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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민영화를 허용해야 하는가?

의료 민영화를 허용해야 하는가?

개회 발언

찬성 측 개회 발언

존경하는 심사위원님, 그리고 오늘 이 토론장을 함께하는 모든 분들께 묻겠습니다.
“당신이 중증 질환에 걸렸을 때, 6개월을 기다려야 수술받을 수 있다면—그 시간 동안 고통과 두려움을 감내해야 한다면—과연 그게 정의로운 의료인가요?”

우리 팀은 의료 민영화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민영화는 단순한 ‘영리 추구’가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더 빠르고, 더 나은 방식으로 지켜줄 수 있는 현실적 해법이기 때문입니다.

첫째, 대기 시간 단축과 서비스 질 향상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공공 의료 시스템은 인력과 예산의 한계로 인해 필수적인 진료조차 장기간 기다려야 하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민영화를 허용하면, 시장 경쟁이 유도되어 병원은 더 나은 서비스, 더 빠른 진료, 더 정밀한 기술 도입에 투자하게 됩니다. 싱가포르는 공공과 민간을 조화롭게 운영하며 OECD 국가 중 평균 수명 1위, 대기 시간 최하위를 기록했습니다. 이건 이념이 아니라, 살아 있는 성과입니다.

둘째, 환자의 선택권 확대입니다. 지금은 모든 국민이 똑같은 ‘표준형’ 의료만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더 정밀한 검사를 원하고, 누군가는 맞춤형 치료를 원합니다. 민영화는 이런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의료의 다원화를 가능하게 합니다. 선택권은 자유의 핵심이며, 건강권 역시 예외일 수 없습니다.

셋째, 공공 의료 재정 부담 경감입니다. 고령화 속도가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 사회에서, 공공 의료만으로는 재정 파탄이 불가피합니다. 민간 자본이 고부가가치 진료 분야를 맡으면, 공공 시스템은 필수적이고 기초적인 의료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이는 효율적 분업, 즉 ‘모두를 위한 의료’를 실현하는 지름길입니다.

물론 누군가는 말할 겁니다. “의료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권리다.” 맞습니다. 하지만 접근할 수 없는 권리란, 권리가 아닙니다. 민영화는 권리를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 그 권리를 실제로 누릴 수 있게 만드는 다리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국민의 생명을 더 잘 지킬 수 있는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 길은 바로, 의료 민영화를 허용하는 것입니다.


반대 측 개회 발언

존경하는 심사위원님, 여러분.
혹시 기억하시나요? 2020년, 한 40대 가장이 암 진단을 받고도 치료비가 없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그는 이렇게 남겼습니다.
“돈이 없으니, 내 생명은 가치가 없다는 말이군요.”

이게 바로 의료를 시장에 맡길 때 벌어지는 참극입니다.
우리 팀은 의료 민영화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단호히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의료는 상품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권이기 때문입니다.

첫째, 의료의 본질은 ‘평등’에 있습니다. 생명 앞에 부자와 가난한 자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민영화는 자연스럽게 ‘돈 많은 자만 좋은 치료를 받는’ 구조를 만듭니다. 미국은 세계 최고의 민영 의료 시스템을 갖췄지만, 연간 50만 명이 의료비 때문에 파산합니다. 심지어 응급실에서도 신용카드 확인부터 요구받는 나라입니다. 이게 우리가 따라가야 할 미래입니까?

둘째, 공공 의료 체계의 붕괴를 초래합니다. 민간 병원이 우수한 의사와 첨단 장비를 빨아들이면, 공공 병원은 점점 더 열악해집니다. 결과적으로 서민은 ‘남은 것’만 받게 되죠. 이는 의료 양극화를 넘어, 사회 전체의 건강 불평등을 고착화시킵니다.

셋째, 윤리적 붕괴의 시작입니다. 민영 병원은 이윤을 내야 살아남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병원이 수익성이 낮은 응급의료, 정신건강, 예방접종에 투자하겠습니까? 결국 필요한 치료가 아니라, 팔리는 치료만 남게 됩니다. 생명을 ‘수익률’로 계산하는 순간, 의학은 과학이 아니라 마케팅이 됩니다.

