,
정보의 불평등은 법으로 보장된 특권이 됩니다.
우리는 완벽한 사회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잘못을 기억하고, 책임을 묻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사회를 원합니다.
알 권리는 편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근육입니다.
근육을 쓰지 않으면, 우리는 곧 쓰러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공공의 알 권리가 개인의 잊힐 권리보다 우선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진실을 마주할 용기 있는 사회만이, 진정한 회복과 정의를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