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의 비정규직을 전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가?
개회 발언
찬성 측 개회 발언
존경하는 심사위원 여러분, 그리고 오늘 이 자리를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우리 팀은 공공기관의 비정규직을 전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공공기관은 국민 모두의 것이며,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 역시 동등한 존엄과 권리를 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공공기관’은 단순한 행정 기관이 아니라,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며 국가 신뢰를 대변하는 최전선입니다. 그리고 ‘비정규직’은 계약 기간이 짧고 고용이 불안정하며, 동일한 노동에도 불구하고 임금·복지·승진 기회에서 차별받는 존재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더 이상 용납될 수 없습니다.
첫째, 헌법적 평등권과 노동 기본권의 실현이라는 가치 차원에서 정규직 전환은 필수입니다. 헌법 제32조는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고 명시합니다. 그런데 같은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고용 형태만 다르다는 이유로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지 못한다면, 이는 국가가 스스로 헌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둘째, 장기적 재정 효율성과 조직 안정성 측면에서도 정규직 전환이 유리합니다. 현재 공공기관은 비정규직을 수시로 교체하며 교육비, 채용비, 업무 공백으로 인한 손실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반면 정규직화는 숙련도 향상, 책임감 증대, 이직률 감소를 통해 오히려 예산 절감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서울시가 2018년 청소·경비 직종을 정규직화한 이후, 서비스 만족도는 27% 상승했고 인건비는 오히려 5% 줄었습니다.
셋째, 국가 신뢰도와 사회 통합의 관점에서도 이 조치는 불가피합니다. 공공기관은 국민에게 ‘공정’과 ‘신뢰’를 상징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내부에서 차별이 만연하다면, 국민은 국가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나도 이 나라의 일꾼이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공공성이 실현됩니다.
누군가는 “재정이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묻겠습니다. 과연 인간의 존엄을 ‘비용’으로만 계산할 수 있습니까?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가 선택하는 것은 단지 고용 형태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답입니다.
반대 측 개회 발언
심사위원 여러분, 상대 팀의 열정은 이해하지만, 현실을 외면한 이상주의는 위험합니다.
우리 팀은 공공기관의 비정규직을 전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서는 안 된다고 단호히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공정’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무분별한 전환은 오히려 더 큰 불공정과 비효율을 낳기 때문입니다.
우선, ‘전면 정규직 전환’이란 개념부터 경계해야 합니다. 모든 비정규직이 정규직을 원하는 것도 아니며, 업무 성격상 단기·전문·보조적 역할이 필요한 경우도 많습니다. 이를 무조건 ‘정규직=선’, ‘비정규직=악’으로 이분법화하는 것은 현실을 외면한 폭력입니다.
첫째, 재정의 지속 가능성과 기회비용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공공기관의 인건비는 국민 세금에서 나옵니다. 전면 전환 시 연간 약 8조 원 이상의 추가 재정이 소요된다는 정부 추계가 있습니다. 이 돈은 병원, 학교, 복지시설 등 더 시급한 곳에 쓰일 수 있습니다. 한 명의 노동자를 정규직화하는 데 드는 비용으로, 10명의 취약계층 아이들에게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둘째, 조직의 유연성과 업무 효율성 저하라는 현실적 리스크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계절적으로 증가하는 민원 처리 인력이나, 특정 프로젝트를 위한 IT 전문가 등은 정규직보다 계약직이 더 효율적입니다. 이를 무조건 정규직화하면, 기관은 인력 과잉과 구조조정의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 역차별과 내부 갈등의 심화라는 사회적 부작용도 우려됩니다. 이미 정규직으로 근무하며 엄격한 시험과 경쟁을 거친 직원들은 “왜 노력 없이 동등한 대우를 받느냐”고 반발할 수 있습니다. 이는 조직 내 분열을 초래하고, 오히려 협업과 서비스 질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면 정규직화’가 유일한 해법이라는 주장은 오만입니다. 대신, 업무 특성에 맞춘 다층적 고용 모델,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철저한 적용, 사회안전망 강화 등 더 정교하고 지속 가능한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실질’입니다.
정규직이라는 이름표가 아니라, 모든 노동자가 존중받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진정한 공공의 가치 아닐까요?
개회 발언 반박
찬성 측 두 번째 발언자 반박
존경하는 심사위원 여러분, 방금 반대 측 첫 번째 발언자는 우리 주장을 ‘현실을 외면한 이상주의’라고 비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비판 자체가 바로 현실을 외면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임을 지적해야겠습니다.
