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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할당제를 모든 공공 기관 및 대기업에 의무적으로 적용해야 하는가?

개회 발언

찬성 측 개회 발언

존경하는 심사위원님, 그리고 오늘 이 토론에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 인사드립니다.
저희 팀은 “여성 할당제를 모든 공공 기관 및 대기업에 의무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에 단호히 찬성합니다. 그 이유는 자율적 노력만으로는 수십 년간 해결되지 않은 구조적 불평등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첫째, 성평등은 선택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필수 조건입니다.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다고 규정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2023년 기준, 한국 국회 여성 비율은 20%, 상장기업 이사회 내 여성 비율은 고작 8.7%에 불과합니다. 이 숫자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절반의 국민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사회적 경고입니다. 할당제는 이 ‘침묵하는 다수’에게 목소리를 돌려주는 최소한의 정의 실현입니다.

둘째, 다양성은 조직의 경쟁력 그 자체입니다. 맥킨지 연구에 따르면, 이사회 내 여성 임원 비율이 30% 이상인 기업은 수익성이 평균 25% 높습니다. 노르웨이는 2003년 이사회 여성 할당제 도입 이후, 기업 지배구조 투명성과 위기 대응 능력이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이는 ‘여성이라서’가 아니라, 다양한 관점이 포함될 때 더 나은 판단이 가능하다는 증거입니다.

셋째, 할당제는 특권이 아니라 차별에 대한 교정 장치입니다. 남성 중심의 조직 문화, 무의식적 편견, 육아와 가사의 이중 부담—이 모든 것이 여성의 진출을 가로막아 왔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능력 중심’이라 하지만, 그 ‘능력’의 기준조차 남성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습니다. 할당제는 이 왜곡된 출발선을 바로잡는 정치적 결단이며, 보조 바퀴가 아니라 새로운 경기장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넷째, 역사는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1990년대부터 ‘자율 개선’을 외쳤지만,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성 고위직 비율은 미미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환상에 머물 수 없습니다. 여성 할당제는 단지 숫자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에게 ‘너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하는 사회적 신호입니다.

따라서 저희는 여성 할당제의 의무화를 통해, 공정한 기회, 강한 조직, 정의로운 사회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반대 측 개회 발언

감사합니다.
저희 팀은 “여성 할당제를 모든 공공 기관 및 대기업에 의무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힙니다. 이는 여성의 능력을 부정하는 것도, 평등을 거부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진정한 평등은 성별이 아닌 역량과 자격에 기반해야 하며, 강제적 할당은 그 본질을 훼손한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주장입니다.

첫째, 할당제는 ‘형식적 평등’일 뿐, 실질적 다양성을 해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개별적인 능력과 경험을 지닌 존재입니다. 그런데 성별이라는 단일 기준으로 자리를 배분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다양성을 억압하는 또 다른 틀이 됩니다. 만약 특정 분야에서 여성 인재 풀이 아직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할당하면, 역량 부족으로 인해 여성 전체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이는 ‘여성은 실력이 아니라 특혜로 올라간다’는 편견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둘째, 의무 할당제는 역차별과 조직 내 갈등을 초래할 위험이 큽니다. 남성 직원들이 “내가 탈락한 건 능력이 아니라 성별 때문이었는가?”라는 의문을 품게 되면, 팀워크와 사기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할당제 도입 초기, 내부 반발과 소송이 급증했습니다.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때, 조직은 협력이 아니라 분열로 치닫습니다.

셋째, 제도보다 문화와 환경 개선이 우선입니다. 여성의 진출을 가로막는 진짜 장벽은 ‘자리 부족’이 아니라, 육아휴직 사용 시 승진 배제, 야근 중심의 근무 문화, 무의식적 편견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할당제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대신, 유연근무제 확대, 멘토링 프로그램, 성인지 교육, 보육 인프라 강화 등 근본적인 생태계 개선이 필요합니다. OECD 국가 중 할당제 없이도 여성 고위직 비율이 높은 핀란드나 캐나다가 좋은 사례입니다.

넷째, 민주주의는 강제가 아니라 설득과 자발적 변화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여성 몇 명을 꼭 앉혀야 한다’는 숫자가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능력으로 인정받는 문화입니다. 그 문화는 법이나 규정이 아니라, 교육과 시간, 그리고 사회적 합의 속에서 자라납니다.

