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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연령을 만 16세로 낮춰야 하는가?

개회 발언

찬성 측 개회 발언

존경하는 심사위원님, 상대 팀, 그리고 이 토론장을 지켜보시는 모든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우리 팀은 선거 연령을 만 16세로 낮춰야 한다고 단호히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모든 시민의 목소리’를 담아야 진정한 민주주의이기 때문입니다.

첫째, 16세는 이미 정치적 판단 능력을 갖춘 시민입니다.
오늘날 16세 청소년은 고등학교에서 사회, 역사, 정치제도를 배우고, 기후 위기, 교육 정책, 디지털 권리 등 복잡한 사회 문제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스웨덴, 오스트리아, 아르헨티나 등 이미 20개 이상의 국가가 16세 투표권을 인정했습니다. 그 결과, 청소년의 정치 참여율은 오히려 성인보다 높았고, 정책 결정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둘째, 민주주의는 확장되어야 할 권리지, 성년의 특권이 아닙니다.
투표권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시민으로서의 존엄을 표현하는 수단입니다. 16세 청소년은 세금을 내고(간접세 포함), 법의 구속을 받으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의 삶을 결정하는 정책—교육, 환경, 일자리—에 대해 한 표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셋째, 청소년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함으로써 미래 지향적인 민주주의를 만들 수 있습니다.
기후 위기, 디지털 격차, 교육 불평등—이 모든 문제는 오늘의 청소년이 가장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가장 오래 감당해야 할 과제입니다. 그들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때, 정책은 더 공정하고 지속 가능해집니다. 투표는 단지 선택이 아니라, 책임 있는 시민으로 성장하는 첫걸음입니다.

마지막으로, 누군가는 “16세는 아직 미성숙하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묻겠습니다.
“누구에게 성숙함을 요구합니까? 투표를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정치적 성숙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역설 아닙니까?”
투표는 교육받는 것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 배우는 권리입니다.
우리는 16세에게 투표권을 줌으로써, 그들이 우리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반대 측 개회 발언

존경하는 심사위원님, 찬성 팀, 그리고 이 자리를 함께하는 모든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우리 팀은 선거 연령을 만 16세로 낮추어서는 안 된다고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투표는 단순한 권리가 아니라, 깊은 성찰과 책임을 수반하는 정치적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첫째, 16세는 아직 인지적·정서적으로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습니다.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전두엽—즉, 판단력, 충동 조절, 장기적 사고를 담당하는 부위—는 평균적으로 25세까지 발달합니다. 16세는 여전히 정체성 탐색 단계에 있으며, 외부 자극에 쉽게 휘둘릴 수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투표를 맡기는 것은 위험천만한 실험입니다.

둘째, 청소년은 정치적 조작과 선동에 취약합니다.
SNS 알고리즘, 감정적 메시지, 유명인의 영향력은 16세에게 엄청난 파급력을 가집니다. 실제로 일부 국가에서는 청소년 투표권 도입 후, 특정 이념 집단이 학교 현장을 정치적 선전장으로 변질시키는 사례가 보고되었습니다. 교육의 중립성과 학생의 자유로운 사고가 침해될 위험이 큽니다.

셋째, 권리와 책임은 항상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16세는 아직 형사처벌 면제, 계약 무효, 음주·흡연 금지 등 법적으로 ‘보호 대상’입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투표권만 성인 수준으로 부여하는 것은 이중 잣대입니다. 투표는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그에 걸맞은 성숙과 책임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청소년의 정치 참여를 막자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시뮬레이션 투표, 학생 의회, 시민 교육 강화 같은 대안을 통해, 그들이 성년이 되었을 때 더 현명한 유권자로 성장하도록 돕자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속도가 아니라 깊이입니다.
우리는 아직 준비되지 않은 어깨에 국가의 미래를 맡길 수 없습니다.


개회 발언 반박

찬성 측 두 번째 발언자 반박

존경하는 심사위원님, 방금 반대 팀은 “16세는 아직 성숙하지 않았다”, “조작에 취약하다”, “책임과 권리가 불일치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주장은 선입견 위에 세워진 모래성입니다.