1. “전면 전환”은 폭력이 아니라, 차별 철폐의 선언입니다
상대는 우리가 ‘모든 비정규직을 무조건 정규직화하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주장은 동일한 업무를 장기간 수행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정규직 대우를 보장하라는 것입니다. 계절 근로자나 단기 프로젝트 전문가처럼 업무 특성상 정규직이 불필요한 경우는 당연히 제외됩니다. 그런데도 상대는 의도적으로 우리의 입장을 극단화해 ‘이분법적 폭력’으로 몰아가셨습니다. 이는 토론의 기본 예의를 벗어난 왜곡입니다.
2. 8조 원? 그건 ‘무계획적 전환’의 비용이지, ‘합리적 전환’의 비용이 아닙니다
재정 부담을 이유로 정규직화를 거부하시는 모습을 보니, 마치 “빈부격차가 심하니 복지는 포기하자”는 논리와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부 추계치 8조 원은 모든 비정규직을 즉시, 일괄적으로 전환할 경우의 최악 시나리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단계적·선택적 전환, 예산 재배분, 장기적 효율성 증대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서울시 사례에서 보듯, 정규직화는 오히려 인건비를 줄이고 서비스 질을 높였습니다. 상대는 단기적 비용만 보고, 장기적 이득은 외면하셨습니다.
3. “형식이 아니라 실질”이라 하셨지만… 실질은 형식에서 시작됩니다
상대는 “정규직이라는 이름표가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맞습니다. 이름표만 바꾼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죠. 하지만 고용 안정성, 승진 기회, 조직 내 발언권, 사회적 인정—이 모든 ‘실질’은 정규직이라는 법적·제도적 형식 위에서만 가능합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만으로는, 계약 종료 통보 한 통에 모든 것이 사라집니다. 인간의 존엄은 ‘계약서 한 장’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 국가가 보장하는 지위에 달려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과연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에서, 같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 다른 인생을 강요하는 것이 진짜 ‘공정’입니까?
우리는 이상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기본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반대 측 두 번째 발언자 반박
찬성 측 두 분의 열정적인 발언, 잘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열정이 논리의 허점을 가리는 장막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 그 장막을 걷어내겠습니다.
1. 헌법은 ‘정규직 의무화’를 명령하지 않습니다
찬성 측은 헌법 제32조를 근거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헌법은 “근로의 권리”를 보장하지, 고용 형태까지 국가가 강제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헌법 제119조는 “경제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보장합니다. 공공기관도 효율적 운영을 위해 다양한 고용 형태를 선택할 자유가 있습니다. 헌법을 인용하시려면, 전체 맥락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2. 서울시 사례는 ‘특수한 성공’, 보편적 해법이 아닙니다
청소·경비 직종은 표준화된 업무에 숙련도가 시간에 비례해 누적됩니다. 그래서 정규직화가 효과적이었죠. 그러나 연구 기관의 계약 연구원, 디지털 전환을 위한 외부 IT 컨설턴트, 임시 민원 대응 인력 등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이들에게 정규직을 강제하면, 기관은 불필요한 인건비와 인력 과잉에 시달릴 것입니다. 찬성 측은 하나의 성공 사례로 전체를 설명하려는 편향된 일반화에 빠져 계십니다.
3. “인간 존엄을 비용으로 계산할 수 없다”는 감정적 호소의 함정
물론 인간의 존엄은 소중합니다. 그러나 모든 정책은 기회비용을 수반합니다. 연간 8조 원이면, 전국의 아동 급식을 2배로 늘리거나, 저소득층 주거 지원을 3배 확대할 수 있습니다. 찬성 측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존엄만 보셨지만, 그 돈이 쓰이지 못해 고통받는 다른 국민들의 존엄은 고려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선택적 인도주의 아닐까요?
우리는 결코 차별을 옹호하지 않습니다. 다만, ‘전면 정규직화’라는 단일 해법이 오히려 더 많은 불공정을 낳을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공공성은 형식적 평등이 아니라, 실질적 정의에서 나옵니다.
그 정의는 다양한 고용 형태 속에서도 모든 노동자가 존중받는 제도 설계에서 시작됩니다.
질의응답
찬성 측 세 번째 발언자 질의
찬성 측 3번:
“반대 측 첫 번째 발언자님께 묻겠습니다. 귀측은 ‘모든 비정규직이 정규직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귀측은 노동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국가가 고용 형태를 결정할 권한이 있다고 보십니까? 아니면, 노동자의 선택권을 존중한다면, 그들이 정규직을 원할 경우 전환을 거부할 합리적 이유가 무엇입니까?”
