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밍 서비스의 오리지널 콘텐츠에 대한 국내 스크린 쿼터제를 적용해야 하는가?
개회 발언
찬성 측 개회 발언
존경하는 심사위원님,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신 모든 분들께 묻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10년 후, 어떤 이야기를 보며 자라날까요?”
우리 측은 스트리밍 서비스의 오리지널 콘텐츠에도 국내 스크린 쿼터제를 적용해야 한다고 단호히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문화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을 담은 살아 숨 쉬는 유전자이기 때문입니다.
첫째, 문화 주권의 위기입니다.
현재 넷플릭스 글로벌 탑10 목록의 80% 이상이 미국 콘텐츠로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국어로 된 드라마나 영화는 ‘지역 특화 콘텐츠’로 분류되어 세계 무대에서도 ‘기타’ 항목에 갇혀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시장 선택이 아니라, 문화적 동질화의 시작입니다.
프랑스는 2020년부터 스트리밍 플랫폼에 연간 매출의 20%를 현지 콘텐츠 제작에 투자하도록 법제화했습니다.
우리만이 이 흐름에서 뒤처져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둘째, 공정한 창작 생태계 조성입니다.
넷플릭스는 연간 170억 달러를 콘텐츠에 투자합니다.
반면, 한국 전체 방송사의 연간 드라마 제작비는 그 10분의 1에도 못 미칩니다.
이런 불균형 속에서 ‘자율 경쟁’을 말하는 것은, 맨손으로 탱크를 막으라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쿼터제는 특혜가 아니라, 최소한의 경기장 평탄화입니다.
셋째, 공공재로서의 문화 보호입니다.
전기나 수도처럼, 문화도 시장 논리만으로는 지켜낼 수 없습니다.
‘오징어 게임’이 세계를 사로잡은 건 우연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한국 사회의 고단함, 계층 갈등, 인간성에 대한 질문이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작품이 계속 나올 수 있도록 하려면, 시장이 아닌 제도가 버팀목이 되어줘야 합니다.
누군가는 “강제 배정은 콘텐츠 품질을 떨어뜨린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양’이 아니라 ‘기회’를 요구합니다.
한 번의 노출이, 다음 ‘기생충’을 낳을 수 있습니다.
꿈을 전당포에 맡기지 않기 위해, 우리는 오늘 이 제도를 요청합니다.
반대 측 개회 발언
안녕하세요.
오늘 우리가 논의하는 건 단순한 규제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원하는 문화의 미래는 ‘강제된 다양성’인가, ‘자유로운 선택’인가 하는 근본적 질문입니다.
우리 측은 스트리밍 오리지널 콘텐츠에 스크린 쿼터제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단호히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문화는 강제로 자라지 않으며, 소비자의 눈과 마음으로만 검증되기 때문입니다.
첫째, 소비자 선택권의 침해입니다.
스트리밍은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내가 원하는 시간에’ 보는 혁명이었습니다.
이제 정부가 “이 콘텐츠는 국산이니까 30%는 꼭 봐야 한다”고 한다면,
그건 선택의 자유를 빼앗는 것이며, 결국 사용자 이탈로 이어집니다.
실제로 유럽 일부 국가에서 시행된 할당제는, 사용자들이 VPN으로 우회하거나 플랫폼을 떠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둘째, 콘텐츠 품질 저하의 역설입니다.
쿼터제는 ‘수’를 보장하지만, ‘질’은 보장하지 않습니다.
1990년대 한국 영화계는 쿼터제 덕분에 살아남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시절, 쿼터제 내에서도 살아남은 건 ‘쉬리’와 ‘공동경비구역’처럼 품질로 승부한 작품들이었습니다.
오늘날처럼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시대에, ‘국산이니까’라는 이유만으로 노출되는 콘텐츠는 오히려 한국 문화의 위상을 깎아내립니다.
셋째, 글로벌 협력의 문을 닫는 위험입니다.