첫째, ‘전두엽이 25세까지 안 자란다’는 과학을 정치적 배제의 도구로 삼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 논리를 따른다면, 24세 이하 모든 청년은 투표권이 없어야 하며, 운전면허, 군 복무, 대학 진학도 금지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18세는 이미 국가를 위해 총을 들고, 법정에서 증언하며, 사회의 한 축으로 살아갑니다.
성숙은 이진법이 아닙니다. ‘완전히 성숙’하거나 ‘전혀 미성숙’하거나가 아니라, 점진적 성장의 과정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과정 속에서 투표를 경험하게 해야, 진정한 시민이 됩니다.

둘째, 청소년이 선동에 취약하다는 주장은 성인 유권자를 과대평가한 것입니다.
지난 대선에서 성인들은 SNS 알고리즘에 휘둘려 가짜 뉴스를 공유하고, 감정적 슬로건에 열광했습니다. 16세가 유명인의 말에 감동받는다면, 성인은 유튜버의 ‘팩트 체크’ 영상 하나로 투표를 바꿉니다.
취약성은 연령 문제가 아니라 미디어 리터러시의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투표권을 박탈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연령층에 걸친 시민교육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셋째, ‘책임 없는 권리’라는 프레임은 사실관계를 왜곡합니다.
16세는 학교 폭력 가해 시 형사처벌 대상이 되었고, 스쿨미투 운동에서는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지키며 사회적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더욱이, 투표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가 아닙니다. 계약이나 음주는 개인의 행동이 타인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치기에 제한됩니다. 하지만 투표는 내 생각을 표현하는 자유이며, 그 자체로는 아무도 해치지 않습니다.
따라서 투표권은 ‘보호’가 아니라 ‘포함’의 문제입니다.

마지막으로, 반대 팀은 “시뮬레이션 투표로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운동장에서 연습만 하게 하고, 경기에는 절대 출전시키지 않는다면, 누가 진짜 선수가 될 수 있겠습니까?
민주주의는 관람용 스포츠가 아닙니다. 실전에서만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16세에게 그 실전의 기회를 줘야 합니다.


반대 측 두 번째 발언자 반박

찬성 팀은 감동적인 이야기와 이상적인 비전을 제시하셨습니다.
하지만 감동은 정책이 되지 못하며, 이상은 제도가 되지 않습니다.

첫째, 해외 사례를 무비판적으로 인용하셨습니다.
오스트리아나 아르헨티나가 16세 투표를 시행했다고 해서, 그것이 한국에 자동으로 적용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오스트리아는 연방제 하에서 지방선거에 한해 16세 투표를 허용했고, 그 효과는 여전히 학계에서 논쟁 중입니다.
더욱이, 한국은 극심한 정치 양극화와 정보 혼란 속에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판단력이 정립되지 않은 청소년을 투표장에 내보내는 것은, 마치 폭풍우 속에 처음 배우는 아이에게 노를 쥐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둘째, “간접세를 내니 투표권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는 치명적 결함이 있습니다.
유아도 물티슈를 사면 부가세를 냅니다. 외국인도 커피를 사면 소비세를 냅니다. 그렇다고 유아나 외국인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세금 납부는 투표권의 필요조건이 아니라, 시민 자격의 결과물입니다.
투표권은 단순한 ‘이익 관련성’이 아니라, 국가 공동체에 대한 정체성과 책임 의식을 전제로 합니다. 16세가 그것을 갖췄다고 단정할 수 있습니까?

셋째, “투표로 정치를 배운다”는 주장은 위험한 순환논리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운전면허 없이 차를 몰면, 사고가 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고 “사고를 겪어봐야 운전을 배운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민주주의는 실험실이 아닙니다.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이 국가 전체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육을 먼저, 실천은 그 다음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학생 의회, 모의국회, 지역 정책 제안 활동—이 모든 것이 투표 이전의 ‘면허시험’입니다.

마지막으로, 찬성 팀은 “누구에게 성숙함을 요구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우리의 답은 명확합니다.
투표권을 행사하는 모든 이에게 성숙함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16세는 아직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민주주의는 열정이 아니라 책임으로 움직입니다.
우리는 그 책임을, 아직 준비되지 않은 어깨에 얹을 수 없습니다.