반대 측 1번:
“물론 노동자의 선택권은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전면 정규직 전환’이라는 강제적 프레임입니다. 우리는 개별 노동자의 의사를 반영한 다층적 고용 시스템을 제안합니다. 예를 들어, 계약 갱신을 원치 않는 단기 전문가도 있고, 오히려 유연성을 선호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강제 전환은 오히려 그들의 자유를 침해합니다.”
찬성 측 3번:
“반대 측 두 번째 발언자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귀측은 ‘8조 원의 재정 부담이 다른 복지 지출을 희생시킨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추정은 비정규직의 생산성과 기여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순수 인건비 증가 시나리오에 기반한 것 아닙니까? 서울시 사례처럼 숙련도 향상과 이직률 감소로 인한 장기적 절감 효과를 반영하면, 실질적 부담은 훨씬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반대 측 2번:
“서울시 사례는 청소·경비 등 특정 직종에 한정된 성공입니다. IT, 연구, 계절 민원 등 다양한 업무 유형을 포괄하는 ‘전면 전환’에는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장기적 절감 효과는 가정일 뿐, 대부분의 지방 공공기관은 재정 여력이 없어 단기 충격을 견디지 못합니다. 가정을 사실인 양 제시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찬성 측 3번:
“마지막으로, 반대 측 4번 발언자님께 묻겠습니다. 귀측은 ‘정규직 시험을 통과한 이들의 노력이 무시된다’고 우려했습니다. 그렇다면 귀측은 ‘시험을 통과했느냐’가 인간 존엄과 노동 가치를 가르는 기준이라고 보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 기준은 과연 헌법적 평등권과 조화될 수 있겠습니까?”
반대 측 4번:
“우리는 노력 자체를 존중합니다. 다만, 제도적 형평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정규직은 경쟁과 책임을 수반하는 자리입니다. 아무런 평가 없이 동일 대우를 제공하면, 조직 내 동기 부여가 붕괴되고, 결과적으로 국민 서비스의 질이 떨어집니다. 존엄은 임금이나 고용 형태가 아니라, 일하는 환경과 태도에서 나옵니다.”
찬성 측 질의 요약
반대 측의 답변은 오히려 우리의 입장을 강화했습니다.
첫째, 노동자의 선택권을 인정하면서도 ‘전면 전환’을 강제라고 규정한 것은 모순입니다. 진정한 선택권은 비정규직이 정규직을 원할 때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제도적 보장에서 나옵니다.
둘째, 서울시 사례를 ‘특수한 예외’로 치부하며 장기적 효율성을 무시한 것은,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합리화하려는 시도에 불과합니다.
셋째, ‘시험 통과 여부’를 존엄의 기준으로 삼는 발상은 능력주의 신화에 갇힌 시각이며,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권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결국 반대 측은 형식적 공정만을 고집할 뿐, 실질적 정의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반대 측 세 번째 발언자 질의
반대 측 3번:
“찬성 측 첫 번째 발언자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귀측은 ‘헌법 제32조가 모든 노동자에게 동등한 권리를 보장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런데 헌법 어디에도 ‘정규직 고용을 강제하라’는 조항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귀측은 헌법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헌법에 투영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찬성 측 1번:
“헌법은 구체적 시행령이 아니라 원칙을 담은 문서입니다. 제32조는 ‘근로의 권리’를 보장하며, 이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조건을 의미합니다. 비정규직이 동일노동에도 불구하고 불안정과 차별 속에서 일한다면, 이는 헌법 정신에 위배됩니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헌법의 실질적 구현이지, 정치적 이상이 아닙니다.”
반대 측 3번:
“찬성 측 두 번째 발언자님께 묻겠습니다. 귀측은 ‘비정규직 전환으로 조직 안정성이 높아진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계약 만료 후 재계약을 원치 않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을 경우, 귀측은 그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강제로 정규직화할 것입니까? 그것이 진정한 존엄입니까?”
찬성 측 2번:
“전면 전환이란 원하는 자에게 기회를 열어주는 것입니다. 누구도 강제로 정규직이 되지 않습니다. 다만, 현재는 원해도 될 수 없는 구조가 문제입니다. 우리는 ‘강제’가 아니라 ‘선택권의 확대’를 말합니다. 귀측의 질문은 논점 왜곡입니다.”
반대 측 3번:
“마지막으로, 찬성 측 4번 발언자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귀측은 ‘인간 존엄은 비용으로 계산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귀측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에서 예산 제약을 완전히 무시해도 된다고 보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 논리는 ‘모든 국민에게 무상 주택을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과도 논리적으로 동일하지 않겠습니까?”