따라서 저희는 여성 할당제의 의무화를 거부하며, 능력 중심의 공정한 경쟁과 구조적 지원을 병행하는 더 지혜로운 길을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개회 발언 반박

찬성 측 두 번째 발언자 반박

존경하는 심사위원님, 방금 반대 측의 발언을 들으며 한 가지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분들은 여전히 ‘공정’이라는 단어를 남성 중심의 시각에서만 해석하고 계시다는 점입니다.

첫째, 반대 측은 “할당제가 형평성을 외면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그렇습니까?
‘자격’이라는 기준 자체가 중립적이라고 보시는 건가요?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력서에서 ‘여성’이라는 정보만으로 면접 기회가 줄어드는 연구 결과는 이미 수십 건입니다. 야근과 회식이 ‘헌신’으로 읽히는 조직 문화 속에서, 육아로 인해 출퇴근이 유연한 여성은 ‘비열정적’으로 낙인찍힙니다. 이런 환경에서의 ‘자격’은 남성에게 유리하게 설계된 룰에 불과합니다.
할당제는 이 불공정한 경기장을 바로잡는 것이지, 누군가를 특혜로 밀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격 있는 여성들이 계속해서 무대 밖으로 밀려나는 현실을 방치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형평성의 배신입니다.

둘째, “역차별과 갈등”을 우려하셨습니다.
그러나 프랑스나 독일의 초기 갈등은 제도 도입 직후의 일시적 현상이었고, 지금은 오히려 여성 리더십이 조직 내 신뢰를 높이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갈등의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가입니다.
남성 직원이 “내가 떨어진 건 성별 때문이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이렇게 답해야 합니다.
“아니요. 당신이 떨어진 건, 다양한 관점을 수용할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갈등을 피하기 위해 불평등을 유지하는 것은 편의주의적 평등일 뿐입니다.

셋째, “문화 개선이 먼저”라는 주장은 듣기 좋지만, 현실을 외면한 이상론입니다.
핀란드나 캐나다가 할당제 없이도 성평등을 이룬 이유는, 이미 1970년대부터 보육·교육·노동 정책 전반에 걸쳐 구조적 개혁을 병행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어떻습니까?
육아휴직을 쓰면 승진에서 밀린다는 통계는 매년 나옵니다.
유연근무제는 ‘눈치 제도’로 전락합니다.
문화는 제도 없이 자라지 않습니다.
할당제는 문화를 바꾸는 촉매제이자, 조직이 ‘우리에게 여성 리더가 필요하다’고 스스로 인정하도록 만드는 거울입니다.

마지막으로, 반대 측은 “민주주의는 설득으로 이루어진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30년 넘도록 자율적 설득을 기다렸는데, 왜 여성 고위직 비율은 10%도 못 넘습니까?
설득이 실패했다는 증거 아닐까요?
이제는 말이 아니라 행동이 필요한 때입니다.
할당제는 강제가 아니라, 늦어도 너무 늦은 정의의 실행입니다.


반대 측 두 번째 발언자 반박

감사합니다.
찬성 측은 열정적으로 할당제를 ‘정의의 도구’로 묘사하셨지만, 그들의 논리는 세 가지 치명적인 착각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첫째, 할당제가 자동으로 ‘좋은 다양성’을 만든다고 믿는 착각입니다.
맥킨지 보고서를 인용하셨지만, 그 보고서는 “여성 비율이 높을수록 수익성이 높다”고 말한 게 아니라, ‘인지적 다양성’이 높을수록 수익성이 높다고 말했습니다.
성별은 다양성의 일부일 뿐, 전부가 아닙니다.
만약 할당제로 선발된 여성 임원이 모두 동일한 배경과 사고방식을 가졌다면, 그것은 형식적 다양성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성별 하나로 사람을 판단하는 찬성 측의 시각이야말로, 그들이 비판하는 ‘편견’ 그 자체입니다.

둘째, 할당제가 여성에게만 이익을 준다고 보는 단선적 사고입니다.
찬성 측은 “자격 있는 여성들이 배제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할당제로 인해 탈락한 남성 중에서도 자격 있는 사람은 없습니까?
더 중요한 것은, 할당제로 선발된 여성 자신조차 ‘내가 실력이 아니라 할당으로 올라왔다’는 의심 속에서 일해야 합니다.
이는 여성의 자존감과 리더십 권위를 오히려 약화시킵니다.
노르웨이 사례를 들었지만, 그곳에서는 할당제 도입 후 여성 임원의 이직률이 급증했고, 많은 이들이 “압박 속에서 제대로 일할 수 없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이 과연 여성에게 진정한 기회입니까?