넷플릭스는 ‘미스터 션샤인’부터 ‘더 글로리’까지, 한국 작가·배우·감독과의 공동 제작을 통해
한국 콘텐츠를 세계로 퍼뜨리는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이제 정부가 “오리지널 중 30%는 순수 국산이어야 한다”고 하면,
이들은 차라리 한국 시장을 포기할 것입니다.
규제는 보호가 아니라, 고립입니다.
누군가는 “문화는 시장에 맡길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믿습니다.
한국 창작자들의 실력과, 한국 관객들의 눈높이를.
‘기생충’도, ‘오징어 게임’도, 정부의 할당 없이 세계를 정복했습니다.
진정한 문화 강국은 강제가 아니라, 신뢰에서 시작됩니다.
개회 발언 반박
찬성 측 두 번째 발언자 반박
존경하는 심사위원님, 방금 반대 측은 “소비자 선택”, “품질”, “글로벌 협력”이라는 세 가지 깃발을 들며 우리의 제안을 ‘강제’라고 규정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은 현실을 외면한 이상주의일 뿐입니다.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1. “소비자 선택권”은 정말 존재하는가?
반대 측은 스트리밍이 ‘자유로운 선택’의 공간이라고 말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넷플릭스의 추천 알고리즘은 사용자 80%가 첫 화면에서 보이는 콘텐츠만 클릭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건 선택이 아니라, 조작된 노출입니다.
미국 콘텐츠가 알고리즘 상단을 점령한 이유는 단순히 ‘좋아서’가 아니라, 플랫폼이 자사 오리지널에 더 많은 마케팅 비용을 쏟기 때문입니다.
이런 구조에서 “국산 콘텐츠도 한 번 볼 기회를 달라”는 요청이 어떻게 ‘강제’입니까?
오히려 우리는 왜곡된 시장에서의 최소한의 공정성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2. 쿼터제가 품질을 떨어뜨린다는 오해
반대 측은 “쿼터제는 수만 늘리고 질은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한국 영화 쿼터제 시절, 바로 그 제도 덕분에 봉준호 감독은 ‘괴물’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제도는 품질을 보장하지 않지만, 품질 있는 작품이 탄생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듭니다.
오늘날 스트리밍 시장은 ‘바이럴 가능성’만 보고 투자합니다.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실험적 드라마는, 아무리 훌륭해도 알고리즘의 벽을 넘지 못합니다.
쿼터제는 그런 작품들에게 “한 번의 스크린”을 보장하는 안전망입니다.
3. 글로벌 협력? 아니, 플랫폼 종속입니다
반대 측은 넷플릭스를 “파트너”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파트너라면 왜 한국 제작사들은 수익의 10%도 받지 못합니까?
왜 오리지널 콘텐츠의 IP는 모두 넷플릭스가 소유합니까?
이건 협력이 아니라, 문화 자원의 식민지화입니다.
프랑스는 아마존·넷플릭스에 현지 투자 의무를 부과했고, 결과는?
프랑스 콘텐츠의 글로벌 수출이 3년 새 2배로 늘었습니다.
규제는 고립이 아니라, 주권을 회복하는 첫걸음입니다.
결국 반대 측의 주장은 “시장에 맡기자”는 신자유주의적 믿음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문화는 물건이 아닙니다.
한 번 사라진 이야기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우리는 단지, 우리 아이들이 ‘오징어 게임’뿐 아니라 ‘설국열차’도, ‘지옥’도, 그리고 아직 이름 없는 수많은 한국 이야기도 볼 수 있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반대 측 두 번째 발언자 반박
감사합니다.
방금 찬성 측은 “알고리즘 편향”, “생태계 보호”, “문화 주권”이라는 멋진 수사로 우리를 압도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논리는 세 가지 치명적 허점을 안고 있습니다.
