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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재건축 시 원주민 재정착률을 의무화해야 하는가?

개회 발언

찬성 측 개회 발언

존경하는 심사위원 여러분, 그리고 오늘 이 중요한 토론에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우리가 다루는 문제는 단순히 ‘집을 새로 짓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누가 이 도시에 계속 살 자격이 있는가, 누구의 삶이 개발의 이름 아래 사라져도 좋은가를 묻는, 시민권과 존엄에 관한 근본적 질문입니다.

우리 측은 재개발·재건축 시 원주민 재정착률을 법적으로 의무화해야 한다고 분명히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도시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며, 그 사람들의 기억과 관계, 역사가 바로 도시의 정체성이기 때문입니다.

첫째, 사회적 정의와 평등의 실현을 위해서입니다.
재건축은 종종 ‘업그레이드’라 불리지만, 실상은 약자의 퇴거와 강자의 진입입니다. 서울 강남의 한 재건축 단지에서는 원주민 재정착률이 고작 8%에 불과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시장 논리가 아니라, 경제력에 따른 거주권 박탈입니다. 의무화는 이런 구조적 불평등을 바로잡는 최소한의 안전망입니다.

둘째, 지역 공동체와 사회적 자본의 보호를 위해서입니다.
노인들은 새 아파트에 가도 이웃을 몰라 외롭고, 아이들은 친구들과 헤어져 학교를 옮깁니다. 연구에 따르면, 원주민 재정착률이 높은 지역일수록 범죄율은 낮고, 이웃 간 신뢰는 높습니다. 도시는 콘크리트 덩어리가 아니라 관계의 그물망입니다. 그 그물을 끊어버리는 개발은 진정한 발전이 아닙니다.

셋째, 개발 이익의 공정한 환원을 위해서입니다.
재건축으로 인한 용적률 상향, 땅값 급등은 공공 인프라와 행정 지원 덕분에 가능합니다. 그런데 그 이익은 민간 시행사와 투기 자본에게만 돌아갑니다. 원주민에게는 ‘살던 데 못 돌아온다’는 통보만 날아오죠. 의무화는 이 공동체가 만든 가치를 공동체가 나누는 정의의 실현입니다.

누군가는 말할 것입니다. “비용이 오르고 사업이 지연된다”고. 그러나 우리는 이미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공분양 비율 확대, 재정착 지원금, 세제 인센티브—이 모든 것은 의지의 문제이지, 기술의 문제가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우리가 만들고 싶은 도시는, 빛나는 유리벽 뒤에 외로운 사람이 사는 도시인가요?
아니면, 낡았지만 따뜻한 이웃이 있는 동네인가요?

우리 측은 후자를 선택합니다. 그래서 원주민 재정착률 의무화를 주장합니다.


반대 측 개회 발언

감사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 팀은 한 가지를 분명히 하고자 합니다: 좋은 의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재개발·재건축 시 원주민 재정착률을 의무화하는 것은, 듣기에는 정의롭고 따뜻해 보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의무화는 오히려 원주민을 포함한 모든 시민에게 해를 끼치는 잘못된 정책입니다. 따라서 우리 측은 반대합니다.

첫째, 시장 자율성과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입니다.
재건축은 사유재산을 기반으로 한 민간 사업입니다.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결정하는 사안인데, 국가가 특정 비율을 강제하는 것은 계약의 자유와 재산권에 대한 과도한 개입입니다. 누군가 “너는 반드시 이 집에 돌아와야 해”라고 강요받는다면, 그것은 배려가 아니라 강제입니다.

둘째, 재건축 사업 자체를 위축시켜 주거난을 악화시킵니다.
의무화는 비용 증가와 리스크 확대로 이어집니다. 예를 들어, 서울 송파구의 한 조합은 재정착률 30% 의무화 시뮬레이션 결과, 분양가가 ㎡당 3천만 원 이상 오른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는 청년과 신혼부부가 아예 접근할 수 없는 주거를 만듭니다. 결국, 원주민도, 무주택자도 모두 피해를 보는 제로섬 게임이 됩니다.