질의응답

찬성 측 세 번째 발언자 질의

<질문 및 답변>

찬성 측 3번:
“반대 측 첫 번째 발언자님께 묻겠습니다. 귀측은 ‘16세는 전두엽이 덜 발달해 판단력이 부족하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전두엽이 완전히 발달한 25세 이하 성인—예컨대 19세나 22세—의 투표권도 제한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되지 않습니까? 아니면, 귀측은 단지 ‘18세’라는 행정적 기준을 성숙의 기준으로 삼고 계신 건가요?”

반대 측 1번:
“뇌과학적 성숙은 점진적 과정입니다. 그러나 18세는 법적으로 성년으로 인정받으며, 고등교육·군복무·계약 등 사회적 책임을 본격적으로 수행하는 시점입니다. 16세는 여전히 보호와 교육의 대상이며, 그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은 책임 없는 권한 부여입니다.”


찬성 측 3번:
“반대 측 두 번째 발언자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귀측은 ‘청소년이 SNS 알고리즘에 쉽게 휘둘린다’고 우려하셨습니다. 그런데 최근 선거에서 성인 유권자들도 가짜뉴스와 감정적 메시지에 동조한 사례가 많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연령이 아니라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부재 때문이 아닐까요? 모든 연령층에 걸쳐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더 근본적인 해결책 아닌가요?”

반대 측 2번:
“물론 미디어 리터러시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16세는 비판적 사고 능력이 아직 형성 중이기에, 동일한 정보라도 성인보다 더 취약합니다. 예방적 차원에서 투표 연령을 유지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찬성 측 3번:
“마지막으로, 반대 측 네 번째 발언자님께 묻겠습니다. 귀측은 ‘시뮬레이션 투표로 충분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만약 학교에서 모의 결혼식만 하라고 하고, 실제 결혼은 25세부터 허용한다고 한다면, 그게 진짜 사랑을 배우는 길일까요? 실전 없이 시민성을 기를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시겠습니까?”

반대 측 4번:
“투표는 개인의 감정 표현이 아니라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입니다. 모의 투표는 위험 부담 없이 판단력을 훈련할 수 있는 안전장치입니다. 실전과 훈련은 분리되어야 합니다.”

찬성 측 질의 요약

반대 측은 ‘미성숙’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지만, 그 기준 자체가 모순적입니다.
18세와 16세 사이의 인지 격차보다, 모든 시민에게 필요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부재가 진짜 문제입니다.
또한, ‘시뮬레이션만으로 충분하다’는 주장은 마치 운전면허 시험 없이 자동차 조종을 배우라 요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민주주의는 관람이 아니라 참여로 완성됩니다.


반대 측 세 번째 발언자 질의

<질문 및 답변>

반대 측 3번:
“찬성 측 첫 번째 발언자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귀측은 스웨덴·오스트리아 사례를 근거로 들었지만, 이들 국가는 소규모 복지국가이며, 한국처럼 고강도 입시 경쟁과 정치적 양극화가 심한 사회와는 다릅니다. 한국의 청소년들이 동일한 조건에서 성숙한 판단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하시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찬성 측 1번:
“국가 규모나 복지 수준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 교육의 질입니다. 한국 청소년은 OECD 평가에서 비판적 사고 능력 상위권을 기록했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의 역량을 민주주의에 연결하는 것입니다.”


반대 측 3번:
“찬성 측 두 번째 발언자님께 묻겠습니다. 귀측은 ‘16세도 간접세를 내므로 투표권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유아도 물가 상승으로 인해 간접적으로 피해를 받습니다. 그러면 유아에게도 투표권을 줘야 합니까? 세금 납부가 투표권의 정당화 조건이라면, 그 기준은 어디까지 확장되야 하나요?

찬성 측 2번:
“유아는 의사 표현 능력이 없지만, 16세는 자신의 삶에 대한 의견을 명확히 표현합니다. 핵심은 의사결정 능력의 유무입니다. 간접세는 단지 ‘법적 책임’의 상징일 뿐, 진짜 근거는 그들이 이미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반대 측 3번:
“마지막으로, 찬성 측 네 번째 발언자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귀측은 ‘투표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만약 16세가 극단적 이념 후보에게 몰표를 줘서 국가 정책이 급격히 흔들린다면, 그 결과는 누가 감당합니까? 무해하다는 전제 자체가 위험하지 않습니까?