1. “왜곡된 시장”이라는 전제 자체가 모순입니다
찬성 측은 “알고리즘이 소비자를 조종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기생충’은 어떻게 전 세계 192개국에서 사랑받았습니까?
‘오징어 게임’은 왜 알고리즘의 벽을 뚫고 글로벌 1위가 되었습니까?
답은 간단합니다. 관객이 진짜로 원했기 때문입니다.
알고리즘은 사람의 선택을 반영할 뿐, 결정하지 않습니다.
만약 한국 콘텐츠가 충분히 매력적이라면, 알고리즘이든 쿼터제든 필요 없습니다.
창작자의 실력과 관객의 눈이야말로 가장 정직한 필터입니다.
2. 쿼터제는 생태계가 아니라 ‘보호무역’입니다
찬성 측은 쿼터제를 “안전망”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안전망은 바다에 빠진 사람을 구조하는 것이지,
모든 배에게 “한국산 나무로만 만들라”고 강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한국 창작자들은 넷플릭스, 디즈니+, 애플TV+와 협업하며 세계 무대에 올랐습니다.
이제 정부가 “오리지널 중 30%는 순수 국산이어야 한다”고 하면,
플랫폼은 한국 시장을 포기하거나, 한국 제작사를 외주로만 활용할 것입니다.
결국 피해를 보는 건 바로 그들이 보호하려는 한국 창작자들입니다.
3. 문화 주권? 오히려 주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꼴입니다
찬성 측은 프랑스 사례를 들며 “우리도 해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프랑스는 EU라는 거대 공동체 안에서 규제를 시행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은 어떻습니까?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지만, 문화 콘텐츠 시장 규모는 미국의 5%에도 못 미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일은 더 열린 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지,
“국산이니까 봐줘”라는 구걸이 아닙니다.
진정한 문화 주권은 강제가 아니라, 세계가 자발적으로 찾는 콘텐츠를 만드는 능력에서 나옵니다.
찬성 측은 “한 번 사라진 이야기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강력한 이야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길은 정부의 강제가 아니라, 창작자의 자유와 관객의 선택 속에 있습니다.
‘기생충’은 쿼터제 덕분이 아니라, 봉준호 감독의 천재성과 한국 사회의 현실을 정확히 읽은 통찰 덕분에 탄생했습니다.
우리는 그 통찰을 믿습니다.
규제보다 신뢰를, 강제보다 자유를 선택하겠습니다.
질의응답
찬성 측 세 번째 발언자 질의
찬성 측 3번:
“반대 측 첫 번째 발언자님께 묻겠습니다.
귀측은 ‘소비자는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넷플릭스가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미국 오리지널 콘텐츠를 상단에 80% 이상 노출시키는 구조에서,
한국 관객이 한국 콘텐츠를 ‘자유롭게’ 발견할 확률은 과연 얼마입니까?
이런 구조적 불평등을 ‘자유 시장’이라 부르시는 건 아닙니까?”
반대 측 1번:
“알고리즘은 사용자 선호도를 기반으로 작동합니다.
만약 한국 콘텐츠가 충분히 매력적이라면, 알고리즘도 자연스럽게 그것을 밀어줄 것입니다.
‘오징어 게임’이 바로 그 증거죠.
우리는 창작자의 능력과 관객의 판단을 믿습니다.”
찬성 측 3번:
“반대 측 두 번째 발언자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귀측은 ‘쿼터제는 품질 저하를 초래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사회적 약자를 다룬 실험적 드라마나 지역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
‘바이럴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아예 제작조차 되지 않는 현실은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시장 논리만으로는 이런 이야기들이 사라지는 걸 막을 수 없습니다.
이 점을 인정하십니까?”
반대 측 2번:
“모든 콘텐츠가 대중의 관심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작품들은 OTT 외에도 영화제, 공공 방송, 크라우드펀딩 등 다양한 통로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강제 노출보다는, 다양한 생태계를 조성하는 게 더 현명한 접근입니다.”