누군가는 말할 겁니다. “선택권이 늘면 좋지 않느냐?” 하지만 선택권은 경제적 여유가 있을 때만 유효합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프리미엄 병원을 선택하세요’라고 말하는 건, 굶주린 사람에게 ‘미슐랭 레스토랑 가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의료는 시장의 법칙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에 따라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이윤이 아니라, 모든 생명이 동등하게 존중받는 사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호히 말합니다.
의료 민영화는 허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개회 발언 반박

찬성 측 두 번째 발언자 반박

존경하는 심사위원님, 방금 반대 측은 매우 감동적인 이야기로 우리를 설득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감동적인 이야기가 곧 타당한 논리인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주장은 세 가지 근본적 오류 위에 세워졌습니다.

첫째, ‘민영화’를 ‘의료 시장화 전면 허용’으로 잘못 정의했습니다.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완전한 자유시장이 아니라, 공공 시스템을 보완하는 ‘규제된 민영화’입니다. 싱가포르는 민간 병원이 있지만, 정부는 진료비 상한제, 필수 진료 의무화, 환자 보조금 등 강력한 규제를 통해 평등을 지킵니다. 반면 미국은 규제 없이 시장에 맡긴 실패 사례입니다. 그런데 반대 측은 이 둘을 동일시하며, ‘악마의 변형’을 만들어 공포를 조장하고 있습니다.

둘째, ‘공공 의료 붕괴’라는 인과관계는 필연적이지 않습니다.
민영 병원이 우수 인력을 빨아들인다면, 정부는 그에 맞춰 공공 병원의 처우를 개선하면 됩니다. 실제로 독일은 민간 병원이 전체의 60% 이상을 차지하지만, 정부는 의사 급여와 장비 투자를 보장해 공공·민간 간 격차를 최소화했습니다. 문제는 민영화 자체가 아니라, 관리 부재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막는 것’이 아니라, ‘잘 설계하는 것’입니다.

셋째, ‘선택권은 가진 자만의 특권’이라는 주장은 현실을 외면합니다.
현재 우리 시스템은 모든 사람에게 ‘같은’ 치료만 제공합니다. 하지만 암 환자가 표준 항암제 대신 맞춤형 면역치료를 원할 때, 그는 해외로 나가거나 불법 중개업자에게 수천만 원을 줘야 합니다. 이게 정말 평등입니까?
민영화는 경제적 약자에게도 선택의 기회를 열어주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정부가 고가 치료에 대한 보조금을 확대하거나, 민간 병원에 필수 진료 의무를 부과하면, 선택권은 오히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안전망이 됩니다.

결국 반대 측은 ‘이상적 평등’을 말하지만, 현실에서 기다림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고통은 외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평등은 ‘모두가 똑같이 기다리는 평등’이 아니라, ‘누구나 필요한 치료를 제때 받을 수 있는 실질적 평등’입니다.


반대 측 두 번째 발언자 반박

찬성 측은 “민영화는 다리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다리 끝에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출구가 없습니다.
그들의 논리는 세 가지 치명적 허점을 안고 있습니다.

첫째, 싱가포르 사례는 특수 조건 하에서만 성립합니다.
싱가포르는 국민소득이 한국보다 높고, 정부가 국민 소득의 20%를 의료에 직접 투입하며, Medisave라는 강제 저축제도로 개인 부담을 관리합니다. 그런데 찬성 측은 이런 핵심 전제를 생략한 채 결과만 가져왔습니다. 이는 마치 “노르웨이가 행복하니 석유를 파자”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현실은 재정 부담이 크고, 복지 인프라도 부족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민영화를 허용하면, 규제는 형식이 되고, 시장은 약탈이 됩니다.

둘째, ‘선택권 확대’는 허울 좋은 신자유주의 담론입니다.
선택권이란,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 때만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도 민간 병원은 존재합니다. 하지만 1인당 월평균 의료비가 15만 원인 서민에게, 프리미엄 진료는 꿈속 이야기입니다. 찬성 측은 “정부가 보조금을 주면 된다”고 하지만, 그러면 공공 재정은 민간 병원을 위한 보조금으로 흘러가고, 결국 공공 병원은 더 황폐해집니다.
이는 선택권이 아니라, 계층별 의료 분리입니다.

셋째, ‘재정 부담 경감’이라는 주장은 자기모순입니다.
민간 병원이 고부가가치 진료를 맡는다고 했지만, 그들이 수익성이 낮은 응급실, 정신과, 소아과를 운영할까요? 아닙니다. 결국 이 분야는 공공이 전부 떠안게 됩니다. 그런데 동시에 우수 인력은 민간으로 빠져나가니, 공공 병원은 더 많은 일을 더 적은 인력으로 해야 합니다.
이게 어떻게 ‘효율적 분업’입니까? 이는 책임은 공공이, 이윤은 민간이 가져가는 불공정 게임입니다.