셋째, 시간이 문제라고 단정하는 역사적 맹목입니다.
“30년을 기다렸다”고 하셨지만, 한국은 그 30년 동안 성평등 정책에 얼마나 진심이었습니까?
육아휴직 사용률은 OECD 최하위, 보육 예산은 GDP의 0.5% 수준입니다.
정책적 의지 없이 ‘자율’만 강조해온 결과를, 이제 와서 ‘시간이 실패했다’고 몰아가는 것은 책임 전가입니다.
할당제는 쉬운 해결책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인 문제—즉, 일과 돌봄의 양립 불가능성—을 덮어버리는 마취제에 불과합니다.

마지막으로, 찬성 측 두 번째 발언자는 “갈등을 피하기 위해 불평등을 유지하는 것은 편의주의”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똑같이 묻겠습니다.
갈등을 유발할 것을 알면서도 강제로 밀어붙이는 것이야말로, 더 큰 편의주의 아닐까요?
진정한 변화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설득과 지원 속에서만 가능합니다.
할당제는 숫자를 바꿀 수 있지만, 마음은 바꾸지 못합니다.
우리는 숫자가 아니라 신뢰를 쌓아야 합니다.


질의응답

찬성 측 세 번째 발언자 질의

찬성 측 3번: 반대 측 첫 번째 발언자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귀측은 “자격과 역량에 기반한 평등”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런데 현재 한국 대기업 임원 승진 평가에서 ‘리더십’이나 ‘결단력’ 같은 자질이 남성적 기준으로 정의되고 있다는 연구(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22)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귀측이 말하는 ‘객관적 자격’이 실은 남성 중심적 편견에 물든 기준일 가능성을 인정하십니까?

반대 측 1번: 그 기준이 완전히 중립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은 부분적으로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성별로 자리를 할당하는 것이 해결책은 아닙니다. 오히려 평가 기준 자체를 성인지적으로 개편하는 것이 더 근본적인 접근입니다.

찬성 측 3번: 감사합니다. 다음 질문입니다. 반대 측 두 번째 발언자님께 묻겠습니다. 귀측은 “할당제가 여성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그런데 노르웨이에서는 할당제 도입 10년 만에 여성 이사들이 오히려 ‘과잉 검증’을 통해 더 높은 전문성을 보여주었고, 시장 평가도 긍정적이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할당제가 오히려 여성의 역량 증명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습니까?

반대 측 2번: 노르웨이 사례는 그들의 성평등 인프라와 사회적 합의가 탄탄한 특수한 맥락입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 그런 기반이 부족합니다. 한국에서 무리하게 도입하면, 준비되지 않은 인재가 배치되면서 조직 효율성이 떨어지고, 결과적으로 여성 전체에 대한 편견이 고착될 위험이 있습니다.

찬성 측 3번: 마지막 질문입니다. 반대 측 네 번째 발언자님께 묻겠습니다. 귀측은 “시간과 설득이 진정한 변화의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난 30년간 우리는 이미 충분히 기다렸습니다. 여성 고위직 비율은 여전히 OECD 최하위권입니다. 그렇다면 귀측은 앞으로 또 몇 십 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고 보십니까? 아니면, 그 ‘설득’이라는 이름의 방치가 결국 여성 세대에게 기회를 영원히 빼앗는 것임을 인정하십니까?

반대 측 4번: 우리는 기다리자는 것이 아니라, 지원 없는 강제는 실패한다는 점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할당제보다는 육아휴직 활성화, 유연근무제 확대 등 실질적 조치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할당된 여성들도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찬성 측 질의 요약

반대 측은 ‘자격의 중립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기준을 바꾸기 위한 제도적 개입은 거부하셨습니다. 노르웨이의 성공 사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르다”며 현실 도피에 머물렀고, “더 기다리자”는 주장은 결국 불평등을 정상화하는 변명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완벽한 조건’을 기다릴 수 없습니다. 바로 지금, 의무적 할당제로 출발선을 바꿔야 합니다.


반대 측 세 번째 발언자 질의

반대 측 3번: 찬성 측 첫 번째 발언자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귀측은 “할당제는 특권이 아니라 교정 장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만약 어떤 분야에서 남성의 참여율이 현저히 낮아졌을 때도 남성 할당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예를 들어, 초등학교 교사나 간호사처럼 말입니다.