셋째, 형평성의 원칙에 어긋납니다.
왜 원주민만 특별한 권리를 가져야 합니까? 지금 서울에는 월세 100만 원짜리 반지하에서 사는 젊은이들이 수십만 명입니다. 그들은 ‘원주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재건축의 혜택에서 완전히 배제됩니다. 거주 기간이 권리의 근거가 되는 순간, 우리는 또 다른 차별을 만드는 것입니다.

물론, 원주민의 고통은 공감합니다. 하지만 해결책은 의무화가 아니라 유인 제공입니다.
예를 들어, 재정착을 원하는 원주민에게 우선 분양권을 주거나, 임시 주거비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강제가 아닌 설득, 명령이 아닌 협력—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의 길입니다.

결국, 도시는 변화 속에서 균형을 잡아야 살아남습니다.
낡은 것을 모두 붙들고 있으면, 새로운 것을 품을 공간이 없습니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도시는 과거에 묶인 도시가 아니라, 미래를 향해 열린 도시입니다.

그래서 우리 측은, 원주민 재정착률 의무화에 단호히 반대합니다.


개회 발언 반박

찬성 측 두 번째 발언자 반박

존경하는 심사위원 여러분, 방금 반대 측 첫 번째 발언자는 “좋은 의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낳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덧붙이자면—나쁜 무관심은 반드시 나쁜 결과를 낳는다는 점입니다.

반대 측은 오늘 세 가지 주장을 펼쳤습니다.
첫째, 의무화는 시장 자율성을 침해한다.
둘째, 사업이 위축되어 주거난이 악화된다.
셋째, 원주민에게만 특권을 주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

하지만 이 모든 주장은 현실을 외면한 이론적 허공 위에 세워진 성채입니다.

1. “민간 사업”이라는 신화를 깨야 합니다

반대 측은 재건축을 마치 조합원들끼리만 돈을 모아 짓는 ‘사적 파티’처럼 묘사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합니까?
서울시는 지난 10년간 재건축 단지에 도로 확장, 하수도 정비, 학교 신설 등 수조 원의 공공 예산을 투입했습니다.
국토부는 용적률을 200% 넘게 완화해 주었고, 이로 인해 시행사와 조합원은 수십 배의 개발 이익을 얻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공공의 배려 덕분입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건 우리끼리 하는 일”이라며 공공의 책임을 외면하는 것은,
마치 국민 세금으로 공부한 사람이 취업 후 ‘나는 국가와 아무 상관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2. “비용 증가”는 선택의 문제, 필연이 아닙니다

송파구 사례를 들며 “분양가가 ㎡당 3천만 원 오른다”고 하셨죠.
하지만 그 시뮬레이션은 의무화를 최악의 조건으로 설정한 가정입니다.
우리가 제안하는 것은 일괄 50% 의무화가 아니라, 소득 수준·거주 기간·노령 여부 등을 고려한 단계적·선택적 의무화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입니다.
서울시는 이미 ‘공공분양 20%’를 통해 저소득 원주민을 보호하고 있고,
경기도는 재정착 지원금을 최대 1억 원까지 지급합니다.
이것은 시장 실패를 보완하는 공공의 역할이지, 시장 침해가 아닙니다.

3. “형평성”이라는 이름의 가짜 대립

반대 측은 “월세 100만 원 반지하 청년”을 내세우며 원주민과 청년을 대립시켰습니다.
하지만 이는 정책을 제로섬 게임으로 몰아가는 위험한 프레임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정의는 “원주민만 살리자”가 아니라,
개발로 피해를 본 이들에게 최소한의 복귀권을 보장하자는 것입니다.
청년 주거 문제는 별도의 주택 공급 확대 정책으로 해결해야지,
원주민의 권리를 박탈함으로써 해결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하겠습니다.
반대 측은 “강제가 아닌 설득”을 말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설득’은 어떤 결과를 낳았습니까?
8% 재정착률, 노인들의 자살, 아이들의 학교 중도 탈락
이것이 바로 자율에 맡긴 ‘설득’의 실체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감정적 호소가 아니라, 제도적 보장을 요구합니다.
그래야만 도시는 사람을 위한 공간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반대 측 두 번째 발언자 반박

감사합니다.

방금 찬성 측 두 번째 발언자는 열정적으로 “공공이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열정 뒤에는 세 가지 치명적인 오해가 숨어 있습니다.