찬성 측 3번:
“반대 측 네 번째 발언자님께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글로리’의 IP는 누가 소유합니까?
수익의 몇 퍼센트가 한국 제작사에 돌아갑니까?
귀측이 말하는 ‘글로벌 파트너십’이 사실은 문화 자원의 일방적 수탈 구조라는 점,
이제는 인정하실 때가 아닐까요?”
반대 측 4번:
“IP 소유 구조는 계약에 따라 다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넷플릭스 덕분에 한국 콘텐츠가 세계 무대에 섰다는 사실입니다.
계약 조건은 개선할 수 있지만, 이를 ‘수탈’이라 규정하는 건 과도한 단정입니다.”
찬성 측 질의 요약
반대 측은 일관되게 “시장이 해결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알고리즘은 중립이 아니며, 창작의 다양성은 시장 논리만으로는 보장되지 않습니다.
더욱이, IP와 수익의 대부분을 플랫폼이 가져가는 구조를 ‘파트너십’이라 부르는 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자기기만입니다.
우리가 요구하는 건 특혜가 아니라, 공정한 출발선입니다.
반대 측 세 번째 발언자 질의
반대 측 3번:
“찬성 측 첫 번째 발언자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귀측은 ‘쿼터제는 기회를 보장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만약 어떤 제작사가 ‘형식적으로 국산’인 콘텐츠를 양산해
쿼터 할당만 채우려 한다면,
그 결과로 관객이 ‘국산 = 질 낮음’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는 위험은
어떻게 방지하시겠습니까?”
찬성 측 1번:
“쿼터제는 단순한 ‘수’가 아니라, 기회의 균등화를 의미합니다.
프랑스는 퀄리티 기준과 함께 투자 의무를 병행합니다.
우리도 ‘노출 기회’와 ‘콘텐츠 심의 기준’을 함께 도입할 수 있습니다.
기회를 주되, 책임도 묻는 구조죠.”
반대 측 3번:
“찬성 측 두 번째 발언자님께 묻겠습니다.
귀측은 ‘알고리즘이 조작적이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만약 정부가 ‘국산 콘텐츠를 상단에 노출하라’고 명령한다면,
그건 알고리즘 조작이 아니라 정치적 검열이 아닙니까?
창작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찬성 측 2번:
“우리는 ‘상단 노출’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단지, 오리지널 라인업 내에서 최소 비율의 국산 콘텐츠 포함을 요청할 뿐입니다.
이는 영화관 스크린 쿼터처럼, 공급 측의 책임을 묻는 것이지,
콘텐츠 자체를 검열하는 것이 아닙니다.
혼동하지 마십시오.”
반대 측 3번:
“찬성 측 네 번째 발언자님께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만약 넷플릭스가 ‘쿼터제 시행 시 한국 시장 철수’를 선언한다면,
그 피해는 결국 한국 창작자와 관객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이러한 역효과 가능성을 감수하면서까지 강제 규제를 밀어붙이는 것이
진정한 문화 보호라고 보십니까?”
찬성 측 4번:
“넷플릭스는 이미 한국에서 연간 수천억 원의 수익을 올립니다.
철수는 협상 카드일 뿐, 현실적 선택이 아닙니다.
오히려 프랑스 사례처럼, 규제를 계기로 공정한 파트너십을 재협상할 기회가 됩니다.
우리는 무턱대고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주권 국가로서의 협상력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반대 측 질의 요약
찬성 측은 “기회 보장”이라는 이상적 목표를 내세우지만,
실제 적용 시 형식적 국산 콘텐츠의 범람, 정부 개입의 과도함,
그리고 플랫폼 철수라는 리스크를 간과하고 있습니다.
문화는 강제로 자라지 않습니다.
신뢰와 경쟁 속에서만 진짜 이야기가 살아남습니다.
우리는 그 믿음을 버릴 수 없습니다.