더욱이 찬성 측은 “접근할 수 없는 권리는 권리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민영화 이후, 치료비가 3배 오른 병원 앞에서 ‘접근’을 포기하는 사람의 생명은, 과연 권리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까

우리는 이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 속에서 가장 취약한 이들을 지키는 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제도는 결코 시장이 아닙니다.


질의응답

찬성 측 세 번째 발언자 질의

[질의 1] 찬성 측 3번 → 반대 측 1번
“귀측은 ‘의료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권리’라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런데 현재도 많은 서민들이 맞춤형 암 치료나 선진 진단을 받기 위해 불법 중개업자에게 수천만 원을 주고 중국·태국으로 갑니다. 이 현실을 보면서도, 여전히 ‘공공만이 정답’이라고 주장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이미 존재하는 비공식 민영화를 공식화해 규제하고 접근성을 높이는 게 더 책임 있는 태도라고 생각하시나요?”

반대 측 1번 답변:
“그 사례는 분명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공공 의료의 미비 때문이지, 민영화의 정당화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민영화를 열어주는 것이 아니라, 공공 시스템을 강화해 그런 ‘의료 탈출’ 자체를 없애는 것입니다.”


[질의 2] 찬성 측 3번 → 반대 측 2번
“귀측은 ‘민영 병원이 응급실이나 정신건강 분야에 투자하지 않을 것’이라 우려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정부가 민영 병원에 필수 진료 분야 운영을 의무화하고, 이를 위반하면 과징금을 부과하는 규제 체계—예를 들어 독일처럼—는 왜 고려하지 않으시는지요? 민영화를 ‘완전 자유시장’으로 오해하고 계신 건 아닌지요?”

반대 측 2번 답변:
“규제는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민간은 언제든 법망을 피해 수익성 높은 분야만 남기고 철수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규제 감시 인력과 행정 비용은 결국 국민 세금으로 충당되죠. 그 자원을 차라리 공공 병원 확충에 쓰는 게 더 효율적입니다.”


[질의 3] 찬성 측 3번 → 반대 측 4번
“귀측은 ‘모든 생명이 동등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6개월을 기다려야 수술받는 환자와, 민영 병원에서 다음 주에 수술받는 환자—둘 중 누가 더 ‘동등한 존엄’을 누리고 있다고 보십니까? ‘같이 기다리는 평등’이 진짜 평등입니까,아니면 ‘필요한 치료를 제때 받는 실질적 평등’이 진짜 평등입니까?”

반대 측 4번 답변:
“평등은 속도가 아니라 접근 가능성의 보편성에 있습니다. 민영화는 일부에게 빠른 치료를 주지만,다수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다’는 메시지를 줍니다. 우리는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제도를 지켜야지,두 개의 의료 세계를 만드는 걸 정당화해서는 안 됩니다.”


✅ 찬성 측 질의 요약

반대 측은 현실에서 이미 벌어지는 비공식 민영화를 외면하고,이상적인 공공 시스템만을 고집합니다.
또한 ‘민영화 = 무규제 시장’이라는 오해를 바탕으로 논리를 전개하며,규제와 혼합 모델의 가능성을 거부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그들이 말하는 ‘평등’이 형식적 기다림의 평등에 머물러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실질적 치료 접근의 평등이며,이를 위해서는 민영화를 책임 있게 허용하는 것이 유일한 길입니다.


반대 측 세 번째 발언자 질의

[질의 1] 반대 측 3번 → 찬성 측 1번
“귀측은 싱가포르를 성공 사례로 들었습니다. 그러나 싱가포르 국민은 소득의 20% 이상을 강제 의료 저축(Medisave)으로 내고,정부가 개인의 건강 행동까지 통제합니다.
이런 전체주의적 조건 없이,한국에서 싱가포르 모델을 따라할 수 있다고 정말 생각하십니까?

찬성 측 1번 답변:
“싱가포르의 모든 제도를 그대로 가져오자는 게 아닙니다. 다만 공공과 민간의 역할 분담환자 선택권 보장경쟁을 통한 서비스 혁신이라는 핵심 원리를 배우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현실에 맞는 한국형 혼합 모델을 설계할 수 있습니다.”


