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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운영 위원회에 학부모의 영향력을 강화해야 하는가?

개회 발언

찬성 측 개회 발언

존경하는 심사위원 여러분,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 인사드립니다.

우리 팀은 “학교 운영위원회에 학부모의 영향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힙니다. 왜냐하면 교육은 단지 교실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정과 지역사회, 그리고 학부모의 신뢰와 참여 위에서만 진정한 생명력을 얻기 때문입니다.

첫째, 민주주의의 원칙은 교육 현장에서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학부모는 자녀의 미래를 가장 절박하게 고민하는 당사자입니다. 그런데도 지금의 학교운영위원회는 종종 형식적인 자문 기구에 머물러 있습니다. 학부모가 단순한 ‘참관자’가 아니라 ‘의사결정자’로 참여할 때, 학교는 진정한 공공재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둘째, 현실 감각의 부재는 교육을 공허하게 만듭니다. 교사는 훌륭하지만, 교육 정책이나 예산 배분, 급식, 안전 문제 등은 단지 교육철학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학부모는 아이들이 실제로 어떤 환경에서 먹고, 자고, 배우는지를 가장 잘 아는 현장의 눈입니다. 그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때, 학교 운영은 더 실용적이고 인간적이 됩니다.

셋째, 책임성은 투명성에서 시작됩니다. 학부모의 감시와 참여는 무사안일한 행정을 경계하게 만들고, 예산 낭비나 부적절한 처분을 막는 ‘민간 감시망’ 역할을 합니다. 이는 결국 모든 학생에게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는 길입니다.

마지막으로, 누군가는 “학부모가 개입하면 교육의 전문성이 훼손된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오해라고 생각합니다. 전문성과 참여는 상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전문가와 시민이 협력할 때, 교육은 더 튼튼한 기반 위에 서게 됩니다.

꿈을 키우는 공간인 학교에, 꿈을 가장 애타게 바라는 사람들이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지하는 민주적 교육의 모습입니다.

반대 측 개회 발언

존경하는 심사위원 여러분, 그리고 토론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팀은 “학교 운영위원회에 학부모의 영향력을 강화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취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교육은 다수의 열정이 아니라 소수의 전문성 위에서만 제대로 설계되고 실행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교육은 과학이자 예술입니다. 교육과정 설계, 평가 체계, 학생 발달 단계에 대한 이해—이 모든 것은 수년간의 훈련과 경험을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만약 학부모의 의견이 과도하게 반영된다면, 예를 들어 “시험을 줄여라”, “숙제를 없애라”, “우리 아이만 특별히 배려해 달라”는 식의 단기적이고 감정적인 요구가 교육의 본질을 흔들 수 있습니다. 이는 전체 학생에게 불공정한 결과를 낳습니다.

둘째, 학부모는 결코 동질적인 집단이 아닙니다. 재력 있는 학부모, 정보에 능통한 학부모, 조직력 있는 학부모만이 목소리를 내는 구조가 되면, 소수자나 취약계층 학생은 오히려 더 소외됩니다. 영향력 강화란 이름 아래, 교육 격차가 오히려 심화될 위험이 있습니다.

셋째, 의사결정의 비효율성입니다. 학교는 매일 수십 가지의 복잡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수십 명의 학부모가 각자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개입한다면, 합의는 느려지고, 타협은 비합리적이 되며, 결국 교사는 행정에 휘둘리다 교육 본연의 임무를 잃게 됩니다.

누군가는 “학부모 참여는 민주주의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무제한의 참여가 아니라, 적절한 역할 분담 위에서 작동하는 제도적 균형입니다. 학부모는 피드백을 줄 수 있고, 제안할 수 있지만, 운영의 핵심 권한은 교육 전문가에게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학부모의 열정을 존중합니다. 그러나 그 열정이 교육의 전문성과 공공성을 침식해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교육 혁신은 ‘더 많은 외부 간섭’이 아니라, ‘더 나은 전문가 지원’에서 시작됩니다.

개회 발언 반박

찬성 측 두 번째 발언자 반박

존경하는 심사위원 여러분, 방금 반대 측은 마치 학부모가 교실에 들이닥쳐 교과서를 찢고 성적표를 고쳐 쓰려는 것처럼 묘사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가 말하는 ‘영향력 강화’는 전문성 위에 세워진 협력을 의미합니다. 반대 측의 주장에는 세 가지 근본적인 오해가 있습니다.