자유 토론
찬성 1번:
“알고리즘이 중립이라면, 왜 넷플릭스 한국어 인터페이스에서도 ‘Stranger Things’가 ‘슬기로운 의사생활’보다 위에 있습니까?
이건 선택이 아니라, 플랫폼이 정해준 메뉴입니다.
우리가 요구하는 건 ‘국산 콘텐츠를 강제로 보여줘’가 아니라,
‘한국 이야기도 메인 메뉴에 올릴 기회를 달라’는 겁니다.”
반대 1번:
“그럼 알고리즘을 고치라고 플랫폼에 요구하세요.
왜 정부가 나서서 창작자에게 ‘이건 국산이어야 한다’고 속박합니까?
혹시 쿼터제가 시행되면, 다음엔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작품만 허용한다’는 심의 기준이 따라오지 않을까요?
창작의 자유는 규제의 이름으로 가장 쉽게 무너집니다.”
찬성 2번:
“프랑스는 넷플릭스에 ‘연 매출의 20%를 현지 콘텐츠에 투자하라’고 했습니다.
결과는요? ‘루팡’이라는 프랑스 오리지널이 전 세계 7천만 가구에서 시청됐습니다.
규제가 창작을 막은 게 아니라, 프랑스 이야기를 세계에 내놓는 발판이 됐습니다.
우리는 단지, 한국판 ‘루팡’이 태어날 기회를 달라는 겁니다.”
반대 2번:
“하지만 프랑스는 EU라는 거대 시장을 등에 업고 협상했습니다.
한국은 어떻습니까?
넷플릭스가 ‘쿼터제 시행하면 한국 오리지널 예산 30% 삭감’이라도 하면,
누가 피해를 봅니까? 바로 김 감독, 박 작가 같은 우리 창작자들입니다.
‘기회’라지만, 현실은 기회의 사막이 될 수 있습니다.”
찬성 3번:
“사막을 만든 건 누굽니까?
넷플릭스는 ‘더 글로리’의 IP를 100% 소유합니다.
수익의 90%는 미국으로 갑니다.
한국은 배우와 스태프의 노동력만 제공하는 ‘콘텐츠 공장’이 되고 있습니다.
이걸 협력이라고 부르시나요?
아니면 디지털 시대의 문화 식민지라고 불러야 할까요?”
반대 3번: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징어 게임’은 전 세계가 찾았습니다.
‘기생충’은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정부의 쿼터제 덕분이 아니라, 한국인의 통찰과 창의성 덕분에 성공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창작자를 믿어야지, 정부의 할당표를 믿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이 문화 강국의 진짜 기반입니다.”
찬성 4번:
“믿음만으로는 안 됩니다.
10년 후, 우리 아이들이 ‘미국식 뉴스룸 드라마’와 ‘브리티시 크라임 스릴러’만 보며 자라면,
한국 사회의 복잡함, 우리의 슬픔과 희망은 어디에 담깁니까?
문화는 공기처럼 느껴지지만, 사라지고 나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쿼터제는 공기 필터가 아니라, 우리 언어로 된 이야기가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반대 4번:
“그 공간이 정부가 정한 틀 안이라면, 오히려 숨이 막힙니다.
혹시 쿼터제가 도입되면,
‘이 작품은 너무 정치적이어서 국산 오리지널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통보를 받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규제는 처음엔 보호막처럼 보이지만, 결국 표현의 철창이 됩니다.
진정한 문화는 자유 속에서만 꽃핍니다.
우리는 그 자유를 지켜야 합니다.”
최종 발언
찬성 측 최종 발언
존경하는 심사위원님,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해주신 모든 한국인 여러분.
우리가 오늘 논의하는 건 단순한 규제가 아닙니다.
우리 언어로 된 이야기가, 우리 아이들의 눈앞에서 사라지는 걸 막을 수 있느냐는 문화 생존의 문제입니다.