1. “재정착 = 존엄”인가? 오히려 강제는 폭력이다

찬성 측은 원주민이 돌아오는 것을 ‘존엄의 회복’이라 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원주민이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 조사에 따르면, 60세 이상 원주민 중 40%는 “새로운 지역에서 조용히 살고 싶다”고 답했습니다.

이들에게 “너는 반드시 돌아와야 해”라고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자유를 빙자한 또 다른 폭력입니다.
존엄은 ‘살던 데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삶의 방식을 선택할 권리에 있습니다.

2. “공동체”는 낭만적 허상일 수 있다

찬성 측은 “관계의 그물망”을 강조하며, 재건축이 공동체를 파괴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현대 도시는 이미 초연결 사회입니다.
카카오톡 동창방, 네이버 카페, 지역 커뮤니티 앱—
이웃은 더 이상 ‘옆집 문’ 너머에 있지 않습니다.

오려 낡은 물리적 공간에 매달리는 것이 관계를 가두는 것일 수 있습니다.
도시는 변화 속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유기체입니다.
낡은 것을 붙들고 있으면, 새로운 생명이 들어설 틈이 없습니다.

3. “개발 이익 = 공공 덕”이라는 인과 오류

찬성 측은 “용적률 완화는 공공 덕분”이라 했습니다.
하지만 잊지 마십시오—공공이 용적률을 완화한 이유는 민간의 투자와 리스크 부담이 있기 때문입니다.

재건축 조합은 수년간 소송, 주민 갈등, 자금 조달 리스크를 감수합니다.
공공은 단지 규제 완화를 통해 유인을 제공했을 뿐,
직접 건물을 짓지도, 돈을 대지도 않았습니다.

이익의 원천은 민간의 노력과 자본입니다.
그 이익을 ‘공동체 가치’라는 이름으로 강제 환수하는 것은,
기업가 정신을 억누르는 반시장적 발상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이미 있는 대안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찬성 측은 “의무화가 유일한 해결책”처럼 말하지만,
이미 재정착 희망자 우선 분양, 임시 주거비 지원, 세제 감면 등의 유인책이 운영 중입니다.

이것이 충분하지 않다면, 제도를 개선하면 됩니다.
굳이 강제와 처벌으로 사람의 자유를 옥죄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도시는 살아 있는 유기체입니다.
과거를 기억하되, 미래를 향해 열려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낡은 벽돌이 아니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시민의 권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한번 분명히 선언합니다.
원주민 재정착률 의무화는 반대입니다.


질의응답

찬성 측 세 번째 발언자 질의

질문 1 (반대 측 1번)

찬성 측 3번:
“반대 측 첫 번째 발언자님께 묻겠습니다.
귀측은 ‘재건축은 민간 자율 사업이므로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러나 용적률 완화, 도로 확장, 학교 신설 등 수조 원 규모의 공공 인프라 투입 없이는 재건축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이처럼 공공이 개발 이익의 기반을 제공했다면, 그 이익을 원주민에게도 일정 부분 돌려주는 것이 정의인지, 아니면 강제인지, 분명히 답해 주시겠습니까?”

반대 측 1번:
“공공 지원이 있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 지원은 전체 시민을 위한 것이지, 특정 개인에게 ‘무상 복귀권’을 주는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개발 이익은 민간 시행사가 리스크를 감수하고 창출한 결과입니다.
따라서 이익 환원은 보조금이나 지원금 형태로 이루어져야지, 거주 공간 자체를 강제 배정하는 것은 과도합니다.”


질문 2 (반대 측 2번)

찬성 측 3번:
“반대 측 두 번째 발언자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귀측은 ‘의무화가 재건축을 위축시켜 청년 주거난을 악화시킨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현재 서울의 재건축 단지 중 원주민 재정착률이 10% 미만인 곳이 78%입니다.
이미 자율 시장에서 원주민은 사라졌고, 새 아파트는 고가 분양으로 청년도 접근하지 못합니다.
즉, 의무화가 없어도 이미 제로섬 게임인데, 이 현실을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반대 측 2번:
“그 통계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원인은 의무화 부재가 아니라, 주택 공급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의무화는 공급을 더 줄이는 방향으로 작용합니다.
우리는 원주민과 청년을 대립시키자는 것이 아니라, 공급 확대를 통해 모두를 살릴 수 있는 길을 제안합니다.”