찬성 측 1번: 훌륭한 질문입니다. 하지만 그 사례들은 역사적·구조적 차별의 맥락이 다릅니다. 여성은 수백 년간 공적 영역에서 배제되어 왔지만, 남성이 특정 직종에서 적다는 것은 차별의 결과가 아니라 선택의 자유입니다. 따라서 비교 자체가 부적절합니다.

반대 측 3번: 알겠습니다. 다음 질문입니다. 찬성 측 두 번째 발언자님께 묻겠습니다. 귀측은 “할당제가 조직의 신뢰를 높인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한국의 일부 지방의회에서 여성 할당제를 시행한 후, 당선된 여성 의원 중 상당수가 ‘명목만 의원’으로 활동 부진 논란에 휩싸인 사례가 있습니다. 이는 할당제가 오히려 민주주의의 질을 훼손할 수 있음을 보여주지 않습니까?

찬성 측 2번: 그런 사례는 할당제의 문제라기보다는, 할당 후 지원 시스템 부재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자리를 주는 것이 아니라, 멘토링, 교육, 네트워크 구축까지 포함된 ‘포괄적 할당제’를 제안합니다.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제도를 폐기하는 것은 마치 ‘수술이 무서워서 병을 키우는 것’과 같습니다.

반대 측 3번: 마지막 질문입니다. 찬성 측 네 번째 발언자님께 묻겠습니다. 귀측은 “제도가 문화를 바꾼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할당제를 도입한 후에도 조직 내 무의식적 편견이나 괴롭힘이 지속된다면, 그 여성들은 오히려 더 큰 고통을 받게 되지 않겠습니까? 제도는 만들었지만 문화는 안 따라온다면,그건 희망을 준 척 하다가 절망을 주는 것 아닐까요?

찬성 측 4번: 전혀 아닙니다. 문화는 제도 없이는 결코 바뀌지 않습니다. 할당제는 단지 자리를 주는 것이 아니라, 여성 리더가 가시화되면서 ‘여성도 할 수 있다’는 집단적 인식을 바꿉니다. 처음엔 어색할 수 있지만, 노르웨이, 프랑스, 스페인 모두 그렇게 문화를 바꿨습니다. 변화는 불편함에서 시작됩니다.

반대 측 질의 요약

찬성 측은 “맥락이 다르다”며 다른 사례를 배제했고, 문제 발생 시에는 “지원이 부족해서”라고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무엇보다도, 할당된 여성들이 실제 조직에서 존중받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단지 ‘보이기 식 다양성’만을 강요하는 것은 위선적입니다. 우리는 숫자가 아니라, 존엄한 개인이 존중받는 시스템을 원합니다. 그 시스템은 강제가 아니라, 신뢰와 지원 속에서 자라납니다.


자유 토론

찬성 1번:
“자격만 보면 됩니다”라고 하시는데, 그 ‘자격’이라는 잣대 자체가 남성 중심 사회에서 만들어진 거 아닙니까? 마치 수영장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막아놓고,“왜 경주에서 이기지 못했냐”고 묻는 격입니다。 할당제는 수영장 문을 여는 열쇠일 뿐입니다。

반대 1번:
그렇다면 열쇠를 받은 사람이 물에 빠지면 누가 책임지나요? 현재 한국은 육아휴직 쓰면 승진 탈락,야근 안 하면 ‘노력 부족’이라는 문화 속에 있습니다。 자리만 주고 지원 없으면,여성은 오히려 ‘특혜 받은 실패자’라는 꼬리표를 달게 됩니다。 이게 진짜 배려인가요?

찬성 2번:
흥미롭군요。 상대팀은 여성의 역량을 이렇게까지 불신합니까? 노르웨이는 할당제 도입 후 10년 만에 여성 이사들이 기업 위기 대응력과 투명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여성은 ‘실패할 사람’이 아니라,기다려지던 다른 관점이었습니다。

반대 2번:
노르웨이와 한국은 다릅니다。 여기선 아이를 키우는 여성에게 “출산은 개인 선택”이라며 책임을 떠넘깁니다。 이런 환경에서 할당제는 마치 비 올 때 우산 없이 뛰어가라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제도보다 먼저,우산을 만들어 드리는 게 진짜 정의 아닐까요?