찬성 측 4번:
“그런 시나리오는 성인 유권자에게도 적용됩니다. 오히려 16세는 장기적 관점에서 기후·교육 같은 지속 가능한 정책을 선호합니다. 위험은 연령이 아니라, 정보 접근성과 교육에서 비롯됩니다. 우리는 그들을 신뢰하고, 동시에 지원해야 합니다.”

반대 측 질의 요약

찬성 측은 해외 사례를 맹목적으로 수용하며, 한국 사회의 특수성과 정치적 취약성을 간과했습니다.
‘간접세 납부 = 투표권 정당화’는 논리적 미끄럼틀을 초래합니다.
더욱이, 투표가 ‘무해하다’는 주장은 민주주의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는 태도입니다.
권리는 준비된 자에게 주어져야 하며, 열정은 책임으로 무장되어야 가치가 있습니다.


자유 토론

찬성 1번:
“민주주의는 성년의 전유물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시민 모두의 것입니다.”
반대 측은 16세를 ‘미성숙’이라 하셨지만, 그렇다면 18세는 어느 날 갑자기 성숙해지는 건가요? 뇌과학이 말하는 ‘25세까지 발달’이라는 주장은 오히려 모든 25세 미만 유권자를 박탈해야 한다는 극단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왜 유독 16세만 타깃이 되는 걸까요? 이건 과학이 아니라 편견입니다.

반대 1번:
그렇다면 찬성 측은 13세도 투표권을 줘야 한다고 주장하실 건가요? 성숙은 이산적이지 않고 연속적이지만, 법은 반드시 경계를 그어야 합니다. 우리가 18세를 기준으로 삼은 건, 단순히 전두엽 때문이 아니라, 형사책임·계약능력·사회적 자율성 등 복합적 기준에 근거합니다. 16세에게만 투표권을 주는 건 이 체계를 무너뜨리는 선택입니다.

찬성 2번:
재미있는 말씀이네요. 그럼 반대 측은 18세가 된 날 아침, 갑자기 정치적 판단력이 ‘띵!’ 하고 생긴다고 믿으시는 건가요?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 16세는 기후 파업을 주도하고, 디지털 인권을 외치며, 정책의 직접적 당사자입니다. 그런데도 “너희는 아직 어려”라며 문을 닫는 건, 마치 청소년에게는 미래만 있고 현재는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민주주의는 기다림이 아니라 참여입니다.

반대 2번:
참여는 중요하지만, 무분별한 참여는 위험합니다. SNS에서 한 편향된 영상 하나로 정책을 결정한다면,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 감정의 독재입니다. 우리는 16세가 열정적이라는 걸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열정은 책임 없이 방향을 잃습니다.
오히려 지금 필요한 건 투표권이 아니라, 학교에서의 중립적·비판적 시민 교육입니다. 실전보다 준비가 먼저 아닐까요?

찬성 3번:
“준비가 먼저”라니, 참 이상한 논리네요.
운전면허는 운전해 본 적 없는 사람에게 주지 않죠. 요리사는 실제로 불 앞에 서봐야 요리사가 됩니다. 그런데 왜 유일하게 투표만은 해보지 않고 ‘준비됐다’고 판정하는 건가요?
모의 투표는 연습이지 실전이 아닙니다. 진짜 책임감은 내 한 표가 세상을 바꾼다는 경험에서 나옵니다. 16세에게 그 기회를 주지 않는 건, 시민으로서의 성장을 고의로 지연시키는 것입니다.

반대 3번:
그럼 찬성 측은 10세도 투표권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결국 ‘경험’만 강조하면 연령 하한선은 사라집니다.
더 중요한 건, 투표는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라는 점입니다. 16세가 세금을 낸다 하셨지만, 간접세는 소비의 결과일 뿐, 의도적 납세 의지와는 다릅니다. 권리를 요구하기 전에, 그 권리가 어떤 책임을 수반하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찬성 4번:
반대 측은 계속 “책임”을 강조하시는데, 투표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인가요?
누구도 투표로 감옥에 가지 않습니다. 누구도 투표로 계약을 맺지 않습니다. 투표는 피해 없는 권리, 표현의 자유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런데도 유독 청소년에게만 “너희는 책임 못 진다”며 배제하는 건, 보호라는 이름의 억압입니다.
우리는 16세를 믿습니다. 그들이 우리 사회의 미래일 뿐 아니라, 현재의 동등한 시민이기 때문입니다.