반대 측은 “시장이 해결할 것”이라 말했습니다.
하지만 시장은 ‘기생충’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통찰과, 그 통찰을 믿어준 작은 제작사의 용기가 만들었습니다.
그 용기를 가능하게 한 건, 1990년대 영화 스크린 쿼터제였습니다.
그 제도가 없었다면, 봉 감독은 아마도 CF나 찍고 있었을 겁니다.
오늘 스트리밍 시장은 더 가혹합니다.
넷플릭스는 연간 170억 달러를 쏟아붓고, 알고리즘은 미국 오리지널만 상단에 올립니다.
이건 선택이 아니라 구조적 소외입니다.
“보고 싶으면 찾아보라”는 말은, 도서관이 불타는데 “책은 네가 구하라”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요구하는 건 ‘강제’가 아닙니다.
한 번의 기회입니다.
프랑스는 이미 넷플릭스에 현지 콘텐츠 투자 의무를 부과했고, 결과는?
프랑스 드라마가 세계로 나갔습니다.
한국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작은, 우리 이야기가 메인 화면에라도 올라갈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 보장에서부터입니다.
누군가는 “품질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품질 있는 작품도 노출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쿼터제는 형식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실험과 도전을 허락하는 안전망입니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10년 후, 우리의 자녀들이 어떤 이야기 속에서 자라날까요?
미국의 영웅 이야기만 반복되는 세상에서,
한국의 아픔과 희망, 웃음과 분노가 담긴 이야기는 어디에 있을까요?
문화는 공기와 같습니다.
존재할 때는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사라지고 나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그 공기가 계속 흐르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확신합니다.
스크린 쿼터제는 강제가 아니라, 우리 문화가 숨 쉴 수 있도록 열어주는 창문입니다.
반대 측 최종 발언
감사합니다.
찬성 측은 “기회”를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기회’라는 이름 아래, 창작의 자유와 관객의 선택이 희생될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건 간단합니다.
한국인은 충분히 똑똑하고, 한국 창작자는 충분히 훌륭하다는 사실입니다.
‘오징어 게임’은 정부의 할당 없이 190개국에서 1위가 되었습니다.
‘기생충’은 어떤 쿼터제의 도움도 없이 오스카를 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짜로 좋은 이야기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쿼터제는 “국산이니까”라는 딱지를 붙여,
실력 없는 콘텐츠까지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는 보호무역이 됩니다.
결과는?
관객은 외면하고, 플랫폼은 한국 시장을 떠나며,
결국 피해를 보는 건 바로 그들이 보호하려던 한국 창작자들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 제도가 표현의 철창이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국산 콘텐츠”란 기준은 누가 정합니까?
정부입니까? 행정부가 어떤 이야기가 ‘국민에게 적합하다’고 판단하기 시작하면,
그건 문화 지원이 아니라 검열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프랑스 사례를 존중합니다.
하지만 프랑스는 EU라는 거대 시장을 등에 업고 규제를 시행했습니다.
한국은 다릅니다.
우리의 힘은 작지만 날카로운 창의성에 있습니다.
그 창의성을 믿지 못하고, 정부의 손에 맡긴다면,
우리는 진정한 문화 강국이 아니라, 규제에 중독된 문화 포로가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찬성 측에게 묻고 싶습니다.
만약 내일부터 “스트리밍 오리지널의 30%는 반드시 국산이어야 한다”는 법이 생긴다면,
넷플릭스는 한국 제작사를 파트너로 여길까요?
아니면, 차라리 일본이나 태국과 일할까요?
진정한 문화 주권은 강제에서 오지 않습니다.
세계가 자발적으로 우리 이야기를 찾을 때, 비로소 우리가 문화의 주인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합니다.
규제보다 신뢰를, 강제보다 자유를.
한국인의 창의성과, 한국 관객의 눈을 믿겠습니다.
왜냐하면,
진짜 문화는 결코 강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