첫째, “전문성과 참여는 배타적”이라는 전제 자체가 잘못되었습니다. 병원에도 환자 권리 보호를 위한 시민 위원회가 있고, 도시계획에도 주민참여 예산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왜 유독 교육만 ‘전문가의 성역’이 되어야 합니까? 전문가는 방향을 제시하고, 시민은 그 방향이 우리 아이들의 삶과 맞닿아 있는지를 점검합니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입니다.

둘째, “학부모 참여가 오히려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주장은 현실을 거꾸로 본 것입니다. 지금의 학교운영위원회는 정보 접근조차 어려운 다문화 가정, 저소득층 학부모에게 사실상 문이 닫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제도적으로 학부모의 영향력을 보장함으로써, 소수자의 목소리도 회의 테이블에 올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자발적 참여’만 기대한다면, 결국 목소리 큰 소수만이 학교를 움직이게 됩니다.

셋째, “의사결정이 느려진다”는 걱정은 과도합니다. 민주주의는 원래 느립니다. 하지만 그 ‘느림’ 속에서 신뢰가 자랍니다. 교사들이 학부모의 불신 속에서 수업을 한다면, 그게 더 큰 비효율 아닐까요? 우리가 제안하는 건 무제한 개입이 아니라, 핵심 사안—예컨대 급식업체 선정, 안전 점검, 학교폭력 대응 매뉴얼—에 대한 공동 결정권입니다. 이 정도의 참여가 교육을 붕괴시킨다는 건, 마치 비행기 조종사에게 승객이 좌석을 바꾸자고 했다고 해서 추락할 것이라 우려하는 격입니다.

결국 반대 측은 ‘전문성’이라는 이름 아래, 민주적 통제를 거부하려는 관료적 사고에 갇혀 있습니다. 우리는 교사를 신뢰합니다. 그러나 신뢰는 투명성과 함께할 때만 지속됩니다. 학부모의 영향력 강화는 교육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다시 사람 중심으로 돌리는 첫걸음입니다.


반대 측 두 번째 발언자 반박

감사합니다.
찬성 측은 매우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학부모는 아이를 가장 사랑하니, 당연히 더 큰 권한을 줘야 한다”고요. 그러나 사랑이 곧 판단력은 아닙니다. 그리고 열정이 곧 전문성도 아닙니다. 오늘 찬성 측의 주장에는 세 가지 치명적인 허점이 있습니다.

첫째, 민주주의를 모든 영역에 무차별적으로 적용하려는 오류입니다. 법원 판결도 국민투표로 하지 않고, 항공기 조종도 승객 다수결로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전문성이 요구되는 영역에서는 다수의 의지보다 과학적 판단이 우선되기 때문입니다. 교육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찬성 측은 “급식이나 안전은 학부모가 잘 안다”고 했지만, 식품 영양학이나 위기관리 매뉴얼은 단순한 경험이 아니라 체계적 지식이 필요한 분야입니다. 학부모의 의견은 참고할 수 있지만, 결정권까지 넘기는 순간, 교육은 여론의 인질이 됩니다.

둘째, ‘현실 감각’이라는 개념을 너무 좁게 정의했습니다. 찬성 측은 학부모가 아이가 “어떻게 먹고 자는지” 안다고 했지만, 교사는 하루 6시간 이상 수십 명의 아이를 관찰하며 발달 단계, 사회성, 학습 스타일을 과학적으로 분석합니다. 이 경험은 단 한 명의 자녀를 키우는 학부모의 경험과 차원이 다릅니다. 개인적 경험을 공적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위험한 일반화입니다.

셋째, 책임 없는 권한은 폭정을 낳습니다. 찬성 측은 “학부모가 감시하면 예산 낭비가 줄어든다”고 했지만, 만약 학부모들이 “예술 교육은 쓸모없다”며 음악실 예산을 삭감했다면, 누가 그 결정의 결과를 책임질까요? 교사는 예산을 집행하지만, 결정은 학부모가 했습니다. 이처럼 권한과 책임이 분리되면, 학교는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집니다.

마지막으로, 찬성 측은 “협력”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의사결정 구조의 근본적 전복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학부모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정기적인 설문조사, 공청회, 제안 상자—이런 채널은 얼마든지 확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학교 운영의 핵심 권한을 비전문가에게 넘기는 것은, 아이들의 미래를 실험대로 만드는 일입니다.

진정한 교육 민주주의는 ‘누가 더 크게 외치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깊이 알고 책임질 수 있느냐에 기반해야 합니다.