질문 3 (반대 측 4번)

찬성 측 3번:
“마지막으로, 반대 측 네 번째 발언자님께 묻겠습니다.
귀측은 ‘모든 원주민이 돌아가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경제적 여건 때문에 ‘돌아가고 싶지만 못 가는’ 원주민과, ‘처음부터 갈 생각 없는’ 원주민을 구분할 수 있는 제도가 현재 존재합니까?
만약 없다면, 자율 선택이라는 이름 아래 실질적 배제가 계속되는 것 아닌지요?”

반대 측 4번:
“…현재 그런 세분화된 제도는 없습니다.
하지만 의무화는 그 차이를 무시한 채 모든 원주민에게 동일한 권리를 강제하므로, 오히려 더 큰 불공정을 낳습니다.
우리는 개별 의사와 능력을 존중하는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찬성 측 질의 요약

반대 측의 답변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공공 기여는 인정하지만, 이익 환원은 현금 지원만 인정하고 주거권은 배제합니다.
둘째, 재건축 위축의 책임을 의무화에 전가하지만, 자율 시장에서도 이미 대부분의 시민이 소외되고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셋째, 원주민의 다양성을 강조하면서도, 이를 반영하는 구체적 제도는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자율’이라는 명분 아래 구조적 불평등을 방치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우리는 의무화를 통한 최소한의 제도적 보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합니다.


반대 측 세 번째 발언자 질의

질문 1 (찬성 측 1번)

반대 측 3번:
“찬성 측 첫 번째 발언자님께 질문하겠습니다.
귀측은 ‘원주민 재정착은 사회적 정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10년 전에 이사 온 사람과 30년 전에 온 사람, 둘 다 원주민이라면, 누가 더 ‘정의롭게’ 돌아가야 합니까?
혹시 거주 기간이 길수록 더 큰 권리를 갖는다는 말씀이신가요?”

찬성 측 1번:
“좋은 질문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원주민’은 단순히 오래 산 사람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를 구성해 온 구성원을 의미합니다.
물론 세부 기준은 거주 기간, 소득 수준, 연령, 사회적 관계망 등을 종합해 법제화할 수 있습니다.
핵심은 무조건적인 특혜가 아니라, 정의에 기반한 우선권입니다.”


질문 2 (찬성 측 2번)

반대 측 3번:
“찬성 측 두 번째 발언자님께 묻겠습니다.
귀측은 ‘공동체는 물리적 공간에 기반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디지털 커뮤니티, SNS, 동창회, 종교 모임 등으로도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오늘날,
굳이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아야만 공동체가 유지된다고 보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찬성 측 2번:
“물론 온라인 관계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노인의 경우, 매일 아침 인사 나누는 이웃이 자살 예방의 핵심입니다.
서울시 연구에 따르면, 재건축 후 이주한 노인의 우울증 발생률이 2.3배 증가했습니다.
온라인은 연결이지만, 일상의 물리적 접촉은 생명줄입니다.
그것을 ‘낡은 사고’라 치부하는 것은 인간의 사회성을 과소평가하는 것입니다.”


질문 3 (찬성 측 4번)

반대 측 3번:
“마지막으로, 찬성 측 네 번째 발언자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귀측은 ‘단계적 의무화로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의무화 비율을 몇 %로 설정하시겠습니까?
그 기준이 시장 수용 가능선을 넘어서면, 결국 사업이 무산되어 원주민도, 청년도 아무도 혜택을 못 받는 상황이 오지 않겠습니까?”

찬성 측 4번:
“우리는 일률적 비율이 아니라, 지역별·소득별 조건부 의무화를 제안합니다.
예를 들어, 기초생활수급자에게는 100% 재정착권을 보장하되, 고소득자는 일반 분양과 동일하게 적용하는 방식입니다.
이미 싱가포르와 프랑스는 이런 계층별 재정착 제도를 성공적으로 운영 중입니다.
비용 문제는 공공임대 물량 연계, 세제 인센티브, LH 직접 시행 등을 통해 해결 가능합니다.
의무화는 벽이 아니라, 다리입니다.”