반대 4번:
믿음은 중요하지만, 민주주의는 감정이 아니라 제도입니다.
한국은 정치 양극화가 심하고, 입시 경쟁 속에서 청소년은 이미 충분히 압박받고 있습니다. 여기에 투표권을 더하면, 학교는 정치적 각축장이 되고, 아이들은 또 다른 전장에 내던져질 겁니다.
우리는 청소년을 배제하자는 게 아니라,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할 시간과 공간을 보장하자는 겁니다.
민주주의는 속도가 아니라 깊이입니다.
그 깊이를 위해, 우리는 지금 이 순간, 멈춰야 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최종 발언

찬성 측 최종 발언

존경하는 심사위원님, 그리고 이 자리에 함께하신 모든 분들께 마지막으로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가지 진실을 말해 왔습니다: 민주주의는 배제가 아니라 포함일 때만 살아 숨 쉰다는 것.

반대 측은 “16세는 아직 미성숙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묻겠습니다—
누가 성숙하게 만들었습니까?
학교에서는 시험 문제만 풀라고 하고, 사회에서는 ‘어리니까 조용히 하라’고 합니다. 그런 다음, 18세가 되자마자 갑자기 ‘현명한 유권자’가 되기를 기대합니까?
성숙은 기다려서 오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맡길 때 자라납니다.

그리고 반대 측은 ‘해외 사례는 한국과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한국의 16세 청소년은 이미 세계 어디보다 빠르게 기후 파업에 나서고, 디지털 권리 운동에 앞장서며, 교육 불평등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정책의 수혜자가 아니라 당사자입니다.
그들의 삶을 결정하는 자리에 그들이 없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대리 민주주의입니다.

또한, “모의 투표로 충분하다”는 주장은 마치
‘수영은 물 밖에서 연습하면 된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시민성은 책상 위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투표소에서 실천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16세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은 단지 표 한 장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너도 이 나라의 주인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말 한마디가, 미래 세대에게 가장 강력한 민주주의 교육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확신합니다.
민주주의는 나이로 가두는 담벼락이 아니라, 모든 시민을 품는 바다여야 합니다.
16세에게 투표권을 주십시오.
그들이 우리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임을, 오늘 이 자리에서 인정해 주십시오.


반대 측 최종 발언

존경하는 심사위원님, 찬성 팀, 그리고 이 토론을 지켜보신 모든 분들께 마지막으로 말씀드립니다.

우리 팀은 결코 청소년의 목소리를 무시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진정한 존중은 섣부른 권한 부여가 아니라, 준비된 참여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찬성 측은 “16세도 충분히 성숙하다”고 말하지만,
그렇다면 왜 16세는 여전히 계약도, 음주도, 형사처벌도 제한받습니까?
법은 인간의 성숙을 단일 기준이 아니라, 다층적 균형으로 판단합니다.
투표권만 예외적으로 앞당기는 것은 제도의 일관성을 해치는 이중 잣대입니다.

또한, 찬성 측은 “투표는 무해하다”고 주장하지만,
민주주의의 역사가 증명하듯, 감정에 휘둘린 다수결은 때로 전체주의로 변질됩니다.
오늘날처럼 정치가 SNS 알고리즘과 감정 자극에 의해 움직이는 시대에,
정체성 형성이 한창인 16세를 그 거대한 물결에 내던지는 것은
보호가 아니라 방치입니다.

그리고 “해외 사례”를 들지만,
스웨덴이나 오스트리아는 정치적 중립 교육이 뿌리 깊고, 사회적 신뢰가 높은 나라입니다.
반면 한국은 입시 경쟁, 정치 양극화, 정보 혼란 속에서
청소년이 학교에서조차 중립적 사고를 훈련받기 어려운 환경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투표권을 앞당기는 것은 좋은 의도로 시작된 위험한 실험입니다.

우리는 청소년에게 더 많은 시민 교육을, 더 깊은 토론 공간을, 더 강한 미디어 리터러시를 제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준비가 끝났을 때,
그들이 스스로 “이제 투표할 준비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열정이 아니라 책임으로 움직입니다.
속도가 아니라 깊이로 성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단호히 말합니다:
선거 연령을 만 16세로 낮추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민주주의는,
준비된 시민 위에만 서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