[질의 2] 반대 측 3번 → 찬성 측 2번
“귀측은 ‘민간이 고부가가치 진료를 맡으면 공공은 기초 의료에 집중할 수 있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민간이 우수 인력을 빨아들이면,공공 병원은 중증·응급 환자만 떠안고 인력은 탈출합니다.
이미 서울대병원 응급실 의사들조차도 민간 병원으로 이직률이 40% 넘는 상황인데,이 구조적 붕괴를 어떻게 막겠다는 겁니까?”

찬성 측 2번 답변:
“그 문제는 민영화 자체가 아니라,공공 병원의 처우 미비에서 비롯됩니다. 민영화와 함께 공공 의료 종사자에 대한 보상 체계 개선전문의 유치 프로그램을 병행하면,오히려 인력 순환이 활성화되고 전체 시스템이 강화됩니다.”


[질의 3] 반대 측 3번 → 찬성 측 4번
“귀측은 ‘선택권 확대’를 강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월 소득 150만 원인 노년층에게 ‘프리미엄 병원 선택권’이란,굶주린 사람에게 미슐랭 레스토랑 쿠폰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경제적 현실을 무시한 ‘허상의 선택권’ 을 왜 국민에게 강요하려 하시는지요?”

찬성 측 4번 답변:
“선택권은 모두에게 강제되는 것이 아니라,필요할 때 쓸 수 있는 옵션입니다. 지금은 그 옵션조차 없습니다. 게다가 정부는 저소득층에 대한 보조금민영 병원 이용 한도 설정필수 진료 가격 상한제 등을 통해 형평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선택권을 없애는 게 아니라,누구나 안전하게 선택할 수 있는 틀을 만드는 것입니다.”


✅ 반대 측 질의 요약

찬성 측은 싱가포르 모델을 맹목적으로 이상화하며,그 성공 뒤에 있는 특수한 사회·재정 조건을 무시합니다.
또한 민영화가 초래할 공공 의료 인력 붕괴의료 양극화에 대한 실질적 대책 없이,단지 ‘규제하면 된다’는 낙관적 희망사항만 반복합니다.
더욱이 ‘선택권’이라는 말로 경제적 약자의 현실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의료 정의는 모두가 같은 수준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지,돈 있는 자만을 위한 ‘빠른 차선’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자유 토론

찬성 1:
“반대 측은 의료를 ‘모두가 똑같이 기다리는 권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만약 그 기다림이 죽음으로 이어진다면—그 평등은 과연 존엄한가요? 우리는 형식적 평등이 아니라,생명을 살릴 수 있는 실질적 평등을 말하고 있습니다.”

반대 1:
“실질적 평등이라니요? 돈이 없으면 프리미엄 병원 문턱도 못 넘는 게 민영화의 실체입니다. 찬성 측은 ‘선택권’을 말하지만,서민에겐 그저 더 비싼 대기열이 생길 뿐입니다. 선택권은 경제력이 있을 때만 유효하죠.”

찬성 2:
“그렇다면 지금 서민들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해외로 치료 받으러 가거나,불법 중개업자에게 수천만 원을 주고 있습니다. 이건 비공식 민영화입니다. 차라리 이를 공식화해 규제하고,안전망 속에서 선택권을 보장하는 게 더 책임 있는 접근 아닐까요?”

반대 2:
“규제된 민영화? 꿈같은 이야기네요. 민간 병원이 이윤을 추구하면,자연스럽게 우수 인력과 장비는 민간으로 몰립니다. 결과는? 공공 병원은 ‘남은 자들’만 돌보는 의료 빈민층 수용소가 됩니다. 이게 찬성 측이 말하는 ‘효율적 분업’입니까?”

찬성 3:
“싱가포르는 민간 병원이 전체 병상의 80%를 차지하지만,국민 건강 지표는 세계 최고입니다. 왜냐고요? 강제 저축 + 정부 통제 + 필수 서비스 의무 운영이라는 삼중 안전장치 때문입니다. 민영화는 ‘무제한 자유’가 아니라,제도 설계의 문제입니다.”

반대 3:
“싱가포르는 1인당 GDP가 7만 달러입니다. 한국은 3만 5천 달러. 게다가 싱가포르는 국민 모두가 강제로 의료 저축을 합니다. 그런 조건 없이 민영화만 들여오면,우리 사회는 의료 빈부 격차의 실험장이 될 겁니다. 찬성 측은 현실을 너무 낙관적으로 보십니다.”

찬성 4:
“낙관이 아니라,현실 직시입니다. 고령화로 공공 재정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2030년이면 노인 1명을 현역 1.5명이 부양해야 하는데,그때도 ‘같이 기다리는 평등’을 고집할 겁니까? 민간 자본을 유치해 고부가가치 진료를 분담하면,공공은 기초 의료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현명한 분업입니다.”