반대 측 질의 요약

찬성 측의 답변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정의’라는 개념을 거주 기간과 사회적 기여도로 구체화하려 했지만, 이는 새로운 차별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 공동체를 물리적 공간에만 국한시키며, 디지털 시대의 유연한 관계 맺기를 무시했습니다.
셋째, 단계적 의무화를 주장했지만, 구체적 비율은 회피했고, 외국 사례는 한국의 민간 중심 재건축 구조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이는 이상적인 정의를 추구하지만, 실행 가능성과 시장 역학을 간과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진정한 해결은 강제가 아닌, 모두가 선택할 수 있는 주거 다양성에서 나와야 합니다.


자유 토론

찬성 1번:
“반대 측은 ‘강제는 폭력’이라고 하셨죠? 그런데 지금처럼 자율에 맡기면, 8%만 돌아오는 게 현실입니다. 그 92%는 ‘자발적으로 떠난’ 게 아니라, 분양가가 3억 오르니까 어쩔 수 없이 떠난 겁니다. 이게 진짜 폭력 아닐까요? 의무화는 강제가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반대 1번: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모든 원주민이 돌아가고 싶어 하나요? 저희가 만난 70대 할머니는 ‘새 아파트 계단도 못 오르겠다’며 오히려 이사 가셨습니다. ‘돌아올 권리’를 강제하면, 돌아가고 싶지 않은 사람까지 붙들어 매는 꼴이 됩니다. 자유란 ‘안 갈 자유’도 포함됩니다.”

찬성 2번:
“정말로요? 그런데 통계를 보세요.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원주민의 68%가 ‘재정착을 원하지만 비용 때문에 포기했다’고 답했습니다. 반대 측이 말하는 ‘자유 선택’은, 돈이 없어서 선택조차 못 하는 사람들의 침묵 위에 세워진 환상입니다. 우리가 의무화하자는 건, 이 침묵을 깨는 일입니다.”

반대 2번:
“그러면 또 묻죠. 그 68%를 위해 나머지 32%의 자유를 제한해도 되는 겁니까? 더 큰 문제는, 의무화로 인해 재건축 자체가 안 되면, 누구도 새 집에 못 들어갑니다. 송파구에서는 이미 3개 조합이 해산했어요. 청년은 여전히 월세 반지하, 원주민은 낡은 집에서 노후화—누구도 이기지 않는 구조죠.”

찬성 3번:
“재미있는 말씀이네요. 그런데 반대 측은 ‘재건축이 안 된다’고 하시지만, 싱가포르는 재정착률 85% 이상을 유지하면서도 아시아 최고의 주택 공급률을 자랑합니다. 어떻게요? 공공이 개입해서 민간과 협력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못 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의지가 없을 뿐이죠.”

반대 3번:
“싱가포르는 전체 토지를 국가가 소유한 특수 사례입니다. 한국은 사유재산제 국가예요. 게다가 공공이 개입하면 결국 세금으로 메웁니다. 그러면 또 누가 부담하나요? 월세 내는 청년들이죠. 원주민과 청년을 대립시키는 게 아니라, 모두를 위한 주택 공급 확대가 우선입니다.”

찬성 4번:
“청년과 원주민을 대립시키는 건 오히려 반대 측 아닙니까? 재건축으로 올라간 용적률 덕분에 나오는 수익은 연 5조 원입니다. 이 중 10%만 원주민 재정착에 쓰면, 청년 전용 공공분양도 늘릴 수 있습니다. 문제는 돈이 아니라, 이익을 누가 가져가는지입니다. 지금은 시행사와 투기꾼이 다 가져가죠.”

반대 4번:
“그럼 이렇게 물어보죠. ‘의무화’라는 이름으로, 한 개인의 재산권을 얼마나 제한할 수 있을까요? 만약 제가 내 땅에 내 돈 들여 집을 짓는데, 국가가 ‘네 이웃 30%는 반드시 네 집에 살아야 한다’고 하면,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 계획경제입니다. 우리는 시장 속에서의 공정함을 추구해야지, 시장 자체를 무력화해서는 안 됩니다.”