찬성 3번:
그럼 언제까지 우산 만들기를 기다릴 건가요? 1990년대부터 “곧 바뀔 것”이라 했지만,지금 국회 여성 비율은 여전히 20%입니다。 우산이 완성될 때까지 절반의 국민이 비를 맞고 서 있어야 하나요? 때로는 젖은 채로라도 함께 뛰는 게 민주주의입니다。

반대 3번:
함께 뛰자는 말씀,참 감동적입니다。 그런데 그 ‘함께’가 성별로 나뉘면,함께가 아니라 분리된 경주가 됩니다。 우리는 ‘여성’이 아니라 ‘능력 있는 개인’으로 평가받고 싶습니다。 할당제는 오히려 우리를 ‘여성’이라는 카테고리에 가두는 감옥이 될 수 있습니다。

찬성 4번:
감옥이라니요? 지금 우리가 있는 건 이미 감옥입니다。 의사결정 테이블에 여성이 없다는 건,절반의 삶이 설계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할당제는 감옥을 여는 열쇠가 아니라,새로운 집을 짓는 도구입니다。 그리고 그 집엔 남성도,여성도,모두가 살 수 있습니다。

반대 4번:
새 집을 짓는 데 동의합니다。 하지만 벽돌을 성별로 나눠서 쌓으면,집은 균형을 잃습니다。 진짜 다양성은 ‘여성 몇 명’이 아니라,서로 다른 생각이 자유롭게 충돌하고 존중받는 문화에서 나옵니다。 그 문화는 강제가 아니라 신뢰 속에서 자랍니다。


최종 발언

찬성 측 최종 발언

존경하는 심사위원님,오늘의 토론을 마무리하며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동안,누가 기다려 주었습니까?”

30년 넘게 우리는 ‘자율 개선’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국회 여성 비율은 여전히 OECD 꼴찌 수준이고,대기업 임원 중 여성은 5%조차 되지 않습니다。 이건 능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출발선 자체가 기울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반대 측은 “할당제가 역차별을 낳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진짜 역차별은 여성이 실력으로 올라갈 기회조차 주지 않는 시스템에 있습니다。 노르웨이는 할당제 도입 후 여성 리더들이 오히려 더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왜요? 그들이 자리만 차지한 게 아니라,새로운 관점으로 조직을 바꿨기 때문입니다。

또한 반대 측은 “문화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역사가 증명합니다。 제도가 문화를 바꿉니다。 여성 투표권도,차별 금지법도,처음엔 ‘강제’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걸 누가 부당하다고 합니까?

우리가 요구하는 건 특권이 아닙니다。
절반의 국민이 의사결정 테이블에 앉을 권리입니다。
그리고 그 테이블에서 “너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용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확신합니다。
여성 할당제의 의무화는 불편한 진실을 직면하는 첫걸음이며,
진정한 민주주의를 향한 유일한 길입니다


반대 측 최종 발언

감사합니다。
오늘 찬성 측은 열정적으로 “변화가 필요하다”고 외쳤습니다。
우리도 그 열망에 공감합니다。 하지만 방법이 잘못되면,선의도 독이 됩니다

할당제는 ‘여성’이라는 이름 아래,개인의 능력과 경험을 지우는 행위입니다。
A 씨는 육아로 경력이 단절되었지만,B 씨는 남성보다 더 많은 프로젝트를 이끌었습니다。 그런데도 둘을 ‘여성’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 자리를 배분한다면—
그건 다양성이 아니라 획일화입니다

더 큰 문제는,할당제가 진짜 장벽을 가리는 마취제가 된다는 점입니다。
육아휴직을 쓰면 승진에서 밀린다。 야근 안 하면 ‘열정 부족’이라 한다。
이런 구조적 차별을 고치지 않고,그냥 ‘여성 몇 명 앉히라’고 명령하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다만 눈속임만 늘어납니다

핀란드는 할당제 없이도 여성 고위직 비율이 40%를 넘습니다。
왜냐면 그들은 보육을 국가가 책임지고,근무 문화를 인간 중심으로 바꿨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평등은 자리를 강제로 나누는 게 아니라,누구나 공정하게 달릴 수 있는 트랙을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성의 리더십을 원합니다。
하지만 그 리더십은 성별이 아니라,존엄한 개인으로서 인정받아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할당제가 아니라,신뢰와 지원을 선택하라。”
그 길만이,우리 사회가 진짜 다양성과 공정을 품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