질의응답

찬성 측 세 번째 발언자 질의

[질문 1]
찬성 측 3번 발언자: 반대 측 1번 발언자님께 묻겠습니다.
귀측은 “교육은 소수 전문가의 영역”이라며 학부모의 의사결정 참여를 경계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만약 한 학교에서 교사들이 집단적으로 급식비를 유용하거나, 학교폭력 사건을 은폐하려 한다면—그런 위기 상황에서조차도, 학부모는 여전히 ‘의견만 제시’하고, 실제 조사나 개입 권한은 없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반대 측 1번 발언자:
물론 그런 중대한 위반 행위는 감사원이나 교육청, 경찰 등 공식 기관이 개입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일반적인 학교 운영—예컨대 교육과정 편성이나 평가 방식—까지 학부모가 좌지우지해야 한다는 정당화가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상시적 운영권비상시 감시권을 구분해야 합니다.


[질문 2]
찬성 측 3번 발언자: 반대 측 2번 발언자님께 묻겠습니다.
귀측은 “학부모는 동질적이지 않아, 재력 있는 일부만 목소리를 낸다”고 우려하셨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학교운영위원회는 저소득층, 다문화 가정, 장애 아동 학부모에게 사실상 문이 닫혀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무적 할당제나 지원 예산 확대 같은 제도적 장치를 도입하면, 오히려 영향력 강화가 소외 계층의 목소리를 키우는 수단이 되지 않을까요?

반대 측 2번 발언자:
좋은 제안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할당제를 도입해도 실제로 회의에 꾸준히 참석하고 발언할 수 있는 자원과 시간을 가진 건 여전히 중산층 이상입니다. 게다가 그런 제도가 오히려 형식적 다양성을 낳고, 실질적 논의는 더 어려워집니다. 참여의 양보다 질이 중요합니다.


[질문 3]
찬성 측 3번 발언자: 반대 측 4번 발언자님께 묻겠습니다.
귀측은 “의사결정이 느려지고 비효율적이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런데 OECD 국가 중 핀란드, 캐나다 등은 학부모가 운영위원회에서 실질적 의결권을 갖고 있음에도,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 성과를 냅니다. 이 사례를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느린 민주주의가 오히려 신뢰와 안정을 만든다는 증거 아닌가요?

반대 측 4번 발언자:
핀란드는 교사의 사회적 지위와 전문성이 극도로 높고, 학부모도 교육에 대한 기본적 신뢰를 바탕으로 협력합니다. 한국과는 사회적 맥락이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 현실에서 무작정 그 모델을 가져오면, 전문성 없는 민주주의가 되어 오히려 교육 현장을 혼란스럽게 할 것입니다.

찬성 측 질의 요약

반대 측은 위기 대응은 외부 기관에 맡기고, 학부모는 일상 운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는 ‘예외 상황만 허용’하는 소극적 민주주의입니다. 또한, 소외 계층의 배제 문제를 제도로 해결하려는 시도를 외면하며, 국제 사례조차 맥락 차이를 이유로 일축했습니다. 결국 반대 측은 불완전한 현실을 그대로 두고, 변화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해결은 참여의 문턱을 낮추는 데 있습니다.


반대 측 세 번째 발언자 질의

[질문 1]
반대 측 3번 발언자: 찬성 측 1번 발언자님께 묻겠습니다.
귀측은 “학부모의 영향력을 강화하자”고 하셨지만, “영향력”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의결권 확대입니까? 예산 편성 참여입니까? 아니면 단순한 의견 수렴입니까? 모호한 용어로 감정적 공감만 이끌어내는 것은 아닌지요?

찬성 측 1번 발언자:
명확히 말씀드리면, 핵심 사안—급식, 안전, 학교폭력 대응, 예산 사용 내역—에 대해 학부모 위원이 동의 없이는 실행되지 않도록 하는 실질적 의결권을 의미합니다. 감정이 아니라, 제도적 권한을 말하는 것입니다.


[질문 2]
반대 측 3번 발언자: 찬성 측 2번 발언자님께 묻겠습니다.
귀측은 “학부모는 현장의 눈”이라며 실용적 판단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만약 다수 학부모가 “우리 아이는 수학이 어렵다”며 교과 과정을 축소하라고 요구하면, 그것을 수용해야 합니까? 개인의 체감이 공교육의 표준이 되는 것이 타당한가요?

찬성 측 2번 발언자: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자는 게 아니라, 전문가와 학부모가 함께 검토하는 절차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수학 난이도 조정은 교사·학부모·교육청이 공동 연구 후 결정하는 구조죠. 이는 독단이 아니라 협의 기반의 전문성입니다.