찬성 1번 (재공격):
“시장 속에서의 공정함이라면, 왜 시장은 8%밖에 안 돌려보내죠? 시장은 약자를 배제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도시는 사람을 위한 공간인데, 지금은 투기 자본을 위한 공간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완전한 평등’이 아니라, 최소한의 존엄—‘살던 동네에 다시 살 수 있는 권리’입니다.”

반대 1번 (마무리 반격):
“존엄이라면, 강제로 묶이는 것도 존엄한가요? 진짜 존엄은 선택의 자유에 있습니다. 정부는 유인을 제공하되, 결정은 시민에게 맡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좋은 의도로 시작한 정책이, 결국 모두를 가두는 새장이 될 겁니다.”


최종 발언

찬성 측 최종 발언

존경하는 심사위원님,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가 한 번도 흔들리지 않고 주장해 온 것은 단 하나입니다.
“도시는 사람이 만든다. 그리고 그 사람은 떠나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세 가지 이유로 원주민 재정착률 의무화를 요구했습니다.
첫째, 경제력에 따라 거주권이 박탈되는 불의를 막기 위해.
둘째, 노인의 외로운 죽음과 아이들의 이별을 막는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셋째, 공공이 만든 개발 이익을 민간만 돕게 두지 않기 위해.

반대 측은 말합니다. “강제는 폭력이다”, “청년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묻겠습니다.
‘돌아가고 싶지만 못 가는’ 사람에게 선택권이 있습니까?
‘원주민 vs 청년’이라는 대립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바로 시장이 만든 구조적 배제입니다.
우리가 제안하는 의무화는 모든 원주민을 억지로 붙드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고 싶은 이들에게 문을 열어주는 최소한의 정의입니다.

싱가포르는 재정착률 80%를 달성했습니다. 프랑스는 ‘사회적 혼합’을 법으로 보장합니다.
그들은 도시를 콘크리트 덩어리가 아니라, 인간의 삶의 연속성으로 봅니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단지 의지가 있는가, 정의를 실천할 용기가 있는가의 문제일 뿐입니다.

오늘 우리가 선택하는 것은 단순한 정책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도시에 살고 싶은지에 대한 선언입니다.
낡은 담벼락 뒤에 웃는 이웃이 있는 도시.
낯선 고층빌딩 속 외로운 그림자가 아닌,
함께 나이 들어가는 따뜻한 공동체를 택할 것인지—
그 선택은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확신합니다.
재정착률 의무화는 강제가 아니라, 회복입니다.
잃어버린 정의를 되찾는, 인간다운 도시를 만드는 첫걸음입니다.


반대 측 최종 발언

감사합니다.

오늘 찬성 측은 ‘정의’와 ‘공동체’라는 아름다운 단어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좋은 말이 좋은 정책을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은 이상보다 복잡합니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딱 하나입니다.
의무화가 오히려 원주민을 포함한 모든 시민에게 해를 끼친다는 사실입니다.
재건축이 무산되면, 집을 기다리는 청년은?
비용이 폭등하면, 중산층 가정은?
그리고 정말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노인은—왜 국가가 그의 삶을 대신 결정합니까?

우리는 결코 원주민의 고통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나은 해결책을 제안했습니다:
우선 분양, 임시 주거비 지원, 세제 혜택—
강제가 아닌 유인, 명령이 아닌 설득으로 말입니다.

또 한 가지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공공 인프라는 모든 시민을 위한 것이지,
특정 개인에게 무상 주거권을 줄 근거가 아닙니다.
개발의 리스크와 자본은 민간이 감당했습니다.
그 성과를 어떻게 분배할지는 시장과 조합원의 자율적 합의여야 합니다.

도시는 살아 있는 유기체입니다.
변화를 두려워하면, 미래를 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도시는
과거에 묶인 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입니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정의란 무엇입니까?
한 집단에게 특권을 주는 것입니까?
아니면, 모든 시민에게 동등한 기회와 자유를 보장하는 것입니까?

우리의 답은 명확합니다.
강제가 아닌 자유,
배제가 아닌 포용,
이념이 아닌 현실
그 위에 서야 진짜 정의로운 도시가 탄생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단호히 말합니다.
원주민 재정착률 의무화에 반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