반대 4:
“분업이 아니라 책임 회피입니다. 민간이 수익성 높은 진료만 가져가면,응급실·정신과·예방접종 같은 ‘팔리지 않는 생명’은 누가 책임지죠? 의료는 마케팅이 아닙니다. 돈이 안 되는 생명도 존중받아야 할 때,우리는 공공성을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진짜 인간 존엄입니다.”


최종 발언

찬성 측 최종 발언

존경하는 심사위원님,여러분。

오늘 우리는 단 하나의 질문 앞에 섰습니다。
“누구를 위한 의료인가?”

반대 측은 말합니다。 “의료는 돈으로 살 수 없다。”
하지만 현실은 이렇게 답합니다。
“돈이 없으면,기다려야 하고,기다리다 죽을 수도 있다。”

우리가 주장하는 민영화는 무분별한 시장화가 아닙니다
이는 규제 속의 선택책임 있는 경쟁공공과 민간의 협력을 의미합니다。
싱가포르가 성공한 이유는 단지 민영화 때문이 아니라,정부가 강력히 개입해 모든 국민이 최소한의 건강 보장을 받도록 설계했기 때문입니다。 독일 역시 민간 병원이 있지만,정부는 그 운영 조건과 가격을 엄격히 통제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원하는 모델입니다。 시장을 도구로 삼되,인간을 중심에 두는 제도 말입니다。

반대 측은 “선택권은 가진 자만의 특권”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떻습니까?
서민들은 이미 해외로 나가고,불법 중개업자에게 수천만 원을 주고,혹은 포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진짜 평등입니까?
아닙니다。
진짜 평등은 모두가 같은 대기줄에 서는 형식적 평등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이 제때 치료받는 실질적 평등입니다。

우리는 이상을 말하지 않습니다。
현실을 직시합니다。
고령화로 공공 재정은 한계에 달했고,의사 1인당 환자 수는 OECD 최악입니다。
이 상황에서 “공공만 고집하자”는 건,빈곤층에게 ‘기다려라’고 명령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확신합니다。
의료 민영화를 허용하되,책임 있게 규제하면
우리는 더 많은 생명을 더 빨리 구할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진정한 의료 정의입니다。

심사위원님,
오늘의 선택은 이념이 아니라,
환자의 고통 앞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를 묻는 시험입니다。
우리는 기다림이 아닌,행동을 선택해야 합니다。


반대 측 최종 발언

존경하는 심사위원님,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신 모든 분들께 묻겠습니다。
“당신의 자녀가 응급실 문 앞에서 신용카드를 요구받는 나라에서 살고 싶으십니까?”

찬성 측은 ‘규제된 민영화’를 말합니다。
하지만 역사가 증명합니다。
시장이 한번 열리면,규제는 늘 뒷걸음질칩니다
왜냐하면 자본은 언제나 규제의 틈을 찾아내고,정치는 그 앞에서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싱가포르를 들지만,거기엔 강제 저축인 메디세이브정부가 모든 병원 가격을 통제소득에 따라 지원이 자동 적용되는 시스템이 있습니다。
한국은 그런 제도적 기반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혼합 모델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건,
비행기 없이 하늘을 나는 법을 가르치는 것과 같습니다

찬성 측은 “비공식 민영화를 공식화하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불법을 합법화하는 게 아니라,불평등을 제도화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여전히 프리미엄 병원을 못 갑니다。
결국 남는 건,공공 병원의 붕괴와 의료 빈민층의 고립뿐입니다。

더 중요한 건,의료의 본질은 이윤이 아니라 치유라는 점입니다。
민간 병원이 수익을 내야 살아남는다면,
누가 응급실 밤 근무를 서겠습니까?
누가 정신질환자를 돌보겠습니까?
누가 예방접종 같은 ‘수익 없는 일’을 하겠습니까?

의료는 마케팅이 아닙니다。
생명은 상품이 아닙니다。
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하는 사회는,어느 누구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효율이 아니라 존엄입니다。
빠른 치료가 아니라 공정한 접근입니다。
선택권이 아니라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 서는 권리입니다。

심사위원님,
오늘의 결정은 단지 정책 선택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인간으로서,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를 결정하는 순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호히 말합니다。
의료 민영화는 허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생명은 값어치가 아니라,가치이기 때문입니다