[질문 3]
반대 측 3번 발언자: 찬성 측 4번 발언자님께 묻겠습니다.
만약 학부모가 운영위원회에서 예산을 삭감해 도서관을 체육관으로 바꾸자고 결의했고, 그 결과 학생들의 독서 능력이 급격히 하락했다면—누가 그 책임을 집니까? 교사입니까? 학부모입니까? 아니면 책임 없는 집단 결정으로 끝나는 것입니까?

찬성 측 4번 발언자:
좋은 질문입니다. 하지만 현재도 교장이 최종 책임을 지고, 운영위원회는 자문·의결 기구입니다. 책임 구조는 유지되며, 다만 투명한 논의 과정이 기록되고, 그 과정 자체가 사후 평가 대상이 됩니다. 책임 회피는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운영의 문제입니다.

반대 측 질의 요약

찬성 측은 “의결권”이라고 명확히 답했지만, 그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합니다. 교과 내용부터 시설 변경까지—이는 교육의 전문성을 침해할 여지가 큽니다. 또한 “협의 기반의 전문성”이라는 표현은 모순입니다. 전문성은 다수의 합의가 아니라, 객관적 기준과 훈련에서 나옵니다. 마지막으로, 책임 구조에 대한 답변은 현실을 외면한 이상론에 불과합니다. 권한은 원하고 책임은 회피하는 구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우려하는 바입니다.

자유 토론

찬성 1번:
“상대 측은 학부모의 열정을 ‘감정적 개입’으로 치부하셨습니다. 그런데 묻겠습니다. 급식에 곰팡이가 핀 빵이 나오고, 화장실 문이 고장 나도 수리되지 않을 때, 그걸 ‘감정’이라고 하시겠습니까? 그건 현실의 목소리입니다. 핀란드는 학부모가 예산 배분부터 폭력 예방 프로그램 설계까지 공동 결정합니다. 결과는요? OECD 국가 중 학교 신뢰도 1위입니다. 느린 민주주의가 오히려 빠른 해결을 만듭니다.”

반대 1번:
“핀란드를 들먹이시네요. 하지만 핀란드는 인구 550만, 교사 사회적 지위가 의사보다 높은 나라입니다. 한국은 어떻습니까? 학부모 중 한 분이 ‘우리 아이 반에 에어컨을 우선 설치해 달라’고 요구하면, 위원회는 어떻게 결정할까요? 공정성입니까, 압력입니까? 전문가는 모든 아이를 위한 기준을 세우지만, 학부모는 내 아이만을 봅니다. 그 차이를 무시하면 교육은 다수의 이기심 경매장이 됩니다.”

찬성 2번:
“재미있는 말씀이네요. 그럼 지금 학교는 누구를 위한 공간입니까? 교사들만의 성역입니까? 상대 측은 ‘모든 아이’를 말하지만, 정작 다문화 가정, 한부모 가정 학부모는 운영위원회 문턱조차 넘지 못합니다. 왜요? 회의 시간이 직장인의 퇴근 후와 겹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제도적 보장—예를 들어 저녁 회의 의무화, 온라인 투표제, 할당제—를 제안합니다. 이건 ‘이기심’이 아니라 포용의 설계입니다.”

반대 2번:
“할당제라니요? 그러면 이제부터는 ‘학부모 대표’가 아니라 ‘ quotas에 맞춘 인형’이 되는 건가요? 진짜 문제는 참여율이 아니라 책임의 귀속입니다. 만약 학부모가 급식업체 선정에 관여했다가 식중독이 발생하면, 누가 책임지죠? 교사입니까? 교장입니까? 아니면 그날 회의에 참석한 30명의 학부모입니까? 권한은 분산되고, 책임은 증발합니다. 그것이 바로 조직의 붕괴입니다.”

찬성 3번:
“책임을 피하자는 게 아니라, 함께 짊어지자는 겁니다. 지금처럼 교사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게 더 위험하지 않습니까? 작년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학생 간 폭력을 방치하다 법적 처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학부모들은 ‘왜 우리에겐 아무 말도 없었느냐’고 울었습니다. 투명한 협의 구조가 있었다면, 예방도 가능했고, 책임도 공유했을 겁니다. 민주주의는 책임을 회피하는 도구가 아니라, 공동체적 책임을 창출하는 장치입니다.”

반대 3번:
“협의는 좋습니다. 하지만 의결권은 아닙니다. 상담은 해도 수술은 의사가 하는 것처럼, 학부모는 의견을 낼 수 있지만, 최종 판단은 교육 전문가가 해야 합니다. 그런데 찬성 측은 ‘의결권 강화’를 주장하시죠? 그건 마치 환자가 수술 방법을 직접 결정하겠다고 우기는 격입니다. 사랑은 충분하지만, 지식은 부족합니다. 그리고 그 부족함이 다른 아이들의 미래를 망칠 수 있습니다.”