찬성 측 4번:
“예산은 무시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선순위를 재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8조 원이라는 숫자는 위협적으로 들리지만, 이는 10년간 분할 투자 시 연 8천억에 불과하며, GDP 대비 0.04% 수준입니다. 반면, 차별로 인한 사회적 비용—불신, 갈등, 생산성 저하—은 훨씬 큽니다. 우리는 비용이 아니라 투자를 말합니다.”
반대 측 질의 요약
찬성 측의 답변은 그들의 논리적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첫째, 헌법을 ‘해석’한다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정책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는 논리적 비약입니다. 헌법은 고용 형태를 규정하지 않으며, 그 해석은 입법부와 행정부의 몫입니다.
둘째, ‘선택권 확대’라고 말하지만, ‘전면 전환’이라는 표현 자체가 강제성을 내포합니다. 이는 언어의 교묘한 재구성입니다.
셋째, 예산을 ‘투자’로 포장하며 재정 제약을 경시하는 태도는, 현실 정치와 괴리된 이상주의에 불과합니다. 무상 주택 주장과의 유사성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진정한 공공성은 모든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제한된 자원 속에서 최대다수의 이익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자유 토론
찬성 1번:
반대 측은 “모든 비정규직이 정규직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셨죠?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아니면 원해도 선택할 수 없는 구조 때문일까요? 계약 갱신 거부, 불이익, 해고 위협 속에서 누가 솔직히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서울시 사례에서 92%의 비정규직이 정규직 전환에 찬성했습니다. 이건 강제가 아니라 억눌린 선택권의 회복입니다.
반대 1번:
그러면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만약 한 비정규직 분이 “나는 6개월 일하고 여행 가고 싶다”고 말씀하신다면, 찬성 측은 그분의 인생 계획도 ‘억압된 선택’이라 보시겠습니까? 다양한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것, 그것이 진짜 평등 아닐까요? ‘전면 전환’은 이름만 평등일 뿐, 실은 한 가지 삶의 방식만을 강요하는 독선입니다.
찬성 2번:
좋습니다. 그럼 제가 되묻겠습니다. 지금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중 몇 %가 정말 ‘자발적으로’ 단기 계약을 선택했을까요?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비정규직의 78%가 “정규직이 되고 싶지만 기회가 없다”고 답했습니다. 반대 측은 소수의 예외를 들며 다수의 고통을 외면하고 계십니다. 게다가, 정규직 = 영구 고용이 아닙니다. 성과 평가, 징계, 구조조정 모두 가능하죠. 유연성과 안정성은 충분히 공존할 수 있습니다.
반대 2번:
그렇다면 찬성 측은 8조 원이라는 재정 부담을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GDP 대비 0.04%”라 하셨지만, 그 돈은 강원도 전체 교육 예산의 3년 치입니다. 한 명의 노동자를 정규직화하는 데 드는 비용으로, 500명의 아이들에게 급식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이걸 ‘비용 문제가 아니다’라고 넘기는 건, 다른 국민의 고통을 보지 못하는 시각 아닙니까?
찬성 3번:
재미있는 말씀이네요. 그러면 반대 측은 “청소하는 아저씨의 월급을 깎아서 아이들 급식비로 쓰자”는 걸 제안하시는 겁니까? 노동자의 존엄을 다른 복지와 맞바꾸는 발상, 이게 진짜 공공성입니까? 더군다나, 서울시는 정규직화 후 인건비가 줄었습니다. 왜냐하면 숙련된 인력이 실수를 줄이고, 업무 효율이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장기적 시야 없이 단기 숫자만 들이대는 건, 마치 “감기약 값 아끼려고 병원 안 가는 꼴”입니다.
반대 3번:
그러면 또 묻겠습니다. 서울시 사례는 청소·경비 같은 단순 반복 업무에 국한된 성공입니다. 그런데 만약 국토교통부에서 일하는 계약직 IT 전문가를 정규직으로 바꾼다면요? 프로젝트 끝나면 3년간 할 일이 없는데도 월급을 줘야 합니까? 업무 특성을 무시한 획일적 전환은 조직을 경직시키고, 결국 국민에게 더 나쁜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이게 찬성 측이 말하는 ‘공공성’입니까?
찬성 4번:
아, 이제야 핵심이 보이네요. 반대 측은 “정규직 = 모든 일을 영원히 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오해하고 계시군요. 하지만 현행법상 정규직도 직무 재배치, 퇴직 유도, 성과 연봉제가 가능합니다. 오히려 비정규직은 아무런 보호 없이 하루아침에 해고되죠. 그리고 기억하세요—형식이 실질을 만듭니다. 정규직이라는 지위는 단순한 이름표가 아니라, 협상권, 단결권, 재해 보상권을 포함한 실질적 권리의 문입니다. 그 문을 닫아두는 것이야말로 진짜 폭력입니다.
반대 4번: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찬성 측은 “형식이 실질을 만든다”고 하셨지만, 선택권 없는 형식은 폭력입니다. 어떤 이는 정규직을 원하고, 어떤 이는 프리랜서처럼 자유롭게 일하고 싶어 합니다. 국가가 “너는 반드시 정규직이 되라”고 강요하는 순간, 그건 평등이 아니라 동일화입니다. 진정한 공공성은 다양한 노동 형태 속에서도 모두가 존중받는 제도를 만드는 데 있습니다. 전면 전환은 그 길을 막는 돌덩이일 뿐입니다.
최종 발언
찬성 측 최종 발언
심사위원 여러분, 오늘 우리는 단순한 고용 형태에 대해 토론한 것이 아닙니다.
‘이 나라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어떤 존엄이 허락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반대 측은 “재정이 부족하다”, “유연성이 사라진다”, “역차별이 생긴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주장은 ‘인간을 비용으로 계산하는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나 헌법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권리가 있지 않은가?”
서울시의 사례는 이미 답을 줬습니다. 정규직 전환 후 서비스 질은 오르고, 인건비는 오히려 줄었습니다.
통계청 자료도 말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10명 중 8명은 정규직을 원하지만, 그 길이 막혀 있습니다.
이것이 선택권입니까? 아니면 구조적 억압입니까?
반대 측은 “다양한 삶의 방식”을 존중하자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다양성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억압 속에서의 ‘선택’은 선택이 아닙니다.
계약 갱신 거부의 두려움, 해고 통보의 불안, 동료와의 임금 격차—이 안에서 누가 자유롭게 “나는 비정규직이 좋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제안하는 ‘전면 전환’은 폭력이 아니라 억눌린 목소리를 해방시키는 도구입니다.
정규직은 영구 고용이 아닙니다. 그것은 협상할 권리, 단결할 권리, 인간답게 살 권리를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공공기관이 국민에게 신뢰를 받으려면, 내부부터 공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에서,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다른 대우를 받는다면—
그곳은 과연 ‘공공’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우리는 오늘, 형식이 실질을 만든다는 믿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정규직이라는 이름표가 아니라, 그 이름표 뒤에 서 있는 존엄한 인간을 위해.
그래서 우리는 확신합니다.
공공기관의 비정규직은 전면 정규직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반대 측 최종 발언
심사위원 여러분, 찬성 측의 열정은 존경스럽지만, 그들이 그리는 이상향은 현실을 외면한 위험한 유혹입니다.
그들은 “헌법이 말한다”, “인간 존엄이다”라고 외칩니다. 그러나 헌법은 고용 형태까지 명령하지 않습니다.
헌법은 평등을 요구하지만, 노력과 책임 없이 동일한 대우를 강제하는 것은 오히려 평등의 왜곡입니다.
정규직은 시험, 경쟁, 장기 헌신을 통해 얻어지는 지위입니다. 이를 무조건 평준화하면, 조직의 동기와 책임감은 어디로 가겠습니까?
또한 찬성 측은 서울시 사례만을 반복합니다. 하지만 그 사례는 청소·경비라는 특정 직종에 한정된 성공입니다.
IT 전문가, 계절 민원 처리 인력, 프로젝트 기반 연구원—이들에게 정규직은 오히려 삶의 자유를 빼앗는 족쇄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6개월 일하고 세계 여행을 떠나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삶의 방식도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 진정한 다양성 아닐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8조 원의 재정 부담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이는 강원도 교육 예산 3년 치와 맞먹는 규모이며, 이 돈으로는 20만 명의 아동에게 급식을 제공하거나, 5만 가구의 주거 안정을 지원할 수 있습니다.
한 명의 노동자를 정규직화하는 데 드는 비용으로, 수십 명의 아이들이 배고픔을 면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우리는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을 결코 반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면 전환’이라는 단 하나의 해법만을 강요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입니다.
진정한 공공성은 모든 노동 형태를 존중하면서도, 실질적 정의를 실현하는 제도 설계에서 나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형식적 평등보다 실질적 정의를,
획일적 전환보다 다층적 해결책을,
이상주의보다 현실적 책임을.
공공기관은 국민 전체를 위한 공간입니다.
그 안에서 다양한 삶과 노동이 공존할 수 있도록—
우리는 전면 정규직 전환을 반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