찬성 4번:
“상대 측은 계속 ‘전문성’을 절대시하십니다. 하지만 교육의 전문성은 폐쇄된 실험실에서 자라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집에서 어떤 눈빛으로 밥을 먹는지, 어떤 두려움으로 등교하는지—그걸 아는 건 학부모입니다. 전문성과 현장성이 만나야 진짜 교육이 됩니다. 게다가, 교사는 이미 과도한 행정 업무에 시달립니다. 학부모가 운영을 함께 분담하면, 교사는 가르치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습니다. 이게 오히려 전문성을 살리는 길 아닐까요?”

반대 4번: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짚겠습니다. 찬성 측은 ‘학부모가 운영을 분담하면 교사가 가르치는 데 집중한다’고 하셨죠?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학부모가 운영에 깊이 개입하면, 교사는 매일 회의 준비, 설명 자료 작성, 불만 처리에 시간을 뺏깁니다. 실제로 서울 모 초등학교는 학부모 운영위원이 70% 이상의 회의 안건을 제출하면서, 교사들이 수업 준비 대신 PPT 만들기에 매달렸습니다. 참여의 이름으로 교육이 멈췄던 사례입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건, 교육의 본질입니다.”

최종 발언

찬성 측 최종 발언

존경하는 심사위원님, 그리고 오늘 함께 고민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우리는 단순히 ‘학부모의 목소리를 키우자’는 감정적 요구를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교육의 주체를 확장하자는 제도적 제안을 한 것입니다.

반대 측은 계속해서 “전문성이 훼손된다”고 우려하셨습니다. 하지만 묻고 싶습니다.
전문성이란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라면, 그 아이를 가장 가까이서 바라보는 학부모의 눈이 왜 배제되어야 합니까?

우리가 말하는 ‘영향력 강화’는 교사의 권한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급식이 위생적인지, 학교폭력 대응이 제대로 되는지, 예산이 어디에 쓰이는지
이런 핵심 사안에 대해 공동 책임을 지는 구조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반대 측은 “소수 학부모만 목소리를 낸다”고 걱정하셨지만,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참여를 막는 것이 아니라,
저녁 회의, 온라인 투표, 할당제 같은 제도로 문턱을 낮추는 것입니다.
핀란드는 이렇게 시작했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신뢰받는 교육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민주주의는 느립니다. 하지만 그만큼 튼튼합니다.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빠르게 결정하는 것보다, 함께 고민하고 책임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확신합니다.
학부모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것은 교육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더 공정하고 인간적인 교육을 세우는 첫걸음입니다.

심사위원 여러분,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단지 전문가의 손에만 맡기지 마십시오.
그 미래를 가장 애타게 바라는 사람들—학부모들과 함께 만들어 갑시다.

반대 측 최종 발언

감사합니다.

오늘 찬성 측은 열정 넘치는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하지만 열정이 곧 정답은 아닙니다.
좋은 의도가 나쁜 결과를 낳는 경우, 역사 속에 너무 많습니다.

찬성 측은 “공동 책임”이라고 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학부모는 내 아이만을 생각할 권리가 있는 개인입니다.
그러나 교사는 모든 아이를 공정하게 대해야 하는 공무원입니다.
이 둘의 책임 구조가 섞이면, 누가 전체를 위해 결정합니까?

“제도로 보완하면 된다”고 하셨지만,
한국 현실에서 학부모 운영위원은 이미 중산층 중심입니다.
할당제는 이름만 다양할 뿐, 실제 의사결정은 여전히 정보력과 시간이 많은 소수에게 집중됩니다.
결국 취약계층 아이들이 더 소외되는 역효과가 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육은 실험이 아닙니다.
시험을 줄이고, 숙제를 없애고, 평가를 완화하자고 외치는 목소리에
학교가 매번 휘둘린다면,
누가 아이들의 장기적 성장을 책임지겠습니까?

진정한 민주주의는 ‘모두가 결정한다’가 아니라,
적절한 역할에 적절한 권한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학부모는 피드백을 주고, 제안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육의 방향과 운영의 핵심은 전문가에게 맡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육은 감정이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는 과학이기 때문입니다.

심사위원 여러분,
우리는 학부모의 사랑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사랑이 교육의 전문성과 공공성을 침식해서는 안 됩니다.
책임 없는 참여는 혼란입니다.
명확한 책임 위의 협력만이 진정한 교육 민주주의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